소설리스트

95화. 남의 일이라 이거지!? (95/173)


95화. 남의 일이라 이거지!?
202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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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사랑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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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님?”

라……가 아니라, 랑.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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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렐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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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대답해 주시기를 바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니, 언제까지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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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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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렐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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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라고?!”

누군가가 내 이름을 애타게 외친 것과 동시에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침묵이 맴돌았다.

정신을 차리자 그제야, 레아와 가게의 다른 점원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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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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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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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괜찮아 보이시는데…….”

나는 화장이 번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벅벅 문지르며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콩닥거리는 심장 때문에 어느덧 가빠진 숨을 조용히 내뱉으면서.

그날 이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가 한 말을 되새겼다. 하지만 몇 번을 돌아보아도, 그가 한 말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은 여전히 터질 것만 같았다.

기쁘면서도 어리둥절하고, 나도 모르게 안절부절못하고…… 그러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그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정신을 빼놓을 순 없었다. 그동안 황궁이며 고원이며 여기저기 정신없이 쏘다닌 탓에 레아를 만난 것도 정말 오랜만이니까.

비록 레아가 혼자서도 너무나 잘해 주고 있고, 덕분에 가게가 매달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지만…… 그래도 모처럼 방문했는데 한심한 모습을 보여 줄 순 없었다.

그러니 정신 차려!

나는 이성을 되찾기 위해 짝짝, 소리 나게 뺨을 두드렸다. 불과 수 초도 지나지 않아 되레 역효과였다는 걸 깨닫고 말았지만.

조금 전보다 더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입술 끝을 애써 매끄럽게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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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요즘 설탕 수급에 문제가 좀 생겼다고요?”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 보려 조금 전까지 나누고 있던 대화 주제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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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모든 인맥을 끌어모아 보고, 엊그저께 이곳을 방문한 수도의 도매상도 만나 봤지만…….”

오랜만에 뵙는 건데 이런 이야기부터 꺼내서 죄송해요, 하며 레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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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지방에는 남아 있는 물량이 있을까 해서 온 거래요. 수도에서는 아예 설탕이 품귀 상태라고요. 반 포대라도 좋으니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잇고, 가격은 뭐 거의 부르는 게 값이라나요.”

당연한 일이다. 우리 같은 디저트 가게는 물론이고, 주식인 빵을 파는 가게, 티 살롱에서도 설탕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재료니까.

하지만 현대 사회와는 달리, 이곳은 설탕이 몹시 귀했다. 특히 제대로 정제한 고운 설탕은 너무 비싸서 서민들은 쉽게 구경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그런 귀한 재료를 아낌없이 쓴다는 게 우리 가게의 인기 비결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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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매상 말로는, 황궁에서 곧 비축해 두고 있던 설탕을 풀 거래요. 하지만 그마저도 양이 턱없이 부족할 거라더군요.”

레아가 눈을 빛내며 내 손을 꼬옥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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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렐라 님은 황궁에 연이 있으시죠? 물량이 풀리면 분명 너도나도 달려들 텐데…….”

황궁이란 말을 듣자마자 내 손에도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물론 레아와는 다른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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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반드시 어느 정도 물량은 확보해 놓아야만 해요.”

레아를 비롯해 모든 점원이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곧 설탕 대란이 일어날 건데, 황궁에서 푸는 물량으로는 모자라다 이거지?

가만있어 봐. 이거 잘만 하면…….

나는 잠시 생각하다 조용히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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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에서 왔다는 그 도매상, 아직도 여기 머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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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내일까진 있겠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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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좀 만나 볼 수 있을까요?”

황실…… 아니, 황제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지도!

* * *

다행히 도매상에게선 금방 답이 왔다. 가까운 숙소에 머물고 있으니, 바로 만나러 오겠다는 답이었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가게에 앉아 홍차를 마시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노리고 있는 제국 사절단은 총 다섯 자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네 자리는 벌써 임자가 정해진 상태였다.

레어넌이 말해 주었듯 두 자리는 성기사단장인 레어넌, 그리고 제국의 대사제를 위한 자리였다.

나머지 두 자리를 차지한 귀족들도 당연히 레어넌 못지않게 황제의 신임을 받는 자들이었고.

즉, 제국 사절단의 일원이 된다는 건 황제의 측근이 되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황후는 물론이고, 다른 황실 사람들도 섣불리 어찌할 수 없는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겠지. 그저 레어넌 베르하르트를 쫓아다니는 일개 귀족 영애 나부랭이쯤으로 취급당하던 내가, 제국 사절단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건.

물론 황제의 신임을 얻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레어넌과 동등한 위치에 서는 일이니까.

하지만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전쟁에서 공을 세운 가문들의 이름이 날로 드높아지는 현재 상황도 내게는 유리했다.

사실 펠리어트의 경우를 제외하면, 전쟁에 참여한 건 대부분 평소 황실과 친우 관계를 유지하던 가문들이었다. 그러니 황제의 명령에 기꺼이 기사단을 이끌고 참전했겠지.

하지만 황제에게 친구란, 어디까지나 ‘자신이 누를 수 있는 존재’여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레어넌 베르하르트처럼 정의롭고, 권력에 대한 욕심도 없으며, 깊은 충성심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건 레어넌이라서 가능한 일 아닌가.

만약 내가 황제라면, 불안할 정도로 힘이 세진 친구에게 또 다른 권력을 쥐여 주고 싶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로 눈을 돌릴까?

공을 인정해 주고 곁에 두어도 안심이 될 만한 사람. 즉, 새로운 친구를 찾으려 하지 않을까?

나는 그 틈을 노릴 생각이었다.

마치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것처럼 차근차근, 내가 누군지, 어떤 일을 해냈는지를 보여 주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틀림없이, 레어넌의 고백에 대한 답 역시 내릴 수 있겠지.

생각을 이어가던 그때, 가게의 문에 달린 종이 딸랑, 하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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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레아가 눈짓하자마자 얼른 모자를 벗으며 인사를 건넸다. 반짝반짝 벗겨진 정수리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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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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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서 여기 앉으세요.”

나는 얼른 몸을 일으켜 그에게 의자를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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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젊고 아리따우신 영애께서 사업 감각까지 뛰어나시다니……. 정말 대단하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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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거두절미하고, 지금 수도의 상황이 정확히 어떤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인사치레 같은 건 할 시간이 없어서 본론부터 묻자, 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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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니까요.”

내 모습이 퍽 다급해 보였는지, 그는 자세한 상황을 전부 이야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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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생산지인 남부에 폭우가 내리는 바람에 원당이 젖어서 전부 못 쓰게 되었다더군요. 다른 지역은 생산량도 워낙 적고, 가뭄이 든 곳도 많아 흉작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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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에서 비축하고 있는 물량을 풀 거라던데, 그걸로도 모자랄까요?”

남자는 레아가 내어 온 차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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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마 턱없이 모자랄 겁니다. 그마저도 몇몇 업자들이 싹쓸이해 갈 텐데, 오히려 민심이 나빠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곁에 서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아는 점점 더 울상이 되어 갔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 조용히 입술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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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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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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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의 영지민은 사탕무로 직접 원당을 만들어 먹곤 해요. 맛도 굉장히 뛰어나고요.”

어떻게 아냐고? 내가 직접 먹어 봤으니까!

상등품이 나왔으니 공작부인도 맛보시라며 가끔가다 캐러멜 같은 걸 선물로 보내는 자들이 있었다.

엠마 체임버스는 몸매가 망가진다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그 달콤한 음식들은 당시 우울한 내 마음을 달래 주던 일등 공신이었다.

하지만 레아가 먼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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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당은 안 돼요. 과자가 제대로 부풀지 않을 때도 있고, 질감도 다르고……. 건강을 생각하면 원당 자체를 쓰는 게 더 낫다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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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비록 모양은 안 좋아도 건강에 좋다고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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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애초에 단 걸 잘 안 먹지 않을까요?”

음, 그건 그렇네. 너무나 맞는 말이라 무어라 반박할 수가 없다.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도매상도 한마디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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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애초에 자기들이 먹으려고 만드는 거니, 한 집에 물량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많아 봤자 몇십 자루일 텐데, 서부에 있는 설탕 공장들이 아무리 일손을 놓고 있다지만 그래도 수지타산이라는 게 어느 정도 맞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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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요?!”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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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공장은 워낙 대량 생산을 하는 곳이라…….”

잠시 두 눈을 껌뻑이던 남자가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아마도 자신이 실수했다고 지레짐작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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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라, 지금 공장이 어디에 있다고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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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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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원재료는 북부, 공장은 서부라.

와, 세상에. 무슨 이런 소설 같은 일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히죽히죽 말려 올라갔다.

하지만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한 가지 확인할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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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무 원당을 모아 정제하면, 일반 설탕처럼 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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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정제한다면 큰 차이는 없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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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문제없겠네요.”

여전히 어리둥절한 남자와 그 옆의 레아를 향해 활짝 웃어 보인 그때였다.

딸랑, 하는 종소리와 함께 문 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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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꺅, 이, 이게 웬 새야?!”

고개를 돌리자, 손님들이 오가는 통에 안으로 잽싸게 날아든 작고 흰 새 한 마리가 보였다.

새는 당황한 점원들 사이를 쏜살같이 지나쳐 내 어깨 위에 무사히 안착했다. 발목에 연보랏빛 쪽지가 매달려 있었다.

세이블이 보낸 전서구가 틀림없다.

나는 새를 어깨에 얹은 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양손을 허리에 척 얹고 당당하게 턱 끝을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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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 믿으세요.”

이렇게 때맞춰 전서구가 날아들 줄이야.

역시 우리는 마음이 잘 통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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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이 난관을 해결할 좋은 생각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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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어디선가 새까지 날아들어 온 이 드라마틱한 상황 덕분인지, 도매상은 내 생각이 무언지 듣기도 전에 감탄을 내뱉었다.

크으!

방금 한 말 조금…… 아니, 완전 주인공 같았다, 그렇지?!

멋진 히로인이 된 나 자신에 취한다!

잔뜩 흥분해 어질어질한 정신을 다잡고 새 발목에 묶인 쪽지를 펼쳐 들었다.

[북쪽의 붉은 늑대가 서쪽으로 진군 중.]

딱 두 줄 뿐인 짧은 글귀에서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조속히 해결 바람. 내전이 일어나도 상관없는 게 아니라면.]

붉은 늑대란 펠리어트 기사단 중에서도 특출나게 뛰어난 정예 멤버들을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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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펠리어트 이 인간이 진짜……!”

나는 편지를 구겨 쥐며 버럭 외쳤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수차례나 말렸건만!

하여간 내 말은 더럽게 안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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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을 일으켜도, 내가 일으킬 거라고!”

왜냐하면 주인공은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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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뭐, 뭐라고요……?”

주먹을 불끈 쥔 채 소리 높여 꺼낸 혼잣말에, 도매상의 낯빛이 흙빛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를 안심시켜 줄 여유가 없었다.

나는 우두커니 서 있는 레아의 어깨를 와락 껴안은 뒤, 나만 믿으라는 말과 함께 도매상의 손을 꼭 잡고 위아래로 휙휙 흔들었다.

그러고는 재빠르게 몸을 돌려 밖으로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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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이, 이상하게 보여도 믿을 만한 분이에요!”

등 뒤에서 레아의 황급한 변명이 들려왔지만, 이번에도 돌아볼 틈 같은 건 없었다.

* * *

밤새 쉬지도 않고 마차를 달려 겨우 북부에 도착했을 땐 새벽녘이 다 된 시간이었다.

나는 마차가 멈춰 서자마자 뛰듯이 내려 현관 앞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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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어트!”

미리 전갈을 받았는지, 고용인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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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님, 어서 오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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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어트는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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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오신다고 했으니, 제발 진정을…….”

이동 중에도 전서구를 여러 번 보냈고, 그에게서도 답장을 받긴 했다.

다행스럽게도 붉은 늑대라 불리는 정예단이, 서쪽 대영지로 들어서기 직전이었다.

급한 불을 끄긴 했지만, 그래도 쉬이 안심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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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나가 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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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지만 마님, 아직 동이 채 트기도 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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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니까 어서 말을 가져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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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어두워서 위험합니다. 이러다 다치시기라도 하면……!”

나를 말리는 고용인들과 옥신각신할 때였다.

저 멀리 저택 입구에서 말의 거친 울음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안장 뒤에 커다란 무언가를 짊어진 채 이쪽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인영이 보였다.

이윽고 현관의 램프 불빛이 비추는 범위 안에 그가 들어왔다. 검은 망토가 휘날리는 것이 두 눈에 또렷하게 들어왔다.

남자가 날렵하게 말에서 내린 것과 동시에.

쿵!

커다란 소리를 내며 육중한 무언가가 땅 위에 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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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이익.”

순간 놀란 고용인들이 뒷걸음질 쳤다.

땅에 떨어진 것은 집채만 한 짐승의 사체였다.

얼핏 봤을 때는 틀림없이 곰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살피니 돼지처럼 위로 들린 코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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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미안하군.”

펠리어트가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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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이 갑자기 길을 막아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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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공작님……! 지금 바로 닦을 천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그의 몰골을 본 하인 한 명이 놀라서 저택 안으로 후다닥 달려 들어갔다.

그럴 만했다. 펠리어트의 모습이 퍽 엉망이었으니까.

머리가 헝클어진 것은 물론, 흙먼지와 더불어 장갑과 부츠에는 멧돼지의 것인 듯한 피가 묻어 있었다.

오늘따라 날카로운 눈매, 싸늘하게 빛나는 안광이 서늘한 여명 아래 드러났다.

뺨 근처에 묻어 있는 붉은 얼룩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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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러니까…….”

그 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순간 말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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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붉은 늑대는 지금 어디에…….”

펠리어트는 대답 대신 나를 가만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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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은 괜찮은 것 같군.”

그의 입술이 열린 것과 동시에 어디선가 불어온 차가운 바람에 검은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의 몸에 묻어 있는 피 냄새가 바람을 타고 코끝에 살짝 스쳤다.

……진짜 광공의 화신 같은 모습이다.

나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두 눈동자는 여전히 그의 뺨에 묻어 있는 핏자국에 고정되어 있었다. 닦아 주고 싶었지만, 어쩐지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펠리어트는 무감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을 내게 고정한 채,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제 뺨을 쓰윽 쓸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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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얼룩이 흰 피부를 따라 사선으로 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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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렸지?”

펠리어트의 목소리가 지독하리만치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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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도 못 추리게 해 주겠다고 했잖아.”

살 떨리게 살벌하면서도 어쩐지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광경이었다.

순간 얼마 전에 본 메시지 하나가 머릿속에 저절로 떠올랐다.

‘그냥 네 명이랑 다 같이 살아 주시면 안 될까요?’

다 같이 살라니.

와, 세상에.

자기 일 아니라고, 어?!

……매일매일 피바람 속에서 하루하루 고통받다 결국 스트레스로 단명해 버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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