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바로 내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91/173)


91화. 바로 내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2022.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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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엘라 고원에서 가장 가까운 영지는 ‘스와니’ 라고 불리는 작은 땅이었다.

사방이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스와니는, 드문드문 나 있는 목초지에서 소와 양을 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집 몇 개가 전부였다.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듯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원 마을.

그런 곳이 오늘 처음으로 발칵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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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제부터 살짝 따끔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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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따끔하다는 건, 사실은 엄청 아플 거란 말씀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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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 그러니까…….”

도대체 왜 이렇게 눈치가 빠른 거야.

의사는 붉은 머리 귀족 아가씨의 질문에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남몰래 진땀만 흘렸다.

수도의 커다란 진료소에서 죽어라 일만 하다 겨우 은퇴해서, 이 작고 아름다운 곳에 온 지 불과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부턴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양치기들 건강이나 봐주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려고 했는데…….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의사는 속으로 한탄하며 조용히 손을 뻗어 근처에 놓인 바늘을 쥐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엄하고도 무시무시한 시선들이 쏟아졌다.

레어넌 베르하르트 기사단장과 북부의 펠리어트 대공, 그리고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복면 검사와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는 한 여자까지.

밖에서 기다려도 된다고 말했는데, 그들은 굳이 진료실 안으로 따라 들어와 의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어디 그뿐인가. 밖에는 덩치 큰 용병 수십 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떠들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지만, 오히려 그래서 압박감이 더 심했다.

팔에 상처를 입은 사람보다 훨씬 긴장하고 만 의사의 등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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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아프다고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래야 마음의 준비를 하죠.”

붉은 머리 아가씨가 또다시 종알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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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이제부터 조금…… 아프실 겁니다.”

그러자 그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치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가벼운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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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처치가 훌륭하여 봉합만 제대로 하면 금세 아물 겁니다. 흉터도 크게 남지 않을 거고요.”

의사는 아무것도 없는 고원에서 누가 이렇게 훌륭한 응급처치를 해 주었냐고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레어넌 베르하르트와 펠리어트 체임버스가 누군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둘 다 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 아닌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상자를 보았을 테니, 이 정도의 처치는 눈감고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보통 용병단에는 웬만한 부상은 치료할 수 있을 정도로 의학 지식을 지닌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이 해 주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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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금세 끝날 겁니다.”

의사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긴장으로 굳은 몸을 이완하려 노력했다.

마취약을 충분히 도포해 놓았지만,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할 만큼 성능이 뛰어난 약은 아니었다. 시골 마을에서 쓰는 마취약이 대단할 리 없으니까.

통증이 좀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건데 설마 그걸로 자신을 어떻게 하진 않겠지…….

저를 뚫어져라 주목하는 시선들을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녀의 팔에 바늘을 살짝 가져다 댄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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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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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그러시죠?!”

갑작스러운 환자의 비명에 의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날카로운 눈빛이 그의 뒤통수를 꿰뚫을 듯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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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프신가요?”

근데 난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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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아플 것 같아서…….”

아, 제발! 좀!

의사는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는 그녀를 향해 내뱉으려던 욕을 간신히 삼켰다.

로렐라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검 손잡이를 쥐고 있던 펠리어트 공작의 손등에 힘줄이 돋은 것을 봐 버린 탓이었다.

당신의 엄살이 유능한 의사를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제발 자각 좀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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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겠다. 이대로라면 피가 말라 죽을지도 모르겠어.’

그는 결단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고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신들린 듯한 솜씨로 로렐라의 상처를 꿰매기 시작했다.

* * *

아플 거라던 의사의 말과는 달리 나는 큰 고통 없이 무사히 치료를 끝낼 수 있었다.

물론 약간 따갑긴 했지만.

처치가 끝난 뒤엔 진료실 앞쪽에 마련된 작은 응접실에 앉아, 팔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의사가 내어 준 진통제 성분이 들어 있는 차를 마셨다. 겨우 한숨 돌리고 나니 비로소 피로가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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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흔한 나무가 아니군요. 화살을 만드는 데에 잘 쓰지 않는 아주 특이한 나무를 썼어요.”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레어넌이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읊조렸다. 그는 고원에서부터 증거물인 화살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채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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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촉도 맞춤 제작이군요. 전반적으로 관리가 잘되어 있는 걸로 봐서 활을 능숙하게 다루는 자가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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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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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의아한 건, 화살대의 무게가 너무 가볍다는 건데……. 이렇게 가벼우면 전문적인 살상 무기로는 좀 부적합합니다. 그런데도 습격에 사용한 걸 보니, 범인은 아무래도 일반 사람, 그리고 여자일 확률이 높겠군요.”

차근차근 범인을 추리하는 레어넌의 집중력에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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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살은 제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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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물론이에요. 단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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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를 남긴 이상, 금세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다가오더니, 다정하게 위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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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아무 걱정 하지 마시고 회복에 힘쓰십시오. 기사단에서 쓰는 약을 모두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거라면 흉터도 남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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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눈빛에는 이내 커다란 노기가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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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을 반드시 잡아 죗값을 치르게 만들겠습니다.”

……에어리스가 너무 빨리 잡히면 안 되는데.

마음속에 슬그머니 걱정이 차올라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 그때였다.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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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준비는 모두 마쳤습니다.”

펠리어트의 수하가 담담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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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당장 움직인다.”

아까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앞에 놓인 찻잔만 줄곧 무서운 얼굴로 노려보고 있던 펠리어트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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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디 가려고?”

나는 따라 일어나 걸음을 옮기는 그의 앞을 황급히 막아섰다.

내내 굳게 다물려 있던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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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붉은 늑대를 집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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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나도 모르게 비명 같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붉은 늑대’는 북부 기사단 중에서도 최고의 정예 부대를 일컬었다.

이번 전쟁에서 펠리어트를 따라 수천 마리의 마물을 척결해서 더욱 명성이 높아진……. 아,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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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모였는데?”

펠리어트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한 자 한 자 씹어 먹듯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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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도 못 추리게 해 주겠어.”

그러고는 바람같이 밖으로 나가 버렸다.

잡을 틈도 없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안 그래도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라는 도저히 못 믿을 말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린 용병단 막내가 실제론 어디로 간 건지 신경 쓰여 죽겠는데!

그럴싸한 방법도 찾지 못하고 남몰래 발을 동동 구르는데, 세이블과 두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두 눈을 깜빡이며 그녀를 향해 소리 없이 물었다.

……에어리스 정말 괜찮겠지? 응?

그러자 세이블이 마찬가지로 입을 다물고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찌 되든 상관없단 뜻이 아니라, 이제 저도 모르겠단 뜻이 틀림없었다.

* * *

괜찮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도 시엘로 단장을 비롯한 용병들은 나를 저택까지 호위해 주었다.

미리 마중 나와 있던 조이는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서 수많은 용병을 거느린 채 집으로 돌아온 날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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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아가씨. 어쩌다 이렇게 되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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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다친 거 아니야, 조이. 괜찮아.”

나는 울먹이는 그녀를 얼른 안심시키고는 마지막까지 훌륭히 임무를 완수해 준 시엘로 단장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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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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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아, 저희는 당분간 북부 국경 지대에 계속 머물 예정이니 기회가 되면 또 들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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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그래요? 잘됐네요. 안 그래도 일이 있어 조만간 그쪽에 갈 생각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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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꼭 방문해 주십시오. 아주 좋은 술을 준비해 놓겠습니다.”

나는 호탕하게 웃는 단장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용병들이 모두 저택을 빠져나갈 때까지 오래오래 그들을 지켜보며 배웅했다.

그런데 모두가 자리를 뜬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손님이 한 명 있었다.

세이블 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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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시면 차 한 잔 마실 수 있을까요.”

그녀는 날 향해 생긋 미소 지으며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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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어렵진 않지만…….”

아니, 너 엄청 바쁜 거 아니야? 후작가로 돌아가서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을 텐데.

도대체 왜 바로 돌아가지 않고 나와 우리 집 앞까지 동행한 건지 모르겠다.

거기다 차를 마시고 가겠다니.

혹시 피곤해서 그런가? 자고 가라고 할까?

여러 의문이 가득했지만 나는 일단 그녀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금세 뜨거운 홍차가 내어져 왔다.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레아가 직접 구운 과자들도 테이블에 한가득 차려졌다.

이윽고 우리 둘만 남게 되자 세이블이 차분한 음색으로 조용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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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분홍색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한 소녀가 나타났다. 세이블의 안내자였다.

동시에 내 바로 옆자리에도 인기척이 느껴졌다.

보나 마나 부르지 않아도 알아서 잘 나타나는 위너드겠지.

그런 생각으로 흘끗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움직이기 편한 검사 옷과 복면은 그새 벗어던지고 평소의 화려한 정복을 입고 앉아 있는 그가 보였다. 다만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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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렐라 메이레드 님에게 나머지 100만 주를 양도해 줘.”

그러자 롯지는 주먹을 꼭 쥐고 울음을 참으려는 듯 몇 번이나 숨을 고르더니 이내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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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세이블 님.”

내가 거짓말하는 걸 수도 있다며 격렬하게 저항하던 처음과는 달리, 상당히 협조적인 자세였다.

이 아이도 그간 고원에서 있었던 일을 전부 지켜본 덕분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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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세이블은 나를 쳐다보며 엷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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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급해도 약속은 지켜야겠죠.”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건지, 평소의 은은한 미소가 아니라 아름답고 환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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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하시겠어요?”

나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 대답 대신 눈앞에 시스템 화면을 띄웠다.

「총 판매 주식 : 3,900,000주」

세이블에게서 받은 100만 주를 제외해도, 어마어마하게 불어난 숫자였다.

대부분은 오스널에게 납치되었을 때, 에어리스에게 마법 안경을 보냈을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부러 팔에 화살을 팔에 맞았을 때 팔린 것들이었다.

나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가로 걸어갔다.

하늘에는 어느새 새빨간 노을이 마치 장막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세이블이 처음 날 찾아왔던 그 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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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렐라 님?”

내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의아함을 가득 담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천천히 뒤로 돌았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창문턱을 짚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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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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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고운 주홍빛이 번진 세이블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그녀의 안내자 롯지가 소파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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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지만 약속했는데…….”

세이블이 답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조용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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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힘이 아닌, 다른 사람의 힘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같은 건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너무나도 당연한, 그러나 그동안 쭉 잊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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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나머지 주식은 받지 않을 거야.”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레어넌과 펠리어트, 그리고 카셀과 만남을 이어 나갔고, 그 사이사이 터지는 주식을 보며 만족해 왔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는 결코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전생에 나는 어떤 주인공을 좋아했더라?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지켜보고 있을 수많은 투자자는 어떤 주인공을 응원해 줄까?

생각해 보면 답은 아주 간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외면했던 것이다.

그저 ‘주식’이라는 단어에만 함몰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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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식을 팔아서 주인공이 되는 게 아니야.”

나는 여전히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세이블을 향해 환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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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주식이 팔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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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그 순간, 귓가에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가 앞다투어 로렐라 님의 주식을 삽니다!」

띵동!

「60만 주, 80만 주, 100만 주……. 250만 주, 300만 주를 돌파합니다!」

띵동!

「총 판매 주식 500만 주 달성! 신기록입니다!」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느 종소리보다, 가장 활기차고 경쾌한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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