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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이게 네 계획이었어? (90/173)


90화. 이게 네 계획이었어?
2022.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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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조용히 물을 가르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와중에도, 에어리스는 돌처럼 굳은 채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허공에 떠 있는 화살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어느새 샘 가장자리까지 다가온 여자가 마치 이쪽을 보라는 듯 가볍게 손짓했다.

그제야 에어리스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얼떨결에 시선을 따라 걸음을 옮기기까지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그녀는 이미 저도 모르게 수풀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후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전히 화살은 공중에 떠 있었다. 흡사 투명한 벽에 박히기라도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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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놀랐어?”

여자는 그녀를 향해 생긋 웃더니, 우아한 손길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러자 손끝을 따라 희미한 빛이 퍼지더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허리까지 오는 검은 생머리가, 마치 물이 빠지듯 천천히 색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어리스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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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나도 처음 봤을 땐 엄청 신기했으니까.”

예쁜 입술을 한껏 위로 끌어 올린 여자의 머리칼은 어느새 태양처럼 붉게 변했다. 어둠을 사를 듯이 반짝거리는 눈동자도 같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에어리스가 세이블이라 굳게 믿고 화살까지 쏘려 했던 여자는, 바로 로렐라 메이레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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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팔찌를 차고 명령하면, 날아오던 게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대.”

로렐라는 반짝거리는 팔찌를 찬 손목을 흔들며 다시 한번 해맑게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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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지? 뭐, 엄청난 힘을 지닌 그림자 마법사가 필요한 게 흠이지만 말이야.”

에어리스는 몰려오는 낭패감을 어쩌지 못해 턱이 아릴 정도로 어금니를 힘주어 물었다.

세이블 릴리보다 큰 키와 생기 넘치는 얼굴, 게다가 훨씬 경쾌하고 발랄한 목소리까지.

평소의 자신이라면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없다.

설령 로렐라 메이레드가 마법으로 세이블과 똑같이 꾸민다고 해도 그 긴 시간 동안 그녀를 지켜보고 증오해 온 자신이, 그걸 몰라봤을 리가 없는데……!

하필이면 짙은 어둠 속이어서.

아니, 분노와 패배감에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내 작은 의심 하나가 슬그머니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정말 자신의 실수인가?

낯선 남자와 차분히 대화를 나누던 여자의 억양, 고저도 없는 목소리로 잔인한 지시를 내리던 말투, 걸음걸이며 서 있는 자세 하나까지.

모든 게 세이블과 똑같았다.

제아무리 감정이 앞섰다 하더라도, 두 눈이 완전히 멀어 버린 것은 아니니 아주 달랐다면 분명 눈치를 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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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수작을 부렸는지는 몰라도…….”

에어리스는 애써 정신을 다잡으며 살벌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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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입 다물겠다고 맹세하는 게 좋을 거야. 만약 나를 봤다고 누군가에게 떠들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말을 끝까지 마치는 대신 다시 한번 활을 장전했다.

그러자 로렐라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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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봤자 소용없다니까.”

그러더니 마치 약 올리듯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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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왜 입을 다물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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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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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방네 다 떠들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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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생각보다 멍청하네.”

에어리스의 얼굴에 차가운 조소가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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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이 고원에서 내게 화살을 맞을 뻔했다고 떠들어 봤자 누가 믿어 주겠어?”

로렐라를 조롱하려 꺼낸 그 말은 에어리스의 두려움도 엷게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한 발 한 발 로렐라를 향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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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까짓 것들이 무슨 작당을 했든지 상관없어. 원로회부터 시작해서 릴리 가문의 모든 것은 내 손아귀에 다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니까.”

침묵하는 로렐라 메이레드를 향해, 그녀는 삐뚤어진 입술로 연신 이죽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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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도 없이 릴리 후작가를 상대로 일을 벌이려거든…… 뭐, 좋아. 마음대로 해. 하지만 대가는 아주 톡톡히 치러야 할 거야.”

음험한 눈동자가 로렐라의 얼굴에 비수처럼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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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그 혀를 함부로 놀리지 못하게 해 주지.”

승기를 잡은 에어리스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손뼉을 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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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런 건 어때?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조그만 백작가의 여식이 이상한 마법사와 손잡고 감히 릴리 후작가의 차기 가주를 협박하려 했다.”

줄곧 침묵하던 로렐라가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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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좋은 생각이네. 그런데 증거란 만들기 마련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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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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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른쪽 팔로.”

이해하지 못한 에어리스가 미간을 찡그렸지만, 로렐라는 대답 대신 차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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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촉이 박히도록.”

그때였다. 멈춰 있던 화살이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그녀를 향해 무섭게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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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읏!”

뾰족한 화살촉이 살갗을 뚫은 순간, 로렐라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미처 삼키지 못한 신음과 함께 입 안으로 비릿한 피 내음이 스며들었다.

* * *

격렬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호흡이 가빠졌다.

차갑게 식은 어깨 위를 칼바람이 할퀴고 지나갔고, 찢어진 입술에선 여전히 피 맛이 났지만 그 어떤 것에도 신경 쓸 수 없었다.

팔 전체에 가득 퍼진, 마치 불로 지진 듯한 고통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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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참았던 숨을 토해 내자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에어리스 릴리는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과 떨리는 눈동자. 마치 미친 사람을 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앞에 두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목청껏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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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악!”

에어리스가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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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신호를 기다리는 세이블에게 충분히 들리고도 남겠지.’

나는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는, 그녀를 쏘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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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뒤집힐 만한 광경을 목격한 네가 어디로 향할지는 불 보듯 훤한 일이지.”

그러고는 살며시 입꼬리를 끌어 올린 채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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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소문난 명사수라며? 그런 네가 세이블을 죽이겠다 마음먹었을 때, 화살을 이용할 거라는 건 사실 당연했어. 그것도 네 손에 가장 익숙하고 편한 것으로.”

사실은 팔이 너무 아파서 미소 짓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내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제법 싸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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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다른 화살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상황이 워낙 급박했고, 무엇보다 복수가 가장 최우선이었겠지. 화살이야 어차피 세이블을 죽인 다음 회수하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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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

에어리스가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나는 그마저도 단칼에 잘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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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쩌면 회수할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을지도 몰라. 네 말마따나 릴리 가문의 실권을 쥐고 있는 이상, 경쟁자인 세이블의 죽음 같은 건 얼마든지 무마할 자신이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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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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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미리 준비했어. 날아오는 물체에 반응해 조종하는 마법을.”

본격적인 이야긴 지금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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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가문의 집안싸움이 아니라 전혀 다른 문제에 휘말려도 네가 무마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황실의 보물이 탐나 그걸 찾아낸 로렐라 메이레드를 해치려 했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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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방금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하던 그녀의 두 눈에 두려움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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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세이블이 내 비명을 들었다며 사람들을 이끌고 이쪽으로 오고 있을 거야. 그중에는 레어넌 베르하르트 기사단장이나 서부와 썩 사이가 좋지 않은 펠리어트 공작도 있지. 또 증인이 되어 줄 수많은 용병은 물론…….”

순간 에어리스가 새파랗게 질려서는 애원하듯 간절하게 손을 뻗으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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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하지만 나는 냉정히 고개를 저었다.

나도 팔 아파!

계속 태연한 척하기는 이제 무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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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 아니지. 지금 아니면 도망칠 시간이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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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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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도망쳐?”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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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잡힐지도 모르는데…….”

작게 중얼거리자 사시나무 떨듯 몸을 마구 떨어 대던 에어리스가 몸을 휙 돌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전력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괴물이라도 쫓아오는 것처럼, 다급하고 절박한 뒷모습이었다. 하긴, 그렇게 겁을 줬으니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겠지.

나는 그녀가 허무하게(?) 잡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시간을 벌어 줄 생각이었다.

왜냐고?

모든 건 세이블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함이었으니까.

당연한 일이겠지만, 내 팔에 박힌 화살을 본 레어넌 단장은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 바로 조사를 시작할 것이다.

아무런 단서가 없는 상황에서조차 홀턴 후작에게 독을 먹인 진범을 밝혀 낸 전적이 있는 사람 아닌가.

그러니 화살 하나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건 그에게 시간문제이리라.

그 사실은 에어리스의 목을 점점 조일 테고.

더불어 릴리 가문의 차기 가주가 욕심에 눈이 멀어 사람을 해치려 했다고 북부에 슬쩍 소문을 흘려 주면, 이야기는 삽시간에 퍼질 게 자명했다.

두 지역은 예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으니, 북부 귀족들은 이때다 싶어 서부의 흠을 잡기 바쁘겠지.

그러다 보면 북부를 넘어 온 제국이 에어리스에 대한 소문을 알게 될 거고, 그때는 그녀의 손을 들어 주고 있는 원로회 귀족들도 입장이 꽤 난처해질 것이다.

그들은 예전부터 이익을 위해서라면 손바닥 뒤집듯 언제든 마음을 바꾼다고 들었다.

제아무리 에어리스와 손잡았다고 한들, 나쁘게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도 계속 의리를 지킬 리 만무했다.

그럼 그때 세이블이 나서면 된다.

가보도 되찾았겠다 자신을 반대하던 여론을 뒤집고, 단숨에 가문의 실권을 쥐어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래, 그러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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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흑! 아파……!”

나는 팔을 감싸 쥔 채 물 밖으로 나오려 낑낑댔다.

곧 있으면 사람들이 몰려들 텐데, 그 앞에서 홀딱 벗은 꼴을 보여 줄 수는 없다고!

하지만 안 그래도 미끄러운 샘 가장자리를 오로지 한쪽 팔로만 짚고 나오려니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겠다고 연신 용을 쓰던 그때, 머리 위로 갑자기 커다란 망토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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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내 팔, 내 팔!

지레 겁을 먹은 나는 화살 위쪽을 손으로 가리며 얼른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망토는 공중에서 마치 춤을 추듯 홀로 나풀나풀 움직이더니, 이내 다친 부위를 기막히게 피해서 내 몸을 감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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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신기한 나머지 탄성을 내뱉은 찰나, 몸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누군가의 단단한 팔이 내 등허리와 무릎 밑을 흔들림 없이 받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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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계획이 이런 거였어?”

바로 위너드였다.

하긴, 갑자기 이렇게 바람처럼 나타날 사람은 오로지 내 안내자뿐이지.

그의 얼굴을 보니 어쩐지 깊은 안도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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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언제부터 이런 무모한 계획을 세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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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나는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며 위너드의 가슴팍에 이마를 툭 기댔다.

그런 나를 가만히 응시하던 위너드는, 이내 몸을 돌려 샘 근처에서 벗어나 성큼성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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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조심, 조심히……!”

나는 환자라고!

혹시라도 떨어지는 건 아닐까 그의 옷깃을 꼭 쥔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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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어, 로렐라.”

유난히 싸늘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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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다시 이런 일을 하게 내버려 두진 않겠어.”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한여름의 신록처럼 빛나는 초록색 눈동자에는, 위너드를 만나고 처음 보는 감정이 가득 스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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