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이런 놈은 고용하지 마2022.03.26.
답신을 받자마자 나는 바로 펠리어트에게 부탁해 용병단장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날 채비를 했다. 그는 별다른 말 없이 바로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러더니 자신도 직접 외출 준비를 재빠르게 마쳤다. 내가 말에 오르는 걸 도와주던 펠리어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나?”
얼굴을 물끄러미 살피는 시선이 몹시도 집요해 고개를 살짝 돌리며 툭 내뱉듯이 답했다.
“뭐, 뭐가?”
“잠을 못 잔 것 같은데.”
“아니야, 엄청 잘 잤어.”
재빠르게 부인하긴 했지만, 어쩐지 들킨 것 같아 몹시 민망했다. 실제로 나는 어젯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여기는…… 공작저잖아! 내가 내 발로 도망친 바로 그 집! 심지어 하녀인 베티가 안내해 준 방은 ‘내 방’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쓰던 물건을 그대로 옮긴 엄청나게 커다랗고 좋은 방. 주인이 없는 방인데도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침대부터 시작해 온갖 가구가 모두 값비싼 것으로 채워져 있었다. 베티는 내내 극진하게 수발들어 주었고, 침구도 무척이나 편안했지만 나는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었다.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낸 익숙한 곳인데, 한없이 낯설게 느껴진 탓이었다.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했다. 게다가 잘 자라는 인사를 나누기 직전, 펠리어트가 던진 말 역시 밤잠 설치게 만드는 데에 공헌했다.
‘그때는 고마웠어.’
언제를 얘기하는 건지, 또 뭐가 고맙다는 건지 조금도 말해 주지 않았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걸 떠올리니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니, 분명 끙끙 소리까지 내면서 사경을 헤맸는데 도대체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거야! 나는 잠들기 직전 한 생각도 아침 되면 다 까먹기 일쑤인데! 천천히 말을 몰려던 생각 따윈 어느새 전부 잊고 나는 말고삐를 꽉 움켜쥔 채 헐레벌떡 앞으로 달려 나갔다. 차가운 공기가 쉴 새 없이 뺨 위를 스쳐 지나갔지만, 어쩐지 열기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 * * 북쪽 국경 근처, 용병들이 거주한다는 숙소는 공작저로부터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쉬지 않고 달려 커다란 아치형 문 앞에 도착한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말에서 내렸다. 임시로 만든 건물이라고 들었는데 상태가 꽤나 좋았다. 용병단이 머무르는 숙소라고 해서 지저분할 거란 예상과 달리 주변 환경이 상당히 깔끔했다. 쓰레기가 굴러다니기는커녕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문 안쪽 뜰에 얼핏 보이는, 아마도 무기가 들어 있을 상자들도 흐트러짐 없이 쌓여 있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시엘로 단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마중 나온 남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펠리어트는 용병단장을 저택으로 불러 주겠다고 했지만, 만류하고 여기까지 일부러 찾아왔다.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용병단에 과연 내 호위를 맡겨도 될지, 세이블이 신신당부했던 대로 믿을 만한 사람들인지를.
‘안쪽도 꽤 쾌적하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네.’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매의 눈으로 안을 살폈다. 수납장에 가지런히 걸린 창과 검도 모두 반짝반짝할 정도로 손질이 잘되어 있었고 마주치는 사람들도 퍽 예의가 발랐다. 기사단원들처럼 절도가 있는 건 아니었으나, 불쾌한 흥미가 가득한 눈으로 함부로 쳐다보는 자는 없었다. 긴긴 복도를 지나 이윽고 커다란 문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원탁 앞에 앉아 있는 남자들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펠리어트 공작님. 그리고 로렐라 메이레드 님.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가장 안쪽에 있던 남자가 일어나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용병단의 간부들입니다. 중요한 계약이 있을 때에는 자리를 함께 하는 게 관례이므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열 명 남짓한 그들은 테이블이 비좁아 보일 정도로 하나같이 덩치가 산처럼 컸다. 내 허리둘레와 맞먹는다고 해도 좋을 만큼 굵은 팔뚝이며, 얼굴 여기저기엔 상처를 마치 훈장처럼 달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아무것도 모르는 나조차 압도당할 만큼 모두가 용맹스러운 눈빛을 띠고 있다는 점이었다.
“안녕하세요, 로렐라 메이레드입니다. 이렇게 만나 주셔서 감사해요.”
여기랑 꼭 계약해야겠어! 나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며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테이블 위로 따뜻한 차가 놓이고, 내가 의뢰 내용을 다 말하기가 무섭게 남자들이 하나둘 말을 얹었다.
“그 의뢰는 받기 힘들겠군요. 마엘라 고원은 굶주린 이리와 늑대 떼가 득실득실한 곳입니다. 그놈들은 인간 따윈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지요.”
“아니, 그보다 더 골치 아픈 건 거길 활보하고 있는 죽은 자들이죠. 생살을 찢는 맹수보다는 낫지만, 죽여도 죽여도 끝도 없이 기어 나오니까요.”
“도적 떼는 어떻고요? 드물지만 마물이 튀어나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마엘라 고원은 늘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곳 아닙니까.”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오고 갔다. 마엘라 고원이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용병들의 입에서 생생한 증언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등에 진땀이 흘렀다. 하지만 여기서 거절당하고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수고비를 두 배로 드리겠어요.”
나는 속내를 숨긴 채 침착하게 말했다.
“그리고 원하는 물건만 찾으면, 바로 철수할 겁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팔짱을 낀 채로 침묵하던 시엘로 단장이 그 말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비용을 많이 지불하신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닐 듯싶습니다.”
꽤 단호한 목소리였다. 덕분에 마엘라 고원에 도사리고 있는 각종 위험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큼이나 긴장하게 되었다.
“물건을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은 있습니까? 아니라면 단원들만 계속 위험한 상황에 놓일 텐데요.”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신뢰감을 주기 위해 굳은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이에요. 금방 찾을 수 있도록 준비도 이미 전부 끝내 놓았고요.”
“어떤 준비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건…….”
그 질문에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나침반 이야기를 꺼내려면, 필연적으로 검은 뱀 길드의 이름을 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전후 사정을 다 빼고서 ‘보물의 위치를 가리킨다는 나침반을 우연히 손에 넣었거든요!’라고 말하면, 틀림없이 장난치고 있다고 여길 거고…….
“저희에게 계약이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신뢰할 수 없는 의뢰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테이블 아래서 남몰래 주먹을 꼭 쥐었다. 진퇴양난에 빠진 기분이었다. 사실대로 길드의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고 거짓말을 지어낼 수도 없는 일이니. 그때였다.
“그건 내가 보증해 주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펠리어트가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든 의뢰인의 사정을 전부 들을 수는 없다는 걸, 단장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극비에 부쳐야 하는 일도 있으니까.”
“공작님의 말씀도 맞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탄탄한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단장과 내가 그런 관계 아닌가?”
“물론입니다, 공작님.”
시엘로 단장은 두 손을 반듯하게 모은 채 고개를 예의 바르게 끄덕였다. 그저 그뿐이었는데도, 많은 감정이 느껴졌다. 믿음, 그리고 그 이상의 무언가가. 그리고 단장뿐 아니라, 펠리어트를 바라보는 다른 용병들의 눈빛에서 그것이 존경심이라는 걸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전장에서 함께 서로의 뒤를 봐주면서 싸운 2년이라는 기간 동안 펠리어트와 그들이 탄탄한 신뢰 관계를 쌓아 온 게 틀림없었다. 그건 비단 전장에서 함께한 용병단뿐이 아니라 그의 곁을 지키는 수하들과 북부 기사단을 봐도 쉬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비록 눈빛은 무섭고, 말수도 적으며,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남자지만 누구보다 존경받고 있구나. 펠리어트는 잠시 시엘로 단장을 물끄러미 응시하더니 더욱 확고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녀와 나도 바로 그런 관계야. 그러니 내가 보증하지.”
고민하는 듯 서로 눈빛을 교환한 용병들은 잠시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떴다. 아무래도 자기들끼리 회의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얼마 뒤, 시엘로 단장이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시원한 어투로 말했다.
“좋습니다. 의뢰를 받아들이지요.”
나는 활짝 웃으며 제일 먼저 펠리어트를 돌아보았다.
“정말 고마워……!”
그러자 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천만에.”
“정말 정말 고마워!”
두 번은 쑥스러운지, 그는 마주친 시선을 거둔 채 슬쩍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나는 단장을 향해서도 정식으로 인사를 건넸다.
“어려운 결정을 내려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번 의뢰를 맡은 이상, 최선을 다해 보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무척이나 믿음직스러운 목소리였다.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 * *
“당신이 도와준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잘 풀렸어.”
저택 안으로 들어서며 나는 내 곁에서 보폭을 맞추던 남자에게 다시 한번 힘주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보답은 반드시 할게.”
“보답은 필요 없어.”
펠리어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덤덤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사냥 대회 때 한 약속도 아직 안 지켰고.”
함께 식사하자던 약속을 말하는 거였다. 농담 섞인 힐난에 나는 그저 시선을 회피하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사실 그에게서 몇 차례고 서신을 받긴 했지만, 답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황궁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어떻게 하면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골몰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럼…… 고원에 갔다 와서는 어때?”
나는 조심스럽게 물으며 눈동자를 위로 스윽 들었다. 그러자 팔짱을 끼고 나를 묵묵히 바라보던 펠리어트의 입술이 그제야 슬쩍 올라갔다.
“좋아. 기다리고 있지.”
휴. 나는 비로소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지금은 좀 급한 일이 있어서……!”
“아무렴.”
펠리어트는 알겠다는 듯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럼 마차를…….”
나는 거기까지 이야기하다 말고 입술을 깨물었다. 아, 맞다. 나 마차 없지. 여기 왔을 때처럼 위너드를 호출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지만, 펠리어트의 앞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뭐 멀지도 않은데 걸어갈게!’ 하고 손 흔들며 그가 안 보일 때까지 휘적휘적 걸어갈 수도 없는 일이고.
“펠리어트, 정말 미안한데…….”
깊고 그윽한 검은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는 더듬더듬 입술을 열었다.
“마차 좀…… 빌려주지 않을래.”
아, 이놈의 얼굴. 좀 식었나 하면 또 이렇게 홧홧하게 달아오른다니까! * * * 펠리어트는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응접실로 날 안내해 주었다. 그러고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자리를 비웠다.
“일이 잘돼서 다행이네.”
혼자 남게 되자, 언제나 그렇듯 뒤에서 불쑥 소리 없이 나타난 위너드가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웃었다. 화려한 보랏빛 정복과 검은 레이스가 덧대어진 실크 크라바트, 거기에 붉은 루비로 만든 장신구까지. 오늘도 기가 막히게 완벽한 패션이다. 잘돼서 다행은 무슨. 나는 속없이 웃고 있는 위너드를 향해 눈을 흘겼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분 좋은 듯 휘파람을 불며 손을 들었다.
“자, 그럼 지금 바로 돌아갈까?”
“악! 자, 잠깐!”
나는 기겁하여 벌떡 일어나 옆에 앉으며 위너드의 손을 아래로 마구 끌어내렸다. 이대로 또 손가락을 튕겨 버릴까 봐 지레 겁이 났다.
“자꾸 이러다 정말로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래!”
“곤란할 게 뭐 있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에 답답해져 가슴까지 콩콩 쳤다. 어제 펠리어트는 용병단에 연락을 한 뒤, 내게 마차에 대해 몇 번이나 캐물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리라.
“유령처럼 사라지는 건 적어도 아무도 안 보는 데서 하는 게 좋겠어.”
“어차피 기억도 못 할 텐데.”
위너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모처럼 이런 편한 능력이 생겼는데, 아깝잖아.”
이건 무슨 소리야.
“모처럼…… 이런 능력이 생겼다고?”
나는 일부러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모른 척 물었다. 하지만 그는 내 속을 이미 간파한 듯 씩 웃으며 말했다.
“안 쓰면 아깝잖아.”
그때였다.
“……누구지?”
문 쪽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마자 펄럭이는 검은 망토가 시야에 들어왔다. 몸속에 있는 피가 모조리 식는 느낌이었다. 소리 소문도 없이 유령처럼 나타나는 건 비단 위너드만 지닌 능력이 아닌 듯했다. 검은 눈동자가 날카롭게 번뜩인다 싶더니, 펠리어트는 곧장 우리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위너드도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대체 왜 평소처럼 시간을 안 멈춘 거야, 이 멍청이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재빨리 펠리어트의 앞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내 호위야!”
모처럼 얻었다는 그 ‘능력’을 쓰기 딱 좋은 상황이었으나, 너무 당황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도 못했다.
“마차와 함께 돌아가라고 했지만, 임무를 맡았으니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나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짜내기 위해 그야말로 최선을 다했다.
“호위……라고?”
그런데도 펠리어트의 눈초리는 매섭기만 했다. 그의 옆에는 뒤따라온 수하가 서 있었다. 수하 역시 놀란 눈으로 나와 위너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아가씨가 걱정되어서 멋대로 정원에 숨어 있었습니다.”
다행히 위너드가 장단을 맞춰 주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열려 있는 창문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마치 그곳을 통해 들어왔다는 듯이. 혹시 카셀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건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개인 경호 인력이 필요할 것 같아서 고용했어.”
나 역시 호위를 대하듯 위너드에게 혼신의 연기를 보였다.
“여긴 안전한 곳이라고 말했잖아.”
후우, 이 정도면 나름대로 훌륭한 임기응변 아닐까. 고원에 가기 위해 용병단과 계약까지 했으니 개인 호위를 붙이는 것 또한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일 테니. 그런데…….
“로렐라.”
펠리어트가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충고하듯 말을 이었다.
“호위라면 내가 붙여 줄 테니, 이런 기본도 되지 않는 자는 고용하지 않는 게 좋겠군.”
나는 당황해서 눈을 깜빡였다. 이건 또 무슨 말이지? 내가 되묻기도 전에 그는 위너드를 다시 한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날카롭게 훑더니, 진지한 얼굴로 덧붙였다.
“내가 신임하는 부하를 보내 주지. 겉모습만 신경 쓰는 호위보다는 나을 테니까.”
“……잠깐.”
가만히 듣고만 있던 위너드의 잇새로 꽉 눌린 목소리가 뱉어져 나왔다.
“그건 너무 섣부른 판단 아닌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화들짝 놀란 나는 어떻게든 해명하려 했으나, 이번에는 위너드가 빨랐다. 그는 방금 내가 했던 것처럼 팔로 날 가로막은 채 몇 걸음 앞으로 나섰다. 시선은 오로지 펠리어트만을 향해 있었다.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공작님께서 판단하실 일이 아닐 텐데요.”
“뭐……?”
다소 건방지게 느껴지는 어투에 펠리어트가 미간을 구긴 그 순간이었다. 매서운 소리와 함께 눈부신 은빛이 허공을 갈랐다. 위너드가 손에 쥔 건 옆에 서 있던 수하의 검이었다. 동시에 펠리어트도 전광석화같이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허공을 가르는 검을 보고 거의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 틀림없었다. 날카로운 검 끝이 두 사람의 목에 각각 닿았다.
“공작님!”
뒤늦게 자신의 허리춤을 더듬은 수하가 놀라 외쳤다.
“자, 잠깐……!”
나 또한 기겁하며 말렸지만, 두 남자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건 펠리어트였다.
“검을 쥔 방법을 보니, 정식으로 검술을 배운 적이 있는 모양이군.”
그는 뽑아 들었던 검을 다시 검집에 조용히 찔러 넣으며 싸늘하리만치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배웠고말고요.”
위너드는 그린 듯한 미소를 머금은 채 화답했다.
“아주 지겨울 정도로 배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