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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목표는 단 한 가지 (67/173)

67화. 목표는 단 한 가지202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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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충격적인 이야기였을 텐데도, 세이블은 별다른 반응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깨끗한 눈 속에서는 그 어떤 감정의 편린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16550625974626.jpg“……주인공 후보?”

일단은 발뺌하려는 속셈인가 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태도에 재빨리 덧붙였다.

16550625974632.jpg“그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후보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이블은 쉽사리 인정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16550625974632.jpg“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16550625974626.jpg“…….”

16550625974632.jpg“이 구역 주접킹이 널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던데.”

다른 사람이 들으면 헛소리라고 생각할 만한 말뿐이었다. 잠시 생각하는 듯, 그녀는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찻잔을 들었다. 얼마 남지 않은 홍차가 깨끗하게 비워진 뒤에도 침묵은 계속되었다. 나는 곁으로 다가가 뜨거운 차가 든 포트를 들어 세이블의 찻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짙은 호박색의 찻물이 다시 가득 채워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가 결국 입술을 열었다.

16550625974626.jpg“다른 후보를 만나는 건 처음이네요.”

듣는 내가 다 놀랄 정도로 담담한 목소리였다. 세이블은 더 이상 자신이 후보라는 걸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생긋 웃으며 다시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16550625974632.jpg“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16550625974626.jpg“제가 후보인 건 어떻게 알았나요?”

평범한 대화를 하듯 의연한 기색이었지만, 나를 보는 눈빛만큼은 방금과 사뭇 달랐다. 나 역시 솔직히 답했다.

16550625974632.jpg“라이벌이 있다는 말에 널 염탐하러 간 적이 있어.”

16550625974626.jpg“염탐이요?”

16550625974632.jpg“응. 마침 네 안내자가 근신을 받았다고 해서…….”

16550625974626.jpg“아, 그때.”

세이블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차를 홀짝이며 답했다.

16550625974626.jpg“그 아이가 혼자 애가 닳아 이것저것 알려 주다 보니 규칙을 어겼다더군요. 욕심이 과했던 거죠. 주식에는 관심 없다고 분명 말했는데.”

……뭐라고? 나는 너무 놀라 표정 관리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주식 파는 데 관심이 없어? 안내자가 먼저 나서서 이것저것 알려 주다가 징계까지 받았다고? 하지만 내가 어떤 반응을 보여도 세이블은 그저 우아하게 차를 마실 뿐이었다. 나 역시 무엇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일단은 조용히 지켜만 봤다. 잠시 말없이 있던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16550625974626.jpg“롯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고개를 돌리니, 처음 보는 여자아이 하나가 서 있었다. 많아야 열다섯 살 정도쯤 되었을까. 양 갈래로 땋은 분홍빛 머리에, 하늘하늘 퍼지는 꽃잎처럼 생긴 치마를 입은 요정 같은 모습이 귀엽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옅은 보랏빛 눈망울 또한 티 하나 없이 맑고 순수해 보였다.

16550625974632.jpg‘저 아이가 세이블의 안내자인가 보구나.’

위너드 말고 다른 안내자를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해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때였다.

16550625974626.jpg“헉.”

롯지라는 소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화들짝 놀라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더니 세이블에게 쪼르르 달려가 그녀가 앉은 소파 뒤쪽에 쏙 몸을 숨겼다.

16550625974626.jpg“세이블 님…….”

16550625974626.jpg“괜찮아, 롯지.”

등받이 너머로 나를 흘끗흘끗 바라보며 눈치만 보는 소녀를, 세이블이 제법 다정한 목소리로 달랬다. 졸지에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나는 조금 머쓱해지고 말았다. 아니, 저기요. 난 아직 아무 짓도 안 했다고…….

16550625974626.jpg“롯지. 질문이 있어.”

세이블의 목소리가 응접실에 고요히 울려 퍼졌다.

16550625974626.jpg“내가 가진 주식을 로렐라 님에게 양도할 수 있을까?”

16550625974626.jpg“세이블 님!”

경계를 늦추지 않고 눈치를 살피던 롯지가 날카롭게 외치며 불쑥 몸을 일으켰다. 아이의 얼굴은 가여울 정도로 파랗게 질려 있었다. 등받이를 움켜쥔 작은 손이 바르르 떨리는 게 한눈에 들어왔다.

16550625974626.jpg“그, 그러시면 안 돼요!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절대……!”

롯지는 황급히 앞으로 나와 그녀의 발아래에 무릎까지 꿇고 사정했다. 어린아이가 간절하게 부탁하는데도 세이블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자르듯이 말했다.

16550625974626.jpg“가능한지 아닌지만 대답해 줘.”

그때였다.

16550626031605.jpg“물론 가능하지.”

내 뒤에서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16550626031605.jpg“두 후보가 동의한다면 말이야.”

바로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고 있는 위너드였다. 내내 세이블만 바라보던 롯지가 목소리를 따라 뒤를 돌아보고 그를 확인하더니…….

16550625974626.jpg“……허엉!”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마치 세상이 끝나기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 * * 참으로 기묘한 광경이었다. 두 후보와 두 안내자가 함께한 자리라니. 우리 말고 이런 일을 겪는 후보들이 있기는 할까? 다른 건 몰라도 롯지의 표정을 보니 흔한 일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16550626031605.jpg“이런 중요한 상황이라면 날 불렀어야지, 로렐라.”

위너드는 내 어깨를 장난스럽게 두드리고는, 바닥에 일자로 반듯하게 세운 케인 위에 두 손을 포갠 채 꼿꼿한 자세로 세이블과 롯지를 바라보았다. 세이블의 시선은 위너드에게 꽂혀 그를 낱낱이 파헤치려는 듯 빛나고 있었다. 깊은 곳까지 탐색할 듯한 눈빛이었지만, 위너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롯지는 울먹이는 얼굴로 비척비척 몸을 바로 하더니 위너드에게 가볍게 묵례를 건넸다. 이상하게도 시선은 끝끝내 그를 향하지 않았다. 위너드 역시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은 채 마주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아 주었다. 인사를 하긴 하는 걸 보니 둘이 처음 보는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롯지는 마지못해 인사하는 티가 역력해, 빈말로라도 사이가 좋아 보인다고 할 수는 없었다. 위너드는 성큼성큼 다가와 내 옆에 털썩 앉더니 제법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16550626031605.jpg“차도 없이 얘기하는 건 좀 그렇잖아. 사이좋게 마시면서 하자고.”

그러더니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볼 틈도 없이,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16550625974626.jpg“실례합니다, 로렐라 아가씨.”

대답하지도 않았는데 하녀가 다과 세트와 새 찻잔 두 개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위너드의 앞과 세이블의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세팅하기 시작했다.

16550625974626.jpg“부탁하신 잔입니다.”

부탁한 적 없지만, 누구의 소행인지는 분명했다. 난 굳이 대꾸하지 않고 어색하게 웃어만 보였다. 당연하다는 듯 찻잔을 올려 두고는 있지만, 그녀의 눈엔 여전히 울먹이는 롯지와 우아하게 다리를 꼰 채 마치 자기 집인 양 편하게 앉은 위너드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녀는 빈 찻잔에 새로 끓인 따뜻한 홍차까지 채워 주고는 차분한 태도로 물러갔다. 그제야 세이블의 입이 열렸다.

16550625974626.jpg“롯지, 앉아.”

16550625974626.jpg“네, 세이블 님…….”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어색하게 곁에 서 있던 롯지가 그제야 소파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러고도 영 어색한지 무릎에 놓은 손가락을 계속 꼼지락거렸다. 어찌 됐든 이 이상한 티 파티의 호스트는 나였으므로, 나는 어색하게 웃는 낯으로 다과를 권했다. 자꾸만 엄습해 오는 굴욕감을 밀어 내려 애쓰며.

16550625974632.jpg‘쟤는 계속해서 깍듯하게 세이블 님이라고 존칭을 쓰는데…….’

심지어 앉으라고 하기 전까지 가만히 서서 기다리다니. ……후보자를 대하는 두 안내자의 태도가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나? 눈치를 줄 생각으로 위너드를 흘겨보기도 했지만, 그는 그런 사소한 것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차를 한 모금 음미하더니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16550626031605.jpg“짧게 설명하지. 주식을 양도받는 건 생각보다 간단해.”

16550625974632.jpg“간단하다고?”

16550626031605.jpg“그래. 단, 두 사람이 어떤 외압도 받지 않고 자의로 주식을 넘기는 데 동의해야 해.”

놀라서 그를 바라보며 묻자 위너드가 날 향해 다정하게 눈을 접어 웃더니 첨언했다.

16550626031605.jpg“서로 합의했어도 어느 한쪽이 불합리함을 느끼거나, 불안감 혹은 압박감을 느끼는 상태라고 시스템이 판단하면 거래는 중지되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제약이었다. 힘만 있다면 주식을 넘기라고 협박해 아주 쉽게 벌 수 있을 테니까. 그걸 미리 방지하고자 했겠지.

16550625974626.jpg“좋아요. 아주 합리적인 방법이네요.”

생각에 빠져 있는데, 세이블의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16550625974626.jpg“길드장을 설득하면 100만 주, 내 의뢰를 들어주면 추가로 100만 주를 더 넘겨드리죠.”

롯지가 안 된다고 항변하려는 듯 작은 몸짓으로 세이블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러나 세이블의 날카로운 시선 한 번에 그대로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나는 입술을 꾹 사리물었다. 그러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벌써 200만 주나 팔았다고? 게다가 그 많은 주식을 겨우 길드에 의뢰하는 데 쏟아붓겠다는 거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나는 최대한 놀란 티를 숨기려 애쓰며 물었다.

16550625974632.jpg“일단 길드장이 왜 네 의뢰를 받으려 하지 않는지, 그리고 그 의뢰란 게 대체 뭔지부터 들어야겠어.”

카셀이 세이블을 피하는 데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만약 그녀가 맡기려는 의뢰가 너무 터무니없거나 지나치게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라면 내 선에서 미리 거절할 생각이었다. 200만 주는 분명 크지만, 그것 때문에 카셀을 잃을 순 없으니까.

16550625974626.jpg“길드장을 화나게 만들었거든요.”

16550625974632.jpg“카셀이 화를 내? 왜?”

16550625974626.jpg“규칙을 어기고 그의 길드원을 위험에 빠트렸다, 정도로만 말해 둘게요.”

그녀는 짧고 간결하게 대답한 후,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16550625974626.jpg“나는 마엘라 고원에 숨겨진 보물을 손에 넣고 싶어요. 보물의 정확한 위치를 알기 위해선 길드장이 가지고 있는 나침반이 필요하고요. 그래야만 엉뚱한 곳을 뒤져 시간 낭비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요.”

마엘라 고원에 숨겨진 보물. 나는 그게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사냥 대회 때 세이블의 여동생과 약혼자가 대화하던 걸 들은 덕분이었다.

16550625974626.jpg‘널 위해서인데 마엘라 고원에 가는 것쯤이야. 네 말대로라면 후작님께서도 용병단을 지원해 주실 테니 문제없을 거야. 반드시 네게 가보를 안겨 줄게.’

  그날 밤, 남자는 자기만 믿으라는 듯 큰소리를 쳤다. 그 가보만 있으면 세이블을 밀어낼 수 있을 거라 자신하는 눈치였다. 이미 세이블은 두 사람이 그걸 노린다는 걸 알고 있고, 자신이 먼저 손에 넣으려는 거구나. 처음 카셀을 만난 날, 그는 세이블을 보며 의뢰를 받기 싫다고 했는데도 계속 찾아온다고 투덜거렸다. 내게는 어리광과 애교로 똘똘 뭉친, 사고뭉치 ‘카셀’이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해 잘 느끼지 못했을 뿐, 원래 ‘검은 뱀 길드의 길드장’은 온갖 위험한 일도 가리지 않고 한다는 무서운 소문이 가득한 사람이다. 소문 중에는 그가 정해 둔 규칙을 어긴 사람은 칼같이 잘라 내며, 배신한 자에게 복수하는 일에도 망설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세이블은 규칙을 어김으로써 그를 화나게 한 게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 같은 사람이, 정해 둔 규칙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길드와의 약속을 깰 만큼 중요했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16550625974632.jpg“그 나침반이 그런 역할을 한다는 걸…… 길드장도 알고 있어?”

나는 궁금증을 잠시 뒤로 밀어 둔 채 물었다.

16550625974626.jpg“몰랐다면 그 나침반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죠.”

세이블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16550625974626.jpg“위대한 성물을 찾아낸다는 나침반. 많은 사람이 그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정도로 치부하지만, 전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죠. 길드장도 그게 작동할 거라 확신하고 있을 거고요. 다만…….”

16550625974632.jpg“…….”

16550625974626.jpg“정확히 어디에서 써야 할지 몰랐을 뿐.”

순간 그녀의 눈빛이 소름이 돋을 만큼 날카롭게 빛났다.

16550625974626.jpg“하지만 전 달라요. 어디에서, 어떻게 써야 할지 확실하게 알고 있으니까.”

대체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왜 그게 작동할 거라고 확신하는지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애초에 설명해 줄 것 같지도 않았고, 나침반이 정말로 마엘라 고원에서 작동하는지, 하지 않는지는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저 의뢰를 성사해 주기만 하면 그만이다.

16550625974626.jpg“원하는 걸 찾고 나면 나침반은 돌려주겠다 전해 줘요. 그리고…….”

그녀는 우아하고 느긋한 몸짓으로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생긋 웃으며 말했다.

16550625974626.jpg“마엘라 고원에서 찾은 다른 보물들은 전부 가져도 좋다고도 해 줘요. 내가 찾는 것 외에 다른 건 그냥 다 돌덩어리일 뿐이거든요.”

16550626031605.jpg“그거라면 확실히 길드장도 구미가 당기겠군.”

그때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위너드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그러더니 나를 돌아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16550626031605.jpg“안 그래, 로렐라?”

확실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마엘라 고원에 보물이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고작 나침반을 빌려주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까. 카셀이 의뢰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 내게도 분명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세이블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조용히 물었다.

16550625974632.jpg“의뢰를 해 주는 것만으로 100만 주, 그리고 거래가 성사되면 100만 주를 더 주겠다는 거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말없이 있던 롯지가 절망하듯 아아, 하고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안색은 새하얗게 질렸고, 그녀의 동그란 눈에는 맑은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했다. 롯지의 표정에는 슬픔이나 경악보단 체념의 기색이 역력했다.

16550625974626.jpg“그래요.”

하지만 안내자의 반응과는 달리, 세이블의 태도는 여전히 담담하기만 했다. 이상했다. 그녀도 후보인 만큼 규칙은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그 ‘페널티’가 두렵지 않은 걸까.

16550625974632.jpg“너도 잘 알 거라 생각하는데. 만약 그걸 다 넘기면, 주인공이 되기는커녕 다음에 소멸하는 건 네가 될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겠어?”

내 말에 줄곧 우아한 미소를 짓고 있던 세이블의 얼굴에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놀란 것 같기도 하고, 비웃는 것 같기도 한 미묘한 표정이었다.

16550625974626.jpg“주인공?”

그리고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되묻는 그녀의 입가에, 곧 소름 끼치도록 완벽한 미소가 서렸다.

16550625974626.jpg“전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 따위 한 번도 한 적이 없답니다. 내가 원하는 건…….”

마치 무저갱 속에서 울려 퍼진 듯 새까만 어둠 같은 목소리가 내 귓가에 서늘히 내려앉았다.

16550625974626.jpg“복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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