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무슨 일인 걸까2022.01.29.
피잉. 활시위를 튕기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힘없이 날아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꽤 먼 거리를 날아간 화살은, 바위틈 사이에 몸을 숨긴 커다란 두꺼비에게 정확히 명중했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뒤집힌 두꺼비의 배에는 붉은 반점이 선명했다. 가까이 가 사냥감을 확인한 에이미가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붉은 반점 두꺼비를 잡으셨어요, 로렐라 님! 주머니여우보다 점수가 높은 거예요!”
“뭐? 대체 저게 왜?!”
주머니여우는 귀여워 보이는 이름과 달리 여우인지 쥐인지 헷갈리는 외형에, 민가의 곡식 창고에 들어가 종종 식량 자루를 쏠아 놓기 때문에 농민들의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크기에 비해 점수가 높다고 불과 몇 분 전 에이미가 그렇게 기뻐했는데. 그것보다 더 높다니?
“맹독이 있거든요. 봄마다 나무꾼들이 자주 피해를 입어요. 하지만 워낙 작고 재빨라서 잡기 어려운데, 정말 대단하세요!”
에이미의 호들갑스러운 칭찬에 로렐라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몹시 불안하고 찝찝한 기분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그녀는 누구보다 자신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가만히 있는 커다란 고목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는데, 갑자기 바위틈에 숨은 두꺼비를 명중시켰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뒤집힌 채 죽어 있는 두꺼비의 몸에 꽂혀 있는 건 분명 노란색 깃털이 달린 화살이었다.
“굉장하세요, 아가씨. 이대로 가다가, 혹시 우승하시는 것 아녜요?”
“에이…….”
마찬가지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조이의 말에 로렐라가 고개를 저으려던 순간이었다. 첨벙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개울물 안으로 재빠르게 뛰어 들어가는 게 보였다. 방금 쏜 녀석보다 몸집은 더 작지만, 같은 종류의 두꺼비 같았다. 숲 초입이라서 보이는 사냥감이라고는 순 이런 작은 동물들뿐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녀를 신경 쓰이게 하는 묘한 감각을 시험하기엔 알맞은 목표였다. 로렐라는 잠시 주위를 살피고는 다시 한번 활시위를 살짝 당겼다 놓았다. 그러자 또다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코앞에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살짝 당겼을 뿐인데 화살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 그대로 개울 속으로 빨려들어 간 것이다. 곧바로 똑같은 반점을 지닌 두꺼비 한 마리가 화살에 꿰뚫린 채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마치 화살에 추적 장치라도 달린 것 같았다.
‘……뭐야, 이거 무서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로렐라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한편, 펠리어트와 레어넌은 숲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있었다. 두 사람은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서로를 모른 척했다. 미리 체크해 놓은 흔적을 따라오다 보니 우연히 방향이 겹쳤을 뿐이었으니까. 잔뜩 먹구름이 낀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전에, 그리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 전에 점수가 높은 동물들을 최대한 많이 잡아야 했다. 둘 다 목이 다 아플 정도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동물들의 흔적을 찾아 땅을 확인하던 그때였다. 뒤에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나타났다. 이 숲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셰릴 백작이었다. 여기저기 발 빠르게 다니면서 손님들을 살피는 것도 대회 주최자인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백작은 정확히 두 사람 가운데에 멈춰 서서 당부의 말을 건넸다.
“벌써 여기까지 들어오셨군요. 모쪼록 다치지 않도록 몸조심하십시오.”
펠리어트와 레어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흔적을 살피려는데…….
“아 참, 그렇지.”
말 머리를 돌리던 백작이 덧붙이듯 이야기했다.
“지금 로렐라 님께서 엄청난 득점을 올리고 계십니다.”
그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네?”
“……뭐?”
백작이 펠리어트를 보며 말했다.
“붉은 반점 두꺼비를 공략하고 계시더군요. 전략을 아주 잘 짜신 듯합니다. 점수는 높지만 다들 기피하는 사냥감이거든요.”
그리고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레어넌을 바라보았다.
“워낙 재빠른데다가, 바위 틈새에 늘 숨어 있는 놈이라 잡기 힘든데, 어쩜 쏘는 족족 잘 맞추시는지! 덕분에 한동안 사람들이 중독되어 실려 올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백작은 말을 하는 내내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한 봄철에 독으로 사람들이 쓰러지는 건 꽤 큰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내년에도 로렐라 님이 꼭 참석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몇 번이고 중얼거리며 다른 손님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펠리어트와 레어넌은 굳은 채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말없이 마주 보던 두 사람이 상대방의 눈에 어린 황당함을 읽은 순간.
“……이런.”
“빌어먹을.”
두 남자의 입술을 비집고 당혹스러운 듯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펠리어트는 급히 말의 옆구리에 박차를 가하며 달려 나갔고, 레어넌 역시 몹시 다급한 손길로 고삐를 당겨 몸을 돌렸다. * * * 나는 천막 밑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그냥 비가 아니라, 폭우에 가까웠다. 과장을 조금만 보태면 빗줄기로 인해 천막이 뚫려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으니까. 덕분에 사냥 대회는 이만 끝낼 모양이었다. 그럴 법도 한 게, 비가 오기 전부터 이미 많은 사람이 숲을 빠져나와 버렸다. 올해는 워낙 강력한 우승 후보들이 있어서 영 의욕이 안 난다나 뭐라나. 그게 누구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물론 나 역시 두꺼비를 잡는 건 일찌감치 그만둔 상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상하기 때문이었다. 사냥감을 알아서 잡아 주는 신비한 화살을 손에 넣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어쩌면 우승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욕심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오는 마차에서 에이미가 해 준, ‘특수한 화살을 써서 우승을 차지한 사람이 있어 문제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게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내게 화살을 나눠 준 시종 또한 아무리 찾아도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함께 있던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수상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나는 근래 깨우친 진리 하나를 다시금 머릿속에 되뇌었다.
‘눈앞의 이득에 연연하지 말고, 불길한 촉이 서면 멀리하는 게 답이다.’
바자회 사건에 휘말린 이후 얻은 나름의 교훈이었다. 덕분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욕심을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괜히 이상한 물건에 손댔다가 또 곤욕을 치르면 어떡해! 아무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신기한 일이었다. 이런 화살을 만드는 게 가능한지, 혹시 가능하다면 어떤 원리인지 물어봐야지. 대답해 줄 만한 사람이 한 명 있으니까. ‘그 길드’가 모르는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어쩌면 쉽게 알려 줄지도 모른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백작이 준비해 준 다과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 역시 잡생각을 끝내고 그들 사이로 섞였다. 가장 주된 주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레어넌과 펠리어트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본 광경을 무용담이라도 되는 양 신나게 떠들었다.
“레어넌 단장님이 집채만 한 멧돼지를 맞닥뜨리셨다니까요! 어찌나 사나운지, 화살을 여러 대 맞고도 계속 달려들더군요. 하지만 결국 놈이 승복했죠. 정말 멋진 승부였습니다!”
“펠리어트 공작님이 화살을 쏘자, 덤불 속에서 쿵 소리가 들렸어요. 굉장히 커다란 사슴이 쓰러져 있더라고요. 그런 곳에 숨어 있는 사냥감도 놓치지 않고 정확히 포착하시다니, 진짜 명사수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답니다.”
어색하게 웃으며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데, 처음 보는 여자가 갑자기 내게로 다가왔다. 어디서 많이 본 듯, 묘한 기시감을 주는 여자였다. 누구랑 닮은 것 같은데…….
“처음 뵙겠습니다, 로렐라 님. 늦게 도착해 인사가 너무 늦었네요. 저는 에어리스 릴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기시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펠리어트 공작님의 활약은 정말 대단하더군요. 저는 애초에 승부가 되지 않을 걸 깨닫고 바로 욕심을 접었습니다. 아, 괜찮으시면 대연회 때 두 분께 따로 인사를 올려도 되겠습니까?”
그녀의 옆에서 능청스레 말을 건 남자는, 자신을 에어리스의 약혼자라고 소개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대충은 눈치챘다. ‘릴리’라는 성은 흔하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저만큼 닮았으니, 아마 확실할 것이다. 그들이 바로 세이블 릴리의 이복 여동생과 옛 약혼자였다. 흥미를 느낀 것도 잠시, 나는 두 사람에 대한 것을 곧 뇌리에서 지웠다. 어쨌거나 세이블 본인도 아니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니까. 게다가 태도는 몹시 예의 바르지만 둘 다 왠지 모르게 거만함이 느껴져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나고, 빗줄기가 다소 약해지자 사람들은 그 틈을 타 얼른 저택으로 돌아갔다. 언제 또다시 폭우가 쏟아질지 알 수 없는 탓이었다. 북적대던 천막도 몹시 한적해졌다. 약해진 빗소리를 뚫고 저 멀리서 커다란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사냥 대회의 종료를 알리는 소리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참가자들도 돌아와 흠뻑 젖은 몰골로 비를 피해 천막 아래로 뛰어 들어왔다.
“올해 우승자는 정말 누가 될지 가늠이 안 되는군요.”
“아까 두 분이 잡은 사냥감들을 보았는데, 정말 막상막하입니다.”
“하하, 1등이요? 저는 옛날 옛적에 포기했답니다.”
그들은 잠시 따뜻한 차를 마시며 몸을 녹이고는 피곤한 얼굴로 자리를 떴다. 그 와중에도 시종들은 사냥감을 회수하기 위해 폭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숲속으로 향했다. 그러나 여전히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 * * 빗줄기는 갈수록 굵어졌다. 조이와 에이미가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겠냐고 여러 차례 권유했지만, 나는 정리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시종들 틈바구니에서 끈질기게 두 사람을 기다렸다. 사냥 대회에 목숨이라도 건 듯한 모습을 목격해서일까, 둘 다 무사히 돌아오는 걸 직접 봐야만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인기척이 느껴진다 싶더니 매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로렐라, 아직도 이곳에 계셨습니까?”
나는 재빨리 의자에서 일어나 반갑게 외쳤다.
“단장님!”
한걸음에 곁으로 달려가자, 그가 다정하게 웃으며 얼른 뒷걸음질 쳤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몰골이 엉망입니다.”
그의 말대로, 하얀색 사냥복은 흙탕물이 얼마나 튀었는지 얼룩진 부분이 더 많았으며, 단정하게 묶은 긴 머리는 비에 흠뻑 젖어서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하지만 옷이 더러워졌을 뿐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너무 안 오셔서 걱정하던 중이었어요……!”
원망하듯 긴 한숨을 토해 내자 레어넌이 멋쩍은 얼굴로 젖은 머리를 대충 쓸어 넘겼다.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이런 곳에서 홀로 기다리게 만들다니, 면목이 없군요.”
하지만 그의 얼굴은 면목이 없다기보단 오히려 기뻐 보였다. 좋아, 그럼 이제 나머지 한 명만 무사히 도착하면 될 일이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레어넌도 고개를 돌려 폭우가 쏟아지는 숲을 바라보았다.
“설마 펠리어트 공작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네.”
“이상하군요. 저보다 훨씬 먼저 앞으로 나가는 걸 보았는데…….”
그 말에 어쩐지 더욱 걱정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로렐라, 그 어떤 이야기라도 괜찮으니 제게는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혹시 그자가 무슨 억지를…… 부립니까?”
내 찌푸린 미간을 잘못 이해한 것일까. 날 가만히 살피던 레어넌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네?”
“반드시 우승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 같더군요. 평소 이런 일엔 관심도 없는 사람인데, 이상해서요. 만약 당신에게 무언가를 강제하려고 하는 거라면…….”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저렇게 싸늘해진 눈빛도 처음 보았다. 무척이나 화가 난 게 틀림없었다.
“아, 아니에요. 그런 일은 전혀 없으니 안심하세요.”
나는 깜짝 놀라 얼른 손사래를 쳤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어느새 레어넌은 평소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방금의 사나운 표정은 내가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독 다정하고 상냥한 미소였다.
“전 이제 아무것도 놓치지 않을 겁니다. 1등도, 그리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내 귀 옆으로 손을 올렸다. 묶은 머리가 빠져나와 있었는지, 조심스러운 손길이 머리카락을 슬쩍 넘겨 주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다음은 뭔데요! 너무 궁금해 입술까지 달싹이며 레어넌을 초조하게 바라보았건만, 그는 그저 환하게 웃기만 했다. 아!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건, 바로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 그때, 또 한 번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내 고개도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펠리어트가 아닌, 셰릴 백작이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나는 탄식이 터지려는 입술을 얼른 깨물었다.
“백작, 펠리어트 공작은 어떻게 된 겁니까?”
나 대신 레어넌이 앞으로 나서서 물었다.
“그, 그게…….”
셰릴 백작은 왜인지 쉬이 말을 잇지 못했다.
“……백작.”
어쩐지 창백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 레어넌의 목소리도 심각하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