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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잘 왔어, 로렐라 (52/173)

52화. 잘 왔어, 로렐라20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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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식사 시간. 메이레드 가문에서 10년, 그 이전 다른 가문에서 15년. 도합 25년을 집사로 일해 온 웨번은 이제 막 식탁 앞에 앉은 로렐라를 진지한 표정으로 관찰했다. 아가씨의 행동이 며칠 전부터 조금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손이 허공에 멈추질 않나, 초점 없는 두 눈과 갑자기 푹 내쉬는 한숨까지.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찻잔을 손에 든 채 허공만 보고 있었다. 아가씨께서 이상해지신 건 얼마 전, 레어넌 단장님이 방문하셨던 날부터였다. 그날 아침만 해도 멀쩡하시던 아가씨가, 단장님이 돌아간 뒤부턴 거의 넋이 나간 듯했다. 베테랑 집사의 감으로 추측해 보건대 이건 틀림없이…….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니, 맞은편에 선 조이가 보였다. 저택에 있는 하녀들은 모두 아가씨를 좋아했지만, 조이는 그중에서도 그녀를 가장 많이 따랐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변화를 눈치채고 자신과 비슷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눈치챘는지 조이 역시 고개를 돌려 웨번과 눈을 맞추었다. 두 사람 사이에 눈으로 하는 대화가 조용히 오고 갔다.

16550622747372.jpg“앗, 뜨거!”

16550622747376.jpg“어머, 아가씨 괜찮으세요?”

로렐라의 작은 비명이 들리기가 무섭게 옆에서 시중을 들던 하녀가 당황해하며 재빨리 그녀를 살폈다. 웨번은 생각을 멈추고 곧장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로렐라가 아까부터 손에 들고만 있던 찻잔은 어느새 텅 비어 있었다. 반면에 아기자기한 자수가 놓인 흰색 식탁보는 옅은 갈색 얼룩으로 잔뜩 물든 상태였다.

16550622747376.jpg“괜찮으십니까, 아가씨. 다치진 않으셨습니까?”

16550622747372.jpg“어. 괘, 괜찮아.”

정신을 차린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은 아닌지 하얀 손은 다행히 화상을 입지는 않은 듯했으나, 대신 얼굴이 몹시 붉었다. 마치 손이 아니라 얼굴에 홍차를 끼얹은 것처럼.

16550622747376.jpg“뜨거우니 가만히 계십시오. 제가 닦겠습니다.”

16550622747376.jpg“그건 이리 주세요, 아가씨. 새 잔을 가져다드릴게요.”

웨번이 냅킨으로 식탁을 훔치는 사이, 조이는 재빠른 손길로 로렐라의 손가락 끝에 여전히 위태롭게 걸려 있는 찻잔을 받아 들었다. 흠뻑 젖은 냅킨과 빈 찻잔을 든 두 사람은 정리하기 위해 등을 돌려 식당 밖으로 향했다. 뒤에선 하녀와 로렐라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16550622747376.jpg“로렐라 님, 혹시 요즘 무슨 일 있으세요?”

16550622747372.jpg“어? 아, 아니. 아무 일도 없는데, 왜?”

16550622747376.jpg“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계신 듯해서요. 어제도 와인 잔을 놓치시는 바람에 다칠 뻔하시고…….”

16550622747372.jpg“……내가 원래 좀 덜렁거리잖아. 하, 하핫.”

누가 들어도 연기를 하는 게 분명한 목소리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웃음이었다. 복도로 향하는 동안 두 사람은 또다시 몇 차례 시선을 교환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복도에서 먼저 입을 연 건 조이였다.

16550622747376.jpg“집사님 생각은 어떠세요?”

16550622747376.jpg“확실히 뭔가 있어. 단장님이 방문하신 이후로 넋이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시잖아.”

16550622747376.jpg“역시 그렇죠?!”

조이는 기쁜 듯 눈을 빛냈다.

16550622747376.jpg“아가씨께서 드디어 단장님을 마음에 두게 되신 것이 틀림없어요. 하루빨리 두 분이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거예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열의를 불태우는 조이와는 달리, 웨번은 신중했다. 그는 진중한 얼굴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16550622747376.jpg“물심양면으로 돕는 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혹시 아가씨께서 원치 않으시면 어쩌지?”

16550622747376.jpg“확실히 아가씨가 평소와 다르시다는 걸 집사님도 뻔히 보셨잖아요.”

조이는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목소리를 낮춘 채로 열변을 토했다.

16550622747376.jpg“게다가 그 포악한…… 공작님이 여전히 우리 아가씨를 넘보고 계시니 얼른 새 짝을 찾아드려야 해요.”

그녀가 얘기하는 ‘그 포악한 공작님’이 누구인지는 웨번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빨리 다른 짝을 만나셔야 한다는 그녀의 의견에는 그도 동감하는 바였다.

16550622778024.jpg“…….”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조이는 착하고 다정한 레어넌의 애정 어린 시선을 받으며 행복해하는 로렐라의 모습을 상상했다. 두 사람은 물론, 언제고 그녀의 곁을 지킬 자신에게서도 웃음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웨번 역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공정하기로 유명한 레어넌을 성심성의껏 모실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단꿈에 젖어 있던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또다시 시선을 교환하고는, 무척 결연한 표정으로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셰릴 백작이 주최한 사냥 대회가 어느덧 코앞으로 다가왔다. 출발하는 날, 나는 현관까지 따라 나온 집사 웨번과 다른 고용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16550622747372.jpg“나 없는 동안 다들 저택을 잘 부탁해. 무슨 일 있으면 꼭 알려 주고.”

16550622747376.jpg“모쪼록 잘 다녀오십시오.”

웨번은 평소와 다름없이 다정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16550622747376.jpg“우리도 어서 가요, 아가씨.”

곁에 서 있던 조이가 들뜬 목소리로 재촉했다. 그녀는 나와 함께 갈 예정이었다. 다른 하녀들도 많았지만, 꼭 자기가 가고 싶다는 조이의 열정을 꺾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얼른 뒤로 돌아 현관 앞에 서 있는 마차로 다가갔다. 한 시간 전쯤 갑자기 저택에 불쑥 찾아온 이 마차는 고맙게도 셰릴 백작이 보내 준 것이라고 했다. 집사에게 마차의 정체를 전해 들었을 때도 놀라긴 했으나, 가까이서 보니 더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백작의 마차는 무척이나 크고 고급스러웠으며, 놀랍게도 시종까지 딸려 있었다. 낯선 마부와 함께 선 여자가 내게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16550622747376.jpg“이렇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로렐라 님. 저는 에이미라고 합니다. 백작님의 명을 따라 대회 기간 동안 로렐라 님의 시중을 들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조이가 못마땅한 듯 눈썹을 삐쭉 치켜세웠다.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이 내 시중을 드는 게 불만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도 내심 의아했다. 마차를 보낸 것도 모자라 시종까지 신경 써 주는 것은 흔하게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설마 신종 납치 수법은 아니겠지……? 의심스러운 나머지 여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그녀가 얼른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건넸다.

16550622747376.jpg“이건 백작님께서 보내신 서신입니다.”

거기에는 마차와 함께 전담 시녀를 보내 드리니 부디 편안한 여정이 되셨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길게 쓰여 있었다. 편지지는 물론, 봉투에 찍힌 인장까지 모두 셰릴 백작의 것이 맞았다. 오랜 시간 귀족 가문의 집사를 맡아 온 웨번이 꼼꼼히 뜯어 봤지만 문제는 없었다. 이전에 온 초대장과 필체도 같았다. 그녀는 재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16550622747376.jpg“저는 사냥 대회마다 참석하신 분들의 시중을 들어 왔답니다. 혹시 궁금하신 게 있으시다면 뭐든 물어봐 주세요.”

그 말에 나는 줄곧 편지에 두고 있던 시선을 들었다.

16550622747372.jpg“원래 참석자 모두에게 이런 마차를 보내 주시는 건가요? 전담 시녀……. 그러니까 에이미처럼 도와주는 분까지 함께요?”

에이미란 하녀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16550622747376.jpg“그 부분은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네요.”

아니, 방금은 뭐든 다 물어보라더니?

16550622747376.jpg“아가씨. 혹시…… 펠리어트 공작님이 보내신 거 아닐까요?”

조이가 내게 바짝 다가와 은밀하게 속삭였다. 나는 잠시 생각해 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0622747372.jpg“그건 아니야.”

펠리어트가 굳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서 마차를 보냈을 리가 없다. 그는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는 사람이니까. 게다가 이렇게 사근사근한 하녀를 딸려 보낸 세심함 역시도 펠리어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였다면 우락부락한 기사들을 대동시켰겠지. 혹시라도 안 타겠다고 버티면, 즉시 억지로 태울 수 있도록. 나는 다시 한번 매의 눈으로 마차를 이리저리 살폈다. 화려한 외관도 외관이지만, 활짝 열린 문으로 살펴본 내부는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은은한 광택이 맴도는 붉은 커튼과 방석은 값비싼 새틴 소재였고, 바닥에 깔린 폭신한 흰 양탄자는 고급 양모였으며, 천연 가죽을 덧댄 좌석은 장거리 여행에 최적화된 듯 크고 안락해 보였다. 게다가 좌석 뒤의 널찍한 공간과 의자 옆에 달린 손잡이는 뭐지? 설마…… 뒤로 완전히 젖힐 수 있는 건가?! 여기에도 저런 게 있어?

16550622747376.jpg“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모실 테니 부디 안심하시고 맡겨 주세요.”

곁으로 쪼르르 다가온 에이미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마치 달콤한 유혹이라도 하듯 눈웃음까지 치면서.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16550622747372.jpg“좋아요. 어서 가요.”

16550622747376.jpg“……네?”

16550622747372.jpg“어서 가자고요.”

어안이 벙벙해 보이는 그녀를 뒤로한 채, 에스코트를 받아 냉큼 마차 안으로 들어서자 예상대로 푹신한 좌석이 나를 반겼다. 와, 이 승차감 좀 봐. 안 그래도 오랜 시간을 가야 하는데, 이런 최신식 마차가 눈앞에 있으니 타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좁은 내 마차에 비교하면 이건 완전히 일등석이라고! 조이도 뒤따라 마차에 올랐다. 그녀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물론 내게도 아직 미심쩍은 부분은 있었으나 셰릴 백작의 서신도 이리저리 확인했고, 에이미란 하녀의 신분도 확실했으니 위험한 일은 없을 듯했다. 조이도 함께 갈 거고, 호위들도 뒤따를 테니까. 이래저래 예상치 못한 호의에 몹시 만족한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점점 멀어지는 저택의 고용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저택을 벗어난 마차는 곧장 빠르게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에이미는 내 맞은편에 앉아 마차가 달리는 내내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냥 대회 우승자에게는 큰 상금을 준다는 것과 지난 대회보다 참가자 수가 더 늘어났다는 것. 사실 참가자 대부분은 상금엔 관심 없고 그저 사냥을 취미로 즐기는 귀족들이라는 것 등등을.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좌석에 몸을 푹 묻은 채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유리창에 포니테일 머리를 한 내 모습이 비쳤다. 하나로 묶은 헤어 스타일을 보자마자, 레어넌이 생각났다.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나는 콩닥대기 시작하는 심장 소리를 외면한 채 생각을 돌리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의 표정과 목소리는 더욱 뚜렷해졌다. 레어넌은 제발 자신의 무례를 부디 잊어 달라며, 몇 번이나 사과했다. 잘 익은 사과처럼 새빨간 얼굴로. 그 후에는 무슨 이야기를 했더라? 아마 셰릴 백작의 사냥 대회로 화제를 옮겼던 것 같다. 그는 이번 조사만 아니었더라면 자신도 반드시 참석했을 거라며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오로지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친구이자 고마운 은인. 다정하면서 동시에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 매서운 추위가 몰려온다 해도 끄떡없을 것 같은 햇살 같은 미소를 지닌 남자. 그런 레어넌이 설마 나를……. ……진짜로 나를? 순간 심장이 아래로 쿵, 하고 떨어지고 커다란 북이라도 치는 듯 거센 박동이 느껴졌다. 내, 내가 왜 이러지? 진정아, 심장해! 마음속으로 헛소리를 지껄이며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 틈새로 더운 숨이 터졌다.

16550622747376.jpg“……로렐라 님?”

16550622747376.jpg“아가씨?”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조이와 에이미가 걱정 어린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16550622747376.jpg“괜찮으신가요?”

16550622747372.jpg“네, 그럼요.”

나는 얼른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았다. 그러고는 사냥 대회에 관해 관심 있는 척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부터 벗어나는 건 쉽지 않았다.

16550622747376.jpg“가장 점수가 큰 건 멧돼지랍니다. 저희 지역의 골칫덩이거든요. 틈만 나면 민가를 들쑤셔 애써 파종한 밀이나 보리 같은 것을 전부 먹어 버리니까요.”

16550622747372.jpg“네에.”

16550622747376.jpg“화살은 당일에 나눠 드릴 거예요. 첫 대회에 특수 화살로 우승한 분이 계셔서 그 뒤부터는 형평성 문제로 같은 화살을 쓰거든요. 아, 로렐라 님은 혹시 활을 잘 쏘시나요?

16550622747372.jpg“네에…….”

16550622747376.jpg“……로렐라 님?”

16550622747372.jpg“네에……. 네?”

그제야 내가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답만 반복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를 바라보는 두 여자의 시선은 아까보다 더욱 걱정스러워 보였지만, 나로선 그저 어색하게 웃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 * 마차는 먼 거리를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다. 어찌나 마부가 말을 잘 모는지 우리는 예상보다 훨씬 일찍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말들을 쉬게 하느라 중간중간 멈춰 서긴 했지만, 그때도 에이미와 조이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살뜰하게 보살펴 주고 말동무까지 해 준 덕분에 힘들거나 심심하지 않았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차원이 다른 시원한 공기가 나를 반겼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창문이 별로 나 있지 않은 커다란 저택이었다. 저택은 커다란 바위로 만든 돌담에 둘러 쌓여 있었다. 조이는 신기한 듯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내게는 몹시 익숙한 광경이었다. 사시사철 거센 바람과 추운 날씨를 견뎌야 하는 북부 지역의 저택들은 대부분 비슷했으니까. 2년간 지냈던 공작저도 이런 느낌이었지.

16550622747372.jpg“휴우…….”

괜한 감회에 젖어 다시 한번 시원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던 그때였다. 백작저의 문이 벌컥 열리고 누군가 나타났다. 아마 대회의 주최자이자 이 저택의 주인인 셰릴 백작님일 것이다. 갑작스러운 손님이 와 마중이 늦어져 죄송하다는 하인의 얘기를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나오셨네. 나는 일단 얼른 예를 갖춰 고개를 숙이려 했다.

16550622747372.jpg“처음 뵙겠습…….”

그러나 내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얼어 버렸다.

1655062286313.jpg“늦었군.”

16550622747376.jpg“죄송합니다, 공작님.”

서늘한 목소리에 에이미가 정중히 고개를 조아렸다. 당황한 기색도 없었다. 그의 어깨너머로 키가 작은 남자가 뒤늦게 헐레벌떡 뛰어나오는 게 보였다. 저 사람이 셰릴 백작인 듯했다.

1655062286313.jpg“마차는 불편하지 않았나?”

16550622747376.jpg“아, 안 돼……!”

조이는 마치 저승사자라도 본 사람처럼 새하얗게 질려 작게 중얼거리며 이마를 감쌌다. 내 시선은 펠리어트에게서 움직이지 않았다. 백작도 가까이 다가왔으나 나는 꽁꽁 얼어붙은 사람처럼 멍하니 그만을 바라보았다.

16550622747372.jpg“펠리어트……. 설마 당신이 준비한 마차였어?”

1655062286313.jpg“그럼 또 누가 있지?”

거만하면서도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귓가를 휘감았다.

1655062286313.jpg“내 이름으로 보내면 당신이 고집부릴 것 같아 셰릴 백작의 이름을 빌렸는데. 괜찮은 여행길이었길 바라지.”

16550622747372.jpg“…….”

그의 검은 두 눈동자는 마치 들뜬 아이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655062286313.jpg“잘 왔어, 로렐라.”

펠리어트의 입매가 아름답게 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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