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나만큼 잘생긴 사람이 또 있다고?2021.12.11.
국경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레어넌은 곧장 홀턴 후작가를 방문했다. 국경에서부터 워낙 먼 거리를 달려온 직후라 그녀가 걱정했던 대로 아직 여독이 남아 있었지만, 쉴 수는 없었다. 황실에서 직접 명을 내린 사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후작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레어넌은 본디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의 앞에선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그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탓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차에서 내리자, 핼쑥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달려 나와 그를 맞이했다. 그들은 구원자가 도착했다는 생각에 희망으로 눈을 빛냈다. 안내를 받아 침실로 향하니 창백한 얼굴의 후작이 의식 없이 축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가끔씩 경련을 일으키는 사지와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이 아니었더라면 명을 달리한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몰골이었다. 그를 잠시 바라보던 레어넌이 손을 뻗어 어깨를 가만히 잡았다. 외양에서 나타나는 증후는 충분히 살펴보았으니. 이제는 안쪽을 확인할 차례였다. 힘없이 누워 있던 후작의 몸에 서늘한 빛이 돌기 시작했다. 동시에 레어넌의 손바닥에도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이 전해져 들어왔다. 아주 익숙한 느낌이었다. 전장에서 수도 없이 경험했던 감각. 성력과 이토록 충돌하는 힘이라면,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답은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끄으으억.”
신음과 함께 후작의 얼굴이 기괴하리만치 푸른색으로 변했다.
“후, 후작님……!”
숨죽인 채 바라보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침대 쪽으로 모여들었다. 개중 몇몇은 겁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치기도 했다. 그러나 레어넌은 변함없이 차분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저주가 아니군요.”
“예? 저, 저주가 아니라니. 그럼 무엇인가요……?”
“마물의 독 때문입니다.”
“네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차가운 물이라도 끼얹은 듯 침실에는 고요한 침묵이 맴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이어 경악에 찬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마물의 독이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
“대체 누가 후작님께 그런 일을 저질렀단 말입니까!”
“치료는 가능하겠습니까?”
들불처럼 퍼져 나가는 웅성거림을 뚫고 나직한 레어넌의 목소리가 흔들림 없이 내려앉았다.
“다행히 해독제가 있으니 다들 진정하세요. 제조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는 뒤를 돌아 파랗게 질린 얼굴들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리고 무척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이 독 자체로는 목숨에 큰 지장이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운 금발이 그의 등 위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잔잔한 호수의 수면처럼 푸른 레어넌의 눈동자는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속 근심이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눈빛엔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단장님……!”
그제야 후작가 사람들은 울먹거리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리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레어넌은 좀처럼 후작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증상으로 봤을 때, 비페라와 아라네아라는 마물의 독을 섞어서 쓴 듯했다. 따로 먹여 체내에서 섞이게 만들어도 상관없고 아예 미리 섞어 둔 것을 먹이기도 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이상한데.’
그는 다시금 후작의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성력을 지녔기에 느낄 수 있는 강렬한 힘의 충돌이 거세게 전해져 온다. 혹시 몰라 몇 번 더 확인해 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역시 체내에 남아 있는 양이,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많다. 이 정도면 두 마물이 각각 수십 마리씩 달려들어 문 거나 다름없는 상태다.
‘이 정도 양이라면, 따로따로 섭취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실수로 마셨을 리도 없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한 모금 마심과 동시에 사지에 마비가 오고 극심한 고통으로 움직이지도 못할 테니까. 하지만 왜일까. 단순히 시계를 훔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많은 양을 쓸 필요 없었을 텐데.
‘혹시 엄청난 원한이라도 산 건가.’
죽일 생각은 없고, 고통만 주고 싶었던 거라면 가능한 이야기다.
‘아니, 솔직히 이 정도라면…….’
레어넌이 다시 한번 시체처럼 창백하게 질린 후작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죽이는 게 나을 정도군.
“단장님, 혹시 무슨 문제라도…….”
누군가의 목소리에 레어넌은 잠시 생각을 끊고 얼른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후작가의 시종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선 마지막까지 후작님과 함께 있었던 분이 누군지 궁금하군요. 혹시 아시는 분 계십니까.”
“네, 네!”
바자회장에 후작을 모셔다드렸던 시종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고는 병사의 안내에 따라 후작가에서 마련해 준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날 후작이 뭘 먹었는지도 전부 알아야겠습니다.”
레어넌 단장의 냉철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고요하게 내려앉았다. * * * 레어넌이 돌아간 직후, 나는 즉시 카셀에게 전서구를 날려 보냈다. 긴히 나눠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 당장 만나자는 내용의 편지를 다리에 묶어서. 답장은 다행히 바로 다음 날인 오늘 낮에 날아왔다. 자정 즈음에 찾아갈 테니 서재 창문을 열어 놓으라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늦은 밤.
“왜 이렇게 늦지?”
나는 손톱을 깨물며 서재 안을 이리저리 서성였다. 약속된 시간에서 이제 겨우 십여 분 지났을 뿐인데도 초조해져 5초마다 한 번씩 시계를 쳐다보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그냥 길드로 갈 걸 그랬나? 아니, 그건 오히려 너무 눈에 띄는 일이겠지. 지금 상황에선 아우레아를 벗어나는 것 자체가 의심받을 일인지도 모른다. 카셀을 만날 때는 내가 기다려야 하는 탓에, 다른 때보다 배는 안절부절못했다. 또다시 째깍거리며 움직이는 시계를 바라본 그때였다. 창문가에서 아주 작은 인기척이 들렸다. 얼른 고개를 돌리자, 망토를 뒤집어쓴 채 창문턱에 앉아 젖은 어깨를 툭툭 털고 있는 카셀이 보였다.
“카셀!”
나는 그의 이름을 다급하게 외치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왜?”
카셀은 후드를 벗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되물었다. 밤이라 더욱 눈에 띄는 아름다운 은발이 드러나는 순간 어김없이 띵동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왜 불렀냐고.”
“왜냐니!”
놀라울 정도로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부아가 치민 나머지 그의 팔을 짝! 소리 나게 때렸다.
“아.”
또다시 화면이 떴다. 띵동! 「‘은발 적안에 인생 건 사람’ 님이 항의의 표시로 주식 3,000주를 구매합니다.」 「왜 우리 애를 때리고 그래욧!」 아, 아뇨. 때리다니요. 오해이십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방금 때린 곳을 얼른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카셀은 정말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삐뚜름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와 눈을 맞춘 채 얼른 본론부터 꺼냈다.
“카셀, 후작은 대체 왜 안 일어나는 거야.”
“벌써 일어날 리가 없지. 앞으로 3주는 더 누워 있어야 할걸.”
“뭐, 뭐라고?”
처음 듣는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분명, 분명 금방 일어날 거라고…….”
“아, 내가 그랬나?”
불안해하는 나와 달리 카셀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태연자약한 태도에도 물론 변함이 없었다.
“마음이 바뀌어서 돌아가는 길에 술에 탔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아예 입 안에 들이부어 줬어. 그래서 안 일어나는 거야.”
“아니, 왜?!”
“누나한테 무례하게 굴었으니까.”
카셀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마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불쾌한 기분까지 들게 했잖아?”
띵동! 「‘은발 적안에 인생 건 사람’ 님이 우쭈쭈 하며 주식 50,000주를 구매합니다.」 「우리 카셀 하고 싶은 거 다 해!」 띵동! 「‘아가.들아. 보아라’ 님이 흐뭇하게 코를 쓱 문지르며 주식 20,000주를 구매합니다.」 「아주당돌허구.어엿쁜.흑.기사.네요.」 내가 의도적으로 이끌어 낸 건 아니지만, 그의 대답은 그분들의 심금을 울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주식이 팔린 기쁨을 느낄 수도 없었다.
“아, 아니 그러니까 지금…….”
그저 망연자실한 기분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고 결국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물론 후작이 내게 무례하게 굴기는 했다. 당시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쾌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저렇게 만들어 버리다니. 과자에 독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도 충격이었지만, 이것과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통쾌하지 않아? 난 누나를 함부로 대한 놈을 골탕 먹일 수 있어서 좋았는데.”
시무룩한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흐릿한 램프 불빛에 비쳐 더욱 아름답게 반짝이는 적안이 보였다.
“누나가 기뻐할 줄 알고 유일하게 한 병 남아 있던 독을 전부 쏟아부었는데…….”
그거, 천 골드는 되는 건데……. 한껏 풀 죽은 중얼거림이 뒤따랐다.
‘뭐? 처, 천 골드?!’
그게 다 얼마야? 마차가 대체 몇 대지? 아니, 마차가 문제가 아니라 집이……. ……돈이 썩어나나? 아, 머리야. 나는 생각을 멈추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문지르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카셀이 조용히 다가와 비 맞은 강아지처럼 내 곁에 살포시 몸을 붙였다. 눈치를 보는지 얌전히 있다가도 시선이 마주치면 기다렸다는 듯 눈썹을 늘어트리며 한껏 불쌍한 척을 했다.
“카셀.”
“응.”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응.”
“레어넌 베르하르트라는 이름은 너도 알지? 에크레투스 기사단의 단장님 말이야.”
그 이름을 꺼내자마자 고분고분하던 대답이 뚝, 끊겼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 대해 빨리 설명해 주고픈 마음뿐이었다.
“그분이 지금 후작이 그렇게 된 경위를 조사 중이야. 황실의 명까지 받아서.”
“그런데?”
“그런데라니? 이대로 가면 들키는 건 시간문제라고. 특히……!”
“레어넌 단장이 그렇게 대단한가?”
조소 어린 목소리가 내 말을 끊었다.
“뭐?”
“레어넌 베르하르트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냐고.”
카셀은 차갑게 굳은 얼굴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덕분에 황당함이 최고조로 치솟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또다시 그의 팔을 짝, 소리가 나게 때렸다.
“아!”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레어넌 단장님은 신전의 사제나 일반 의사와는 달라. 황실에서 일부러 파견을 보내 그 흔적을 찾으라고 할 정도로 누구보다 마물에 관해서 잘 알고 있다고.”
그의 표정은 여전히 못마땅해 보였으나 방금처럼 말을 끊지는 않았다.
“조사가 시작되면 내가 누군가를 데리고 바자회장에 들어갔다는 것도 알게 될 거야. 그 시종이 누군지 확실히 증명해야 할 거고, 디저트에 대해서도 해명이 필요하겠지. 그뿐인 줄 알아? 후작이 마지막으로 마신 커피 술을 가져온 사람은 누군지 샅샅이 조사하라고 할걸?”
말을 하다 보니 더더욱 확신이 섰다.
‘아무래도 얘한테만 맡기고 있다간 큰일 나겠어!’
하지만 카셀은 여전히 느긋한 표정으로 내 등받이에 한쪽 팔을 올린 채, 편안하게 꼰 긴 다리를 잠시 까닥거렸다. 그러고는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날 짐을 날라 주었던 외출 시종의 신분이야 가짜로 만들면 되는 거고…….”
하얗고 예쁜 손이 다가와 내 머리카락을 돌돌 감았다.
“디저트는 그날 회장에 모인 사람 대부분이 맛봤으니, 그다지 어렵지 않게 해명할 수 있을 거야. 거기에만 넣은 건 아닌지 의심할 순 있겠지만, 그것도 순간일 거야. 과자에 넣을 만한 양이 아니잖아. 내가 한 병은 부어 버렸으니까.”
카셀은 잘했지? 하고 묻듯 웃어 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따라서 남은 건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커피 술을 나눠 준 수상한 사람뿐이지. 열심히 뒤를 캐 보아도, 누군지 알 수 없고 행적이 묘연한 외부인. 로렐라 메이레드의 외출 시종과도 전혀 다른 사람 말이야.”
나는 잠시 입을 다문 채 그날의 기억을 빠짐없이 떠올렸다. 회장에 함께 들어갔을 때 카셀은 화려한 망토를 두른 외출복 차림이었다. 하지만 커피 술을 나눠 주러 다가왔을 때는 분명, 어디서 구해 왔는지 모를 시종 복장을 하고 있었다. 바자회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옷과 똑같은.
“걱정 마. 내가 외출 시종으로 다시 한번 분장하면 돼. 물론 술을 나눠 줬을 때 얼굴을 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이번엔 얼굴까지 변장해서.”
그는 여전히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치며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어차피 그날은 가면까지 썼으니까 외출 시종의 생김새를 증명해 줄 사람이 없잖아? 그저 갈색 머리카락만 지녔으면 그만이지.”
잠깐. 머리카락? 그것도 갈색……! 갈색 머리는 제국은 물론, 대륙을 통틀어 가장 흔했다. 그걸 생각해 낸 순간 머릿속에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레어넌 단장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이 기회에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 볼…….”
“카셀!”
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너 잠깐 일어나 봐.”
“왜……?”
“빨리!”
재촉하며 억지로 끙끙 힘을 주자, 그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나는 그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이마가 가슴팍 부근에 닿았다. 대략 30센티가 살짝 안 되게 차이 나는 걸 보니, 키도 비슷한 것 같았다. 좋아!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널 외출 시종으로 다시 분장시킬 일은 없을 테니 그건 잊어.”
“뭐? 아니, 왜?”
“왜냐하면 단장님 앞에서 네가…….”
또 무슨 이상한 짓을 해서 내 수명을 줄일 줄 어떻게 알고! 카셀이 레어넌 단장에게 유독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일전에도 생각했듯, 그들은 S극과 N극과도 같은 사이니 당연한 일이겠지. 하지만 진짜로 걱정되는 건 모르긴 몰라도 카셀이 몹시 기분파 같다는 점이었다. 적대적인 태도로 봤을 때, 레어넌을 도발할 가능성을 지울 수 없었고 그걸 내가 예측하거나 제어할 수조차 없었기에 더욱 불안했다. 나는 목소리에 더욱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을 건넸다.
“굳이 분장하지 않아도 널 대체할 완벽한 대역이 있으니까. 대신 그가 시종임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을 좀 만들어 줘야겠어. 아, 외출 시종이 후작과 마주치지 않고 바자회장에서 나갔다는 증거도 필요해. 내가 시계를 탈취하는 데 도움을 줬으니, 너도 이쯤은 도와줄 수 있겠지?”
“그거야 그렇지만……. 아니, 그보다.”
“어?”
“내 완벽한 대역?”
카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충격 어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설마 나처럼 잘생긴 사람이…… 또 있다고?”
……아, 등짝 스매싱이라도 날리고 싶다.
“후…….”
하지만 나는 분노를 꾹 억누른 채 심호흡하며 어르듯 말을 이었다.
“물론…… 없지. 너처럼 예쁜 은발을 지닌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
“그치? 누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제야 비로소 만족스러운 듯 카셀이 사르르 눈웃음쳤다. 띵동! 「‘은발 적안에 인생 건 사람’ 님이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이며 주식 30,000주를 구매합니다.」 「우리 언니 뭘 좀 아시는 분이었군요!」 틈새를 놓치지 않은 공략이 예상대로 먹힐 때의 기분은 참 짜릿했다. ……하. 하지만 힘들다. 정말 힘들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