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함께 가 주시겠습니까?2021.10.02.
어디선가 들려온 요란한 심장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그 박동이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레어넌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을 뻔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돌았군. 진짜 미치지 않고서야.’
그러나 불행하게도 뱉어 버린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흐르던 응접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색함만이 맴돌았다. 그는 차마 로렐라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민망해서 도저히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당신이 제일 예쁘다는 그 말만큼은.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혹은 괜한 겉치레를 위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입에 담은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까 레어넌은 정말로, 로렐라가 너무나 예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자신이 선물한 새빨간 장미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농담을 건넬 때면 유독 장난스럽게 올라가는 입꼬리라든가 웃는 순간마다 나타나는 보조개, 그리고 들떠 있을 때 어김없이 커지는 눈동자가 특히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로렐라는 찻잔을 든 채 그대로 굳어 버린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까처럼 잘했다고 칭찬해 주지도, 웃어 주지도 않았다. 혹시 그렇게 말을 한 게 기분이 나빴던 건 아닐까? 뒤늦은 걱정이 머릿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 왔다. 혹시라도 그렇다면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에 레어넌은 다시 조심스레 시선을 바로 했다. 아무리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라 하더라도,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응당 사과를 구해야 할 일이니까. 그가 낮게 헛기침을 한 후, 입을 열려던 그때였다.
“안 돼. 안 받아.”
귀 끝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로렐라의 입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뭐가 안 된다는 거지? 레어넌은 본능적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아, 쿠키는 안 쓴다고.”
만일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레어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놓쳤을 법한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는 미세한 발소리 하나까지 잡아내는 고도로 훈련된 검사인 데다가 로렐라에게 어떤 버릇이 있는지 또한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상상력이 풍부한지 대화를 나누다가도 순간순간 다른 생각에 잘 빠졌다. 그럴 때면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종종 봐 온 광경이라 이젠 좀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쿠키라니. 귀엽고 순수한 생각을 하는 게 틀림없었다. 순간 시선을 느꼈는지 로렐라의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줄은 몰랐던 건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화들짝 놀란다.
“죄, 죄송합니다. 단장님.”
“아뇨, 제가 더 죄송합니다.”
레어넌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정중히,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죄송하다니요, 왜……요?”
정말 모르겠다는 듯 갸우뚱 고개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상한 건 아닌 듯싶어 안도감이 차올랐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당혹스러웠다. 로렐라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어떤 모습이든지 마냥 귀엽게만 보이는 스스로가.
‘내가 대체 왜 이러지?’
마치 뭐에 씌기라도 한 듯했다. 물론 로렐라는 충분히 사랑스럽고 귀여운 사람이었지만, 그렇다는 사실만으로는 이렇게까지 세차게 뛰는 심장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는 이를 한 번 사리물었다 놓으며 날뛰듯 뛰어 대는 심장을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고는 평소와 다르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 쓴 목소리로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로렐라 님.”
그래, 지금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남아 있으니까.
“아, 네.”
“제 파트너가 되어 주시겠습니까?”
“파트너요?”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고 나서야 레어넌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알았다. 마음이 너무 급한 나머지 앞뒤 맥락도 없이 대뜸 본론부터 꺼내 버린 것이다. 그는 긴장을 숨기려 테이블 아래로 주먹을 꽉 쥐고는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했다.
“승전 기념 연회에, 저와 함께 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파트너로서요.”
“황궁에서 열리는 그 연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레어넌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티 파티에서 승전 연회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는 말을 들은 그 순간부터 계속 생각했다. 왜 진즉 먼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레어넌이 연회에 초대를 받은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초대를 받지 못했어도 어떻게든 함께 갈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그녀가 무척이나 가고 싶어 하니까. 저 역시도, 그녀와 함께 가고 싶으니까. 사교 모임에 다녀온 게 처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충격받았다. 험난한 북부에서 ‘공작 부인’이라는 신분으로 즐길 수 있는 건 한정적이었다. 귀부인들과의 사교 모임이나 연회는 몇 안 되는 유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었을 텐데. 조용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분노가 치밀어 레어넌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째서 그토록 필사적으로 공작저에서 도망치고자 했는지, 그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이 하고 싶은 것, 가 보고 싶은 곳 전부 누릴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함께 가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재차 물은 끝에, 드디어 원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다시금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저와 함께 가도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입니다.”
레어넌은 망설이지 않고 방금 로렐라가 했던 대답을 똑같이 따라 했다. 여태까지 황궁에서 열리는 연회는 대부분 빠지지 않고 의무적으로 참석해 왔다. 하지만 파트너를 대동하는 문제에 대해선 지독하리만치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불편했다. 그러니 그로서도 누군가에게 파트너 제안을 하고, 에스코트해 함께 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때문일까, 어느새 레어넌도 연회가 무척이나 기대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다 보니 어느덧 일어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찻잔도 이미 말끔히 비워졌다. 하지만…… 어쩐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새 차를 가져다드릴까요?”
곁에 서 있던 하녀가 그렇게 묻자, 문 옆쪽을 지키고 서 있던 레어넌의 호위들이 슬쩍 시선을 보내왔다. 이 이후에도 관전에서 일정이 있었으니 그러는 것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레어넌은 모르는 척 하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만큼은 로렐라와 계속 대화를 나누고 싶었고, 그녀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하녀가 차를 가지러 간 새, 그는 발을 동동 구르는 호위들 쪽으로는 아예 시선도 두지 않고 슬쩍 물었다.
“혹시 취미나 관심거리가 있으십니까?”
“아, 저는…….”
질문이 갑작스러웠는지,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민하는 듯했다. 쉬운 질문이라 생각했는데도 꽤 오랫동안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녀가 돌아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가 한가득 채워지는 중에도, 로렐라는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고 끙끙거렸다. 그 모습을 본 레어넌이 작게 웃으며 덧붙였다.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취미가 없다면 요즘 무엇에 관심을 두시는지 살짝만이라도 말씀해 주세요.”
한참 생각하던 로렐라가 수줍게 입술을 열었다.
“굳이 말하자면 주식을…….”
“주식이요?”
“네. 원하는 분야에 투자하면, 그걸 숫자로 환산해 일종의 증서를 발행해 주는 건데요. 그…… 머나먼 외국에서 요즘 선풍적인 인기예요.”
생소한 이름에 의아한 표정이던 레어넌은 설명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에도 상인들로부터 출자받아 이익을 도모하는 조합 단체들이 여러 개 있습니다. 그것과 비슷한 종류인가 보군요.”
“네, 바로 그거예요.”
고민하느라 계속 찌푸려져 있던 로렐라의 눈매가 비로소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렇군. 그녀는 경제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로구나. 개인적인 관심사를 알게 된 건 처음이라 조금 기뻤다. 이제부터 천천히, 더욱 많은 것을 알아가리라는 다짐을 하며, 동시에 살짝 치솟은 부끄러움을 삼켰다. 미래의 성기사단장이 될 재목답게,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이는 제국 기사 학교를 거쳐 들어가기 어렵기로 소문이 자자한 고등 아카데미까지 수석으로 졸업한 그였다. 특히 군사학과 경제학이라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았는데, 주식이라는 건 처음 들어 봤다. 물론 개념은 익숙했지만.
‘외국의 최신 투자 동향에 관해 공부가 부족했군.’
저택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경제학자를 불러야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어떤 ‘주식’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아, 그건요…….”
로렐라는 또다시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난처한 기색이었다.
“집착 광…… 아니. 그 새…… 아, 아니.”
마구 고개를 저으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모습에 레어넌의 고개가 옆으로 살짝 기울어진 그때였다.
“굳이 말하자면 주접 주식에 관심이…….”
“주접……이요?”
그녀는 다소 붉어진 얼굴로 재빨리 덧붙였다.
“아, 네. 독서를 사랑하는 귀부인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데요. 다정한 남자 주인공에 진심인 나머지, 그쪽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답니다. 저, 저도 그쪽으로 투자하고 있어요! 제가 요즘 가장 관심 있는 주식이거든요.”
말끝에 어색한 웃음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그녀는 출판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가장 관심 있는 분야부터 점차 넓혀 가는 것이 기본이니 현명한 선택이다. 관심 분야는 경제고, 취미는 독서라. 워낙 밝고 쾌활한 성격이라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멋대로 그녀는 밝은 햇볕 아래 자유롭게 뛰어노는 것을 좋아할 거라 생각한 탓이었다. 입 안에 수많은 질문이 맴돌았다. 알수록 더 알고 싶어진다. 또 어떤 면을 숨기고 있는지, 어떤 방법으로 놀라게 해 줄지 기대가 됐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다가왔다. 그는 아쉬움을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너무 오래 있어 폐가 되진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그럴 리가요. 저도 너무 즐거웠는걸요. 더 계시다 가시면 좋을 텐데……. 앞으로도 자주 놀러 오세요.”
“그러겠습니다.”
레어넌은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배웅을 받으며 나서는 길, 그는 아까부터 줄곧 생각하던 것을 슬그머니 입에 담았다.
“같이 연회를 가 주시는 것에 대한 보답으로 선물을 하나 해 드리고 싶은데, 괜찮다면 받아 주시겠습니까?”
“어머, 아녜요. 연회에 데려가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걸요.”
“꼭 해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조만간 댁으로 베르하르트가의 전속 의상사를 보내 드려도 괜찮을까요.”
“네?”
로렐라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제가 드리는 선물이니, 부담 갖지 말고 받아 주세요.”
레어넌은 그녀에게 어떻게든 부담을 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이건 연회에 함께 가는 파트너에 대한 예의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환히 웃으며 답했다.
“그럼 염치없지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너무 설레서 잠이 안 오면 어떡하죠?”
허락과 더불어 농담 섞인 그녀의 말에 레어넌도 활짝 웃었다. 자신의 마음이 잘 전달된 듯하여 기뻤다. 그는 쑥스러운 듯 깜빡이는 로렐라와 지그시 눈을 맞추며 그녀의 얼굴을 듬뿍 시야에 담았다. * * *
“실례합니다, 공작님.”
노크와 함께 육중한 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펠리어트는 대답 대신 잠시 멈췄던 손을 움직이며 다시 서류를 확인하는 일에 몰두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라면 굳이 들어오라고 말로 하지 않아도, 자신의 허락을 알아서 눈치챌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모습을 드러낸 건, 그의 곁을 오랫동안 지킨 집사였다.
“오늘 도착한 서신들입니다.”
집사가 들고 있는 상자는 각양각색의 편지 봉투로 가득했다. 펠리어트가 영지로 돌아온 이후, 공작저는 서신이 끊일 날이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달해도 다음 날이면 또 산더미처럼 쌓였다.
“중요한 건?”
“그게…….”
집사는 잠시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대부분 수도의 귀족 가문에서 온 서신입니다. 그리고…….”
그러고는 제일 위쪽에 놓인 고급스러운 편지 봉투를 바라보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칼리언의 왕녀와 베셀라모 제국의 공녀께서 직접 보내신 서신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류에 고정된 펠리어트의 눈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용한 방 안에는 한동안 종이 위를 거침없이 움직이는 펜촉 소리와 벽난로에서 불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꽃이 만연한 봄이었지만, 북부는 여전히 해가 지면 찬 공기가 내려앉아 벽난로는 꺼질 틈이 없었다. 이윽고, 모든 서류 작업을 마친 펠리어트가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편지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힐끗 어딘가를 향해 턱짓했다.
“땔감으로 쓰면 되겠군.”
“……네.”
역시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쟁쟁한 가문의 인장이 찍힌 서신들을 뜯지도 않고 벽난로에 집어넣으라는 명령에 처음에는 우려를 표하던 집사도, 이제는 군말 없이 그 명령에 따랐다. 마지막 한 통까지 남김없이 털어 넣자 주홍빛 불길이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그걸 말없이 바라보던 펠리어트가 한 마디를 붙였다.
“그 외엔?”
집사는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품속에서 또 다른 편지 한 통을 꺼내 들었다.
“황궁에서 온 서신입니다.”
“황궁에서? 또?”
“네. 공작님께서 승전 기념 연회 초대장에 아직 답신을 보내지 않으셔서, 아마도 참석 여부를 묻기 위해 다시 보낸 듯합니다.”
그 말에 펠리어트의 입가가 비스듬히 들렸다.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한 웃음이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북부는, 중앙에서 그 어떤 신경도 쓰지 않는 곳이었다. 이런 연회에 초대받은 적조차 없을 만큼. 그랬기에 그는 자발적으로 출정했다. 물론 그 혼자서 영지를 꾸려 갔더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지만…….
“이번에야말로 참석하겠다는 답신을 보내시는 게…….”
펠리어트가 어떤 생각에 빠져 있는지 눈치챈 집사가 급히 물었다. 승전 기념 연회에 전쟁 영웅인 그가 불참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오히려 가지 않았다가는 어쩌면 황궁의 체면을 깎아내렸다며 화를 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작은 여전히 답이 없었다. 무언가 마뜩잖은 듯, 목에 매고 있던 크라바트를 느슨하게 잡아당길 뿐이었다.
“그리고, 로렐라 님께서도 연회에 참석하신다고 합니다.”
결국 집사는 시의 적절하게 두 번째 카드를 꺼냈다. 순간 셔츠 단추를 하나 풀어 내리던 펠리어트의 손이 멈칫했다.
“……어떻게? 설마 그쪽에도 초대장이 간 건가?”
“죄송합니다. 그것까진 아직…….”
또다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행여나 불호령이 떨어질까 집사는 얼른 시선을 벽난로 쪽으로 돌렸다. 이윽고 펠리어트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참석하겠다는 답신을 보내.”
“네, 알겠습니다.”
어쨌거나 참석하기로 결정하셨으니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한 집사가 남몰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리던 그때였다.
“그리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수도에서 제일가는 의상사를 불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