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반드시 돌아오게 해 주지2021.09.22.
‘나는 분명히 보냈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말이 머릿속에 메아리치던 그때, 나에게만 들리는 종소리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울려 댔다. 띵동! 「‘집착광공 함 잡숴 봐’ 님이 만족스럽게 주식을 3000주 구매합니다.」 「이리 내려와 봐유. 한 입만 먹어 봐유. 어때유, 맛있쥬?」 띵동! 「‘저 새끼 남주 아니죠?’ 님도 지지 않고 주식을 3000주 구매합니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임? 질척대지 말고 꺼져!」 하지만 지금만큼은 계속해서 깜빡깜빡 빛을 내뿜는 시스템 창도,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반가운 이름도, 경쟁하듯 올라가는 주식 숫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틈이 날 때마다 보냈어.”
흔들림 없이 곧은 시선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피하는 기색도 없이 똑바로.
“답장이 온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혼란하기 그지없는 머릿속에 문득 예전의 기억이 스쳐 갔다. 늘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던 엠마는 아들의 서신을 받은 날만큼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 탓에 고용인들까지 펠리어트가 편지를 보내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별다른 수신인도 없이 그저 자신의 근황을 의무처럼 가볍게 몇 줄 써 내려갔을 뿐인 편지를.
‘그러다 간혹 저택 사람들의 안부를 묻기라도 하면 다들 내심 감격했지.’
솔직히 말하면 그래서 더욱 섭섭하고, 서러웠다. 아무리 서류로만 묶인 사이라고는 해도 남편조차 날 공기처럼 취급한다고 생각했었으니까. 나는 입술을 물었다 놓았다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 조심스레 물었다.
“그 많은 서신을…… 누가 빼돌리기라도 했다는 거야?”
“글쎄.”
펠리어트는 언제 웃었냐는 듯, 어느새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가 있었다.
“난 사실을 얘기했어. 믿건 안 믿건 당신 자유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서신을 빼돌린 것도 모자라 누구도 내게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하도록 고용인들의 입을 막은 사람이 있단 이야기였다. 길게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그 모든 게 가능한 사람은 오직 딱 한 명뿐이었으니까. 날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사람. 엠마 체임버스. 나는 흘끔흘끔 눈치만 보다가, 그가 우아한 동작으로 홍차를 한 모금 마실 때를 놓치지 않고 잽싸게 화제를 돌렸다.
“저택 사람들은 잘 있어?”
괜히 관심 없는 척 고급스러운 찻잔의 테두리만 만지작거리면서, 내 시중을 들어 주던 하녀의 이름을 댔다. 공작저에서 그나마 가깝게 지낸 유일한 사람이었다.
“베티라든가…….”
그러자 펠리어트가 미간에 살짝 주름을 얹은 채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둔 고용인은 없으니, 잘 있겠지.”
정말 냉정하리만치 주변인에게 아무 관심이 없구나. 새삼스레 그 사실이 실감 났다. 하지만 본론은 지금부터다. 나조차 바로 세운 가설을, 그가 몰랐을 리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엠마…… 부인께서는?”
순간 펠리어트의 턱에 움찔, 하고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미간에 팬 주름 역시 더더욱 깊어졌다. 잠시 후, 을씨년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택의 서쪽 부지에 계시지.”
“어……? 왜?”
“그간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그는 한층 더 나지막이 속삭이며 덧붙였다.
“당신 오빠도 그곳에 있어.”
공작저 서쪽에는 뭐가 있었더라. 그쪽으로는 갈 일이 거의 없어서 기억이 희미했다. 사냥개 사육장과 연못, 큼지막한 자물쇠로 잠가 놓은 작은 별채, 그리고…….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분들이 잠들어 있는 석실.
‘……아니, 아니겠지. 에이. 서, 설마 진짜이려고.’
그런데 그때, 설상가상으로 주위가 훅 어두워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창문 밖을 툭, 투둑 음산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궁금하면 보러 오지 그래.”
콰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창문 밖에서 번쩍 번개가 치더니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씨익, 위로 들린 펠리어트의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치아가 새하얗게 빛났다. 헉! 덕분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해, 입술을 콱 깨물었다.
“괘, 괜찮아. 지금은…… 말고, 나중에!”
나는 마구 손을 내저으며 벌렁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켰다. 그래. 별일 아닐 거다. 그냥 별채에 가둔 걸 거야! ……아니, 그런데 감금한 걸 별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 응접실 밖에서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펠리어트가 곧장 짧게 대답하자 누군가 들어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까의 그 사무관이었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어두워졌으니 램프를 켜 드리겠습니다.”
그제야 요란한 빗소리를 인식한 듯, 펠리어트의 고개가 천천히 창문 쪽을 향했다.
“비가…… 오고 있었군.”
그가 소슬한 음성으로 중얼거린 그때였다. 띵동! 「‘집착광공 함 잡숴 봐’ 님이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주식을 1000주 구매합니다.」 「펠리어트 비 올 때 3단 우산 가지고 다니면 사형.」 또 예비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아니, 저기요, 선생님들. 여기 3단 우산 같은 게 어디 있어요……. 하지만 내 머릿속엔 어느새 이마를 찌푸린 채 하늘을 바라보며 주섬주섬 3단 우산을 펼쳐 드는 펠리어트의 모습이 그려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그런다고 상상하니 정말 모양 빠지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흡…….”
오싹하고 무서웠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웃음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사이 사무관과 함께 들어온 황궁의 시종들이 응접실의 불을 모두 밝혔다. 우리의 찻잔에도 다시 차가 채워지는 사이 사무관이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
“공작님, 괜찮으시다면 시가를 좀 가져다드릴까요?”
띵동! 「‘집착광공 함 잡숴 봐’ 님이 이번에도 우려하며 주식을 1000주 구매합니다.」 「펠리어트는 겉 담배 피워도 사형.」
“크……흡.”
사형 안 당하는 방법이 있긴 있는 거야? 기습 공격에 또다시 주먹을 꽉 쥔 채 입술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펠리어트가 손을 살짝 들어 거절했다.
“아니, 됐다.”
그러고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왜 또 웃지?”
“……안 웃었는데.”
“웃었잖아. 방금 전에도, 지금도.”
“잘못 본 거야.”
“분명히 웃었어.”
말은 그렇게 해도 정작 웃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그였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미소가 어느 틈에 그의 만면에 퍼져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해서, 너무 이질감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펠리어트의 시선을 피해, 몇 번씩이나. * * * 우리의 얘기가 길어진다고 판단한 탓인지, 사무관은 새 차를 들고 다시 방문했다. 내 찻잔에는 다시 향긋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진한 오렌지 빛깔의 홍차가 놓였다. 나는 잔을 들어 올리며, 허공에 뜬 시스템 창을 흘끗거렸다. 「총 판매 주식 : 34,001주」 어느 틈에 벌써 3만 주를 넘겼다. 마지막으로 올라온 메시지는, ‘펠리어트 비 와서 춥다고 꿀차 마시면 사형’이었다. 사무관이 ‘다른 차를 좀 가져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던 직후에 뜬 메시지였다. 펠리어트는 다행히(?) 사형당하지 않았다. 그가 부탁한 건, 핏빛 색깔의 진한 레드와인이었으니까. 막상 사무관이 나가고 나니, 대화가 끊기고 어색함이 찾아왔다.
‘다 마셨으니까 그냥 가겠다고 할걸…….’
어차피 이미 목적도 얼추 달성했는데. 나는 후회를 삼키며, 테이블 위에 놓인 메모함을 만지작거렸다. 위쪽에 잘 끼워져 있던 크리스탈 펜대를 들고 괜히 이리저리 살펴보는 척하는데, 펜이 그만 아래로 떨어져 펠리어트의 발아래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아…….”
당황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새, 그가 말없이 그것을 주워 내게로 쓱 내밀었다.
“고, 고마워.”
얼른 그것을 받아 들고 다시 끼워 넣으려는데, 2차 난관이 찾아왔다.
‘아니, 왜 안 들어가지?’
뺄 때는 아무 문제 없었는데. 혹시 이렇게 끼우는 게 아닌가? 나는 펜대를 반대로 돌려 홈에 집어넣으려 애를 써 보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아귀가 잘 맞물리지 않았다. 한참을 끙끙대는데, 또다시 커다란 손이 다가왔다. 내게서 펜을 가져간 펠리어트는, 그것을 살짝 기울이고 앞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펜이 원래 자리로 들어갔다.
“똑같은 게 있잖아.”
“어?”
“1층 후원 쪽 응접실에 이것과 똑같은 메모함이 있었는데, 써 본 적 없나?”
펠리어트는 여전히 입술을 끌어올린 채 놀리듯 말을 건넸다. 후원과 맞닿아 있는 그 응접실은 여러 손님이 쓰기엔 비좁지만, 대신 무척이나 화려하고 매우 고풍스러워 중요한 손님을 모시기엔 제격이었다. 테이블 하나, 의자 하나도 전부 고가의 가구였고 벽에는 값비싼 그림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고, 유구한 세월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조각품들까지 자리했다. 게다가 북부에 여름이 돌아올 때면 넓은 창을 통해 아름다운 후원이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지는 황홀한 풍경을 선사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곳은 엠마 체임버스의 자랑이자, 긍지가 가득한 공간이었다. 간혹 저택에 지체 높은 손님이 방문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반드시 거기서 차를 접대할 정도로. 그 때문에 나는 그곳에 함부로 출입할 수 없었다. 어쩌다 딱 한 번, 우연히 들어갔다가 몇 날 며칠을 괴롭힘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펠리어트가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솔직히 털어놓는 것 외엔 다른 수가 없었다.
“써 본 적 없어.”
“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었으니까.”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펠리어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순간 숨쉬기가 갑갑해질 정도로 무거운 기운이 저변에 가득 내려앉았다. 침묵은 상당히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괜한 말을 한 건가 싶어 남몰래 마른침을 삼키는데, 이윽고 조용한 음성이 귓가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응?”
“또 어딜 출입 금지당했지?”
“그러니까…….”
정말 말해도 되나? 솔직히 좀 망설여졌지만, 저렇게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동자 앞에서 거짓말하긴 어려웠다.
“후원의 온실……이랑…….”
추운 북쪽에서 보기 힘든 아름다운 꽃들이 사시사철 활짝 피어 있던 곳. 행여 함부로 들어갔다가 드레스 자락으로 꽃을 다치게 하면 안 된다며 엠마가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경기를 일으켰었지.
“또.”
“2층 동쪽 복도…….”
사치와 허영이 심했던 엠마는 웬만한 침실보다 큰 드레스 룸을 몇 개나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방이 있는 동쪽 복도의 방들은 전부 그녀의 드레스 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래서 그녀는 내가 그 복도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싫어했다. 물론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다 해도 나 역시 사절이었다. 그러다 무언가가 분실되기라도 하면, 누가 도둑으로 몰릴지는 불 보듯 뻔했으니까. 물론 이제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저 다 잊어버린 과거에 불과한 것이지만.
“또 있나?”
하지만 펠리어트는, 눈매를 딱딱하게 굳힌 채 계속해서 대답을 종용했다. 결국 나는 일러바치듯 말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 자꾸만 마르는 입술을, 점차 식어 가는 홍차로 몇 번이고 축이면서. * * * 비로소 응접실에서 빠져나왔을 땐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딱 30분만 있을 거라는 결심이 무색해졌다.
“공작님.”
사무관의 배웅을 받으며 현관 밖으로 나서자, 대기하고 있던 펠리어트의 수하가 무언가를 들고 성큼 다가왔다. 비 올 때 쓰는 망토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구멍이라도 난 듯 거센 비가 줄기차게 퍼붓고 있었다. 시종이라고는 마부 한 사람만 대동한 나로서는 쫄딱 맞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구조상 부속 건물의 문 바로 앞에 마차를 댈 수 없던 탓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비를 막을 만한 걸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사무관은 날 향해 고개를 까딱해 보이고는 다시 허둥지둥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서 가시지요.”
그사이 수하는 펠리어트에게 망토를 건네며 길을 비키듯 한발 물러섰다. 자신도 쫄딱 젖었는데 그를 챙기는 모습에서 깊은 충성심이 느껴졌다. 나는 잠시 얕은 고민에 빠졌다. 이게 마지막인데, 그래도 작별 인사는 해야겠지? 처음으로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또라이도 아니었고 예상외로 대화도 잘 통했지만…….
‘그래, 인사는 하자. 오빠 놈 일로 도움을 받았던 적도 있잖아.’
어…… 하지만 뭐라고 하면 좋을까.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 아니면, 나도 잘살 테니 너도 잘살아라? 고민을 거듭하던 그때였다. 말없이 망토를 받아 든 펠리어트가 갑자기 나를 향해서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곁으로 다가와 갑자기 내 등 뒤를 두 손으로 감쌌다.
미처 뒷걸음질 쳐서 피하기도 전에, 어깨 위로 무거운 망토가 풀썩 씌워졌다.
“이건 왜…….”
놀란 나머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본 그 순간.
“이게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뭐, 뭐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당신 발로 직접 돌아오게 할 거라고.”
비록 입술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으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조금도 흔들림 없는 눈동자는 내 얼굴만을 응시했다. 마치 어둠 속에 웅크려 무언가를 노리는 맹수처럼.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마치 스스로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이를 꽉 깨문 채 한 자 한 자 낮게 읊조리는 음성이 귓가에 스쳤다.
“곧 또 보지, 로렐라.”
순간 넋이 나간 나는, 망토의 매듭을 묶어 주는 커다란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 발로 직접 돌아오게 할 거라니? 어떻게? 무슨 수로? 게다가 곧 또 보자고? 진짜…… 집착광공다운 일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펠리어트는 이미 등을 돌린 채 빗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간 뒤였다.
“그,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멀어지는 그의 등에다가 대고 크게 소리치는데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할 셈이냐고……!”
불안감에 발까지 쿵쿵 굴러대며 재차 외쳤지만, 펠리어트가 뒤를 돌아보는 일은 끝까지 없었다. * * * 소나기는 빗속을 걷는 사람이 눈조차 뜨기 힘들 정도로 거셌다. 펠리어트 역시 짧은 순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금세 젖어 버리고 말았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타고 가느다란 물줄기가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렸다.
“고, 공작님. 어딜 가시는 겁니까!”
마차 곁을 지나쳐 계속해서 걸어 나가자 수하가 허겁지겁 쫓아왔다. 그런데도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었어.’
‘온실하고 응접실, 그리고…….’
모두 삭막하기 그지없는 저택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운, 그리고 그나마 여유롭게 쉴 수 있을 만한 장소들이었다. 몰랐다. 고작 그런 것조차 누리지 못하고 추운 공작저에 2년간 홀로 있었다는걸.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공작님……!”
뒤에서 다시 한번 그를 목청껏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펠리어트는 계속해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저 무섭게 쏟아지는 빗줄기만이 그의 어깨를 아프도록 두들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