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대체 왜 그러는 거야2021.09.11.
처음부터 잘되는 일이 어디 있을까. 작은 일도 그러는데 하물며 사업이나 장사 같은, 단 한 번도 접해 보지 않았던 일에 도전할 때는 누구나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첫 번째, 좌절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진짜 다 말아먹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끊고 빨리 발을 빼야…… 아, 이게 아니지. 흠흠. 아무튼 나는 방금 전 오픈 준비를 끝마치고, 아침 햇볕이 내리쬐는 창가 자리에 앉아 우아하게 모닝 카페인을 수혈했다. 뒤쪽 주방에서는 함께 일하는 파티시에, 레아가 오늘 새로 선보일 메뉴를 준비하는 소리가 한창이었다. 나도 일찍 나온다고 나온 건데, 그녀는 그보다 몇 시간은 더 일찍 나온 듯했다. 참 성실하고 부지런해서 마음에 쏙 드는 파트너가 아닐 수 없다. 주방에서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그간의 기록을 적어 둔 수첩을 펼쳐 들었다. [1. 크로플 : 빵을 일부러 눌러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지 못해 실패X. 2. 뚱카롱 : 한입에 먹기 힘들다는 이유로 대실패XX. 3. 양념치킨 : 솔직히 왜 실패했는지 모르겠음. 아무튼 완전 실패XXXX. 4. 불X크림떡볶이 : 이건 내가 생각해도 무모했음. 또 시도했다간 독을 탄 거 같다는 의심으로 그치지 않을 것.] 그렇다. 그간 여러 가지 시도를 해 왔지만, 결과는 모두 똑같았다. 실패.
“후우우…….”
K푸드의 백전백패라니, 예상치 못한 상황에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직 절망하기는 이르다. 오늘은 정말로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으니까! 이게 성공하지 못하면, 내 전생의 삶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마침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냄새를 따라 뒤를 돌아보니, 레아가 커다란 쟁반을 들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쟁반 위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작고 동그란 경단들이 가득했다. 나는 얼른 그쪽으로 다가가 갓 튀겨서 바삭바삭한 경단을 하나 입에 쏘옥 넣었다. 몹시 뜨거웠지만 입 안이 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우물거리니, 쫄깃한 반죽이 탁 터지면서 달콤하면서도 부드럽고 짭짜름한 치즈가 가득 퍼졌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는 치즈볼이었다. 나는 내심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래, 바로 이거지!
“잘된 건지 모르겠어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치즈볼을 만들고도 레아는 거듭된 실패로 자신감이 없는 듯했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과장될 정도로 호들갑을 떨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주었다. 솔직하게 전생에서 먹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훌륭한 맛이었기에 진심으로 칭찬해 줄 수 있었다. 방금 만들어서 더 맛있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반죽과 필링을 다루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레아의 솜씨가 큰 영향을 주었다.
“레아.”
“네에, 로렐라 님.”
“이 가게에서 제일 큰 포대가 혹시 밀가루를 담았던 그건가요?”
“네, 맞아요. 왜 그러시나요?”
나는 치즈볼 하나를 더 입에 쏙 넣은 뒤에 그녀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귓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거기에 돈 쓸어 담을 준비 하세요.”
* * * 어느새 해가 모두 져 깜깜한 거리. 광장의 분수를 밝히던 가로등도, 그 주변에서 쉴 새 없이 지저귀던 새들도 모두 내일을 기약하며 휴식에 들어간 어두운 시각에 불을 밝힌 가게는 오로지 우리뿐이었다.
“어떡하죠, 로렐라 님.”
레아는 한 입도 대지 않은 찻잔을 앞에 놓은 채 한껏 위축된 목소리로 울먹거렸다. 나는 대답 대신 시선을 내려 테이블 위에 펼친 수첩을 바라보았다. [치즈볼 : 소스처럼 뜨겁게 흘러나오는 치즈의 느낌이 이상하다고 거부당함. 실패.] 아니, 다른 건 다 몰라도 이건 정말 될 줄 알았는데. 이쯤 되면 여기 사람들이 맛알못 아닌가?! 어떻게 이걸 별로라고 할 수가 있어?
“워낙 아낌없는 투자를 해 주셔서 재료도 다 최상급으로 준비했는데 하나도 못 팔고…… 아무래도 제 실력 탓인가 봐요…….”
나 역시 암담해서 한숨이 새어 나오려 했지만 입술을 꾹 깨물며 참았다. 그래, 지금은 자신감이 땅바닥에 떨어진 사업 파트너를 위로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렇지 않아요. 레아가 만든 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걸요. 지금껏 내가 섭렵한 K푸드…… 아, 아니 외국음식들보다 훨씬 더요.”
“정말요……?”
“그렇고말고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었다. 오늘 선보인 치즈볼은 물론이고, 첫날 만든 크로플은 요즘도 꿈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까.
“흐흑, 하지만 만드는 족족 실패만 하는걸요…….”
나는 급기야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레아의 곁으로 다가가 얼른 손수건을 건네며 토닥였다.
“걱정 말아요. 아직 비장의 무기가 남아 있으니까.”
그러자 그녀가 진열대 너머로 산처럼 쌓여 있는 치즈볼들을 가리키며 또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아침엔 분명 이게 마지막 비장의 무기라고…….”
그, 그건 그렇지만…….
“아니, 이번 건 진짜로, 진짜로 비장의 무기예요.”
“그게 뭔가요?”
레아의 젖은 두 눈이 어느새 다시 희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몇 대에 걸쳐 은밀하게 내려오는 가업의 비밀을 전하듯 아주 작게 목소리를 낮췄다.
“음료를 팝시다.”
처음부터 이쪽을 갈걸 그랬다. 뭐니 뭐니 해도 이건 재료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는 아이템이니까. 팔리지 않아 산더미처럼 쌓인 식재료를 폐기하는 것보다는 훨씬 부담이 적을 것이다. 그래, 나도 로판에서 K푸드가 잘 팔리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음료는 얘기가 다르지!
“음료……라면 차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레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차라리 평범한 티 살롱이라면 괜찮을지도, 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남들과 똑같아선 안돼요. 거기에 우리만의 특색을 넣자고요.”
특색이란 말에 다시금 그녀의 콧잔등에 잔주름이 잡혔다.
“하지만 로렐라 님, 지금까지의 결과를 봤을 때 너무 실험적인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나를 향한 그녀의 신뢰는 이미 바닥인 모양이었다. 아이디어를 내는 족족 망했으니, 무리도 아니다. 이럴 땐 백 번의 맛 설명보다, 한 번의 시음이 중요한 법. 나는 재료를 빠르게 메모해 레아에게 건넸다.
“가게에 기본적인 건 있으니까, 그 외에 살 것들이에요.”
“전분 가루랑, 그리고 검은 당……이요?”
“이걸로 떼돈 번 여주들…… 아, 아니 여성분들을 많이 봤지만, 레아가 정 의심쩍다니 한 번 만들어서 직접 먹어 보자고요.”
그리고 그다음 날. 직접 시식한 레아는 턱을 연신 움직이며 연신 엄지를 치켜세웠다.
“식감이 너무 재미있네요. 배도 은근히 부르고, 또 이런 고급스러운 단맛은 처음이에요!”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코를 쓱 문질렀다. 말 안 해도 알아요, 그 맛……. 근데 버블티가 K푸드였던가? 모르겠다. 여기서는 그냥 내 마음대로 K버블이라고 부르지, 뭐.
“이거라면 성공할 것 같아요!”
아무튼 이 전례 없는 호응에 나는 지금까지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모두 해소되는 듯했다. 이번에야말로 분명히 느껴진다. 거부할 수 없는 대박의 기운이! * * * [버블티 : 개구리 알 같아서 무섭다고 애들이 울어서 실패] 대박은 개뿔! 나는 분노의 필체로 휘갈긴 수첩을 가게 바닥에 힘껏 내팽개쳤다. 레아가 남아 있었다면 도저히 하지 못했을 행동이지만, 그녀는 오늘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덕분에 홀로 가게에 남아 쌓였던 감정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냉수를 몇 잔이고 들이켰지만, 울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내 돈, 내 도온……!”
레아에게 계약금을 준 것 외에도, 재료비와 포장비를 대느라 적잖은 돈이 들어갔다. 특히 몇몇 재료들은 이곳에서 꽤나 진귀한 것들이라, 구하려면 웃돈을 얹어야만 했다. 덕분에 꽤 많았던 금화가 어느새 많이 줄어 있었다. 벌써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는 상자를 생각하니 그야말로 가슴에 피눈물이 흘렀다.
“다들 성공했는데, 왜 나만 망하는 거지?”
버블티는 분명 레아도 맛있다고 했단 말이야!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전략은 잘못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로판을 읽던 기억이 조작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읽은 경영물 로판만 해도 수십 권이 넘는데! 그럼 대체 왜? 왜 안 먹히는 거지? ‘아니, 이렇게 신기한 저 세상 문물이?’ 하면서 날 칭송하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단지 돈을 좀 벌고 싶었을 뿐이라고……! 애꿎은 머리를 마구 쥐어뜯으며, 테이블에 이마를 댄 채 분노에 차 버둥대던 그때였다. 띵동! 갑자기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고개가 들렸다. 왜인지는 몰라도 누군가 주식을 산 모양이었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주식이라도 왕창 팔아야겠다. 그래야 거지가 되더라도, 좀 덜 억울할 테니까! 그런데……. 「‘하차합니다’ 님이 당신의 주식을 1주 구매했습니다.」 메시지 창에 뜬 것은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수준 떨어지는 양산형 주인공 개노잼. 하차함 ㅂㅂ」
“뭐……?”
서, 설마, 나한테 하는 소리야……?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고, 동시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지금 뭐라고 했어!”
어찌나 열이 받는지, 당장에라도 입에서 불을 내뿜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씩씩거리며 시스템 창을 뒤졌지만 이상하게도 방금 전의 메시지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어디로 갔지?”
잠깐.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댓삭튀? 이렇게까지 빨리 지울 거면 나한테도 보여 주지 말았어야지. 내 기억도 지웠어야지!
“내가 이, 이런 걸로 상처받을 줄 알았다면 오산이야.”
나는 어떻게든 평정심을 찾기 위해 큰 심호흡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되뇌었다.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 그래, 악플이 무플보다 나은 거라고, 악플은……. ‘수준 떨어지는 주인공.’
“크아악!”
나는 또다시 포효하며 벌떡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돈 버는 거랑 수준이랑 무슨 상관이야! 네가 장사를 알아? 네가 사업을 아냐고!”
무플보다 낫기는 무슨! 안 그래도 주눅 들었는데, 마지막 남은 의욕마저 꺾어 버리는 악플이 낫기는 뭐가 나아! 난생처음 받아 본 악플의 데미지는 그야말로 상상 이상이었다. 잊으려고 해 봤지만 도저히 잊히지도 않았다.
“……내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돈도 못 벌고, 악플만 받고! 암담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새어나왔다. * * * 돈도, 아이디어도, 의욕도 떨어져 버렸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건 뭘까. 바로 손발을 사용한 노동이었다. 이게 진짜 마지막이다. 재료는 오로지 우유, 설탕, 물, 그리고 커피 가루. 거기에 레아의 아이디어로 연유를 추가해 넣었다. 연유는 얼마 전 버블티를 만들다 남은 것이 왕창 있었으니까. 어차피 손님의 발길도 끊겼으니, 시간도 충분했다. 휘릭, 휘릭. 조용한 가게 안엔 작은 나무 스푼으로 열심히 젓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로렐라 님, 몇 번 저으셨어요?”
“60번이요. 레아는요?”
“저는 92번 저었어요.”
“금방 되겠네요.”
과연 레아의 컵 안에는 부드러워 보이는 거품이 가득했다. 팔이 너무 아파서 젓다가 쉬다가, 젓다가 쉬다가 하는 나와는 달리, 작은 거품기를 계속해서 움직인 덕이었다. 그때 가게의 문이 열리고, 한 젊은 여인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손님.”
“오늘 날이 덥네요. 혹시 시원하면서 달콤한 커피 한잔 마실 수 있을까요?”
그 말에 레아가 내게 눈짓하며 자신의 컵을 들고 일어섰다. 작고 예쁜 잔에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우유를 붓고, 텅 빈 가게에 유일하게 앉아 계신 손님에 대한 감사를 담아 고급 연유를 듬뿍, 또 한 번 듬뿍. 그 위에 커피 거품을 곱게 올리자 침이 꼴깍 넘어갈 만큼 예쁜 커피가 완성됐다. 손님에게로 커피가 서빙된 후, 나와 레아는 숨 죽여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잘 마셨어요.”
하지만 정말 목이 말라서 들어온 건지 손님은 커피를 금방 들이켜 버렸다. 그러곤 오래 머무르지도 않고 바로 가 버렸다. 커피 맛이 괜찮았다 아니다 평도 없었다. 손님이 가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신 메뉴의 연이은 실패로 요즘은 단골들도 자주 발걸음하지 않았다. 더 있어 봤자 손님이 올 거 같지도 않아서 우리는 자리를 정리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도 실패한 것 같다.
“그래도 로렐라 님을 알게 되서 너무 기뻤어요.”
말없이 가게를 정리하던 레아가 커튼을 치다 말고 문득 말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나 역시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저두요.”
“괜찮으시다면 자주 놀러 오세요. 같이 식사도 하고, 와인도 한 잔 하고 그러면 좋잖아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꼭 그럴게요.”
말은 안 했지만 우리는 이제 끝이 다가왔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나는 그동안 고마웠단 의미로 레아에게 무슨 선물을 주면 좋을까 고민하며 가게에 들어섰다. 늘 일 이야기만 했지, 딱히 개인적인 취미나 기호에 대해 물어본 적은 없었다. 휘릭, 휘릭, 휘릭. 우리는 오늘도 고요하기 짝이 없는 가게에서 둘이 오붓하게 마주 앉아 커피를 100번 젓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나는 눈치를 살피다가 슬쩍 입을 열었다.
“저기…… 레아는 혹시 좋아하는 게 뭐예요? 취미 같은 게 있나요?”
“저요? 전 원예를 좋아해요. 남는 시간엔 꽃이나 허브 같은 걸 기르고 있어요.”
원예라…… 그렇다면 예쁜 꽃 화분 선물이 좋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커피를 77번째 젓던 그 순간이었다. 딸랑! 딸랑! 어찌나 문을 세게 열었는지 방울이 다소 격하게 흔들렸다. 그 소리만큼이나 다급하게 누군가가 뛰어들다시피 해 들어왔다.
“저기요! 혹시 문 열었나요?!”
“네, 어서 오세요.”
손님을 맞이하러 일어선 레아가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내게 눈짓했다. 나도 기억나는 얼굴이었다. 어제 달고나 커피를 한 잔 마시고 간 그 손님.
“찾으시는 게 있나요?”
“커피 주세요, 어제 마셨던 커피요! 어머, 설마 지금 만들고 계신 건가요?”
그녀는 우리의 손에서 반쯤 거품이 일어나고 있는 커피를 발견하곤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 게다가 손님은 혼자가 아니었다.
“정말…… 저게 효과가 있다고?”
“그렇다니까요, 부인.”
그 말에 그녀의 곁에 서 있던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또 다른 여인들이 눈을 반짝였다.
“그거 저도 한 잔 주세요. 아니, 두 잔 주세요!”
“저도 똑같은 걸로 두 잔 만들어 주세요.”
“아, 네. 잠시만 앉아 계시겠어요?”
레아가 손님들을 안내하는 동안, 마음이 급해진 나는 마치 모터가 달린 것처럼 손목을 휘둘렀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계속 풀리지 않는 의문이 솟구쳤다. 갑자기 이 열정적인 반응은 뭘까? 커피가 맛있었다거나, 여태까지 마셔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라 좋았다는 이유는 아닌 듯했다. 만약 그랬더라면, 어제 나갈 때 짧게라도 말해 주었을 테니까. 홀로 이런저런 추리를 하고 있는데, 속닥거리는 말소리가 신경을 잡아끌었다.
“제발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이번에도 실패하면 나는…….”
“걱정 마세요, 부인께서도 꼭 성공하실 테니까요.”
슬쩍 시선을 돌리자, 세 쌍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며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두 손을 가슴께에 모으고 뺨에는 홍조를 곱게 띠고 있는 것이 어쩐지 기대에 부푼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점점 빠질 것처럼 아파 오는 팔을 더욱 힘차게 돌렸다. 한 잔도 힘든 달고나 커피를 여섯 잔씩이나. 생각만으로도 아찔했지만 처음으로 재방문해 준 고객을 놓칠 순 없다. 그런 일념으로 쉴 새 없이 거품기를 든 손을 움직였다. 그런데 탁탁 재빠르게 휘젓는 소리를 뚫고 띄엄띄엄 작은 말소리가 들렸다.
“제가 딱 5일 만에…… 화장실에…….”
들어선 안 될 엄청난 기밀을 이야기하듯 은밀한 목소리였다.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