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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로판에서 돈 벌기가 제일 쉽다고요? (20/173)

20화. 로판에서 돈 벌기가 제일 쉽다고요?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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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처음으로 ‘만’ 단위를 팔았다는 기쁨은 생각보다 짧았다. 정확히는 기쁨보다 더 큰 감정이 자꾸만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모두가 잠든 늦은 밤. 나는 침실에 혼자 앉아 또다시 죄 없는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트렸다.

16550615478793.jpg“뭐냐고, 정말!”

아무리 곱씹어 봐도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처음으로 1만 주나 되는 주식을 판 것도 모자라, 보상이 주어졌을 때만 해도 무척이나 기뻤다. 수치도 모르고 레어넌의 앞에서 큰 소리로 대답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내용이었다. 보상이란 말 그대로 ‘상’이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말하는 것 아닌가? 여태껏 그래 왔으니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키스라니. 그것도 무리한 연출까지 동원해서.

16550615478793.jpg“어이없어. 그런 게 대체 무슨 보상…….”

순간 생생하게 떠오른 그때의 기억에 말문이 턱 막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러웠던 촉감, 살랑거리며 이마를 스쳤던 긴 금빛 머리카락, 그리고 코끝에 스며든 청량한 향기…….

16550615478793.jpg“아, 왜 자꾸 생각나냐고!”

마구 고개를 저으며 얼른 생각을 끊어내려 했지만 이미 심장은 둥둥, 북을 울리듯 요란했다. 가만히 앉아 있었을 뿐인데도 왠지 덥게 느껴졌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창문가로 다가가 굳게 닫혀 있던 덧문을 열고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16550615478793.jpg“후우…….”

얼마간 차가운 바람을 쐬고 나니, 비로소 진정됐다.

16550615478793.jpg‘그러고 보면 보상으로 쿠키가 지급된다고만 했지, 어떻게 작용할 거라고 정해지진 않았어.’

나는 오늘따라 유독 밝은 달이 뜬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껏 쿠키에 별다른 의문을 지니지 않았던 건, 그저 주식을 많이 팔면 따라오는 보상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쓸 때마다 내게 큰 도움이 되었기도 했고. 하지만 이런 황당무계한 상황이 보상으로 지급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막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16550615478793.jpg“상대가 단장님이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다른 사람이면 어쩔 뻔했…….”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16550615478793.jpg“미쳤나 봐! 말이 씨가 될라!”

나는 기겁해 아무것도 없는 허공 위를 손으로 격하게 저어 댔다. 그렇게 한참을 허우적거리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 또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쿠키가 정확하게 뭔지, 쓰지 않아도 주식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 건지. 내 마음대로 원할 때 써도 상관없는 건지. 일단은 의문점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알려 줄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16550615478793.jpg“위너드.”

나는 나직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뭐야, 왜 조용하지? 혹시 너무 작게 불러서 못 들었나?

16550615478793.jpg“위너드으!”

이번에는 꽤 큰 소리로 불러 보았지만, 여전히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고 연거푸 불러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 되지는 않지만, 부를 때마다 나타났기에 당연히 올 줄 알았는데.

16550615478793.jpg“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마음속에 걱정과 불안이 차올랐다. 어쩌면 그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 밤, 다른 주인공 후보인 ‘세이블 릴리’를 훔쳐 볼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안내자가 징계를 받아 근신 중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혹시 그게 문제가 되어서 위너드도 근신 처분을 받았다면……? 나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방 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수상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어디선가 다른 후보들이 숨죽이고 날 염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혹시 그중 누군가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는다면……?

16550615478793.jpg“위너드……!”

다시 한번 간절한 마음으로 그의 이름을 부른 그때였다.

16550615495889.jpg“아, 미안.”

뒤에서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반색하여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아무도 없던 곳에 위너드가 서 있었다.

16550615478793.jpg“뭐야, 왜 이렇게 늦었어?”

나는 웃는 얼굴로 얼른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 온몸을 옥죄고 있던 긴장감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이렇게까지 그가 반가운 건 또 처음이었다.

16550615478793.jpg“짜잔!”

  「총 판매 주식 : 24,000주」 오면 보여 주려 벼르고 있던 시스템 창을 곧장 열었다. 자랑할 데라곤 여기뿐이라 그런지, 이젠 그의 얼굴을 보기만 하면 주식을 자랑하게 된다.

16550615478793.jpg“어때, 응? 어떠냐고.”

맨 앞자리가 달라진 걸 보니, 나 스스로도 무척이나 뿌듯했다.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우쭐댔다.

16550615495889.jpg“좋아, 아주 좋아.”

만족스러운 듯한 목소리에 등이 저절로 쭈욱 펴졌다.

16550615478793.jpg“하, 어떻게 벌었는지는 묻지 마. 진짜 고생했거든.”

손을 절레절레 저으며 너스레를 떠는 순간, 왜인지 한 가지 가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16550615478793.jpg“헉, 설마……!”

입에서 절로 당혹스러운 비명이 튀어나왔다.

16550615478793.jpg“호, 혹시 너도 봤어?”

내 말에 그는 대답 대신 머쓱한 얼굴로 괜히 딴청을 피웠다. 그걸 보니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창피함을 이기지 못하고 붉게 물든 얼굴을 양손으로 가린 채 발을 동동 구르는데, 천연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16550615495889.jpg“괜찮아, 난 신경 안 쓰니까.”

안 괜찮아! 내가 쓰인다고, 내가. 젠장! 이렇게 오늘도 흑역사가 갱신되는구나.

16550615495889.jpg“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불렀어?”

속으로 쓴물을 삼키는 나를 배려해 주는 건지, 아니면 정말 바쁜 일이라도 있는지 산뜻하면서도 사무적인 어투였다. 그제야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넷 단추가 달린 금빛 재킷에 새하얀 실크 셔츠, 큼지막한 붉은 루비 장신구가 달려 있는 크라바트. 원래도 잘 차려입는 편이긴 하지만, 오늘은 더욱 굉장한 차림새다. 어디 파티에라도 가나……?

16550615478793.jpg“아, 궁금한 게 있어서. 보너스 쿠키 말이야. 혹시 받으면 바로 써야만 해? 이런 건 후보의 일에 개입하는 질문은 아니지? 괜찮으면 대답…….”

16550615495889.jpg“아니.”

열심히 부연설명을 곁들인 게 무색할 정도로 짧은 대답이 떨어졌다.

16550615495889.jpg“언제든 쓰고 싶을 때 쓰면 돼.”

위너드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덧붙였다.

16550615495889.jpg“말 그대로 보너스 쿠키니까. 이미 써 봤잖아?”

그제야 공작저에서 도망쳤을 때가 기억났다. 뒤늦게 쿠키를 썼더니, 저택에서 갑자기 연기가 피어올랐었지.

16550615495889.jpg“또 물어볼 건?”

그 말에 퍼뜩 정신이 든 나는 그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늘 변함없이 호기심과 장난기가 가득한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스르륵 입술을 열었다.

16550615478793.jpg“너는 평소에 어디 있다가 오는 거야?”

다소 충동적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쭉 궁금한 것이기도 했다. 내가 부르지 않을 때는 어떻게 지내는지, 따로 거처가 있는 건지, 한 번도 겹친 적 없을 정도로 많은 옷과 액세서리는 다 어디서 나는 건지, 나처럼 규칙적으로 잠을 자고 식사를 하는 건지 등. 사실은 그에게 궁금한 것이 아주 많았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위너드가 살짝 눈썹을 꿈틀거린 것도 잠시,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서렸다.

16550615495889.jpg“그런 걸 궁금해할 때가 아니지 않을까, 로렐라? 주식을 파는 데에만 신경 써도 바쁠 텐데.”

돌아온 건 냉정하리만치 간단한 대답이었다. 서로 같은 목표를 공유할 뿐, 그 외에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거리가 존재하는 사이임을 아주 깔끔하게 확인시켜 주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멍하니 서서 두 눈을 깜빡거리고만 있자 위너드가 문에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했다.

16550615495889.jpg“별다른 질문이 없으면 이만 가도 되지?”

그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16550615495889.jpg“이번에도 정말 고생 많았어, 로렐라. 언제든 내가 필요하면 또 불러.”

말을 끝내자마자 다정한 말투와는 확연히 다른 쌀쌀맞은 바람이 휙, 불었다. 어느새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나는 아무도 없는 방 안을 잠시 둘러보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왜인지 개운하지 않은, 찝찝하고 눅눅한 기분이 몸 안쪽에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 * *

16550615478793.jpg‘다음번엔 제가 초대할게요.’

  난 대체 무슨 정신으로 레어넌 단장님과 그런 약속을 한 걸까. 내가 터무니없는 제안을 했단 걸 뒤늦게 깨달았다.

16550615478793.jpg“이런 집에 대체 누굴 초대할 수 있겠냐고……!”

빚을 청산하기 위해 무리하느라 벽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뻥뻥 뚫렸고, 식기는 전부 이가 빠진 것뿐인 데다가, 심지어 편하게 앉을 소파조차 없었다.

16550615478793.jpg“주식이고 뭐고 일단 돈부터 벌어야 해!”

주식만 팔기에도 벅찬 마당에 생계까지 걱정해야 한다니. 다른 빙의물 주인공들은 생계 걱정할 필요 없이 떵떵거리며 살던데, 나는 이게 무슨 고생이람. 하지만 아직 절망에 빠지긴 이르다. 내게도 다 계획이 있으니까. 알거지가 된 주인공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가문을 일으켰는지 지금껏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후후, 이제는 내가 보여 줄 차례다! 날이 밝자마자 집사를 불러 두 가지를 부탁했다. 하나는 오전에 찾아올 방문객을 맞이할 준비였고 나머지 하나는 그 이후 시내로 외출할 수 있게 준비해 달라는 거였다. 손님은 내가 느긋하게 목욕을 즐기고 늦은 아침 식사까지 마치고 난 뒤, 타이밍 좋게 찾아왔다. 보석을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업자였다. 그와는 빚을 갚기 위해 사치품들을 되팔다가 안면을 트게 되었다. 나는 그와 마주 앉아 말없이 묵직한 실크 주머니를 내밀었다. 남자는 동그란 안경을 꺼내 코끝에 걸쳤다. 그러고는 주머니 안의 내용물을 흰 천 위에 꺼내어 올려놓고는 하나하나 찬찬히, 매우 주의 깊게 살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그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피었다.

16550615524584.jpg“매우 훌륭하군요. 당장 사겠습니다.”

그것들은 공작저에서 도망칠 당시 차고 있던 액세서리였다.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숨겨 두었던 나의 전 재산. 결혼할 때 다른 귀족들에게 선물 받은 것이라, 좋은 추억이 있기보다는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지난 2년간이 생각나 좀 지긋지긋했다. 하지만 이름뿐이긴 해도 ‘공작 부인’에게 주었던 선물인만큼 좋은 물건이라 거래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텅 비어 있던 작은 나무 금고에 금화가 두둑하게 채워졌다.

16550615524584.jpg“어딜 가셔도 이 가격을 받긴 힘드실 겁니다. 그만큼 후하게 값을 쳐드렸으니, 다음에도 절 불러 주십시오.”

남자는 공손한 인사를 남기고는 돌아갔다. 귀와 목 언저리는 덕분에 좀 허전해졌지만, 대신 꽤 만족스러운 액수의 돈이 손에 쥐어졌다. 나는 금화 상자를 품에 꼭 안고는 쓸데없이 넓기만 한 응접실을 둘러보았다. 지금 수중에 있는 금화로 고급스러운 다기 세트부터 사거나 응접실을 예쁘게 꾸밀 수도 있지만, 그래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16550615524584.jpg“아가씨, 마차를 준비시켰습니다.”

때마침 응접실 밖에서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입꼬리를 위로 한껏 끌어올리며 외출용 숄을 집어 들었다. 이게 내 위대한 계획의 첫 걸음이 될 거다. * * * 마차를 탄 뒤 내가 향한 곳은, 시가지에서도 구석에 위치한 작은 빵집이었다. 신전에서 머물 때 이곳의 케이크를 먹은 적이 있는데, 너무 맛있어서 사제에게 빵집의 이름을 물어보기까지 했다. 계획에 이보다 안성맞춤인 곳도 없을 거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앞치마를 두른 중년의 여인이 후다닥 달려 나왔다.

16550615524584.jpg“어서 오세요.”

나 역시 그녀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가게 안을 힐끔 살폈다. 테이블이 고작 여섯 개. 포장 손님이 많다더니 내부가 작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하긴, 여기서 꽤 떨어진 메이레드 백작가의 고용인들까지 알 정도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실력이니 인테리어는 별로 중요하지 않겠지.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내부는 오히려 파티시에의 실력을 알려 주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물었다.

16550615478793.jpg“저, 이곳의 파티시에님을 찾아왔는데요.”

16550615524584.jpg“전데요. 무슨 일이신가요……?”

그녀는 내 옷차림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역시. 빵을 굽는 일부터 접객까지, 혼자서 다 하는구나. 그때 유독 굳은살이 심하게 박인 여자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손등에는 어딘가에 덴 듯한 흉터가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누가 봐도 장인의 손이다. 이런 곳이 맛집이 아니면 사기나 마찬가지지! 나는 그녀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최대한 다정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금화 주머니를 내밀었다.

16550615478793.jpg“여기에 투자를 하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16550615524584.jpg“네에?!”

16550615478793.jpg“이곳의 디저트를 맛본 적 있는데, 그 맛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서요.”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우며 칭찬하자 그녀의 귀가 금세 불그스레하게 변했다. 이때다 싶어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냉큼 이야기를 쏟아냈다.

16550615478793.jpg“간단하게 요점만 이야기할게요. 제가 투자한 돈으로 파티시에님이 새 메뉴를 만들어서 파는 거예요. 판매되는 새로운 메뉴의 순이익을 정확히 절반 나눠 가지는 조건으로. 어때요? 나쁘지 않죠?”

파티시에는 우두커니 서서 내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일단 나를 빈 자리에 앉혔다. 그러고는 혼란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16550615524584.jpg“제의는 감사한데,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군요.”

심지어는 고개를 좌우로 격하게 흔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누가 봐도 거절하려는 사람 같았다.

16550615524584.jpg“보시다시피 가게는 작고, 위치도 좋지 않아요. 게다가 지금은 투자 받는다고 해도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여유가 없고요.”

하지만 정말 조금도 솔깃하지 않았다면 나를 의자에 앉히지는 않았겠지.

16550615524584.jpg“물론…… 실력이라면 자신 있지만요.”

심지어 마지막으로 작게 덧붙인 그 말에 더욱 희망이 생겼다.

16550615478793.jpg“괜찮아요. 그거면 충분하니까요.”

나는 저택에서부터 챙겨 온 종이들을 꺼내 놓았다. 비록 그림과 친하진 않지만, 어젯밤 나름대로 열심히 그린 디저트 도안이었다.

16550615478793.jpg“제가 그 실력에 날개를 달아 드리죠.”

그녀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도안들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16550615524584.jpg“이, 이게 다 뭐죠? 정말 이런 게…… 팔리나요?”

16550615478793.jpg“물론 팔리고말고요.”

16550615524584.jpg“이 업계에서 나름대로 오래 일했지만, 이런 디저트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요.”

의심으로 가득한 눈빛과 불안하게 들리는 목소리. 하지만 나는 그저 자신만만했다.

16550615478793.jpg“걱정하지 마세요. 이걸로 벼락부자가 된 언니들을 여럿 봤으니까요.”

16550615524584.jpg“정말 그런 분들이 있어요……? 아, 혹시 외국에서 오신 건가요?”

16550615478793.jpg“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아무튼 저만 믿으세요!”

근거 없는 자신감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다른 사람에겐 없는 버프가 내겐 있지 않은가. 바로 ‘빙의자’라는 버프가. 로판에서 돈 버는 방법에 대해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다고! 돈을 갈퀴로 모으는 내 모습이 절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16550615478793.jpg“후후훗.”

손으로 입가를 가렸음에도 도저히 참지 못한 웃음이 자꾸만 밖으로 새어나왔다. * * * 일명 <로판에서 돈 벌기가 제일 쉬웠어요!> 프로젝트는 금세 착수되었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투자해 주고 나니 오랜 시간도 필요치 않았다. 신 메뉴를 선보이기로 한 날은 반짝반짝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어느 아침이었다. 가게 안은 벌써부터 달콤한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납작한 크루아상 위에서 새하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녹아 가는 아름다운 광경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 정도였다. 그 옆으로는 하나하나 예쁘게 포장된 커다란 마카롱들이 보석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한 입만. 그래, 딱 한 입만 먹으면 대박치는 거야!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직접 가게 문을 열었다. 우선은 이 빵집의 단골손님들을 상대로 입소문을 낼 작정이었다. 평민들은 물론이고, 귀족들도 꽤 즐겨 찾는다고 하니 승산이 있을 것이다. 오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에 달린 종이 딸랑, 하고 경쾌한 소리로 흔들렸다. 제일 처음 빵집을 찾은 것은 하녀 한 명을 대동한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16550615478793.jpg“어서 오세요!”

나는 그쪽으로 잽싸게 달려가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16550615524584.jpg“어머, 못 보던 분이 계시네요?”

16550615478793.jpg“네, 새로운 디저트가 나와 일을 도우러 왔답니다. 혹시 괜찮으면 시식 좀 해 보시겠어요?”

그리고 재빨리 그녀의 눈앞에 작은 접시를 내밀었다.

16550615478793.jpg“이게 바로 외국에서 유명한 크로플…….”

16550615524584.jpg“세상에, 이게 뭐죠?”

하지만 그녀는 기대와는 달리 눈살을 찌푸리며 내 말을 단박에 끊었다.

16550615524584.jpg“다 눌려서 납작해진 빵이라니, 잘못 구운 거 아닌가요?”

16550615478793.jpg“네? 아, 아닙니다. 일단 한 입만 드셔 보시면 겉바속촉…….”

16550615524584.jpg“게다가 위에 크림은 다 녹아 흐르고……. 미안하지만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군요.”

어? 이, 이게 아닌데? 나는 당황하여 얼른 크로플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번엔 포장된 뚱뚱한 마카롱을 잽싸게 집어 들었다.

16550615478793.jpg“그럼 이건 어떠신가요? 이건 먼 나라에서 없어서 못 먹는다는 뚱카롱…….”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부인의 미간에 팬 주름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16550615524584.jpg“개별로 포장된 걸 보니 핑거 푸드인 모양인데, 이렇게 거대하면 나 같은 노인은 한 입 베어 물기도 쉽지 않겠군요. 손이고 입이고 엉망이 되는 건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이럴 리가 없어! K-푸드가 실패할리 없는데! 분명 다른 로판 주인공들은 손을 대는 족족 대박 쳤다고! 그걸 내가 몇 번이고 똑똑히 봤는데!

16550615478793.jpg“보, 보기에는 좀 그래도 먹어 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예요. 그러니 살짝 맛만 좀 보아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사정했다. 하지만 부인은 본인이 원하는 제품만을 골라 계산을 마치고 쌩하니 나갈 뿐이었다. 그 후로도 손님들은 꾸준하게 찾아왔다. 데이트하는 커플도 있었고, 아이를 대동한 어머니도 있었다.

16550615478793.jpg“한 입만 드셔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예요, 손님. 제발요.”

나는 조그마한 꼬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사정했다.

16550615478793.jpg“한 입만요, 네?”

하지만 녀석은 잔인했다.

16550615524584.jpg“엄마! 이 누나가 신발 밑창처럼 생긴 빵을 자꾸만 먹으래!”

획, 매몰차게 등을 돌리고 엄마에게로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애절하게 외쳤다.

16550615478793.jpg“제발 한 입마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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