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그렇게 대답했다가 문득 자신이 맡은 일을 떠올린 것인지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눈빛으로 뜻을 전달하고 있었다.
여행을 가면 물건들은 어떻게 되냐고.
물건의 관리가 멈추면 안 되는 거 아니냐는 걱정 섞인 의문이 담긴 시선이었다.
『 물건. 』
모호하기 그지없는 표현이다.
하지만 리세와 진성, 둘만큼은 그 모호한 표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의 정체는 바로 얼마 전 약탈해온 물건들.
한국과 일본 사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을 그 무렵, 그 틈을 찔러서 약탈해온 주물과 주술 기록들이었다.
국가에서 관리할 만큼 귀중한 것들이었으며, 금전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귀물들이기도 했다.
진성은 용병들을 끌고 물건을 약탈한 뒤 그것을 바닷속 깊숙한 곳에 던져놓았고, 악귀들을 부려서 아주 천천히 한 곳으로 옮겨놓았다.
악귀를 관측당하거나 주물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가 관측되지 않게 하려고 큰 노력을 기울였고, 악귀들에게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바닥 부분을 걷듯이 움직이게 해서 물건을 옮기게 했다.
한국에서 북한 지역으로.
북한 지역에서 서해로.
서해에서 남해, 동해를 거쳐서 일본으로.
그렇게 한국에 있던 주물들은 모두 일본으로 옮겨졌다.
일본에 있던 물건들 역시 마찬가지.
일시적인 봉인으로 물건의 정체를 숨긴 뒤 사람이 없는 곳을 이용해서 옮겼고, 사람이 많은 곳으로 들어서게 될 때는 신력을 코팅하듯이 덧씌워 의태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렇게 옮겨진 물건들은 사람이 아닌 악귀들과 주술로 만들어낸 인형들이 재빠르게 옮겨놓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국과 일본에서 약탈한 물건들은, 모두 신사로 옮기게 된 것이다.
굳이 일본으로 옮길 이유가 있었나 하면-
여러 가지가 있긴 했다.
테러나 다름없는 짓을 벌인 사람의 정체가 '박진성'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한 것도 있었고, CCTV도 빼곡하게 달린데다가 중국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한국이 보관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 또한 있었다. 그 외에도 위쪽에 북한이 있어서 악귀나 악령에 의해 보관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나, 혹시 모를 변수로 인해 창고가 노출되거나 물건이 유출되었을 때 박진성이 가장 먼저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다.
많은 이유.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었다.
관리가 편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열돔으로 인해 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효율이 높아 관리에 수월하다.
한국보다 땅이 넓어서 숨겨진 공간을 만들기 좋다.
유지들의 힘이 강하고, 인맥을 사용하면 어지간한 문제는 무마할 수 있다.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는 한국 사람들과는 다르게 일본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무관심한 면이 강하다. 은근히 관심을 보인다고 해도 '민폐'라는 마법의 단어를 사용한다면 물러나게 할 수도 있다.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가 자주 일어나는 만큼, 문제가 일어날 것 같을 때 자연재해를 흉내 내서 시설을 매몰시켜도 된다.
사람들에게 금기로 여겨지는 신사의 시설을 이용함으로써, 종교시설이라는 탈을 쓸 수 있다.
군사 장비가 발견되어 문제를 일으킨다고 할지라도 '옛 일본제국의 유산'이나 '제국 시절의 시설'이라는 핑계를 대며 흐지부지 덮을 수도 있다.
야쿠자를 통해 암암리에 총기가 돌아다닌다는 인식이 있는 이상, 여차하면 총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
…
…
가볍게 생각해도 수없이 떠오르는 이점들.
그렇기에 진성은 약탈한 물건들을 일본으로 옮겨놓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옮긴 물건들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를 동굴에 만들었다.
공사는 어렵지 않았다.
동굴의 구조는 귀신을 보내서 확인하면 그만이었고, 좁은 통로는 진성에게 '축복'을 받은 이들 중 능력자를 동원해서 넓히면 그만이었으니까.
엄청 강한 능력자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냥 일반적인 수준만 되더라도, 해머와 곡괭이만 있으면 동굴 벽을 깨부수며 공간을 확장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혹시 동굴이 무너질까 봐 걱정되지 않냐고?
그것 역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신력을 사용해도 되었고, 주술을 사용해도 되었다.
벌레들을 부려 틈을 메꾸거나 지지대를 만들어도 되고, 온갖 수단을 써 콘크리트를 빠르게 마르게 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이 가기 힘든 곳에 철근을 뱀처럼 움직이게 한 뒤 기둥처럼 세워지게 할 수도 있다.
넘치는 것이 방법이었다.
보안 역시 문제가 없었다.
능력자 여럿을 동원했으며, 위치가 발각되지 않도록 시야를 가리고 감각에 혼란을 주며 장소에 데려왔고, 신력을 매개로 맹세시키고 비밀을 발설했을 경우 발동하는 저주를 몸 안에 잠복시키는 주술 의식을 행하게 만들기까지 했으니까.
만약 자신의 의지로 비밀을 발설한다면 강력한 저주가 가족들에게 닥치게 될 것이고, 누군가가 그들을 제압한 뒤 명확한 의사를 가지고 비밀을 확인하려 한다면 뇌가 오염되게 될 것이다.
너무 강력한 리스크 아니냐고?
그렇다.
리스크가 크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사실을 들었음에도 이러한 '보안 조치'에 동의했다.
그 이유는 어마어마한 재물일 수도 있을 것이고, 진성이 그들에게 행한 또 다른 축복일 수도 있고, 상류층으로 갈 수 있는 강력한 인맥과의 연결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들은 리스크만큼 많은 이득을 얻었다.
목숨을 칩으로 걸고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입지전(立志傳)의 주인공처럼, 그들은 위험과 이득을 저울질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공사는 순식간에 끝마쳤다.
열성적인 도움 덕분에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비밀 거처는 진성의 손길이 더해졌고, 지금과 같은 흉흉한 함정들이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흉흉한 함정, 거처로 사용하기 위한 공간, 다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비밀 공간들, 그리고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창고'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비밀스러운 공간은 진성이 만들어낸 원영신과 리세. 오직 이 둘만이 관리하는 곳이 되었다.
새어나가서 좋은 것이 없는 비밀이었으니까.
알려지게 된다면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적으로 돌리게 될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본인과 가장 믿을만한 사람인 리세. 오직 이 둘만이 이 공간에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리세는 크게 기뻐했다.
무녀로서 단련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동굴에 출퇴근하듯 오갔고, 정화한 소금과 신력을 아낌없이 사용하며 진성이 '물건'을 분류하고 관리하는 것을 도왔다. 심지어 거처를 신혼집처럼 꾸민 뒤 거기서 며칠 동안 지내며 물건을 관리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리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진성과 매우 가까워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리세와 진성은 같은 거처를 공유한다.
그리고 같은 거처를 공유한다는 것은 곧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사이가 가까워지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물론 일본에 있는 진성은 실제 몸이 아닌 벌레로 이루어진 가짜 몸이기는 했다.
하지만 가짜 몸이라고 해도 일반적인 사람이 하는 일을 비슷하게라도 해줘야만 한다.
몸을 이루고 있는 벌레들에게 영양소를 주기 위해 식사해야 했으며, 벌레로 이루어진 몸을 조정하기 위해서 수면과 비슷한 행위를 주기적으로 해줘야 했다. 거기에 주물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휴식을 취하거나 몸을 수리하는 시간 역시 필요했다.
리세는 이 틈을 잘 파고들었다.
직접 요리를 만들어서 진성에게 대접해주기도 했고, 휴식을 취할 때 여러 도움을 주거나 같이 대화를 나눴다.
직접적으로 진성에 대한 정보를 묻지는 않았지만, 진성의 태도나 말투에서 나오는 정보들을 놓치지 않고 기억해 진성의 취향을 알아가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화의 힘이 담긴 소금과 신력을 많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몸에 소금기가 많이 묻고, 정신력과 체력을 많이 소모해 땀범벅이 되기 쉽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리세는 하루에도 몇 번씩 목욕해야 했다.
땀을 많이 흘리지 않았어도 해야만 하는가?
그렇다.
해야 했다.
'몸을 씻는다'라는 행위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악하거나 삿된 것을 씻고 몸을 순수하고 순결하게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땀을 많이 흘리지 않거나 소금기가 많이 없다고 하더라도, 혹시 모를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목욕해야만 했다.
귀찮은 일이기는 했지만…귀찮은 만큼 충분한 이득이 있는 일이었다.
목욕을 자주 함으로써 피부가 좋아졌으며, 진성에게 목욕하고 나온 모습을 어필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진성은 목욕을 막 하고 나온 리세의 모습을 보고도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가짜 몸이기 때문인지, 여자 몸에 익숙하기 때문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그녀가 목욕하고 나오면 머리카락을 손질해준다거나 하는 배려를 보여줌으로써 관심이 없지는 않다는 신호를 보여주었다.
리세로서는 매우 기쁜 일이었다.
왜 기쁘냐고 묻는다면….
잘은 모른다.
리세는 살아온 날이 그리 길지 않았고, 지금 겪고 있는 감정은 난생처음 겪는 것이었으니까.
이것을 단어로 푼다면 어떤 단어가 될 것인가.
숭배?
사랑?
신을 모시는 무녀의 그것일 수도 있고, 주인을 바라보는 애완동물의 것일 수도 있고, 짝사랑하는 소녀의 그것일 수도 있고, 관심 가는 이를 바라보는 여인의 그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하나가 아닌 여러 개가 합쳐진 것일 수도 있고, 전부일 수도 있다. 어쩌면 저것들 전부 다 아닐 수도 있고, 말로는 표현 못할 어떠한 감정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쁘고 행복한 것이며, 잘못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사실이다.
"노력하여 관리하는 것을 도와준 덕분에 한동안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듯하다. 하니 아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니. 어떠하냐, 같이 여행을 가겠느냐?"
"네에."
그렇게 리세는 기쁜 미소를 지으며 진성과 함께 밖으로 향했다.
그들 둘만의 보금자리를 떠나, 둘만의 여행을 가기 위해서.
* * *
"그런데 신주님. 어디로 여행을 가나요?"
"허허. 언제 묻나 하였다.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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