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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525화 (525/526)

일본의 공기는 미국의 것과는 달랐다.

이는 뉴욕 특유의 쓰레기 냄새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가 위치한 곳이 녹음으로 둘러싸인 곳이라는 이유 또한 있으리라. 주위에 사람이 많이 없다는 것 또한 중요한 이유일 것이고,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그래.

지금 움직이고 있는 그의 몸이, 정상적인 사람의 몸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신주는.

박진성은 몸을 움직였다.

발을 뻗고, 팔을 움직이며 걸었다. 벌레들이 압축되고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열로 체온을 위장하고, 내장으로 추정되는 형태로 뭉친 벌레들이 주기적으로 일으키는 공명을 생체활동으로 의태한 채 걷고 또 걸었다. 게다가 가파른데다가 수가 많기까지 한 계단을 오르면서 땀방울을 가장한 소금기 섞인 액체를 흘리기까지 하였으니, 누가 봐도 그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사람으로 의태한 채 진성은 목적지에 다다랐다.

그가 온 곳은 동굴.

최근에 막 만든 것으로 보이는 토리이가 세워져 있는 동굴이었다.

저벅.

특이하게도 동굴의 앞에는 포장이 되어 있었는데, 그 크기가 좁고 어지러웠다.

차량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좁았고, 오토바이는 어찌어찌 될 수는 있으나 길이 어지럽게 굽이진 것이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고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수준이었다. 그리고 포장이 되어 있는 바깥으로는 날카로운 돌멩이가 가득했는데, 일반적인 타이어가 저기에 닿는다면 당장이라도 펑 소리를 내며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날카로운 돌멩이 사이에 만들어진 험난한 길.

도산지옥(刀山地獄)을 아주 작고 볼품없게 구현한 듯한 모양새였다.

물론 혹자가 이런 표현을 듣는다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고작 날카로운 자갈 좀 있고, 좁고 굽이진 오솔길 가지고 도산지옥을 갖다 붙이는 것은 너무 허황한 거 아니냐고. 허풍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

얼핏 보기에 동굴 앞에 깔린 길은 볼품없어 보이는 것이었고, 깊은 산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저 돌무더기 사이에 있는 것을 알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저 자갈 사이에 파묻힌 채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있는 날카로운 금속들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자갈들 사이에 숨겨져 있는 저 날카로운 첨단들.

길의 근처에는 칼날조각과 바늘이 숨겨져 있고, 사람이 밟으면 즉시 튀어 올라 맨살에 독을 주입해 몸을 마비시키고 정신을 수면의 바닷속에 빠뜨릴 물건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좀 더 멀어지면 정해진 해독제를 주입받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한 독이 벌인 물건들이 있고, 길에서 좀 떨어진 곳에는 아예 플라스틱으로 만든 발목지뢰와 도약식 대인지뢰가 설치되어 있다.

게다가 그뿐이 아니다.

칼날들이 숨겨져 있는 자갈들 사이에 있는 포장된 도로를 걸어 동굴에 도착하면 더더욱 위험한 것들이 숨겨져 있었으니까.

토리이라는 것은 경계를 구분 짓는 구조물.

그리고 감히 삿된 의도를 가진 채 경계를 통과하려 하는 이는 무사할 수 없다.

가장 먼저, 동굴의 입구 부근에는 특별한 함정이 설치되어 있었다.

일정 이상의 압력을 받으면 내부의 물건이 밖으로 튀어나오도록 만드는 물건이었는데, 구조 자체는 단순했지만…. 문제는 그 안에 든 내용물이었다.

주물(呪物).

그것도 사악한 용도로 만들어진 과거의 주물들.

일본 곳곳에 퍼져있던 물건 중에서 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땅 밑에 숨겨져 있었었다.

그것들은 밖으로 튀어나오는 즉시 끔찍한 저주를 흩뿌리며 발을 들인 이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것이다. 이것만으로 어지간한 능력자는 타격을 입게 되리라.

그걸로 끝이 아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더더욱 흉악한 것들이 넘쳐난다.

격발 즉시 동굴의 입구를 무너뜨릴 수 있는 폭약들이 동굴의 벽면 안쪽에 자리 잡고 있고, 인가되지 않은 존재가 접근하는 즉시 수면 가스를 뿜어내는 장치도 설치가 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마비 독이 묻은 바늘을 빼곡하게 쏘아대는 구역이라거나, 수십 미터 구덩이 아래로 사람을 빠뜨리는 원시적인 형태의 함정, 그리고 함정의 밑바닥에 가득 깔린 흉포한 벌레들까지….

멋모르고 발을 들이면 호된 꼴을 보게 만들 물건들이 가득한 공간이 바로 이곳이다.

그렇게 함정을 통과하고 나면?

아주 자그마한 간이 신사가 맞이해준다.

일본 신화의 대신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가 하늘의 바위굴, 아마노이와토에 숨었던 신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알려주기라도 하듯 거대한 바위로 막혀있는 동굴의 형태가 음각된 벽을 앞에 둔 간이 신사가 말이다.

험난한 길을 통과해서 목적지에 도달한 사람들은 허탈함에 한숨을 쉬겠지.

뭔가 중요한 것이 있을 것 같아서 왔는데 목적지에 있다는 게 고작 간이 신사일 뿐이라는 것이.

물론 그냥 간이 신사는 아니다.

꽤 귀해 보이는 낡은 옥대(玉臺)가 그 안에 소중하게 모셔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뿐이다.

진귀한 보물 같은 것은 없다.

중요한 시설 같은 것도 없다.

그냥 신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언가가 모셔져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단지 그것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마 침입자는 허탈함을 느낀 채 돌아가게 되겠지.

고작 이런 것을 보려고 안간힘을 쓴 것을 후회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위장에 불과한 것.

여기서 보안장치를 통과하기만 하면 놀라운 것을 볼 수 있으니.

"후우우우-"

진성은 품에서 기다란 털을 한 가닥 꺼내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묘하게 빛을 내는 것 같은 털은 사이고 리세의 꼬리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むくりこくりの犬神)의 신력이 미약하게나마 담긴 물건이기도 했다.

진성은 미약하게 담긴 신력을 안에 흡수했다가 숨결과 함께 내뱉었고, 그렇게 빠져나온 숨결은 미약한 바람과 함께 간이 신사에 닿았다. 그리고 신력을 받아들인 간이 신사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장치를 작동시켰고….

쿠구궁.

신화가 음각된 벽으로 위장한 거대한 문을 열어젖혔다.

그렇게 열린 문의 안쪽은 축축하고 음울했던 동굴의 것과는 전혀 다른 별세계가 펼쳐져 있음이라.

콘크리트를 바른 벽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아 있었고, 일정 간격으로 배치된 조명은 그 안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물론 동굴 안의 환경이 환경인지라 묘하게 축축하고 가라앉은 공기는 어쩔 수가 없었지만, 적어도 폐까지 오염시킬 것만 같은 곰팡내는 풍기지 않았다.

진성은 벽에 새겨진 조명을 하나씩 세면서 앞으로 나아갔고, 314번째 조명이 있는 곳에 멈춰 선 뒤 다시 신력을 뿜어서 숨겨진 통로를 개방했다.

통로 안에 있는 것은 문.

그것도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는 현관문이었다.

그는 비밀번호를 거침없이 입력한 뒤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들어서자 약 20평쯤 되어 보이는 넓은 거주 공간이 그를 맞이했고, 간장과 고기의 향기가 그의 콧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거주 공간의 한쪽에서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뜨겁고 습한 공기가 확 번져 나왔고-

"오셨군요."

욕실에서 막 나온 여인, 사이고 리세가 그를 맞이해주었다.

* * *

막 목욕을 끝내고 나온 것일까.

리세는 온천에서나 볼법한 유카타(ゆかた)를 입고 있었다.

실내가운 대용으로 쓰기 위함일까.

그녀가 입고 있는 유카타는 겨드랑이를 꿰매지 않은 히로소데(廣袖)였고, 거기에 허벅지까지만 올 정도로 치마가 짧기까지 했다.

"욕실에서 나오는 증기에 소금기가 느껴지는구나."

진성은 수건으로 긴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는 리세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곤 오른손과 왼손을 겹친 뒤, 삼매진화를 그사이에 피워올렸다.

그리고 삼매진화에서 나오는 열기를 손바닥 부근에 가둔 뒤 손가락을 갈고리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는 열기를 품은 손을 리세의 머릿결에 가져갔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그녀의 머리를 빗겨주었다.

빗질해 준다기보다는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에 가까운 가벼워 보이는 손놀림.

하지만 가벼워 보이는 모양새와는 달리 그 효과는 확실했다.

진성의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의 머리카락은 아주 곱게 빗어졌고, 물기를 머금었던 머리카락은 적당한 수준으로 말랐으니까. 거기에 더해 진성의 또 다른 손에서는 투명하면서도 약간의 점성을 가진 액체가 손가락 끝에서 분비되었고, 리세의 머리카락을 코팅함과 동시에 열기로 마르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건강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리세의 머리카락은 손질되었다.

약간의 과정을 섞어, 반짝반짝 빛날 정도로 아름답게 말이다.

그렇게 손질이 끝나자 리세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기분 좋다는 듯 미소를 지은 채 진성의 손에 머리카락을 맡기고 있던 리세는 배시시 웃더니 진성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여기에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빨리 말해달라는 듯, 애교 섞인 재촉을 담은 시선으로 말이다.

진성은 그 시선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답답하지 않으냐?"

진성이 던진 질문에 리세는 괜찮다고, 신주님이 시킨 일이라면 뭐든지 괜찮다고 대답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이어진 진성의 물음에 그녀는 원래 하려던 겸양의 대답을 다시 집어넣었다.

"같이 여행을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같이.

여행.

노고에 대한 마땅한 대가라는 듯 내려온 달콤한 보상.

리세는 그 물음에-

"네!"

힘차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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