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523화 (523/526)

빌딩은 기둥이 되었다.

빌딩은 길이 되었다.

빌딩은 말뚝이 되었다.

그리하여 로아는 기둥을 타고, 길을 거닐며, 마침내 말뚝에 묶여 이 빌딩에 자리를 잡게 될 것이었다. 얼핏 정중하게 보이지만 폭력적이기까지 한 이 수법은 부두교에서 로아를 부리는 방법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요, 천사를 모셔서 그 수혜를 입는 것과도 다른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사도(邪道).

마도서로 영혼을 부리듯 로아를 부리는 방법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방법으로는 로아가 오지 않아야만 하지만.

두웅-!

둥-둥-!

왔다.

로아가, 왔다.

진성이 뒤틀고 뒤바꾼 의식에 힘입어, 로아가 이곳에 강림하였다.

연기에서 형체가 뚜렷하게 만들어지기 시작하였고, 그것은 검은색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잘 빠진 양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천천히 몸부터 모습을 드러내었고, 길쭉하고 거대한 남근 형상의 지팡이를 또각또각 바닥에 부딪혔다.

그리고는 탭댄스를 추듯 구두를 따닥따닥 바닥에 부딪히며 다리를 계속해서 놀리고, 지팡이로 몸을 기댄 채 자기 모습이 완전히 만들어질 때까지 흥겹게 춤을 추었다.

그리고 마침내 형상이 드러났으니.

그 형상은 창백할 정도의 새하얀 얼굴에 잘생긴 남자의 모습이라.

아마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검은 모자와 검은 양복에 새하얀 얼굴, 잘생긴 외모, 거기에 흥겨운 춤을 추고 있는 이 로아를 보고 팝스타가 아닌가 착각하였으리라. 실제로 사람을 홀리게 만들기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얼굴까지 드러낸 뒤에도 멈추지 않는 저 유쾌한 행동이라니.

한 손에는 마술처럼 짠하고 허공에서 튀어나온 잔을 쥐고, 한 손에는 남근 모양의 지팡이를 들고 있다. 그리고는 비싼 위스키라도 되는 것처럼 잔에 담긴 액체를 홀짝홀짝 마시고, 다 마신 잔을 집어던진 뒤 남근 형상의 지팡이를 두 손으로 쓰다듬고 있지 않은가.

위아래로 스윽 스윽 움직이는 그 움직임이란 음탕하기보다는 장난스러운 것에 가까운 것이어서, 보는 사람이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

거기에 지팡이에 장난을 치는 것을 보고도 진성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예 거대한 남근 형상의 지팡이를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끼운 채 허리를 들썩이고 있기까지 하지 않은가.

근엄한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닌, 야한 농담을 좋아하는 짓궂은 친구를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저런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더더욱 주의해야만 한다.

저 존재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사람과 흡사하고, 사람에게 친근감을 준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특히나 지금 진성이 불러낸 저 로아의 정체를 생각해본다면-

반드시, 주의해야만 했다.

"게데(Ghede)."

게데.

묘지와 죽음의 로아.

죽은 영혼이 재생되어 탄생한 로아이며, 친근하면서도 위험한 존재였다.

[ 나를 아는군. 훙-건(houngan)? 아니, 혹시 마안보(mambo)이신가? 하-하-하-!]

로아, 게데는 진성이 자신을 부르자 유쾌하게 웃었다.

[ 오, 이거 반응을 보니 훙건이군?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한눈에 남자와 여자를 어떻게 알아보냐 이 말이야-! 여자를 닮은 남자도 있고, 남자를 닮은 여자도 있고, 여자 옷을 입고 다니는 남자도, 남자 옷을 입고 다니는 여자도, 아랫도리를 잘라낸 남자도, 뭔가를 붙인 여자도 넘쳐나지 않는가! 이건 당연한 질문이고, 매우 타당한 질문이야! 하-하-하-! ]

게데는 아랫도리를 입에 담으면서 다시 지팡이를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끼웠다.

그리곤 지팡이를 대각선을 겨누도록 각도를 바꾼 뒤 허리를 좌우로, 위아래로 흔들었다.

아주 익숙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말이다.

허물이 없다 못해 박살이 날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게다가 무례한데다가, 조잡하기까지 하였고.

만약 진성이 예의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면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진성은 로아의 이러한 행위에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는 것이 더 옳으리라.

지금 저 '로아'가 하는 행동은….

'요정 모방체'가 행하는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까닭이다.

『 로아 모방체. 』

요정을 모방해서 만들어진 것을 요정 모방체라고 칭한다.

그렇다면 다른 것을 모방해서 만든 것은 무어라 부르겠는가?

천사를 모방해서 만들었다면 천사 모방체라 부르고, 악마를 모방해서 만들었다면 그것은 악마 모방체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로아를 모방해서 만든 것을 '로아 모방체'라 칭한다.

그리고 모방한 것은- 가짜에 불과하다.

전설을, 설화를 재현할 뿐인 존재.

기록되고 기억된 것을 토대로 움직이는 창조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기에 부른 이조차 위협하는 강력한 존재.

그렇기에 더더욱 주의해야만 하는 것이다.

저 역할극에 자신을 맞춰주는 것만이 안전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었으니까.

"반드시 찾아오는 죽음과 망자들이 잠든 땅을 영역으로 삼는 로아를 뵙습니다."

그렇기에 진성은 게데에게 맞는 예의를 보여주었다.

첫 번째는 게데의 역할에 대해 정확하게 언급하고 예의를 차림으로써 '내가 이렇게 당신을 존중한다'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며.

"위대한 로아이자 반드시 찾아오는 생식의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위대한 선구자를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게데가 좋아하는 저급한 농담과 익살을 담아서 그를 환대해주는 말을 입에 담았다. 천박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한없이 둘러서, 하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반드시 '그런 뜻'을 담은 농담임을 알 수 있는 수준으로 말이다.

[ 하하하하하-! 좋아, 좋아-! 딱딱하고 재미없는 놈이 아니라서 아주 마음에 드네! ]

진성의 입에서 나온 농담을 들은 게데는 환하게 웃었다.

그냥 얼굴로만 웃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유쾌해서 참을 수 없다는 듯 배를 잡고 웃었다.

심지어는 가랑이 사이에 있는 거대한 남근 모양의 지팡이마저도 땅에 떨굴 정도로 아주 과장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한참을 웃은 게데는 손에 잔을 만들어냈다.

잔에는 알 수 없는 액체가 담겨있었는데, 그 액체는 붉은색에 가까운 갈색을 띠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입에 가져다 댄 뒤 한 모금 넘기려고 하다가-

촤악!

그대로 그것을 진성에게 뿌려버렸다.

그것도 무려 생식기의 위치에 말이다.

하지만 진성은 게데가 그렇게 나올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인지, 몸을 슬쩍 틀어 게데가 뿌리는 액체를 피해버렸다. 그렇게 액체는 조금 전 진성이 있었을 텅 빈 곳을 지나친 뒤 바닥에 허무하게 뿌려졌다.

그리고 뿌려짐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냄새를 풍겼다.

매콤한 냄새.

눈과 코를 자극하는, 끔찍할 정도로 매운 향기.

진성은 그 향기를 맡으며 게데에게 말했다.

"게데시여. 장난이 심하십니다."

[ 오, 장난이라니. 너희 훙건들이 우리를 받아들이면 항상 하는 절차잖나? ]

"그것은 훙건을 믿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자들이 믿음을 갖기 위해 행하는 행위이지요. 당신을 부르는 저도, 이 자리에 나타난 당신께도 해당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당신에게 있어서는 마실 음료가 줄어드는 일이며, 저에게 있어서는 매운 액체가 생식기에 닿아서 따갑고 쓰리고 뜨거운 고통을 느끼는- 그 누구에게도 이득이 없는 행위일 뿐이지요."

[ 에이. 재미없게. ]

게데는 진성이 자신의 장난을 받아주지 않자 토라진 듯 손에 쥐고 있는 음료를 꿀꺽꿀꺽 삼켰다.

그가 음료를 마실 때마다 매캐한 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는데, 연기의 매캐함과는 전혀 다른- 마치 최루탄을 터뜨린 듯한 끔찍한 향기에 가까웠다.

[ 캐롤라이나 리퍼와 부트 졸로키아를 섞어 만든 이 술의 멋짐을 모르는 네가 불쌍해! ]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지팡이를 주워 들었다.

뿌득.

뿌드득.

다시 그의 손에 쥐어진 지팡이는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서서히 형상이 변했다.

끝이 남근을 닮은 것은 똑같았으나, 곳곳에 하얀색 덩어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하였고, 그 덩어리들은 사람의 뼈의 형태로 변화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튀어나오기 시작한 뼈는 이윽고 수많은 손뼈가 모여서 지팡이를 휘감는 듯한 기괴한 형태가 되었고, 손뼈의 틈새 사이에서 검은색 연기를 토해내며 해골의 형상을 계속해서 그려내었다.

게데는 새하얀 분칠을 한 얼굴로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 훙건, 그래서 뭘 원해서 날 불렀나? ]

"게데께서 묘지를 수호하고 망자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듯, 이곳 역시 그리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 건물이 네 거시기처럼 크고 우뚝 솟아 있더군. 도저히 가라앉히질 못하겠나 봐? 그럼 여자를 찾아야 하는 거 아닐까? ]

게데는 진성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리곤 진성의 요청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척을 하며, 되려 농담을 날리기까지 했다.

진성의 정중한 태도와 상반되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다.

[ 뭔가를 가라앉히려면 여자를 찾아야지 왜 우리를 부르고 그러나. 마미 와타(Mami Wata)라도 부르면 환장해서 달려들 텐데, 그 여자는 부를 줄 모르나 봐? 내가 그 여자가 망자 데리고 올 때마다 보는데, 그 여자만큼 젊은 남자 좋아하는 로아를 본 적이 없어! 게다가 네 곱상한 얼굴 보면 그 여자가 당장 네 모가지를 치고 저승으로 데려가려 할지도 모르지. 마치 다른 동네의-발키리(Valkyrja)처럼 말이야! 하하하하하-! ]

탁.

타악.

게데는 흥겨움을 감추지 못하겠다는 듯 지팡이로 바닥을 두들겼다.

[ 젊고, 잘생기고. 거기다가 육체는 깨끗하고 순결하지. 그런데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여자에 참 익숙한 것으로 보이니 이거 참 이상하고 이상해! 요새 영상매체가 발달하였던데 그런걸로 어마어마하게 간접 훈련이라도 하셨나?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모르겠어? 게다가 내 야한 농담에 조금은 어울려줄 줄 아는 걸 보니 나 같은 놈도 익숙해 보이고--- 젊은 모습이랑 하는 행동, 분위기를 보면 그럴 리가 없는데- 하, 참 이상하다 이상해. 묘지에 파묻혔다가 부활한 뒤 춤부터 추는 놈만큼이나, 너는 참 이상한 놈이야-! ]

"과찬이십니다."

[ 뭐어 구경하는 재미는 있겠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겠다고. 나처럼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지 너에게서 매운 냄새가 풍기니 같이 식사하는 것도 재밌겠고, 몸은 순결한 주제에 여자를 꾀는 건 경험이 많은 것처럼 보이니 그 관계를 보는 것도 재밌겠어. 여자들이 머리채를 잡고 싸우려나? 아니면 서로 질서를 만들려나? 아니면- 그쪽엔 관심이 없나? 응? 아니지, 네 경험이랑 내 경험이 말해주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하하하하! ]

"그리 말씀해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 오, 능글맞게 그냥 넘기기까지 하는 걸 봐. 누가 이걸 보고 순결한 청년이라고 보겠어? 좋아, 묘지를 잠잠하게 만들 듯 이곳을 평온하게 만들어주지. '이곳'을 말이야. 하-하! 치솟은 물건이 가정을 평안하게 만드는 것처럼, 나 역시 마땅히 그리해야겠지! 나는 생식을 담당하기도 하는 게데니까 말이야! ]

게데는 낄낄 웃으며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바닥을 찍었다.

콰앙-!

[ 훙건! 계약은 이루어졌다! 이곳은 우리가 담당하는 묘지처럼 평화로워질 것이다! ]

게데는 그렇게 외치며 어마어마한 매운 냄새를 풍기는 술을 다시 들이켰다.

그리곤 낄낄 웃으며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듯하다가-

[ 아참, 이건 서비스. 내가 '묘지처럼' 평화롭게 만든다고 했으니 쥐는 안 잡으려고 했는데 말이야---]

짙은 연기 밖으로 팔만 꺼낸 게데는 무언가를 진성의 앞에 던졌다.

그것은 쥐 사체였다.

[ 이건 쥐도 아닌데 쥐 모습을 한 게 기분이 나쁘잖아? 그러니까 선물이다! 하하, 먹지는 말라고? 정력에 좋아 보이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

게데는 쥐 사체 셋을 진성의 앞에 집어 던진 뒤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게데가 모습을 감추자 층에 자욱하게 퍼져있던 연기는 모두 사라져버렸고, 태블릿의 불꽃 역시 전부 꺼져버렸다. 그리고 거의 다 녹아내린 초는 검보라색으로 변해 있었고, 순수한 백랍으로 만들었던 태블릿에는 때가 잔뜩 타 있었다.

마치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텅 비어버리고 조용해진 공간 안에서, 진성은 천천히 움직였다.

"흐음."

그는 게데가 집어던진 쥐를 확인해보았다.

무게도, 촉감도 모두 일반적인 쥐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이상한 것이 보였으니.

뚜둑.

진성은 손가락을 들어 쥐의 머리를 비틀어 뽑았다.

그러자 뽑힌 목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고, 척추로 보이는 것이 목 아래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것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진성은 그 척추를 향해 손을 뻗었고.

"이거 흥미롭구나."

일반적인 쥐의 것과는 전혀 다른 금속의 감촉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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