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메타트로니우스 골드스미스.
몇 번을 곱씹어도 특이한 이름이었다.
루카스라는 흔한 이름과는 다른, 특이한 미들 네임이라니.
게다가 무려 명함에 발음기호가 적혀 있는 것을 보면 더더욱 특이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단어는 이렇게 읽으면 된다고, 'Metathronius'라는 단어는 '메타트로니우스'라고 읽으면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이 되어 있는 꼴이라니.
이걸 특이하다 하지 않으면 무얼 특이하다 할까?
메타트로니우스.
라틴어 단어인 메타트로니오스(Metathronius)의 발음을 하나만 살짝 바꾼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름이었다.
메타트로니오스의 뜻은 '옥좌에 모시고 있는 자'.
다른 뜻으로는 하나님의 대리인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거창하기 짝이 없는 수식어의 주인은 따로 있었으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하늘의 서기관이며 계약의 천사.
야훼를 대리하는 존재이며 불꽃의 기둥으로 모세에게 길을 인도한 자.
키는 능히 하늘에 닿을 정도이며, 불꽃의 기둥으로 된 몸을 가진 천사.
메타트론(מטטרון).
지역에 따라서는 그 강력함과 전지전능함으로 인해 사탄으로 오해까지 받는 그 천사를 지칭하는 말을, 대놓고 미들 네임에 처박아놓은 것이다.
독실한 종교인이 보면 '이 사탄이 낳은 뱀 같은 놈이 신성 모독을 저지르고 있다.'라며 격분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게다가 기독교가 지배하는 나라가 미국임을 생각한다면, 정말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고밖에 느껴지지 않는 이름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딴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이 남자가 대단함을 증명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 크리스털 팔을 보면….'
아니, 어쩌면 멀쩡히 살아있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왼팔이 통째로 없어져서 의수를 차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뭐….
팔 정도야 여러 가지로 대체할 방법이 넘쳐나니, 어쩌면 큰 손해가 아닐지도 모르고.
진성은 그리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 식사를 기대하겠습니다."
"흐, 그래. 끝내주는 곳이지. 기대해도 좋아."
* * *
루카스가 진성을 데리고 간 곳은 Wolf's burger라는 이름의 수제버거 전문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강렬한 고기와 치즈의 냄새가 확 풍겼고,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버거를 받으려 기다리고 있었다.
테이블은 사람이 꽉 차 있었고, 퀭한 눈을 한 사람들이 거대한 크기의 수제버거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먹고 있었다.
"이쪽으로."
루카스는 진성을 끌고 혼잡한 가게의 안쪽으로 향했다.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VIP 전용'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자그마한 방이 나왔다.
그는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직원에게 말했다.
"나는 항상 먹던 걸로."
그는 직원에게 익숙하게 주문하고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는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씨익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 손님은, 모든 메뉴를."
"…모든 메뉴, 맞습니까?"
"그래. 오, 이 모든 메뉴에는 셰이크랑 음료수도 포함된 것 잘 알고 있겠지?"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진성 팍은 알러지(Allergy)는 없으니까, 아무것도 빼지 않아도 돼. 실력을 발휘해 보라고."
충격적인 주문을 끝마친 루카스는 어서 음식을 만들라는 듯 직원을 방 밖으로 쫓아냈다. 그리곤 장난기 어린 눈으로 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기대시켜 놓고 수제버거 전문점에 데려와서 실망했나?"
"아뇨. 그렇진 않았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래 보여. 오히려 자네는 기대된다는 듯 눈을 빛내기까지 했지. 아주 마음에 들게 말이야. 그래서 내가 선물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지."
"선물입니까?"
"그래. 그렇게 기대하고 있는데 선물을 줘야겠지. 그러니 아무 부담 없이 모든 메뉴를 맛보고 가도록 하라고."
루카스는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내가 먹어본 버거 중에는 이곳이 가장 맛있었어. 이건 내 이름을 걸고 보증할 수 있으니, 믿어도 좋아."
그는 이것이 그냥 빈말이 아니라고 말하며 벽을 가리켰다.
"오죽하면 내가 이딴 구멍가게에 투자했겠어? 이 버거는 내가 인수했고, 이 VIP 전용 공간은 내가 명령을 내려서 만들라고 시킨 거라고. 내가 배가 고프면 언제든 편하게 햄버거를 먹을 수 있도록, 내가 직접 설계해서, 내 취향으로 만든 공간이란 말이지!"
그는 '자신의 것'이라는 이 수제버거 전문점에 대한 칭찬을 계속해서 늘어놓았다.
진성에게 기대감을 심어주려는 듯 말이다.
그리고, 진성의 머릿속에 있는 '왜 식사에 초대한 거지?'라는 의문을 더더욱 크게 부풀리기 위해서 말이다.
이것은 협상의 기술 중 하나였다.
일부러 빙빙 돌아가며 상대가 조바심하게 만들고,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어 제대로 대응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
뻔히 알 수 있는 데다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내내 쓰여왔던 유서 깊은 방식.
너무 우려먹어서 사골 국물조차 우러나지 않는 방법이지만…. 동시에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방법은 너무 유명하다는 것이 단점이자 장점이기도 했다.
눈치채기 쉽지만, 동시에 눈치를 챈다고 하더라도 대응하기가 힘들어 상대에게 끌려간다는 무력감에 휩싸이게 했으니까. 이 무력감은 주도권이 상대에게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만들어서 협상에서 강경하게 나올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협상 방식은 동시에, 무례한 것에 속하는 것이기도 했다.
적어도 '초면의 손님'에게 한다면, 무례하다는 말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하지만 루카스라는 남자는 그런데도 진성에게 이러한 기술을 사용했다.
왜?
'아쉬운 입장에 서 본 적 없는 사람이군.'
자신은 약자였던 적이 없었을 테니까.
자신은 이러한 대접을 받은 적이 없고, 자신이 이러한 대접을 해도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기에 이런 방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것이겠지.
'골드스미스, 골드스미스. 유대계가 이런 성씨를 사용하는데. 유대 계열? 거기에 월 스트리트에 있는 것을 보면…. 금융 쪽 가문인가.'
진성은 루카스의 이름, 그리고 그가 보이는 태도를 보며 그가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지 대략 추측했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추측은 추측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루카스 메타트로니우스 골드스미스라는 이름은, 적어도 진성의 기억 속에는 없는 이름이었으니까.
아주 높은 확률로,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진성이 아예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용병 일하면서 만났던 사람들도 있고, 주술사라는 직업 덕분에 쌓았던 인맥도 있었고, 전 세계를 무대로 쏘다니기도 했는데…. 고위층의 이름 한 번 들어보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연결되고 친분을 쌓는 것이야 다른 이야기였지만, 이름을 한 번이라도 듣지 못했을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정말 무슨 비밀조직 같은 것이 아닌 이상에야 그의 귀에 이름이 들어와야만 했다.
'용병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을 무렵에 죽었을 가능성이 크겠구나.'
진성은 자연스럽게 이 루카스라는 남자가 죽었을 시기를 추측할 수 있었다.
자기 앞가림에 바빠 외부에 귀를 열어놓지 못했을 때.
광기를 태우며 폭주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바로 그 시절.
그 시절에 이 남자가 죽었으리라.
그리고 살아있을 때 드높던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갈가리 찢겼겠지.
그리고 유산과 함께 조각조각 나뉘어 다른 부자들의 입으로 들어갔을 테고.
혹은.
'…나비효과가 일어나, 일찍이 죽었어야 할 자가 지금 살아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이 남자가 진성이 미국으로 가게 만든 이유와 연관이 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 * *
루카스가 자랑한 수제버거의 맛은 훌륭했다.
한 입 베어 물때마다 폭탄처럼 미각을 자극하는 맛이라니!
심지어 버거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 가게에서 버거보다도 더 많이 팔린다는 밀크 셰이크는 정말로 훌륭한 맛이었고, 감자튀김 역시 특제 시즈닝이 더해져 훌륭한 맛을 자랑했다. 마치 스낵처럼 미뢰 하나하나를 자극해 쾌락을 쑤셔 박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이런, 진성 팍. 고작 그것밖에 안 먹는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훌륭한 맛이었음에도 진성은 많은 양을 먹을 순 없었다.
산더미처럼 테이블 위를 가득 메운 수제버거와 사이드 메뉴를 약간 먹는 것만으로도 그의 배가 다 차버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과거 저주 의식을 행한 대가로 위장의 반을 잘라내야 했기에 위장이 다른 이들보다 작았으니까.
시간이 많이 흘러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들과 똑같은 수준이 된 것은 아니었다.
"위장이 작아서 이것밖에 먹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주 훌륭한 맛이로군요. 돌아가서도 생각이 날 것 같은 맛입니다."
"하하하. 그래, 아주 훌륭하지.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군."
"아마 미국에 올 때마다 들르게 될 것 같군요. 이렇게 좋은 곳을 소개해줘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음식을, 그것도 천상의 맛을 자랑하는 음식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쁘군요. 신의 축복이며, 은총이며. 은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 진성은 웃는 얼굴로 루카스와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그 대화의 내용은 감사의 탈을 쓰고 있기는 하되, 금방이라도 헤어질 것 같은 뉘앙스를 잔뜩 풍기고 있는 것이었다.
당장 오늘 만나서 반가웠고, 나중에 만납시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말투였다.
흐흐.
루카스는 진성의 이러한 태도에 작게 웃었다.
"그래. 거참, 역시 주술사는 주술사야."
루카스는 먹을 거 다 먹어놓고 능구렁이처럼 그냥 일어나려는 진성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이봐, 진성 팍. 공짜 점심이 없다는 말은 알고 있나?"
"예. 유명한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진성 팍은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하는데."
"얘기만 들어드리면 됩니까?"
"흐흐, 그래. Yes를 외쳐주면 더 고맙긴 하겠지만, 공짜 점심의 대가치고는 과분하겠지. 그냥 내 이야기를 듣고 알아서 판단해줬으면 해."
루카스는 음식을 대접한 사람의 권리를 행사했다.
그리곤 멀쩡한 팔을 테이블 위에 올린 뒤 진성 쪽으로 몸을 기대며 말했다.
"일단 창밖을 보라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창문 쪽을 가리켰다.
창문 밖에는 사람들과 차가 오가는 길가가 있었고, 길가 건너편에는 거대한 빌딩 하나가 보였다.
"저 건물은 내 건물이야. 내 메타트론 인베스트먼트(Metatron Investment)가 저기에 있지."
루카스는 거대한 고층 건물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요즘 들어서 저주라도 받은 건지 엿 같은 일이 계속 일어나더군."
"저주라…."
"그래서 말인데, 내가 자네에게 의뢰하고자 하는 건 두 개야."
루카스는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올리며 진성에게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창밖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위에서 아래를 향해서 말이다.
쿠웅-!
그리고 그것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서 바닥에 떨어지고, 거대한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너무 익어버린 열매가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듯이 말이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사람이었을 열매가 떨어진 나무는 놀랍게도, 루카스가 방금 자신의 것이라고 말한 그 건물이었다.
그렇다.
루카스의 건물에서…사람이 투신했다.
"오, 씨발."
그 사실에 루카스는 욕설을 내뱉고는.
"이제 세 개. 세 개를 의뢰하고 싶군."
손가락을 하나 더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