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치안이 안정된다면 이세린이 무력을 갖추는 것도 조금 여유를 가지고 진행하게 될 터.
그렇다면 혹시 주술이나 주물, 유적을 찾는 것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지.'
진성은 순간 그런 생각을 떠올렸지만, 이내 지워버렸다.
초월종이라는 족속들이 주물이니 주술이니 하는 것에 계약자를 접근시킬 리가 없었으니까.
초월종이 보기에 주술은 인간의 생명을 깎고, 뒤틀고, 기괴하게 바꾸는 것이다.
물론 그런데도 인간이라는 본질이 있어 혐오하거나 배척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좋게 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것에 자신의 소중한 계약자가 접근하게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주술의 특수성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주술이라는 것은 가장 사용하기 쉬운 이능이다.
올바른 방법만 알면 세 살짜리 어린애도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이 '방법'이라는 것의 난이도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것은 산처럼 높은 제단을 쌓은 뒤 제사를 지내야 할 수도 있고, 특정 시기에 특정 장소에서 제사를 지내야 할 수도 있고, 특별한 제물을 아주 까다로운 절차대로 바쳐야 하기도 했다. 거기에 인간의 구강 구조로 발음할 수 있나 의심이 되는 것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줄줄 읊어야 할 때도 많으며, 심지어는 언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짐승의 소리 같은 소리를 쥐어짜야 할 수도 있다.
아니, 차라리 그 정도면 다행일까.
어떤 주술은 자기 가죽 일부를 벗긴 다음 악기를 만들어서 연주해야 할 수도 있었고, 어떤 것은 자신의 배를 직접 가른 뒤 내장의 일부를 제물로 바쳐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때도 있었다. 게다가 정말 사악하기 짝이 없는 짓을 하는 일도 있었고.
하지만 반대로 정말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
특정 문자와 문양을 그리고 그것의 음을 똑바로 발음하기만 하면 되는 주술, 정신력을 키운 뒤 속으로 주언을 읊어 염동력과 비슷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주술, 특정 음식을 먹고 주언을 외우기만 하면 영안을 잠시 트이게 해주는 주술 등….
정말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주술도 많았다.
심지어 원시 주술 중에는 트랜스 상태에서 특정 박자로 북을 두드리며 함성을 지르기만 하면 사용할 수 있는 주술도 있고, 특정 재료로 만든 물건을 지닌 채 주술을 사용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채 창을 집어던지기만 하면 사용할 수 있는 주술도 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방법만 제대로 알면 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사용할 수 있는 게 주술이다.
접근성으로 따지자면 다른 이능들은 범접조차 하지 못할 수준.
하지만…이 놀라운 접근성과는 다르게 그 대가는 끔찍하기 짝이 없다.
들어가기는 쉽지만 나가기는 어려운 통발처럼 주술은 호기심을 가지고 온 이들을 너무나도 손쉽게 죽음으로 밀어 넣으니까.
내장을 바치고, 정신을 일그러뜨린다.
건강을 상하게 만들고, 수명을 깎는다.
뼈에 구멍을 만들고, 근육을 녹아내리게 만든다.
온갖 병마에 시달리게 만들고, 감히 상상도 못 했던 고통에 신음하게 만든다.
육체를 뒤틀고, 정신을 망가뜨리고, 영혼을 비튼다.
이러한 주술의 대가는 손쉽게 접근할 수 있음에도 감히 사람들이 주술에 손을 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으니.
주술이란 그 신비로움에 비례하는 참혹함과 잔인함을 품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참혹함은 초월종에게는 또 다른 것으로 보인다.
초월종의 시야와 생각은 일반적인 사람의 것과는 참으로 다른 것이라.
하지만 비유하자면 귀여운 동물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니.
주술을 사용하면 그 귀여운 동물에게 상처가 생기고, 장애가 생긴다.
눈이 멀고, 피부가 썩고, 파리가 들끓고, 팔다리가 뭉개지고 없어진다.
기형으로 태어난 것처럼 기괴하게 변하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참혹한 모습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이러한 것이 육신의 영역에서만 끝이 나는 것이 아닌 정신과 영혼에까지 미치는 것이라.
그 모습은 초월종들에게 있어서 달가운 형태는 아닐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소중한 계약자에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기에….
'아마 회귀 전과 똑같이, 주술과는 철저히 관련되지 아니할 것이 분명하다.'
회귀 전 이세린은 주술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진성에게 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건 단순히 박진성이라는 개인에 대한 흥미일 뿐.
주술에 대해 더 알아봐야겠다거나, 주술을 사용해봐야겠다거나, 주술사에 대해서 알고 싶다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술을 사용하는 것을 보아도 그 주술이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대가가 뭔지에 호기심을 느낄지언정 어떻게 사용하는지, 자신이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호기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그냥 신기한 것을 보는 것처럼, 그녀의 관심은 거기서 끝났다.
이러한 태도는 그레모리의 개입이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아마 이세린 본인이 주술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도 있겠지.
그런 점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의 이세린도 진성에게 크게 도움을 줄 것이라 보기는 힘들었다.
'유적, 유적이라….'
진성은 회귀 전 자신에게 유적에 대한 정보를 물어다 주었던 동료를 떠올렸다.
담비라는 별명을 가진 마녀, 아나스타시아.
그녀는 진성이 유적을 탐사하는 데 정말로 큰 도움을 주었었다.
그리고 시간이 뒤틀린 지금, 그 마녀는 이세린과 친분을 가지게 되었다.
이 바뀌어버린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흐음. 사건에 변화가 생겼으니 미래도 바뀔 수 있을 터.'
그래.
유적과 관련해서는 이세린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세린과 아나스타시아가 시너지를 내서 정말 꼭꼭 숨겨져 있던 유적을 탐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미래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끼이익.
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그에게는 조금 낯선 풍경이 보였다.
대마녀의 지시를 받아 싹 다 뜯어고쳐진 저택 내부 인테리어는 깔끔하고, 고풍스러웠다.
난잡하고 어지럽기까지 했던 과거의 풍경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바뀌어버린 풍경 속에서, 사용인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창문이나 바닥을 닦기도 했고, 목제 가구를 세심한 손길로 관리하고 있기도 했다.
일정 간격마다 놓여져 있는 꽃을 손질하고 있기도 했고, 짐을 나르고 있기도 했다.
"어머?"
그리고 그 풍경 속 일부로 존재하고 있던 여성이 진성과 이아린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왔구나."
"예. 근처에 올 일이 있어 지나가다가 들렀습니다."
저번에 진성의 병문안을 왔던 이양훈의 부인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약간은 어색한 듯한 태도로, 하지만 명백히 친근감을 표현하며 진성의 방문을 환영해주었다. 하지만 진성의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이아린으로 시선이 옮겨지자 이러한 친절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얘! 차림이 그게 뭐니!"
그녀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이아린을 혼냈다.
"아~ 내 차림이 뭐 어때서."
"얘는 진짜, 너는 차림이 진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니?"
"그냥 운동복인데?"
"어휴. 아무리 오라비라고 부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지, 그런 차림으로 부끄럽지도 않니?"
이아린은 어머니의 잔소리에 자신의 차림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니. 땀 때문에 젖어있고, 말려 올라가서 배꼽은 보이고, 바지는 짧고…."
"에이, 새삼스럽게…."
이아린은 어차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진성인데 이런 차림인 게 뭐 어떠냐면서 그녀의 말을 흘려넘겼다. 그리곤 그녀의 잔소리를 피하려고 '나 샤워하러 갈게!'라고 통보하듯 말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이아린이 사라진 뒤의 어색한 분위기 때문일까?
그녀의 어머니 역시 방은 그대로 있으니 편히 쉬라는 말과 함께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딱히 별다른 말도 없이 말이다.
진성은 그러한 모습에 약간 이상함을 느꼈다.
'흐음…. 슬슬 열병에 걸릴 때가 되었을 텐데?'
반응이 너무 평온했다.
게다가 그녀뿐만이 아니다.
저택의 사용인들도 그렇고, 저택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너무 평화로웠다.
가족들 사이도 돈독하고, 사용인들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은 이양훈이 아픈데 이런 분위기일 리는 없는데….
'기이하다.'
부적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진성은 분명히 부적을 제대로 만들어서 줬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분위기지?
'흐음. 잃어버려도 알아서 수중으로 돌아오도록 만드는 저주도 같이 걸려있으니 어디서 흘렸을 리는 없고….'
저택의 분위기가 이렇게 평온할 수 있는 이유는 몇 없었다.
본인이 가지고 있으라고 신신당부했던 그 부적의 소유권을 다른 이에게 떠넘겼거나, 부적이 망가졌거나, 혹은 부적의 효과가 다른 주물이나 아티팩트로 인해 반감되거나 무효화 되었거나….
진성은 자신이 건네준 부적이 어떻게 되었을지 의문을 품었다.
* * *
"부적? 아, 그거…."
진성은 이양훈을 마주하고 부적의 행방에 관해 물었고.
"허허, 번쩍번쩍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이상한 새가 그 부적을 삼켜버리더군."
…그 부적이 게이밍 오목눈이에게 먹혔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