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제순을 제물로 불타오르는 곳도 있었다.
바로 정치권이었다.
『 이봐요! 국회의원이나 되는 사람이 말이야, 온갖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부동산 투기를-! 』
『 뭐요? 증거 있어?! 』
『 여기 차고 넘치는 게 증거잖아! 재개발 계획 발표 직전에 사돈에 팔촌까지 다 끌어모아서 땅을 사놓고 시치미를 떼? 당신 낯짝은 철판이라도 되는 거야?! 』
『 뭐? 그 증거가 누구 건데 그래! 그 이제순인가 뭔가 하는 놈에게서 나온 증거 아냐? 그런 살인 범죄자에게서 나온 걸 지금 증거라고 갖다 대는 거야?! 』
『 살인마인 게 뭐! 그 사람이 살인했건 말건 증거는 증거 아냐? 애초에 그놈 살인이나 당신이 땅 투기 한 거랑 뭐가 달라?! 』
『 뭐? 이 사람이 진짜! 』
이제순이 사망한 후,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제순이 가지고 있던 정보 역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정보.
이제순이 주물을 통해 얻었던 비밀스러운 정보들이, 목줄을 풀고 사방으로 풀려나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권력자들이 개입하려 했지만….
기이하게도 그들의 개입은 별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증거품 보관실로 이동한 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야 했을 수첩은 발이 달린 것처럼 스스로 증거품 보관실에서 사라졌고, 다음 날 특종에 목말랐던 한 기자의 집으로 배송되었다.
빳빳한 수첩에 적힌 내용들 역시 각 언론사에 뿌려졌고, 수많은 정보가 기록된 이메일 역시 시한폭탄이 터져나가듯 사방으로 뿌려졌다. 언론사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커뮤니티에까지 말이다.
그렇게 퍼져나간 정보는 권력자가 개입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그들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마치 맹견이 사냥감의 목을 물어뜯듯, 아주 격렬하고 흉포하게 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치권은 혼란 속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다.
이제순인지 뭔지 하는 이 미친 기자 놈은 어떻게 이러한 정보를 안 것인지….
게다가 어떻게 정보를 수집한 것인지, 하나같이 너무 확실해서 반론을 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이제순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정보의 출처인 '이제순'을 공격해서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거나 다른 정치인들의 잘못을 크게 부각하며 그들 속에 묻어가려는 전략을 사용하며 서로 물고 물어뜯기는 싸움판을 벌였다.
그야말로 개판 그 자체.
당연하게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분쟁이니 뭐니 하는 것은 잊혀버렸다.
나부터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나라 간의 싸움이니 악감정이니 하는 것이 뭔 상관이 있을까.
한국의 권력자들은 늪과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그렇게 혼란 속에서 평화가 만들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 속에서 서로 손을 잡는 곳도 있었다.
바로…연예계였다.
『 오, 한일 합작 오디션 프로그램…?』
『 예. 서로 화해 분위기에 들어서고 있는 두 나라인 만큼, 이 프로그램을 통해 무거운 공기를 날려버리고 서로의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 흠. 이 타이밍에 한일 합작 오디션이라…. 윗분들이 좋아할 것 같기는 합니다만….』
『 예. 3S는 언제나 유효한 수단이었지요. 한국의 권력자들도 이런 혼란을 어서 타파하고 싶어질 테고, 한국의 국민 역시 이렇게 '피곤한' 정치에 집중하는 대신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고 싶어 할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딱 좋은 타이밍이지요. 』
『 흐음…. 거기다가 외교 관계가 좋아진다는 것, 그리고 친밀한 교류 속에서 경제가 살아나는 것…예. 이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겠군요. 이거 정말로 윗분들이 좋아할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
『 예. 나라 간의 일이야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당장 싸우다가도 얼굴을 싹 바꿔서 악수하는 것. 중요한 것은 이득이지요. 』
『 알겠습니다. 한일 합작 오디션, 추진해봅시다! 』
한국과 일본 연예계는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한국 처지에서 일본은 거대한 시장이자 글로벌 마케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일본 처지에서 한국은 자국에 유통할 쓸만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나라였다.
게다가 한국의 콘텐츠는 10~20대의 젊은 층에 어필하기 좋은 데다가 파생 상품들로 쏠쏠한 이익을 거둘 수도 있었다.
이익.
돈을 벌게 해주는 사람을, 회사를 어찌 싫어할 수 있을까?
우익의 기세가 강해져서 강제로 사이가 멀어지긴 했지만….
화해 분위기인 지금이라면, 사이가 가까워져도 크게 흠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기회.
기회다.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기회는 잡아야 한다.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한국과 일본의 연예계는 서로 손을 잡았다.
한일 합작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 한일 합작의 중심엔,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까지 이름을 널리 알린 천재 프로듀서가 있었다.
『 천재 프로듀서, 이번엔 한일 합작이다! 』
『 마침내 한국에까지 손을 뻗는 천재! 과연 그의 손에 탄생할 글로벌 아이돌은?! 』
야사키 토키타카(矢崎敏高).
프로듀서이자 기업가.
일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이며, 한국에서도 일본 드라마와 일본 아이돌이 유행하던 시절에 한국인의 뇌리에 '천재 프로듀서'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던 사람!
그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한국 역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그만한 무게감을 가진 이들이 나서야 하는 법.
『 J 엔터테인먼트 대표, 한국 대표로 나선다? 전무후무한 규모의 오디션 프로그램! 』
『 사상 최대의 한일 합작 오디션 프로그램, "능력 있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
당연하게도 한국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이들이 나섰다.
이제는 한발 뒤로 물러나서 후임을 육성하고 있는 이들부터,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들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뽐내며 전면으로 나서고, 온 힘을 다해서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한일 합작 오디션 프로그램은 한일 양국의 사람들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들은 마녀의 가마솥 같은 혼돈 그 자체인 정치판을 보면서 느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자연스럽게 이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거대한 규모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서로의 국가에 가졌던 반감을 건전한 방향으로 풀게 되리라. 서로에게 주먹을 날리고 욕을 하는 것 대신에, 자신의 나라, 자기 지역에서 나온 재능 있는 이들을 응원하면서….
그렇게 평화롭게, 악감정은 해소되고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되리라.
그리고 이들의 화합을 도와줄 또 다른 재료도 있었다.
『 예명 차이네, 본명 김선미. 맞습니까? 』
『 네? 네….』
『 곧 있으면 계약이 끝난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우리 회사에서 그 재능, 펼쳐볼 생각이 있으십니까? 』
『 네…? 어디 회사인데…. 어? 잠깐, 이 회사에서 나오셨다고요? 일본에 있는, 거기 맞죠? 』
『 예. 우리 회사가 일본에 있기는 합니다만, 일본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활동합니다. 차이네 씨에게는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 어? 어? 자, 잠시만…. 잠시만요…!』
그 재료는 바로 차이네였다.
한국 출신이며, 동시에 일본의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계약을 하게 될 연예인.
계약 기간이 끝나갈 무렵, 야사키 토키타카라는 천재 프로듀서의 눈에 들어서 스카우트가 된 연예인이라는 직함을 가지게 될 스타!
한국과 일본은 그녀를 적절하게 이용해서 한일 양국의 반감을 가라앉히게 되리라.
아니, 오히려 서로에게 친근감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한국 출신 연예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큰 인기를 끌고, 반대로 일본 출신 연예인이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는 것을 보게 될 테니까.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이 과정에서 그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니.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래.
모두가.
이득을 본다.
"본디 만물에는 버릴 것이 없는 법이라."
이제순은 훌륭한 양분이요, 훌륭한 재료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무형적인 것뿐만이 아닌 물질적인 것 역시 포함이 되는 것이라.
"죽은 몸에도 반드시 쓸만한 것이 있는 법…."
이제순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갔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진짜로 가죽을 남기고 간 것이다.
빙의술사가 영혼을 수확하고 난 뒤 이제순은 싸늘한 시체가 되었고, 그 시체는 화장터로 가게 되었다. 살인범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이를 땅에다가 매장하면 맨날 찾아와서 침을 뱉거나 무덤을 훼손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질 것이 분명했기에, 그냥 화장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이제순은 화장터에서 활활 타오르게 되었고….
놀랍게도 하얀 뼛가루와 함께, 가죽을 남겼다.
시뻘건 화염이 지나간 자리, 하얀 뼛가루 위에 놓인 손바닥만 한 넓이의 가죽 세 개.
기사(奇事)였다.
이 기이한 일에 화장터 직원은 혼란에 빠졌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일단 뼛가루는 유골함에 담고 가죽은 다른 곳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진성이 화장터에 잠입해 그 가죽을 빼돌렸다.
어렵지는 않았다.
이제순이 죽어서 가죽을 남길 것을 미리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진성은 아주 귀중한 재료를 얻을 수 있었다.
아니, 재료'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게 맞겠지.
한국과 일본의 전쟁 분위기를 소강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전쟁이 벌어질 일말의 여지까지 모두 없애고, 자신이 손에 쥐고 흔드는 야사키 토키타카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인맥을 넓히고 강화하고, 한국과 일본의 무인 전력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주술과 관련된 귀중한 재료까지 얻게 된 것이니까!
참으로.
참으로 이제순이라는 사람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존재였다.
어쩌면 그 성질은 요정과 같다고 할 수 있으리라.
요정이 떠나간 자리, 요정이 만든 원이 흔적처럼 남는다는 말이 있다.
서양에서는 이를 페어리 서클(Fairy circles), 혹은 페어리 링(Fairy Ring)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것 아는가?
동양에서는 이 원을, 균환(菌環) 혹은 균륜(菌輪)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이 기묘한 원의 진실은 요정이 뛰어놀아서 만든 흔적이 아니라 특정 진균류가 만들어낸 흔적이었으니까.
수많은 미신을 품은 원.
자국만 남은 그곳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버섯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자국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흔적이라고 주장하기라도 하려는 듯.
혹은, 요정의 흔적과 요정의 시체를 양분으로 잡아먹고 자신들이 자라났다고 말하려는 듯.
그렇게 요정의 원은 버섯의 원이 된다.
빼곡하게 자라나는 주름버섯들의 집이 되고, 길이 되어간다….
그리고 이 모양새는 참으로 지금의 상황과 딱 알맞은 것이라.
이제순을 양분으로 삼아 자란 주름버섯이 선물을 주는 모양새와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하는 것이다….
"ओं अमोघ वैरोचन महामुद्रा मणि पद्म ज्वाल प्रवर्त्तय हूं."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