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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495화 (495/526)

따스하게 내리는 햇빛은 온기를 남기고 사라지는 법이며, 싱그러운 내음을 풍기는 바람은 향기만을 남긴 채 자취를 감추는 법.

진성 역시 마찬가지로 둘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다.

하나는 기절한 채 쓰러져 있는 차이네였고, 남은 하나는 수많은 벌레 사체 위에 엎어진 채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이제순이었다.

그렇게 진성은 둘을 남기고 사라졌고, 날이 밝은 뒤 두 사람은 지나가던 시민의 신고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렇게 이송된 둘은 같은 병원에…머무를 뻔했으나….

[ 이봐요. 다른 병원으로 옮길 테니까 그렇게 아십쇼. ]

"예?"

[ 아니, 차이네…. 아니 선미가 말입니다. 연예인입니다. 연예인. 그래도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는 연예인이라 이 말이에요. 그런데 그냥 일반 병실에 묵게 한다? 하, 귀찮아지지 않겠습니까? 예? 기자 드나들고, 팬 와서 성가시게 하고 그러면 귀찮아지지 않겠냐고. ]

"네?"

[ 아, 내가 그쪽 병원이 미덥지 않다는 게 아니에요. 그쪽 병원도 큰 병원인 거 아는데, 그래도 우리 회사랑 제휴를 맺은 병원이 있다 이 말입니다. 우리로서는 그쪽으로 보내는 게 더 안심되고, 혜택도 많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뭐, 어디 크게 다쳤거나 중병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

"하지만…."

[ 아 검사 결과 멀쩡하다면서요. 그럼 병원 옮기는 거 정도는 아무런 문제 없는 거 아닙니까? 예? 제가 뭐 틀린 말 했어요? ]

"하지만 후유증이라는 게 이후에 나타날 수 있으니 입원해서 자세히…."

[ 아, 그러니까 내가, 우리 회사가 말입니다. 제휴하고 있는 병원으로 보내야 안심이 되겠다고요. 내 말 뭔 말인지 알지요? 그 입원해서 어? 관찰인지 검사인지 받아보는 게 안심이 되겠다고. 내가 뭐 대책 없이 퇴원시키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른 병원으로 옮긴다잖아요. 왜 이렇게 질질 끌어요? 수속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을 텐데 거참….]

사장의 주장으로 인해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사장은 소속된 연예인을 케어한다, 걱정되어서 그런다, 기자와 팬이 접근하지 못하게 보안이 검증된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등의 이유를 내세웠고, 병원은 그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차이네를 사장이 요구하는 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뭐, 실제로 어쩔 수 없기도 했다.

퇴원을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데, 다른 병원으로 보내서 입원시키겠다지 않은가.

어차피 병원만 바뀔 뿐 입원한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니….

병원은 진상의 향기를 풀풀 풍기는 사장의 말대로 차이네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버렸다.

그렇게 그렇게 소속사와 연이 있는 병원으로 입원한 차이네는 그 병원의 VIP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VIP실 중에서는 좀 급이 떨어지는 곳인지 '시티뷰(City View)'는 없었지만, 그래도 'VIP'라는 명칭이 붙은 만큼 일반적인 병실보다 훨씬 호화로웠다.

고급스러운 가죽 소파 겸 침대가 두 개가 있었고,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그 공간에는 포트는 물론이고 식기세척기와 소독기까지 있었다.

게다가 오븐 겸 에어프라이어 겸 전자레인지로 사용할 수 있는 광파오븐까지 있었고, 비싸 보이는 정수기까지 병실 안에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한쪽에는 커다란 크기의 벽걸이 TV가 있었고, 병실에 있는 탁자에는 소속사에서 가져다 놓은 것으로 보이는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이 올려져 있었다.

평소 푸대접받아오던 차이네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수준의 대접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대접에는 다 이유가 있었으니….

[ 하, 선미야. 거 미안하게 됐다. 내가 하, 참.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 ]

"…."

[ 내가 말이야, 나름 신경을 썼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우리 선미가 말이야, 좋은 정보를 알려준 것도 있고 해서 내가 응? 바쁜 와중에도 신경을 딱 쓰고 있었다고. 행사 잡힌 것만 보더라도 딱 감이 왔지? 신경을 쓰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그 예술 같은 동선만 보더라도 내가 신경을 쓰고 있는 건 잘 알았을 거야. 선미도 그렇고, 다른 직원들도 그렇고. 머리가 있고 눈치가 있다면 그걸 다 알았을 거란 말이지. ]

"…."

[ 그런데 내가 신경을 써주고 있다고 이렇게 티를 팍팍 내는 와중에 말이야. 어? 내가 진짜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소식이 들려왔어. 그게 뭔지 알아? 알지? ]

"네…."

[ 허, 참. 매니저란 새끼가 말이야…. 담당 연예인을 내팽개치고 도망을 쳤어. 하다못해 도망을 쳤으면, 차에 시동을 걸고서 너를 기다리기라도 할 것이지…. 그 미친년이 차를 몰고 회사까지 왔더라고.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몰라요. 내 참, 자기 담당 연예인을 괴물 아가리에 미끼로 집어 던지고 회사로 복귀하는 매니저라니, 내가 어이가 없어서…. 어, 그래 내가 진짜 어이가 없었지. 혹시 무슨 나 몰래 예능을 찍나, 몰래카메라를 하나 진지하게 의심했다니까? ]

"…."

[ 근데 그게 진짜라네? 예능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라네? 그 말을 믿을 수가 있었겠어? 근데 병원에 전화를 걸고, 확인하고 딱 알았지. 와, 이게 진짜구나. 매니저라고 붙인 새끼가 미친 짓거리를 했구나. 내가 이걸 딱 깨달은 순간 대가리를 얻어맞은 느낌이 딱 드는 거 있지? 못 박은 야구방망이로 얻어맞았을 때도 이런 느낌은 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

"…."

[ 캬, 내가 동선도 조절해줘, 차에다가 영양제도 넣어줘, 이렇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티를 팍팍 냈는데 말이야…어? 야망도 있고 능력도 나름 보이는 녀석을 매니저로 붙여줬더니, 정작 그 야망 있는 놈이라는 새끼가 제 목숨 아까워서 도망을 치고 그대~로 와서는 내 면상 앞에 딱 나타나서는…. 하, 씨발. ]

"…."

[ 그 얘기 듣고 내가 얼마나 화가 나고 쪽팔렸는지 몰라. 내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내가 신경을 써주고 있다고 티 내는 애를 그렇게 그냥 놓고 올 수가 있을까? 내 가오를 얼마나 상하게 하려고 이딴 짓을 한 걸까? 눈앞의 미친놈은 무섭고, 사장인 나는 무섭지 않고? 쯧. ]

"…."

[ 뭐, 됐고. 선미 너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거기 있어라. 병원비도 다~ 내가 내줄 거고, 내 가오 상하게 한 그 새끼는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까 신경 끄고, 그리고 언론은 내가 아는 사람들 이용해서 막았으니까 이상한 기사 안 나갈 테니 걱정하지 말고, 팬…한테는. 흠, 그래. 쯧, 소속사가 풀코스로다가 건강 검진 시켜줬다고 해. 인증샷을 찍어서 팬카페에 올리든, SNS에다가 글 올리든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알았지? ]

"네."

[ 어, 그래. 대답 좋구먼. 그래, 거 소속사가 떠먹여 주는 것만 해서는 안 되는 법이야. 선미 너는 더더욱 그렇지. 아주 자세가 되어 있어. 마음에 들어. 아, 그리고 너 옆에 쓰러져 있던 그 미친놈 알고 보니 기자였다며? 이제순인지 뭔지 그놈 나도 알지. 요새 미친 망나니처럼 날뛴다고 들었는데…. 그거 관련해서는 우리가 다 알아서 처리를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묻을 수 있으면 묻고, 묻을 수 없으면 뭐…. 언플이라도 해줄 테니까 이미지 깎일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냥 그놈이랑 얽힐 일 별로 없게 만들어줄 테니까 휴가 보낸다 생각하고 그냥 쉬도록 해라. ]

사장이 차이네에게 이런 대접을 해주는 이유란 바로 체면 때문이었다.

자신이 붙여준 매니저가 이딴 개짓거리를 벌인 것에 대한 분노와 창피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엿 같은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바꾸고자 차이네에게 필요 이상의 돈을 사용하면서 입원을 시켜준 것이다.

눈에 들어온 사람만큼은 확실하게 챙겨준다는 이미지를 챙기기 위한 계산이 훤히 보였다.

하지만 계산적이라고 해도 뭐….

그 덕분에 차이네는 VIP 병실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녀에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하아…."

게다가 입원하는 동안 지루하지 말라고 태블릿 PC를 아예 새 걸로 사서 주기까지 했으니….

이 정도면 확실히 섭섭하지 않은 대우였다.

* * *

양(陽)이 있다면 음(陰)도 있는 게 맞지 않겠는가?

차이네가 편안하게 생활을 하는 동안, 이제순은 고초를 겪었다.

"끄으윽…. 끄으아아악…!"

그는 기괴한 장면에 놀라서 기절한 차이네와는 달리 끔찍한 상처를 입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즉시 수혈로 피를 보충하고, 검사에 들어가려 했으나….

수혈이 무슨 트리거라도 된 것처럼, 몸에 피가 차자마자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발작했다. 얼마나 심하게 발작하는지 힘 좀 쓸 것처럼 보이는 남자 간호사들과 의사가 달라붙어도 제압하기가 힘든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어찌어찌 제압한 뒤 검사를 했는데….

"…이 환자, 몸 왜 이래요?"

"와…."

"뼈 상태도 그렇고, 근육도 그렇고…. 이거 무슨 희귀한 병이라도 걸린 건가? 검사 좀 해봐요."

이제순의 몸 상태가 심상치가 않았다.

가장 먼저, 뼈에 구멍이 송송 뚫려있었다.

뼛속에 구멍이 송송 뚫리는 골다공증 같은 게 아니라, 진짜로 뼈에 구멍이 뻥뻥 뚫려있었다.

마치 바늘 같은 걸로 뼈를 찔러서 빼곡하게 구멍이라도 만든 것처럼 말이다.

아니, 구멍뿐만이 아니다.

무언가 후벼 파기라도 한 것처럼 파여있기도 했고, 날카로운 것으로 긁기라도 한 것처럼 긁힌 자국이 가득했다. 심지어 직접 확인한 것도 아니고 엑스레이를 찍은 것뿐인데도 이렇게 훤히 보일 정도면, 실제 보았을 때 상태가 얼마나 심각할지는….

게다가 근육의 상태도 심각했다.

"쓰읍…. 이거 인대랑 힘줄 상태가 장난이 아닌데…? 어떤 건 뭐 거의 한계까지 늘어나 있고, 어떤 건 찢어지고 끊어지고…. 부분 파열된 건 아예 보이지도 않네. 뭐 상태가 이래?"

"와, 이건…수술 몇 번을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데요?"

그냥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

보는 순간 막막함을 느낄 정도였다.

"끊어진 건 어떻게 찾아서 붙이고, 늘어난 건…. 하. 이건 그나마 다행이군. 얼마 전에 주사 하나 새로 나왔잖아?"

"아, 그거 효과 좋다고는 들었는…데. 그거 보험 안 되지 않아요?"

"아, 그러네."

게다가 이제순에게 더 안 좋은 사실은, 끝내주는 약이 있음에도 쓰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약품이었으니까.

그냥 입원비만으로도 충분히 부담되는 수준인데, 신약까지 사용한다면 정말 기둥뿌리를 뽑아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뭐, 산 게 어디야? 돈이야 벌면 되는 거 아니냐."

"그렇긴 하죠."

"이 환자 들어왔을 때 생각을 해봐라. 내장 너덜거리고, 척추도 뒤틀려 있었고, 무슨 식인 벌레에게 습격당한 것처럼 파먹힌 상처가 가득했고…. 반쯤 시체였잖냐? 급속 재생 안 했으면 분명 죽었을걸?"

"그렇긴 했죠."

"급속 재생 비용이 좀 비싸기는 한데, 뭐 그거야 목숨값이라고 생각하면 싼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신약도 나쁘지는 않아. 직장으로 빨리 복귀할 수 있는 거잖아."

아니, 이미 하나 뽑았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몸 상태 보니까 에너지 의학과에서 내상 치료를 주기적으로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그것까지 생각하면 뭐, 어떻게든 빨리 퇴원하는 게 좋겠지. 내상 치료 그거 가격 만만치 않잖아? 보험 적용돼도 그 수준이니 원…."

…어쩌면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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