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
"그래. 자네는 전염되었다네."
진성은 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이제순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엇이 전염되었을까. 무엇이 타인에게서 자네로 넘어온 것일까. 자네는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그것을 진실로 깨달을 수 있겠는가? 허상에 불과한 자네도, 허상 너머에 있을 진정한 자네도 그것을 진실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뭔…개소리야…."
"경험의 감염, 스미클링(Smickling). 사랑에 빠진 처녀가 매혹할 남성의 신발을 훔쳐 신고 마주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이를 갖고픈 여성이 임신 중이거나 임신했었던 사람의 신발을 훔쳐서 신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네 잎 클로버를 신발에 넣고 운명의 상대를 기다리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사랑에 빠진 처녀가 사랑하는 남자의 신발을 신고 마주하기를 기다리는 이유는 남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이다.
신발이라는 것은 한 몸처럼 여겨지고 익숙한 것이니만큼, 남자가 자기 신발을 신고 있는 여성을 마주하고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겠지.
아이를 갖고픈 여성이 임신했던 여성의 신발을 훔쳐 신는 것은 아이를 얻기 위함이다.
신발이라는 것은 신체 일부이자 신체의 연장선. 그리고 그것을 자기 몸에 갈아끼는 것은, 임신했던 여성이 가지고 있던 아이를 갖는 축복이 제 몸에 깃들기를 바라는 것이며, 천사가 아이를 자신에게 점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네 잎 클로버를 신발에 넣고 운명의 상대를 기다리는 것은 행운을 얻기 위함이다.
네 잎 클로버라는 것은 예기치 못한 행운. 아무 생각 없이 땅을 바라보았다가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듯, 네 잎 클로버를 신발에 집어넣는 것은 일상에서 예기치 못한 행운처럼 찾아오는 운명의 상대를 얻고 싶기 때문이다.
경험을 복사하고 싶다.
경험을 전염시키고 싶다.
스미클링은 그러한 마음에서 생겨난 미신이다.
하지만 알아야 하는 것이 존재한다.
경험의 전염이란, 경험의 복사라는 것은 결코 좋은 것만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세상 모든 것이 양과 음이 있고, 좋고 나쁨이 있거늘 어찌 좋은 것만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한 까닭에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이 옳다.
"19세기의 끝자락. 어느 소년이 있었다."
진성은 자신이 보았던 기록을 담담히 읊기 시작했다.
"그 소년은 볕이 뜨거워질 무렵부터 백일해(百日咳)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기침하게 되었지. 눈은 끔찍하게도 시뻘겋게 변하고, 눈은 메말랐지. 그 와중에 기침이 끊임없이 나오고, 그 기침은 점차 심해졌지. 기침을 할 대마다 폐를 쥐어짜는 고통과 함께 발작하듯 몸을 움찔거려야 하였고, 나중에는 숨조차 쉴 수 없었느니라."
백일해(百日咳, Whooping cough).
백일동안 기침이 계속된다는 뜻의 이 질병은 어마어마한 수준의 전염성을 자랑하는 병이다. 백일해균(Bordetella pertussis)이라 불리는 세균에 의해 걸리는 감염병으로, 소아에게 치명적인 병이기도 하다.
이 병의 특징은 강력한 기침.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감기 수준의 기침이 아닌, 호흡이 곤란해질 정도의 엄청난 기침이다.
어린 아이의 경우 뇌와 폐에 손상을 입히고 장기를 망가뜨리기까지 한다.
백신이 개발된 지금에서야 흔히 볼 수 없게 되었고, 이제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기까지 했지만….
백신이 없던 19세기에는 그런 것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저 걸리면 끊임없는 기침에 고통을 받을 수밖에.
"흐으으으- 쁘으으--- 숨을 들이쉬자마자 폐가 발작하듯 움직이고, 보이지 않는 손이 폐를 쥐어짜듯 괴롭히지. 폐에 있는 공기가 모조리 빠져나가면서 성대를 자극하고, 기도를 진동시킨다. 그리하여 고통스러운 기침을 하는 와중에도 입에서는 피리를 부는 듯한 소리가 나오니, 그 소리가 얼마나 얄밉겠는가? 고통에 몸조차 가눌 수 없는 와중에 조롱하듯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리 소리라, 아. 잔혹하고 또 잔인하다."
백일해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기침할 때 나는 특유의 소리다.
성문이 닫힌 상태에서 빠르게 공기가 들어오면서 피리 소리 비슷한 특이한 소리가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백일해는 'Whooping cough'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마치 웃다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듯한 소리를 내는 기침을 하므로.
"하지만 지나가던 이가 말하기를 '집에서 고양이를 기르고 있으니 그것과 한방에서 지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한다면 전염병이 고양이에게로 이동할 것입니다.'라 하였으니, 아이의 부모는 그 말에 반신반의하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목에서 피가 나오는 것이 멈추고 얼굴에 솟아난 붉은 점들도 서서히 지워지기 시작하더니 소년은 마침내 회복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말하기를…."
"…."
"아, 전염이 되어 나았구나!"
그리고 고양이는 죽었구나!
진성은 그렇게 말하며 이제순을 바라보았다.
이제순은 숨을 쉬는 것도 힘겨운지 쌔액- 쌔액-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아, 이것 또한 스미클링이니라. 이것 또한 감염이고, 경험의 전염이니라. 전염이란 이토록 무섭고 두려운 것이로다."
쌔액-
쌔액-
"이 이야기를 들은 너는 이제 교훈을 얻었을 것이니라. 진실로 교훈을 얻었으리라. 남의 물건을 함부로 지니게 되는 것은 그 경험이 전염된다는 것이며, 남과 함께 지내는 것 역시 그 경험을 전염 당하고 전염시킬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하여 너는 깨달았을 것이니, 너 어리석은 것아 네가 무엇에 전염이 되었는지 말할 수 있겠느냐?"
쌔액-
이제순은 답하지 못했다.
이제는 목소리를 낼 힘조차 없었기에.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고, 혀가 있어도 그것을 움직일 수 없음이라. 이제순, 순대, 요정에 홀린 자야. 악의를 품고 요악함을 품었다가 마침내 홀려버리게 된 아이야. 요정에 가까이했다가 뇌 한편에 요정이 머물 방을 만들고, 마침내 주도권마저 빼앗겨버리게 된 젊은이야. 내가 말해주겠느니라.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해줄 것이니, 너는 그 깨달음을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할 것이니라."
진성은 몽롱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제순에게 말했다.
"첫째로 말하노니, 너는 욕망에 전염되었다."
세상은 욕망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업(業)을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승진하고 싶다.
돈을 벌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
권력을 얻고 싶다.
그 수많은 욕망은 소용돌이치며 부딪치고, 합쳐지고, 진화하면서 세상을 이루어간다.
그것은 때로는 좋은 방향으로 뻗고, 때로는 나쁜 방향으로 뻗고, 때로는 방황하며, 때로는 제대로 자라나지도 못하고 시들어간다.
그렇게 세상은 이루어져 있고, 만들어져 있고,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욕망을 다스릴 수 없다면 제각기 다른 욕망의 흐름 속에서 그저 휩쓸리기만 하다가 거품이 되어 부서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제순은 그 욕망을 다스리지 못했다.
그릇된 욕망을 가졌다는 것은 아니다.
승진하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명예를 갖고 싶은 것이 무어 잘못되었단 말인가?
그것은 당연한 욕구였다.
하지만 이제순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에 너무 집착했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기준을 직접 세우는 대신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기준으로 삼았고,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욕망을 재단하며 점차 수단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
그 모습은 마치 욕망에 휩쓸리다 못해 욕망을 꾸역꾸역 삼키며 몸을 풍선처럼 부풀리는 어리석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
그렇기에 훗날 '선동가'라는 멸칭이 붙게 된 것이다.
"둘째로 말하노니, 너는 요정에 전염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진성이 개입하였으니까.
그 덕분에 이제순은 온갖 사악하고 끔찍한 방법들, 그리고 일부 파편들만을 재료로 소설처럼 내용을 지어내서 기사를 쓰는 것 대신 주물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기사를 쓰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 정보들을 재화처럼 사용해가며 인맥을 넓히고, 승승장구하였고.
하지만 과한 에고(Ego) 때문이었을까?
과도할 정도의 욕망에 어울리는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주물에 대한 집착 때문일까?
이제순은 주물에 집착하고, 요정에 의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의존하는 과정에서 그는 요정과 급속도로 가까워졌으며, 주의사항을 지켰어도 만만치 않은 것이 요정과 관련된 주술인데, 이제순은 주의사항을 제대로 지키지 않기까지 했다.
그렇게 이제순은 전염되었다.
요정 모방체의 정신에.
요정 모방체가 주는 혼란에.
그렇게, 그는 전염되었다.
"그리고."
진성은 이제는 시선조차 주지 못하는 이제순을 바라보았다.
이제순의 가슴팍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듯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살짝 벌어진 입에서는 공기가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기절했기 때문일까?
이제순의 고개는 살짝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서는 피가 섞인 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벌레 사체 사이로 보이는 눈은 까뒤집혀 있었고, 축 늘어진 몸에서는 기절한 사람 특유의 느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순은 진성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기절했으니까.
정신을 잃었으니까.
하지만 진성은 말했다.
이제순이 무엇에 전염되었는지.
누군가에게 설명이라도 하듯이.
"셋째로 말하노니."
그리고 그렇게 입을 열고는 이제순에게서 눈을 떼고, 어두컴컴한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침묵으로 물었다.
더 듣고 싶지 않냐고.
그 침묵으로 하는 질문이란 참으로 강력해서.
너무나 매혹적이라 차마 그 유혹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참으로 궁금하군요. 세 번째 전염이 무엇입니까?"
그렇기에 어둠 속에 있는 이는 발걸음을 옮겨 앞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