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484화 (484/526)

얼마 전 출연했던 방송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대가로 전 매니저에 대해 알려준 광인.

그녀는 그 광인의 말을 믿고 전 매니저의 스마트폰을 확인해보았고, 전 매니저가 벌인 끔찍한 짓거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자마자 그녀는 전 매니저의 스마트폰을 들고 사장실로 뛰어 들어가 이 사실을 알렸고, 사장은 전 매니저가 벌인 짓을 확인하고는 전 매니저를 처리해버렸다.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모른다.

양아치 느낌이 나는 소속사였으니, 양아치를 동원했거나…혹은 조폭을 동원했을지도 모르지.

그날 이후로 차이네의 전 매니저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사장은 중요한 정보를 가져다준 차이네를 크게 칭찬하면서, 그녀에게 상을 주겠다며 두 가지 선택지를 내밀었다.

『 야, 선미야. 네가 나한테 아주 좋은 걸 가져와 줘서 고마워서 뭘 줄려고 한다. 네가 재계약을 한다면 뭐 기회도 주고 잘 챙겨주기야 하겠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고. 너 어차피 재계약 안 할 거 같은데, 대신에 내가 두 가지 선택지를 줄게. 』

『 하나는 계약 끝나는 날까지 쉬는 거야. 아, 뭐 그냥 쉬는 건 아니고…. 휴가비도 챙겨주고 할 테니까 편안~하게 계약 끝나는 그 날까지 쉬는 거지. 내가 뭐 외국까지 보내줄 수는 없고, 국내 어디 괜찮은 곳에서 머무르게는 해줄 수 있어. 제주도? 뭐, 그래. 제주도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거야. 거기서 편안하게 지내면서 계약 완료되는 시점까지 휴가 즐기고, 뒤끝이니 뭐니 하나 없이 깔끔하게 계약 종료. 어때? 』

『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행사 계속 뛰는 거지. 근데 네가 준 게 있는데 그냥 다른 애들처럼 마구잡이로 굴리면 좀 그렇잖아, 그렇지? 네 손에도 좀 만져지는 게 있어야지. 자, 이 선택지를 고르는 시점부터 네가 행사를 뛴다? 그러면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수준의 행사비가 네 손으로 들어갈 거야. 네가 행사를 뛸 때마다 내가 두둑하게 챙겨주겠다 이거지. 좋지 않냐? 동기부여도 되고, 통장은 두둑해지고. 계약 끝날 때까지 목돈 좀 만지고 나가는 거야. 그리고 계약이 종료되면? 깔끔하게 딱 끝! 아니지. 열심히 일을 해줬는데 보너스가 있어야지. 내가 언플 좀 해줄게. 좋은 쪽으로. 그러면 다른 소속사 들어갈 때 좋잖아. 그치? 』

『 자, 어느 쪽 고를래? 내가 진짜 이런 제안을 한 적이 없는데. 어? 진짜 내가 이런 제안을 한 역사가 없어요. 이거 진짜 내 일생일대의, 역사적 사건이야. 이런 제안 자주 오는 게 아니다? 이번은 진짜 고마워서 그런 거니까 의심하지 말고 골라. 어떤 걸로 할래? 』

그리고 차이네는 사장이 건넨 두 가지 선택지 중 후자를 택했다.

어차피 몸이 갈려 나갈 정도로 행사에 돌려지는 것이야 각오를 한 상태.

그런데 똑같이 갈려 나간다고 해도 많은 돈을 만질 수 있는 데다가 사장이 특별히 좋은 언플까지 해주겠다고 했으니….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전자를 선택하는 것보다는,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양아치들이 가득한 이 소속사에 책잡힐 일 없이 깔끔하게 털어낼 수 있으리란 계산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차이네는 망설이지 않고 후자를 선택했다.

『 캬, 선미 진짜 마음에 쏙 드네. 진즉에 이런 면모를 알았으면 내가 팍팍 밀어줬을 텐데, 뭐 아깝긴 한데 어쩌겠냐. 그래, 단호하게 후자를 선택하는 걸 보니 연예계에서 살아남을 준비가 딱 되어 있는 게 보여. 내가 이런 어?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애들은 참 좋아해요. 그래, 기분이다. 행사도 동선 좀 괜찮게 해달라고 딱 말을 해줄게. 괜히 시간 낭비 안 하게 동선 조절을 딱 해주겠다는 뜻이야. 어때, 좋지? 』

『 그리고…그래. 이것도 받아라. 세연이한테 왔었는데, 걔는 거절하더라고. 마침 아까웠는데 딱 네가 앞에 나타났네? 무슨 광고냐고? 이게 게임 광고야, 모바일 게임 광고. 알지? 그쪽 페이 세게 부르는 거.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닌 거 알지? 어, 그래. 그래야지. 그래, 이렇게 기회가 오면 딱 잡을 줄 알아야 하는데 말이야. 세연이 걔는 머리가 굵어져서…. 그래. 알겠다, 가 봐. 』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사장은 차이네에게 선심을 쓴다면서 광고도 하나 던져주고, 행사할 때 조금 더 신경 써주겠다는 말까지 남겼다.

그리고 실제로 사장이 한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행사가 정말 기가 막히게 잡혔다.

최단 거리, 최단 시간, 최고의 효율로 돈을 뽑아낼 수 있도록 일정이 잔뜩 잡힌 것이다.

행사 일정 관리도 이 정도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차이네는 최고의 효율로 행사를 수행하게 되었는데….

돈이 벌리는 게 좋기는 했다.

행사가 많이 잡히는 데다가, 목돈을 만지게 해주겠다는 사장의 말대로 통장이 살이 찌는 게 눈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돈이 벌리는 건 벌리는 건데…. 힘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과거 살인적이라 생각했던 일정표가 여유 있는 편이었다고 생각될 정도니….

그나마 사장이….

『 행사를 돌다가 쓰러지면 그건 상이 아니라 벌이지. 네가 쓰러지면 내가 상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 거 아냐? 그건 안 되지. 네가 쓰러져서 아프건 말건 그건 네 사정이긴 한데, 네가 쓰러지는 걸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이 나오는 건 내 체면이랑 관련이 있거든. 그러니까 내가 차에다가 영양제들 놓을 테니까 챙겨 먹으면서 해라. 』

…라는 말과 함께 차에다가 종류별로 사놓은 영양제를 먹은 덕분인지 병원에 실려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딱 쓰러지지 않은 수준까지 과로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

당연히 한숨이 푹푹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요, 제가 선택한 건데요 뭐…. 이때 벌면 언제 벌겠어요…."

하지만 뭐 누구를 욕하랴.

휴식 대신에 돈을 택한 것은 그녀 자신인 것을.

"알면 됐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저런 말투를 들으면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무슨 돈 벌어오는 기계라도 보는 것 같은 저 눈빛과 공감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저 말투라니.

'하아, 진짜….'

새로 붙여준 매니저와 친분을 나눌 생각이 없기는 했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래도 좀 사람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해야지.

둘이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을 느낄 지경이니 원….

차이네는 절로 튀어나오려 하는 한숨을 다시 삼키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가죠…. 다음 행사로."

"예. 차 대기시켜 놨습니다."

"다음이 오늘 마지막이죠?"

"예."

그렇게 둘은 대기실을 나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행사장이 외곽 쪽에 있어서 그런지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어 상당히 어두웠다. 게다가 드문드문 있는 가로등 몇 개는 돌이라도 맞은 것인지 깨져 있어서 제대로 불이 들어오지 않고 있었고, 그나마 불이 들어오는 가로등에는 몰려든 벌레떼가 불빛을 가리고 있어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음산하네요. 뭐 나올 거 같은 분위기인데…."

"예."

차이네는 섬찟함을 떨쳐내고자 매니저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매니저는 그냥 간단하게 차이네의 말에 답했다.

아니, 답했다기보다는 그냥 말을 끊은 것에 가까웠다.

너랑은 할 얘기도 없고, 할 얘기가 있어도 별로 얘기도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 '예'라는 한 단어에 듬뿍 담겨 있었다.

'하….'

차이네는 매니저의 매몰찬 반응에 무서움이 가시는 것을 느꼈다.

대신, 무서움이 있던 자리에 짜증과 분노가 들어찼다.

아무리 사무적인 관계라고 해도 그렇지, 그냥 분위기 음산하다는 말인데 저렇게 냉정하다 못해 매몰차게까지 느껴지는 반응을 보일 이유가 있는가 싶었다.

차이네는 짜증에 매니저를 살짝 흘겨보았다.

딱 봐도 자신보다 싸움을 잘해 보이는 데다가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싶은 성격인지라 대놓고 째려본다거나 따지기는 좀 그랬고, 그냥 흘겨보는 것으로 은근히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고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차이네의 눈동자가 옆으로 돌아가려 하는 순간….

"어?"

그녀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저기요, 잠깐만요."

"예."

"아니, 예가 아니라요. 예가 아니라. 매니저님…?"

"예."

"예가 아니라…. 예가 아니라고요. 이쪽 좀 봐요. 이쪽 좀 보라고 미친년아…!"

매니저는 차이네의 말을 대충 대꾸하며 무시하려다가 '미친년아'라는 말에 인상을 팍 찌푸리며 차이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고 온몸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왜 지랄하냐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미친년아…? 차이네 씨. 지금 우리가 친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한 거예요? 당신, 입조심…어?"

그렇게 매니저는 차이네에게 한소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마자 보인 것은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차이네의 얼굴.

그리고, 차이네가 바라보는 방향 쪽에 서 있는…이상한 남자.

"…저거, 뭐죠?"

저 멀리.

깨진 가로등과 불이 켜진 가로등의 정확히 중간 위치.

길목 정중앙을 틀어막고 있는 남자가 있다.

뒤편에 있는 가로등에서 비치는 불빛으로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어둠 속에 몸 반절을 숨긴 채 우두커니 선 채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의 한 손에는 녹슨 망치가.

남은 손에는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재단 칼이 들려 있었다.

남자는 둘을 단단히 쥔 채 어둠 속에서 둘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남자는 그녀들이 어서 자신 앞까지 오기를 기다린다.

그녀들이 자신을 눈치챈 것을 깨닫자 씩 웃으며 더러운 치아를 드러낸다.

손을 풀 듯이 망치를 든 손의 손목을 한차례 돌리고, 재단 칼을 든 손의 손목을 두어 차례 까닥인다.

그리곤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춤을 추듯이, 흥겨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몸을 움직이며….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는다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는다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으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 그것이 바로 신발의 특별함, 신발의 마법이라네…."

…노래를 불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