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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474화 (474/526)

자신을 순대라고 밝힌 괴한은 광기에 물든 눈으로 격투가를 바라보았다.

아니.

아니다.

저것을 바라보았다고 표현해도 괜찮은 걸까?

바라보았다고 하기에는 초점이 없고, 격투가를 보기보다는 격투가 뒤에 있을 어떤 허상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격투가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하기에는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그를 따라 움직인다.

저 남자는.

저 괴한은 분명히 미쳐있었다.

"모, 모릅니다. 그런 사람."

격투가는 분명 자신은 무공을 익힌 무인임에도, 딱 보기에도 일반인처럼 보이는 남자를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괜히 몸이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

단련을 통해 얻은 무력이 눈앞의 순수한 광기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몰라?"

광기.

그래.

광기다.

자신을 기자라고 밝힌 저 남자에게선 분명한 광기가 보이고 있었다.

"왜 몰라?"

남자는 격투가의 대답에 얼굴을 굳혔다.

그리곤 고개를 90도에 가깝게 옆으로 꺾더니, 마치 사람이 아닌 존재가 사람 흉내를 내기라도 하는 듯 기괴한 움직임을 보였다. 팔은 몸 뒤쪽으로 뻗었고, 손이 말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 손은 뼈가 없는 것처럼 손목에 바싹 붙더니, 팔 전체를 돌돌 말기 시작했다.

"허억."

사람 몸이 고무찰흙도 아닌데 어떻게 저게 가능할 수 있는가?

공기가 빠진 매트를 돌돌 마는 것처럼 사람의 팔이 저렇게 말리다니?

격투가는 눈앞에 보이는 기괴한 장면에 비명을 감출 수 없었다.

"왜 몰라? 같은 일본인 아니야? 같은 무인 아니야? 그런데 모를 리가 있나. 모를 수가 없지, 그렇지 않습니까? 조상님? 그렇다. 내가 보기에는 저 무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머리가 나빠서 알고 있음에도 까먹은 게 아닐까 싶구나. 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까먹었다면 기억을 되살려주면 그만이고, 모른 척을 하는 것이라면 어차피 대답을 들어야 하니까요."

남자의 허리 역시 뒤틀리기 시작했다.

남자의 몸통 역시 나선형으로 꼬이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다리 역시 비틀리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남자의 머리와 발끝을 쥔 뒤 비틀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오 순대, 순대야 너는 사람의 법도에 너무 얽매여있다. 우리같이 위대한 핏줄을 이은 존재들은 그 자체가 법도나 다름이 없으니, 스스로 건 제약과 맹세가 아니라면 그 무엇도 우리를 강제할 수 없음이다. 그리고 너는 복수를 맹세하기는 하였으되 그 어떠한 제약도 걸지 않았으니 너는 모든 수단을 쓸 수 있음이라. 너는 사람일 때의 감성을 버리고 마땅히 위대한 핏줄을 이은 존재로서의 사고방식을 가지며 움직여야 할 것이다. 예, 감사합니다. 참 중요한 충고이지요. 저 역시 조상님의 말씀에 크게 동감을 하는 바입니다."

"미, 미친."

"세상은 넓고 할 수 있는 것은 많은 법. 구두를 만들기 위해 좋은 재료를 가릴 필요는 있으나, 품질 외의 것을 따지는 것은 무용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구두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면 드래곤의 가죽도, 지렁이의 가죽도, 늑대의 가죽도, 사람의 가죽도 가리지 않고 써야 하는 것이 마땅히 구두장이들이 가져야 할 생각이겠지요.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복수를 행하는 사람이라면, 복수를 위해서는 필요한 모든 것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흐-하. 의심스러운 사람을 잡아다가 강제로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면, 딱히 망설일 필요가 없겠지요."

남자는 목소리를 바꿔가며 혼자서 대화했다.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중한 목소리와 광기가 묻어나오는 사람의 목소리가 번갈아 가면서 입에서 흘러나왔고, 마치 인격이 두 개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좌우로 미친 듯이 꺾어대며 이야기를 나눴다.

덜컥.

이윽고 남자가 고개를 꺾는 행동이 멈췄다.

좌우로 90도로 꺾이기를 반복하던 고개는 평범한 사람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섰고, 초점이 어긋나 있던 눈동자는 이제는 격투가를 명확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광기가 담긴 눈동자는 어디선가 비치는 빛에 의해 계속해서 번들거리고 있었고, 귀까지 찢어진 채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에서는 혀가 튀어나와 입가를 훑었다.

"경, 경고한다. 접근, 하지, 마라. 반격할 수 있다."

격투가는 이러한 남자의 모습에 위협을 느끼며 자세를 잡았다.

남자가 덤벼든다면 언제든 반격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만약 공격한다면 반격하겠다는 경고를 입에 담으며 기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둘 사이에 심상치 않은 공기가 내려앉았고.

"흐."

남자가 비웃음을 흘리면서 돌돌 말렸던 팔을 쭉 펼쳤다.

토옥.

말려있다가 펼쳐진 팔이 바닥에 닿았다.

반죽이라도 된 것처럼 얇게 변한 팔은 길게 늘어졌고, 마치 공연할 때 착용하는 긴 천 같았다.

혹은.

"자, 순대야. 나의 먼 후손아. 이것이 바로 긴 팔이니라."

가죽 채찍 같기도 했고.

삐이-이이-!

남자는 광기 어린 표정으로 자기 팔을 휘둘렀다.

한때는 팔이었던 길게 늘어진 가죽은 여성의 비명에 가까운 끔찍한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갈랐고, 격투가의 근처에 다다랐을 때 끝부분이 물결치듯 움직였다.

파도가 솟았다가 덮치듯.

그렇게 채찍은 말리고, 물결치며 끝부분에 어마어마한 속도를 가했다.

파아앙-!

인류가 최초로 가졌던 음속을 돌파하는 무기.

채찍.

채찍의 파공성이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 * *

으스스한 공기가 흐르는 시각.

가로등의 불빛도, 달빛도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풀숲에 몸을 던진 남자가 있었다.

그의 몸에는 밤에 활동하는 벌레들이 달라붙어 꿈틀대고 있었는데, 벌레들이 맨살에 달라붙어 꿈틀대는 기분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감촉을 느끼면서도 몸을 빳빳하게 굳힌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후우, 후우…."

힘든 운동을 하기라도 한 것인지 남자의 몸은 뜨거웠고, 몸 곳곳에는 땀이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거기다가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은 남자가 숨을 빠르게 내쉬게 만들고 있었는데, 남자는 가슴께에 손을 얹고 숨을 어떻게든 적게 내뱉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뜨거운 몸을 어떻게든 식히기 위해 바닥의 흙을 퍼서 몸에다가 문지르고 있기도 했다.

차가운 흙을 문질러서 체온을 낮추고, 체취를 없애려는 의도이리라.

이러한 남자의 노력은 효과가 있었다.

몸에 풍기던 체취와 땀 냄새는 흙냄새에 묻혀버렸고, 차가운 흙을 문지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바닥에 몸을 비비는 등의 행동으로 몸을 빠르게 식힐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훈련받았던 대로 호흡을 조절하는 데 성공해서 기척을 거의 숨길 수도 있었다.

그리고 몸에 달라붙은 벌레들은….

콰득.

도망치는데 에너지를 소비한 남자에게는 훌륭한 간식이 되었다.

콰득, 빠직.

남자는 몸에 달라붙은 벌레를 입 안으로 가져가 씹었다.

코딱지를 씹는 듯한 고약한 맛과 식감, 그리고 씹힐 때마다 콧물을 먹는 것이 낫겠다 싶은 역겹고 걸쭉한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벌레들을 씹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도망칠 때 칼로리를 잔뜩 소모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니만큼 위장은 칼로리를 강하게 요구할 테고, 그와 비례해서 위 속 공기 비중이 커지고 공기가 장으로 이동하는 것이 잦아지겠지.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서 기척을 낼 테고, 그것은 그의 은신에 방해가 될 것이 분명했다.

잘 도망치고, 잘 숨어놓고 꼬르륵 소리를 내서 잡힌다?

그런 멍청하고 황당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에 남자는 벌레들을 먹고, 또 먹었다.

어떻게든 위의 공기 비중을 줄이기 위해서.

맛도 고약하고 칼로리를 기대하기는 힘들며, 무인이 아니라면 탈이 날 수도 있을법한 벌레들을 위장에 잔뜩 넣어서라도 몸을 완벽하게 숨기기 위해서.

'후. 맛은 없지만…. 그래도 나뭇잎 아무거나 뜯어서 집어넣거나, 흙을 위에다가 넣는 것보다는 낫겠지….'

남자는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을 수준까지만 벌레를 집어넣은 뒤,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둠에 자기 몸을 숨긴 채 소리를 거의 내지 않으며 바닥에 딱 붙어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몸을 한껏 낮춰서 네발로 기고, 때로는 아예 바닥에 몸을 딱 붙인 뒤 기어서 움직이는 남자의 모습은 뱀이나 도마뱀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그렇게 산까지 움직였고, 인기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에 도착하자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움직여 산속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고, 한때 군대에서 만들어두었다가 방치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다 망가진 진지 안에 몸을 집어넣었다.

'운이 없었어.'

안전하다는 판단이 든 것일까?

조금 전까지 타부다이에게 붙잡혀 있던 남자는 한탄인지 안도인지 모를 감정을 담아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젠장. 좋은 건수라고 생각해서 했는데…. 운도 없지. 저 고릴라 같은 놈한테 잡히다니. 그래도 어찌어찌 빠져나와서 다행이지.'

운이 나빴다.

하지만 동시에 운이 좋았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비밀스러운 의뢰를 받아서 일본 무인들에게 시비를 걸고 다니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맨손으로 사람을 찢어 죽이고 다녔다는 무인에게 걸린 것은 정말 재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그 고릴라 같은 인간이 그에게 손을 대기 전에 기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찾아와서 신경이 분산되었고, 그때 차가운 바람이 그의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주었다.

'그래, 운이 나쁘면 좋은 일도 있어야지.'

게다가 정신이 번쩍 들자 몸도 호응해주기까지 했다.

당장 빠져나가라고 재촉이라도 하듯이 컨디션이 좋아졌고, 우연히 단 하나 열려 있는 창문이 눈에 들어오기까지 했다.

게다가 익혔던 것이 위기 상황에서 저절로 발휘라도 되듯 소리를 내지 않고 빠져나왔고, 도장을 빠져나온 뒤에는 바람이 등을 밀어주는 것처럼 빠르게 뛸 수 있기까지 했다.

운.

그래.

마치 누군가가 도와주기라도 한 것처럼, 행운이 따랐다.

정말로.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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