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에 진성이 말하려는 '제대로 된' 주술사는 단수.
아프리카를 무대로 활동하는 '주술사들'이 아닌, '주술사'.
그곳에 자리를 잡은 단 한 명의 주술사.
"그곳에는 영술사(影術師)가 있습니다."
영술사, 혹은 섀도우맨서(Shadowmancer)라 불리는 주술사가 아프리카에 있다.
"영술사…?"
아그네스는 생소한 이름인지 영술사를 중얼거렸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도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단어였으니까.
"이름을 들으면 그림자…와 관련된 주술을 사용하는 주술사인 것 같은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진성은 아그네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술사는 그림자와 관련된 주술을 탐구하는 주술사이지요."
그림자.
얼핏 들으면 제대로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그림자, 그림자, 그림자.
기껏해야 그림자를 다룬다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그림자놀이 정도밖에 없었던 까닭이었다.
전등을 하나 밝게 켜놓고는 그 앞에서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동물이나 물건의 형상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노는…그런 어린애 장난이나 다름없는, 그림자놀이.
그림자 하면 연상되는 것은 오직 그뿐이었다.
그림자라는 것은 그냥 항상 몸에 붙어있는 것.
빛과 그늘과 관련이 있는 것.
빛이 짙어질수록 새까맣게 변해가는 것….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림자는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그것을 좀 더 파고든다면….
"옛날부터 그림자는 영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깊고, 섬뜩한 상징을 마주하게 된다.
영혼.
자아.
분신.
나아가 존재까지.
그림자는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상징이다.
"혹시 그림자를 판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19세기.
독일의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Adelbert von Chamisso)가 쓴 글이 있다.
그림자를 판 남자에 관한 이야기.
궁핍했던 한 남자가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그림자를 팔고, 금화가 무한하게 솟아나는 마법의 주머니를 얻는다. 남자는 수없이 솟아나는 금화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으나, 안타깝게도 그것을 제대로 누리지는 못했다.
그림자가 없었으니까.
그는 낮에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밤에도 불빛이 환한 곳으로는 다닐 수가 없었다.
횃불도 피해 다녀야 했으며, 오직 어둠 속에서만 활동할 수 있었다.
간단히 돌아다니는 것조차 하인을 대동해야 했으며, 운명적인 사랑을 느꼈음에도 그림자가 없는 몸이라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끙끙 사랑의 열병을 앓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그 끝에 마침내 그림자가 없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들에 의해 추방이 되어버리니.
그렇게 남자는 방랑을 하게 되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 남자는 영혼을 판 게 아니라 그림자를 판 거 아닌가요?"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때 남자는 자신의 그림자를 팔았으나, 그림자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영혼이자 그가 세상에 존재함을 알리는 영혼의 신호였다고. 그렇기에 남자가 자신의 그림자를 판 것은, 신의 눈에서 벗어나고 사람들에게서 영혼이 없는 존재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었다고…말입니다."
"…재미있는 해석이네요."
"그렇기는 하지요. 그 주장 뒤에 이어지는 거래를 할 수 없고, 영원히 귀속되며, 불변한 채 반드시 존재하는 영혼에 대한 논쟁 역시 재미있습니다마는….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겠지요."
진성은 말을 멈추고 방긋 웃었다.
"그것 외에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그림자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을 본 남자가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나, 자신의 그림자가 갑자기 사라지더니 그날부터 자신과 똑 닮은 사람이 도시에서 목격되었다는 이야기, 혼이 빠져나갈 정도로 놀란 후에 그림자가 사라져버린 노인의 이야기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림자를 영혼과 동일시하는 이야기는 존재했지요."
"영혼…."
"만질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태어난 순간부터 죽기 전까지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 그렇기에 그림자는 영혼과 동일시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영혼이라는 것은 자아이며, 존재를 규정하는 요소이며, 때에 따라서는 존재 그 자체일 수도 있는 것이라.
그렇기에 그림자라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그러하기에, 영술사는 그림자를 탐구한다.
또 다른 자아를, 밖으로 드러나는 영혼을, 존재를 증명하기 위하여.
허상처럼 존재하되 반드시 존재하는, 불변하는 진리를 알아내기 위하여.
온 우주에 불이 꺼지고 식어버리기 전까지, 빛의 이면에 반드시 존재할 그림자에 대해 알아내기 위하여.
"그렇기에 영술사는 위험합니다. 사악한 인간이나 흉포한 맹수처럼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노리지도 않고, 그곳에 방문한 이들에게 악의를 뿜지도 않지만…. 오히려 그 점이 위험하지요."
"…악의가 없는데 어째서 위험한 건가요?"
아그네스가 질문하자, 진성은 답해주었다.
마치 지식을 읊는 과학자와 비슷한 태도를 보이며.
"재해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해…? 자연, 재해 말인가요?"
"네."
영술사에게는 악의가 없다.
구도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수행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다른 이들에게 악의를 뿜지 않는다.
그는 오직 그림자를 탐구하고, 연구하고, 파고들 뿐이다.
다만 그림자는 영혼이요, 분신이요, 자아요, 존재라.
그 성질을 품은 주술 역시 그것을 희롱하고 조종하고 붙잡고 부수는 용도로 쓰였으니.
영술사는 오직 학문적인 목적으로 그 주술을 휘두른다.
땅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풀의 그림자를 조각한다.
기다랗게 자란 풀들은 바람에 눕혀지며 머리카락과 같은 모양새를 가졌지만, 이내 영술사의 손길에 닿아 매듭이 묶이고 속박되며 그 형상이 고정되어버린다. 고리처럼 얽혀지고, 강풍이 불 때처럼 바짝 눕기도 하며, 강렬한 바람이 불어온다 한들 몸을 휘지 못한 채 꼿꼿이 서 있기도 하다.
높이 솟아오른 거목의 그림자를 깎는다.
그렇게 거목은 제 형상을 유지한 채, 그림자를 깎이며 영술사의 의도에 따라 조각된다.
뻗쳐나간 가지는 먹잇감을 붙잡는 그물이자 손아귀로 변하고, 꼿꼿이 솟아났던 몸통은 이리저리 깎이고 뒤틀리며 기둥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나무는 그림자와 실물의 괴리 속에서 시들고, 피어나고, 뒤틀리며 자라난다.
네 발로 뛰어다니는 짐승의 그림자를 자른다.
완벽한 조각품에 결손을 만들 듯 동물의 그림자가 잘린다. 힘차게 뛰어다니던 초식동물의 그림자는 다리가 잘리고, 아가리를 벌리고 초식동물의 목을 물어뜯던 사자는 아가리를 벌릴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림자가 잘린 다리는 힘 없이 흐느적대며 뛰지 못하고, 때로는 땅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아가리를 묶고 있는 그림자의 사슬은 재갈처럼 입을 벌리지 못하게 막고, 사자가 발광하게 죽게 만든다.
그리고.
사람의 그림자를 희롱한다.
"그는 식물의 그림자를, 동물의 그림자를 가지고 놉니다. 그에게 있어 식물은 자아가 뚜렷하지 않은 영혼이요, 동물은 자아가 뚜렷한 영혼입니다. 식물은 깎아서 형상을 만들고, 동물에겐 그림자로 실험하지요. 그리고 이 동물이라는 것은 단순히 벌레나 짐승뿐만이 아닌, 사람 역시 해당합니다."
짐승은 야성과 본능이 발달한 영혼을 가졌다.
사람은…개체마다 다른, 아주 뚜렷하고 개성 있는 자아를 가진 영혼을 가졌다.
그렇기에 영술사는 사람에게도 거리낌 없이 주술을 사용한다.
그림자를 탐구하기 위해서.
그렇게 악의가 없음에도 영술사가 자리 잡은 곳은 뒤틀리고 비틀린다.
실물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림자가 조각되고 뒤틀리며, 그림자를 따라 실물이 마찬가지로 뒤틀려가며….
그렇게 그가 있는 곳은 현실과 괴리된 듯 기괴한 공간으로 변한다.
그림자가 춤을 추고, 그림자가 내려앉아 사물의 형상을 왜곡한다.
"물론 사람은 가리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위험하지 않다고 하기에는 힘들지요. 사람을 가리는 기준이라는 것이 영술사, 그 개인의 판단에 달린 것이니까 말입니다."
주술사라는 존재는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판단과 생각 역시, 법을 뛰어넘는 면모를 가지고 있다.
어떤 주술사는 카르마(Karma)를 기준으로 삼아 죽일 자와 죽이지 않을 자를 구분하고, 어떤 주술사는 다른 이에게 가능성을 얼마나 빼앗았느냐를 기준으로 삼는다. 어떤 이는 세상에 끼친 존재감으로 판단하고, 어떤 이는 자연에 주는 손익을 기준으로 삼는다.
제각각.
주술이라는 카테고리에 엮기에 주술이 너무 광활하고 모호하듯, 주술사 역시 그러하다.
개성도, 생각도, 그들의 행적도.
쉽게 판단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술사는 재해의 성질을 가졌다.
언제 올지도 모르고, 어떤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나타나며, 큰 여파를 몰고 온다.
그 기준은 분명히 있으되 너무 광대하여 원리를 파악하지 못하는 자연재해처럼, 그 역시 알기 힘든 기준으로 사람의 그림자를 희롱하고 사람을 재료로 삼아 구도하는 것이 변덕스럽게 보이기까지 하니.
이를 재해의 성질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뭐라 하겠는가.
그렇기에 영술사는 위험한 존재였다.
하지만 이러한 영술사도 그가 알고 있는 두 가지에 비하면 덜 위험한 편에 속해있었으니.
그 둘은 바로….
"나머지는 비밀입니다."
진성은 거기서 말을 끊어버렸다.
"…비밀?"
"네. 나머지 둘은…하하. 모르셔도 될 것 같군요. 그리고 뭐, 이 정도만 하더라도 아프리카가 왜 위험한지에 이해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 긴 하죠."
아그네스는 고개를 끄덕이긴 했다.
하지만 묘하게 불편한 기색이 있는 것이, 진성이 가장 흥미로울 때 이야기를 뚝 끊어버린 것에 조금 짜증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기색은 아그네스에게만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열심히 듣고 있으면서 아닌 척하고 있던 오딜리아도 도도한 태도는 갖다버리고 진성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나스타시아는 '어떻게 사람이 이런 끔찍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낸 채 진성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엘라는 묘하게 소름 돋고 무서운 이야기가 중간에 끊기자 약간의 아쉬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표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진성이 이야기를 이어서 말하기를 원하는 듯했으나….
'안타깝게도 나머지 둘은, 지금의 아프리카에는 없는 것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