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가 얼마나 위험하냐니…."
아그네스는 진성이 던진 질문에 잠시 생각하는 듯 눈동자가 위로 움직였다.
아프리카.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안이 전부 좋지 않다고 하기에는 치안이 나름 괜찮은 곳도 있고, 아예 법이라는 것이 거의 적용되지 않는 곳들도 있으며, 진짜로 정부가 없어서 법이 적용되지 않는 곳도 있다.
지역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치안의 상태가 한없이 달라지는 것이 바로 아프리카의 특징.
"일단 치안은 대부분 좋지 않았어요."
지역에 따라, 장소에 따라 치안이 달라지는 것은 모든 곳이, 모든 나라가 그렇기는 하다.
대도시나 부자들이 사는 동네는 치안이 좋고, 빈민가는 치안이 좋지 않은 것이 현실이니까.
장소에 따라서, 지역에 따라서 치안의 상태가 달라지는 것은 그리 특별하다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
그게 상식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이런 곳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무저갱이나 다름없는 밑바닥이 바로 그것이다.
바닥 아래에는 지하실이 있고, 지하실 아래에는 구덩이가 있으며, 구덩이 아래에는 지저가 있는 법. 아프리카의 치안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소매치기?
강도?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범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유럽에서 볼 수 있는 소매치기는 바람잡이가 시선을 끄는 틈을 타서 핸드백이나 가방을 칼로 짼 뒤 지갑을 가져가거나, 몰래 주머니를 뒤져서 지갑을 집고 도망가곤 한다. 그것도 아니면 오토바이 같은 것을 탄 상태로 핸드백이나 가방을 낚아채거나, 가방끈을 잘라서 바닥에 떨군 뒤 그것을 들고 도망간다거나 하는 정도.
때에 따라서는 수많은 인파를 몰고 다니면서 타겟을 인파 사이에 가둔 뒤, 옴짝달싹하지 못한 상태로 만든 뒤 물건을 뒤져서 가져가 버리는…. 소매치기와 강도의 중간쯤에 있는 수법도 사용하기도 한다.
조금 심하면 칼이나 총으로 위협해서 가져가는 정도고.
그래.
유럽에서 볼 수 있는 소매치기나 강도는 이 정도 수준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치안이 어느 정도 괜찮고 공권력이 있는 동네에서는 유럽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조금 과격한 수준에서 끝나지만…치안이 안 좋은 곳에 간다면, 일단 칼이나 총알부터 몸에 쑤셔 박고 시작한다.
공갈? 협박?
그런 것을 말한다면 친절하고 양심이 있는 사람이다.
비싼 손목시계를 차고 있다고 손목째로 잘라서 들고 가는 일도 있고, 그냥 아예 처음부터 목을 베거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은 뒤 시체에서 물건을 뒤져서 찾아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알몸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는…운이 좋으면 그 상태로 발견이 되고, 운이 나쁘면 여러 용도로 '재활용'된다.
"범죄자도 많은 편이었고요."
"범죄자가 많다…라. 그렇지요. 그곳의 치안은 좋은 편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것이 딱히 엄청나게 특별한, 특이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프리카의 환경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었으니까.
허구한 날 내전이 터지고, 쿠데타가 일어나고, 부족끼리 싸운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배를 채워야 할 식량은 군인들의 입으로 들어가고, 그마저도 부정부패 속에서 대부분이 부패한 고위층의 재산을 살찌우는 데 사용된다.
돈을 들여서 지어놓은 시설은 싸우는 과정에서 부서지고, 망가지고, 군사 용도로 개조가 된다.
전 세계에서 보내는 후원 역시 마찬가지.
굶주리고 병든 사람들에게 사용되어야 할 금액은 대부분은 부패한 정치인들이, 부패한 군인들이 꿀꺽하고 아주 극히 일부만이 일반인들에게 돌아간다.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은 고통받고, 권력을 가진 이들은 살을 찌우는 것을 보면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학습한다.
힘을 얻으면, 권력을 얻으면 이렇게나 풍족하게 살 수 있구나. 이런 고통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구나.
그렇게 부정부패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힘이 없는 이들은 권력을 탐하고, 권력을 가진 이들은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만이 편하고 자신만이 부유해야 한다는 이기심이 퍼져나가고, 그것이 마침내 보편적인 수준에 도달한다.
제대로 된 지도자?
청렴한 지도자?
나오기는 한다.
그곳도 사람 사는 동네인데 어찌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겠는가.
진흙 속에서도 연꽃이 피듯, 사람들을 구원할 자는 언제든 솟아날 수 있는 법이니.
하지만 그런 이들이 튀어나온다고 한들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청렴한 지도자는 자신의 이득이 침해당했다고 여기는 다른 이들의 손에 의해 끌어내려지거나 암살당하며, 제대로 된 지도자는 부와 권력을 탐하는 수많은 찬탈자에게 위협당하다가 결국 죽어 나가곤 했으니까.
하다못해 하나로 뭉칠 수 있다면 괜찮으련만.
과거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나라들이 행했던 만행과 문화 말살, 곳곳에 심어두었던 분쟁의 씨앗들, 제대로 된 고려 없이 대충 그어진 경계선 때문에 생긴 부족 간의 마찰, 온갖 허튼짓들로 박살이 난 자연환경과 그로 인한 자연재해, 아프리카를 독립 후에도 식민지처럼 사용하기 위해 사용했던 수많은 술수….
그 모든 것들은 아프리카를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부족의 정체성이 희미해진 지금에도 그 여파는 희미해지지 않았고, 그들을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여파가 이렇게까지 오래 남을 수가 있느냐…하는 의문이다.
본래 사람이란 적응하는 동물.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은 적응하거나 극복하곤 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아프리카의 상황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으리라.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아프리카가 지금까지 뭉치지 못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술수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가 판치던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세련되고 교묘한 방법으로 말이다.
이권을 위해 쿠데타를 종용하거나 독재자를 지원하는 것은 기본.
국익에 방해가 될 것 같은 지식인이나 정치인을 암살하는 일 역시 기본이다.
'인재 수집.'
이능력에 재능이 있는 이들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법.
각 나라에서는 가난한 아프리카에서 돈과 이권을 뽑아먹는 것을 넘어, 이제는 아프리카의 사람을 자원으로 여기며 그들을 수확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를 위해서 영어나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도록 뒤에서 지원해서 이민 후 바로 적응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었고, 민간 봉사단체에 스카우트를 위한 인원들을 끼워 넣어서 재능 있는 이들을 후원하거나 '입양'이나 '귀화'로 자국민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봉사, 후원, 기부 등의 명목으로 교육시설을 만든 뒤 재능 있어 보이는 이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그리고 혹여나 살 수 있는 의심은 아주 '상식적인' 명목으로 덮어버렸다.
『 재능 있는 아이가 이런 위험한 곳에서 꽃도 피우지 못하고 져서는 안 된다. 』
『 인재는 마땅히 제대로 된 곳에서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법이다. 우리는 이 끔찍한 환경에서 인재를 구해내려 한다. 』
물론 몇몇 학자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21세기의 노예무역. 신 제국주의 시대.', '아프리카는 강대국들의 인간 농장이다. 시간이 될 때마다 능력자를 수확하면서 자신이 구원자라도 되는 듯 행동하는 모습이 그렇게 역겨울 수가 없다.' 등의 통렬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학자들의 비판은 '좋은 일을 하는데 왜 그러냐?', '세상 보는 눈이 비뚤어져서 선행을 베풀어도 색안경을 끼고 본다.'라며 욕을 먹기 일쑤였다.
뭐, 실제로 선행이기는 했다.
아프리카가 치안이 좋지 않은 것도 맞고, 인재를 자신의 나라에 데려가서 중요하게 쓰는 것도 맞으니 그들 개개인으로서는 분명히 행운이고 좋은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아프리카의 좋지 않은 치안은 의도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열매는 나무를 흔들어야 떨어지는 법.'
여러 나라와 단체들이 일부러 아프리카의 치안을 악화시키고 있었다.
나라의 경우에는 이권을 위해, 인재들을 뽑아가기 쉬운 환경을 위해.
그리고 대부분의 단체 역시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권을, 인재를 위해서.
그렇게 아프리카의 치안은, 고의로 악화하고 있으며, 나아질 기미 없이 바닥을 뚫고 내려가고 있었다.
사악한 목적을 위해서 말이다.
'용병들이 잘 쓰였지….'
진성은 과거 용병으로 지낼 때를 떠올렸다.
유망한 용병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무렵, 딱 봐도 '요원'처럼 보이는 이가 진성에게 접근한 적이 있었다. 실리콘으로 만든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흑인으로 분장하고 있었으며,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영어를 할 때 으레 보이는 억양을 사용하며 진성에게 '의뢰'를 하려고 했다.
의뢰하겠다는 확답을 받기 전까지 제대로 된 내용을 알려줄 수 없다면서 말을 이리저리 돌리기는 했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특정 장소에 화재를 일으키거나 괴물이나 귀신을 풀어달라.'는…테러 의뢰였다.
그리고 진성은 그 의뢰를 거절했다.
요원이라는 작자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너무나 수상해 보였으니까.
게다가 보상으로 준다는 것이 고작 돈이었으니…관심도 가지 않았고.
그리고 진성이 거부하자 그 요원은 몇 번 더 권유하더니 포기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 있는 공과대학에서 테러가 일어났다.
교수와 학생 포함 사망자 70명, 부상자 143명에 달하는 큰 규모의 테러였다.
보도에 따르면 종교적 이유로 일어난 테러라고 하던가.
참 비극적인 일이었다.
그 테러가 일어난 뒤 아프리카를 무대로 활동하는 어떤 민간군사기업에서 꽤 비싼 아티팩트를 구매하고, 가나와 프랑스가 물밑에서 하고 있던 '어떤 기술'에 대한 논의가 일방적으로 파투 나고, 유럽의 사업가들이 가나의 특정 분야에 기울이던 관심이 사라지고, 가나의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섰지만….
뭐…사람들은 그걸 우연의 일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