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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456화 (456/526)

책상에는 사람 크기의 인형이 놓여 있었다.

나뭇가지와 지푸라기 등을 엮어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인형은 제웅을 크게 확대한 것 같이 보이기도 했고, 일본에서 저주할 때 쓰이는 인형과도 흡사해 보였다. 혹은 커다란 건물 앞에 으레 있는 거대한 조형물을 사람 크기로 축소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진성은 인형의 배 부분을 양손을 가져간 뒤 확 열었다.

마치 배를 찢어서 열어젖히듯이 말이다.

투둑.

그러자 뜯기는 소리와 함께 인형의 배가 열어젖혀졌고, 고약한 악취가 확 풍겨오기 시작했다.

악취.

진성은 코를 찌르는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기는커녕 오히려 잘되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지었다.

벌레가 썩을 때 나는 그 역겨운 냄새.

고기가 썩는 냄새와도, 식물이 썩는 냄새와도 다른 코를 자극하는 냄새.

이 인형을 작동시키는 핵심이 잘 썩었다는 증거였다.

그 핵심은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

나무에 붙어 수액을 빨아먹는 벌레가 그러하고, 나뭇잎을 갉아 먹으며 몸을 키워나가는 애벌레가 그러하고, 다른 곤충을 잡아먹으면서 자라나는 벌레가 바로 그것이라.

인형의 안에 가득한 것은 썩어가는 벌레였다.

나무에서 비롯된 것으로 만들어진 것 안에 벌레가 있으니 이것은 자연을 닮은 것이요.

그 형상이 사람의 모습을 닮았고 벌레가 위치한 곳에 사람의 내장이 있으니, 마치 사람이 음식물을 먹고 소화하는 것과 흡사한 것이다.

"자연에서 비롯된 살점을 갖고, 자연에서 나온 뼈로 서 있는 것아. 살아있던 것을 안에 품고 썩어갈 때까지 안에 담아두는 것이 굶주린 겁쟁이를 보는 듯하니, 겁이 많아 음식을 먹었으되 산 것을 죽이지 못해 스스로 죽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소화를 시킬 수가 없고, 벌레들이 썩어가는 중에는 그것을 밖으로 내보낼 용기가 없어 품고만 있구나. 겁 많은 것아, 이 겁쟁이야. 숲의 은혜를 받고 그 안에 숨어 사는 이 겁많은 인형아."

진성은 주언(呪言)을 외우며 인형을 콕콕 찔렀다.

마치 겁쟁이를 조롱이라도 하듯이, 겁쟁이를 경멸하며 괴롭히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진성은 인형을 손가락으로 찌르고, 경멸스러운 말을 입에 담고, 인형을 겁박하였다.

"너를 쫓아낸 전사들이 이르되 너는 무리에 섞여 살 자격이 없다고 하였느니라. 다만 도망을 친다고 한들 겁쟁이인 것은 변함이 없었으니, 하여 숲의 왕이 이르기를 먹이조차 되지 못하는 겁많은 것을 제 영지에서 쫓아내라 명하였나니. 하여 겁을 집어먹고 얼어붙은 핏줄에 생기를 불어넣나니 혈관에 피가 흐르게 만드매 두 발로 걸어 숲에서 너를 추방케 하노라. 가라, 가라, 가라. 숲에서 떠나 전사들이 없는 무리로 향해라. 마땅히 겁쟁이의 본분을 다하여 겁박과 협박으로 이루어진 명령을 수행하러 발을 옮기라."

촤악.

진성의 손에 들려 있던 성수의 병이 열렸다.

뚜껑이 열리고, 진성의 팔과 함께 액체가 열려있는 인형의 배 안으로 들어간다.

성수는 피처럼 일부는 바깥에 줄줄 흘러내리고, 대부분은 안에 흡수되며 자취를 감추고, 성수가 자취를 감춘 시점에서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변.

이변이다.

투두둑.

뜯어졌던 인형의 배가 움직인다.

죽어버린 식물들이, 넝쿨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나뭇가지는 생기를 품고 꼿꼿하게 자라나고, 굽힌 몸이 서서히 펴진다.

넝쿨은 뱀처럼 꿈틀대며 움직인다.

지렁이들이 한데 몰려 짝짓기라도 하듯, 징그럽게 꿈틀대는 움직임을 보이며 벌어졌던 상처를 수복한다.

꿈틀.

배 안에 보관하고 있던 썩은 벌레들을 소화하기 위해 배가 꿀렁꿀렁 움직이고, 부풀었다가 꺼지기를 반복한다. 그 모습은 소화했다가 폭식했다가를 빠르게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혹은 숨 쉬는 것을 흉내를 내고 싶으나 폐가 없어 어설프게나마 배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을 흉내 내는 것은 그 형상만큼은 인간과 비슷한 것이라.

보고 있자면 불쾌한 골짜기를 자극하고 기괴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너 겁쟁이야. 나의 전령아. 뜨겁지는 않되 몸에 피를 준 나의 명을 따라 마땅히 움직여야 할 것이다. 눈이 없어도 길을 물어 찾아가야 할 것이며, 입이 없어 묻지를 못해도 손짓과 발짓으로 그 뜻을 알아야 할 것이다. 코가 없어도 냄새를 맡아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며, 귀가 없어도 마땅히 찾아가야 할 이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로다."

진성은 허공을 쥐어 인형에게 옷을 입혀주었다.

인형의 체격에 비해서 지나치게 큰 사이즈의 후드티와 긴 청바지였다.

"걸으라. 배에 쑤셔 박은 음식이 모조리 동이 나고 몸을 움직일 힘이 사라지는 그때까지. 발이 닳으면 지팡이를 짚어서 움직여야 할 것이며, 다리가 없다면 팔로 기어서 움직여야 할 것이다. 팔마저 닳아 없어진다면 벌레처럼 꿈틀대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겁쟁이인 네가 맞이해야 할 비참한 운명이자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라. 너 겁쟁이야, 겁쟁이야. 겁이 많아 피까지 얼어붙어 차디찬 몸을 이끌고 움직이는 겁쟁이야. 살기 위해 움직여라. 벌레처럼 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나의 명령을 수행해라."

진성은 주언을 외우며 인형의 얼굴에 가면을 씌워주었다.

조잡한 티가 나는 사람 얼굴 가면이었다.

실리콘으로 대충 찍어 냈을 가면은 미국의 대통령을 닮아 있었는데, 후드티를 깊게 누르고 인형이 그 가면을 쓰니 어두컴컴한 곳에서 본다면 사람처럼 착각할 것 같은 수준은 되었다.

저벅.

그리하여 모든 준비가 끝이 났으니.

인형은 마땅히 진성의 명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푹 눌러쓴 후드티와 청바지를 입고.

등에는 낡아빠진 배낭을 맨 채.

그렇게 인형은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 * *

밤이라는 시간은 사람을 사색에 잠기게 만든다.

폐부까지 들어오는 낮과는 다른 차가운 공기는 절로 긴장하게 만들건만, 사방에 들어찬 어둠은 이제 잠에 빠져야 한다는 듯 사람을 유혹하며 몸을 나른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시린 달빛이 내려오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눈이 절로 감기건만, 그때마다 느껴지는 섬찟한 기운은 잠이 들려는 정신을 번쩍 일깨운다.

모순이다.

잠에 빠져야 한다고 유혹하고, 잠에서 깨우는 형국이라니.

그렇기에 밤이란 시간은 사람을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마치 뜨거운 철을 두들긴 뒤 식히는 것처럼.

식힌 철을 다시 달구고 두들기는 것처럼.

사람의 정신은 포근함과 섬찟함 사이에서 단련되고, 날카롭게 벼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리스는 밤을 좋아했다.

날카롭게 벼려진 정신은 사람을 사색에 잠기게 만들고, 낮에는 할 수 없었던 생각을 하게 만들고, 낮에 사람이 가져야 할 감각 외의 것을 더 날카롭게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었으니까.

오감 외의 것으로 귀신을 느낄 수 있게 만들고, 귀신의 존재를 더 또렷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들고, 귀신이 활동하는 것을 느끼고 있자면 죽음이라는 것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의 곁에서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주었으니까.

죽음, 죽음, 죽음.

죽음을 탐구하는 구도자가 마땅히 알아야 하는 미지.

그것을 잠시나마, 밤이라는 짧은 시간에나마 조금 더 선명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새벽녘이 밝으면 옅어지는 어둠과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 존재감이라곤 하지만, 잠시나마 그것이 자신에게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죽음의 숨결을 느끼자면.

죽음의 기척이 멀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아아, 죽음을 탐구하고 미지를 탐구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새롭게 다시 쌓아 올려지고, 낮 동안 조금이나마 무뎌졌던 각오가 다시 날카롭게 벼려진다.

그렇기에 밤이란 참으로 좋은 시간이다.

목표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니.

필연적으로 찾아오며 정신을 연마하고 갈고닦게 만드는 것이니.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이 짧고도 긴 시간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축복받은 시간은 오롯이 그의 것이 될 수는 없다.

밤이라고 해도 손님이 방문할 수 있었으니까.

모든 것이 잠든 고요한 이 밤에도, 손님은 찾아오는 법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손님은 살아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죽어있는 귀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혹은….

살아있지도, 죽지도 않은 무언가이기도 하다.

"왔는가."

모리스는 자신에게 찾아온 손님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어두컴컴하고 좁은 골목길을 통과하고 있었다.

낡아빠진 후드티를 푹 눌러쓰고.

청바지를 질질 끌 듯이 움직이며.

낡아빠진 배낭을 맨 채, 배낭의 무게에 허덕이듯 허리를 숙인 채 그렇게 앞으로,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가로등의 불빛이 비치며 인공적인 피부 질감이 스치듯이 지나간다. 사람의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것은 아닌 하관이 잠시 드러났다가 어둠에 다시 잠기고, 앞으로 움직임과 함께 흔들흔들 몸이 흔들린다.

그 움직임은 술에 취한 사람과 흡사한 것이라.

모리스를 찾아온 그것은 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처럼, 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는 허수아비처럼 그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렇게 모리스의 앞에 도착한 인형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가면을 실제 얼굴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이밀었다. 뻥 뚫린 구멍 뒤편으로는 마른 나뭇가지와 덩굴이 품은 갈색밖에 보이지 않는 눈을 움직여 모리스를 바라보았고, 꿈틀대는 덩굴로 입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말을 하는 것처럼 흉내를 내었다.

그것은 그것이 자신이 올바르게 도착하였음을 확인하는 하나의 절차라.

절차가 끝난 순간 인형은 제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쓰임새가 끝을 맺었다.

풀썩.

쓰임새가 끝난 것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몸이 무너져내렸고, 사람의 형체는 온데간데없이 지저분한 쓰레기와 옷가지들이 널브러진 자그마한 언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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