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454화 (454/526)

그 비극은 끔찍한 형태로 찾아왔다.

모습을 여러 번 바꾸며, 남자가 적응할 수 없도록 그를 괴롭히며, 그렇게 다가왔다.

가장 먼저 남자가 목도한 비극은 바로 변호사였다.

남자의 아내를 죽인 범인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을 기업의 회장 아들이었다.

나름 유복한 집안이었던 남자의 집안조차도 반딧불이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재력을 가진 거대 기업 회장의 자식.

더더욱 비극이었던 것은, 이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범인이 그 기업 회장의 편애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었으며, 거기에 더해 '이 사건이 이슈화되면 기업에 악영향이 갈 것이다. 그건 막아야만 한다.'라는 논리에 의해 거대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사고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잘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이 사고의 책임이 오직 이 가여운 청년에게만 있는 것이겠습니까? 이 창창한 나이의 청년이, 한창 빛나야만 하는 나이의 이 젊은 청년이 이렇게 되게 된 것은 사회에도 책임이 존재합니다. 이 사고가 일어난 부분적인 책임은 이 청년이 마약에 빠지게 만든 환경에, 청년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했던 부모에게, 제대로 사회의 일원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못한 학교에, 그리고 이 청년을 여기까지 내몬 사회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

범인은.

남자의 가정을 한순간에 파괴해버린 청년은, 솜방망이 같은 처벌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그 솜방망이 같은 처벌조차도 감형을 거듭하고, 가석방을 거치며 한없이 가볍게 변해버렸다.

그것은 자본주의로 쓰인 면죄부였다.

그리고 그다음 남자를 찾아온 비극은 이 일을 묻기 위한 거대 기업의 공격이었다.

기업은 언론과 사람을 동원해서 남자를 공격했다.

기업에서 거액의 돈을 합의금으로 제시했음에도 거절하고 더 큰 금액을 불렀다느니, 아내와 배 속의 아기를 팔아서 한탕 하려는 사이코패스라느니, 아내가 죽었음에도 휴가는커녕 바로 일을 나가는 냉혈한이라느니….

기업은 온갖 거짓을 떠들었고, 남자의 흠결을 부풀렸고, 남자의 행동을 왜곡하며 공격했다.

그렇게 남자는 쓰레기가 되었고,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쫓겨나게 되었다.

한때는 아내와 곧 태어날 아기와 행복하게 지낼 희망에 부풀었던 집을 헐값에 팔아넘긴 채, 그렇게 쓸쓸하게 사라져버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리막길에는 가속이 붙는 법.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업 쪽에서 힘을 쓴 것인지 그는 직장을 잃게 되었으며, 인터넷에 신상이 쫙 퍼지며 온갖 비난을 받았다. 거기다가 범죄자라고 보기 힘든 수준의 이능을 익힌 강도가 그를 찾아와서 그나마 남은 금품마저 갈취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평범했던 남자가, 아무 잘못이 없었음에도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남자가 나락으로 굴러떨어졌을 때 느낀 것은 절망이 아니었다.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들이 가득했던 시절에 느낀 것은 열등감과 절망이었건만.

주위에 빛으로 가득 차 있을 적에 느꼈던 것은 끔찍할 정도의 부정적인 감정이었건만.

정작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남자가 느낀 것은 몸과 정신을 태워버릴 것 같은 강렬한 감정이었다.

복수?

아니다.

복수같이 질척하고, 진하고, 크게 타오르는 감정이 아니다.

분노?

그것 또한 아니었다.

몸을 떨리게 만들고, 눈앞을 핏빛으로 물들이고 몸의 감각을 없애버릴 강렬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일찍이 그가 느꼈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아직 꿈을 잃지 않았을 무렵, 자신의 재능에 확신을 가졌을 그 시기,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잠시 그를 지배했던 것과 흡사한 감정. 하지만 비슷하기는 하나 묘하게 다른, 묘하게 비틀린 감정.

이것을 무어라 해야 할까.

향상심과도 비슷하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깨달음을 얻은 것 같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어쩌면 그 둘이 뒤섞이고 뒤섞여서 세상에 없던 감정이 탄생한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감정은 그가 제정신을 잃게 되었을 때, 그가 미쳐버렸을 때 온몸으로 퍼져나간 광기일지도 모른다.

그래.

광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광기는 참 뒤틀려 있는 것이라.

뜨겁지도 않지만 차갑지도 않은 것이라.

마치 공기처럼 제자리에 있고, 흐르기는 하되 항상 같은 밀도를 유지하려 하고.

빈자리가 생기면 그곳을 메꾸려 하고, 넘치면 주위로 흐르게 만드는 성질을 가진 것이라서.

그래서, 그 광기는.

남자에게 찾아온 그 광기는 의무의 성질을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남자는 광기에 휩싸인 채, 평생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에 손을 뻗었다.

주술(呪術).

이능을 익힌 이들이라면 마땅히 피해야 하는 것.

대가를 요구하며 몸을 뒤틀고, 병을 가져오는 힘.

주술의 대가는 가혹한 것이다.

그리고 이 대가는 평범한 사람보다, 이능을 익힌 이에게 더더욱 가혹한 것이다.

몸이 뒤틀린다.

체질이 변한다.

단전이 터져나가고, 뒤틀리고, 찌그러진다.

혈맥이 막히고, 일그러진다.

마력이 오가야 하는 통로가 막히고, 뭉치고, 찢긴다.

몸이 뒤틀리고, 영혼이 뒤틀리고, 소환수의 사랑이 멀어진다.

그렇기에 능력자들은 주술을 멀리한다.

가장 사용하기 쉬운 능력이지만.

방법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 재능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지만.

대가를 지불할 각오만 있다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힘이지만….

그 대가는 끔찍할 정도로 가혹한 것이었으니까.

축복받은 체질을 뒤틀어 천재의 재능을 범재의 재능으로 바꾸고, 모은 에너지를 한순간에 날려버리게 만들고, 혈맥을 뒤틀어 주화입마를 일으키고, 가지고 있지도 않은 병마와 싸우게 만들고, 수명을 깎아내리고 무능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주술에 손을 댔다가 망가진 이들의 예가 많으니….'

하지만 남자는 주술에 손을 댔다.

광기에 지배당한 채, 혹은 광기를 지배한 채 주술에 손을 뻗었다.

그렇게 평범한 마법사였던 남자는 귀신을 자기 몸에다가 쑤셔 박고 부리는 빙의술사가 되었다.

비극이 탄생시킨 주술사였다.

'하지만 그런 비극이 있었음에도 그는 복수귀가 되지 않았지.'

하지만 비극은 남자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 없었다.

그 비극이 끔찍한 것이었음에도, 남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그를 나락으로 처박는 것이었음에도.

남자는 복수에 미치지 않았고, 분노에 휩쓸리지도 않았다.

남자는 비극 속에서 일어나, 이뤄야 할 목표를 세웠다.

아주 오래 걸릴, 평생에 거쳐서 이뤄야 할….

혹은,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을 거대한 목표를 말이다.

그리고 그 목표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흐음….'

진성은 남자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 남자는 자신이 목숨을 거뒀을 범죄자의 가죽을 뒤집어쓴 채, 이렇게 말했다.

[ 세상에는 지옥이 필요하다. ]

그는 단언했다.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후세계 역시 존재하지 않노라고.

남자는 무신론자였으며, 합리를 중요시하는 마법사 출신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악인을 죽여 사후세계로 보내는 대신, 자신이 영혼을 거두고 고통을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악인을 수용하는 감옥이 되기를 희망했으며, 악인의 영혼을 고문하고 괴롭히는 지옥이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남자는.

비극을 겪었던 빙의술사는, 자신이 세상의 새로운 법칙이 되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사람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마치 사람의 영혼을 수확하는 사신처럼.

필멸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죽음처럼.

그는 범죄자를 찾아가 목숨을 거뒀다.

범죄자의 가죽을 벗겨 입고 다니며 피부의 색을 감췄고, 범죄자의 눈을 뽑아 재료로 사용해 눈동자의 색을 바꿨다. 자기 뼈를 깎고 재생시키며 외모를 변화시켰고, 범죄자의 성대를 뽑아 목소리를 바꾸는 주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영혼은.

죽은 몸에서 빠져나오는 영혼은, 그의 몸에 저장되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 갇혀 끊임없이 고통을 받았다.

그렇게 남자는 자신이 판단하기에 '악인'이라 생각하는 이들을 죽이며 세상을 떠돌았다.

오지를 떠돌다가 악인을 마주하면 죽였고, 그렇지 않다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악인을 재료로 만든 주물을 몸에 걸치고 도시를 활보하며 악인을 수확하기도 했고, 때로는 소문을 듣고, 악인을 찾아 떠돌고 또 떠돌며…계속해서 악인의 영혼을 수집했다.

그리고 마침내 악인의 영혼을 더 이상 모을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왔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강해진 정신력을 가졌던 남자는 평범한 빙의술사보다 많은 귀신을 수집하기는 했으나, 결국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이상 귀신을 모으려고 했다가는 그릇이 깨지거나 몸에 수집해두었던 귀신들에게 몸을 빼앗기게 될 상황.

하지만…남자는, '모아놓은 귀신을 포기한다.'라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수확한 악인을 해방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악인을 수집하는 것을 멈추고 싶지도 않았다.

악인을 수집해야 한다.

세상에는 지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지옥이 되어야만 한다.

남자의 목표는 확고했으며, 남자의 광기는 완전히 의무의 영역이 되어 있었다.

그 의무는 법이 되기를 희망했으며, 법칙이 되기를 갈망하였다.

악인을 해방하지 않아도 되도록.

악인을 더 수집할 수 있도록.

그 갈망의 이름은 광기라.

그리하여 남자는 광기에 몸을 태우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했다.

몸을 태우고, 몸을 바치고, 자아마저 태우며 나아가기를 선택하였다.

그리하여 남자는 인간의 육신에서 해방되고, 일반적인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거대한 그릇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의 형체를 잃어버리고, 부풀고 증식하는 살점이 사방을 뒤덮는다.

손과 발은 기둥이 되고 뿌리가 되어 하늘로 향해 뻗어나가고, 악인을 수확하기 위한 갈망은 행해야 하는 의무가 되어 각인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탈을 벗으며 인간의 한계 역시 벗어던진 몸뚱이는 땅속 깊숙한 곳에서도, 오염된 지상에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뒤집힌 나무의 형상이 되었느니.

그렇게 자신을 죽음이라고 떠들어댔던 남자는 진정한 죽음이 되었다.

자신을 숨기며 돌아다녔던 빙의술사는 고깃덩이로 이뤄진 뒤집힌 나무가 되었다.

그리고 독일의 국회의사당(Reichstagsgebäude)을 박살 내며 나타나 베를린에 있는 악인을 순식간에 먹어 치우며 마침내 지옥(Hölle)이라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은 뒤틀렸고, 지옥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음이라.

지금의 그 남자는 지옥이 아닌 지옥을 갈망하는 이에 지나지 않음이요.

악인을 수확하는 이름 모를 빙의술사에 불과하니.

그는 그저 배회하는 죽음에 지나지 않는다.

오직 악인만을 수확하는.

배회하는 죽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