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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443화 (443/526)

진성은 이양훈이 준 동충하초를 조심스럽게 받고는 허공에 손을 쥐어 구석에 놓인 아이스박스 같은 것을 끌어왔다.

끼익.

진성이 상자를 열자 보인 것은 푸른 빛으로 이루어진 선.

발광하는 푸른빛이 선의 형태를 그리며 상자 안에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아티팩트를 분해했을 때를 보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아티팩트와는 다르게, 상자 안에 그려진 선에는 그 어떠한 의미도 없었다.

그저 멈추어 섰다가 움직이고, 움직였다가 멈춰서고.

사라졌다가 나타나고, 존재하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규칙이 없는 혼돈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선을 따라가다 보면 상자의 바닥이 보인다.

바닥에는 낡아빠진 잡동사니들이 깔려 있었다.

녹슬고 망가진 목걸이.

진흙이 묻은 반지.

손때가 잔뜩 묻은 깨진 시계.

좋게 말하자면 골동품, 나쁘게 말하자면 쓰레기에 가까운 물건들이었다.

그 물건들은 바닥을 가득 메우며 쌓여 있었다.

"그건?"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시선으로 볼 때의 이야기.

이양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보아온 박진성이라는 녀석은 의미가 없는 쓰레기를 소중하게 보물처럼 간직하지 않는다.

아무리 낡아 보이고 쓸모없다고 하더라도 주술과 관련이 되어있으면 보물처럼 여기는 녀석이며, 아무리 값비싸고 금전적으로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고 한들 보물 취급하지 않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런 것을 생각해볼 때, 저 범상치 않아 보이는 상자 안에 들어있는 물건들은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임이 분명했다.

"별건 아닙니다. 그냥 약한 힘을 품은 주물들이지요."

진성은 이양훈의 생각대로 안에 들어있는 것이 쓰레기가 아니라고 답해주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은 나름의 쓸모가 있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쓸모없는 것도 나름의 쓸모가 있는 법인데, 쓸모가 적다고 한들 그것을 쓰지 못 할 일은 아니겠지요. 하여 이렇게 한데 모아두어 증폭시켜놓았습니다."

진성은 그렇게 말하며 이양훈이 준 동충하초를 상자째로 잡동사니들 위에 올려놓았다.

"혹시 냉장고로 쓰려고?"

"그러합니다. 보잘것없는 솜씨로 만들어보았지요."

이양훈은 묘한 눈으로 진성을 바라보았다.

영약을 보관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내다니.

'예전부터 묘하게 학자나 연구자 같은 면이 있기는 했지….'

진성은 가볍게 말하고 있지만, 저것은 그의 말처럼 보잘것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부자들이 본격적으로 영약이나 영물을 관리하는 것에는 당연히 미치지 못할 것이다.

온갖 기술자를 불러서 만든 최첨단 장비에, 인공지능까지 동원한 실시간 관리에, 마공학이나 연금술까지 동원해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니까.

'야매에 가까운 물건이기는 한데….'

하지만 그렇다고 저게 쓸모가 없는 방법인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야전, 혹은 야매로 쓰기 딱 좋은 방법이었으니까.

오랫동안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으되 일정 시간 동안은 품질을 유지하는 게 가능한 방법이었다.

말하자면 필드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경험을 토대로 어설픈 외형으로 만들어낸 물건 같다고 할까.

'하여간 특이한 녀석이란 말이지….'

이양훈은 그렇게 생각하며 상자에서 눈을 거뒀다.

그렇게 이양훈의 차례는 끝이 났다.

"진성아? 보니까 여기 너무 황량하던데 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기는 하니?"

그리고 그다음으로 진성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은 이양훈의 부인들이었다.

그녀들은 친근하고 사근사근하게 말하고 있기는 하나, 묘하게 진성과 거리감이 느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니, 애초부터 이양훈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는 것부터가 진성과의 거리감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진성과 친밀했다면 이렇게 이양훈의 차례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겠는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은 예의를 지키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예의를 지킨다는 것은 허물없이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말도 되는 법이다.

어쩌면 이는 당연할 수도 있다.

회사를 키워오며 수많은 괴짜를 보아온 이양훈조차도 박진성을 특이한 녀석,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라 여기고 있는 상황인데 상류층으로 지내면서 좋은 것만 보아왔던 이양훈의 부인들이 진성을 제대로 감당할 수나 있었겠는가.

한 식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양훈의 부인들은 정이 많고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금방 진성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딸밖에 없는 집안에 갑자기 남자가 턱 하니 들어오고, 하루가 멀다 하고 기행을 벌이고 다니기까지 하니…친해질 수가 있었겠는가. 보기만 해도 기절할 것만 같은 징그러운 벌레를 들고 오는 것은 예사고, 그 벌레를 구워 먹거나 탕을 끓여서 즙을 만든 뒤 이상한 주술을 하지를 않나, 동물을 들고 와서 도축한 뒤 온몸에 피 칠갑하지를 않나….

아무리 정이 많다고 해도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물론입니다. 제때 영양소를 잘 섭취하고 있지요."

"…아니, 영양소 말고. 끼니 말이야."

게다가 행동만 문제가 아니다.

대화 역시 문제였다.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한 진성의 사고방식은 곱게 자란 그녀들이 감당하기에 힘든 것이었다.

대화를 한 번 하고 나면 묘하게 홀리는 느낌이 든다거나, 일반적인 대화보다 기력을 더 많이 쏟은 느낌이 드는 것은 예사. 진성이 말하는 기괴한 말에 정신이 빼앗겨서 머리가 복잡해지는 일도 있고, 진성에게 '징그러운 건 집에서 좀 안 하면 안 되겠니?'라며 쓴소리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그의 페이스에 말려서 영양가 없는 대화만 하다가 끝이 난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이양훈의 부인들 사이에서 진성은 말 그대로 '특이한 사람' 그 자체였다.

4차원에서 온 것 같은…외계인 같은 사람.

"그럴 줄 알았지. 저택에 있을 때도 수시로 밥 거르는 건 기본이고, 영양제만 믿고 제대로 챙겨 먹지도 않더니…."

"받으렴. 내가 여동생 닦달해서 받아온 거란다. 여기 근처에 호텔이 걔 거거든. 거기 가서 끼니 챙겨 먹으렴. 내가 너 얼마나 찾아왔는지 보고받을 거니까 수시로 가서 챙겨 먹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데도 진성은 그녀들에게 있어서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온갖 기행을 벌이고 다니기는 했지만, 그녀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았고, 도리어 도움을 주는 일이 많았으니까.

못된 마음을 품은 인간이 그녀들에게 이상한 성분이 든 화장품을 주었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귀띔해서 피해를 보지 않은 일도 있었고, 종종 점을 쳐준다고 와서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아린과 이세린 자매가 한창 사춘기 때 부모와 갈등을 겪은 적도 있었는데, 그때 중재해주기도 했다.

그런 것을 생각해본다면, 진성은 비록 핏줄이 이어지지 않은 남남이었으되 분명히 식구였고, 가족이었다.

저택을 떠난 이후 빈자리가 느껴질 정도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렇기에 부인들은 진성에게 묘한 어색함을 느끼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친밀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진성. 피부 관리하라고 내가 그렇게 말했을 텐데 제대로 하질 않은 것 같구나."

"화상이 문제가 아니야. 평소에 피부 관리를 제대로 안 한 게 드러나 있잖아."

"여기 연구소에서 받아온 녀석이다. 아직 출시하지는 않았는데, 피부진정이랑 보습에 엄청난 효과가 있더구나."

"그리고 이건 프리미엄 라인에서 잘나가는 녀석인데, 미백이랑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어. 잔뜩 가져왔으니까 아끼지 말고 쓰렴."

그녀들은 진성에게 잔뜩 선물을 건넸다.

호텔 레스토랑 이용권에서부터 아직 시판되지도 않은 화장품, 성능에 비례해서 가격 역시 '프리미엄'이라는 말에 모자람이 없는 고가의 화장품까지.

그리곤 진성이 그것을 받아 선반에 올려놓자 그제야 만족했다는 듯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곤 이양훈의 근처에 자리 잡은 채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마치 이제야 좀 이 장소에 익숙해졌다는 듯이 말이다.

진성은 그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세린과 이아린이 빠진 그들의 모습을.

그리곤 고개를 돌려 층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슨 사고를 치고 있을지 모르는 두 사람을 찾기 위해.

덜컹.

덜컹덜컹.

"이거 안 열리는데? 야, 이거 여는 법 알지?"

"응. 알아."

"아니 안다고 대답만 하지 말고, 좀 열어보라고. 냉장고에 자물쇠가 걸려있다니까? 넌 이거 궁금하지도 않아?"

"싫어."

"너 이거 여는 법 모르지? 모르니까 그러지?"

"아니야. 알아."

"아니, 모르잖아."

"알아. 바보는 못 여는 자물쇠인 거. 나는 열 수 있어."

"그러면 나는 열 수 있고 네가 못 여는 거 아냐?"

"아니야. 멍청이 아린만 못 열어."

"응 아니야. 나도 열 수 있어. 자물쇠는 부수면 그만이야."

"…이 짐승 대가리야. 바보 같은 짓 하지 마."

아니나 다를까, 둘은 냉장고 앞에서 사고를 치려고 하고 있었다.

이아린은 오라비가 이곳에서 뭐 먹고 사는지 궁금하다면서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것을 궁금해하고 있었고, 그 옆에 선 이세린은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자제력을 발휘해서 이아린을 말리고 있었다.

평소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애를 쓰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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