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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439화 (439/526)

그들은 필사적으로 버텼다.

저 빌어먹을 흉물(凶物)들에게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저 잡스럽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괴악한 것들이 역장을 뚫고 베이스캠프로 침범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들이 침범한다고 해도 물리력으로 상대를 할 수야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저 악귀들을 물리력으로 퇴치하겠다고 호기롭게 외칠만한 이들은 없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말이다.

쿵-!

쿵-!

쿠웅-!

하지만 무인을 탓할 사람들은 없었다.

아무리 그들이 배에 타고 있을 때 용맹을 자랑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자신의 무공이 얼마나 강력하고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을지라도.

쿵-!

쿠웅-!

저 끔찍한 것을 보라.

악의(惡意)를 담아 사람을 짓뭉개고 반죽해서 만든 것 같은 저 괴악하기 짝이 없는 것이 눈앞에 있다.

살의와 욕망을 품은 채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침이 뚝뚝 떨어지는 입가에서 썩은 물을 줄줄 흘려대며 역장에 박아대고 있는 저 끔찍한 것들을.

잠수함 안쪽에서 심해의 괴물을 맞이한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수족관 너머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괴물을 보았을 때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벽이 있다.

벽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게 무에 소용이 있단 말인가.

저 얇디얇은 벽은 그저 배터리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을 뿐이거늘.

저들은 언제고 저 얇은 벽을 부수고 그들에게 들이칠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저것들은 괴물의 성대로 이상한 진동을 발하며 끔찍한 소음을 내며 환호를 지르고, 몸을 구르고 팔다리를 지네처럼 움직여 그들에게 기어 오겠지. 그리고 입을 쩌억 벌리고 그들을 한입에 베어 물려고 하거나, 팔다리를 이용해 그들을 짓뭉개고 몸을 갈기갈기 찢으려 하리라.

아, 얼마나 끔찍한가.

얼마나 역겨운 장면인가.

원시에 사람이 아무런 힘이 없을 적 맹수를 맞이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으리라.

무기 하나 없이, 몸에 걸친 갑옷 하나 없이 맹수를 맞닥뜨렸을 때 이런 기분이었으리라.

모골이 송연해지고, 오금이 떨리고, 도망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이 느낌.

이 느낌은 항거할 수 없는 존재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인간의 본능이라.

이 기분을 모두가 느끼고 있거늘.

도망치고 싶다는 느낌을 모두가 느끼고 있거늘.

어찌 저 무인들에게 화살을 돌릴 수 있을까?

어찌 용맹을 뽐냈던 저들을 욕할 수 있을까?

저들도 자신과 똑같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오히려 그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무인들이 낮과 똑같았다면.

그때처럼 힘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바깥으로 나가서 저들을 단칼에 썰어버리겠다고 나섰다면 오히려 문제가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딱 봐도 저 악귀 떼는 데리고 온 무인들로는 상대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악귀 하나에 무인 서넛은 붙어야 어떻게 비벼볼 수 있을 수준이라고 할까.

그런데 보라.

저 바글바글한 악귀들을.

못해도 열은 되어 보이지 않는가.

자신이라면 할 수 있다며 나간다면 끔찍한 죽음뿐이다.

개미 떼에 던져진 보드라운 케이크 조각처럼 갈기갈기 찢겨서 저들의 손에 들리게 되겠지.

그렇게 된다면 악귀를 상대할 수 있는 소중한 인원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베이스캠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사기에도 큰 문제가 생기게 되리라.

지금에야 베이스캠프를 지키지 못한다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필사적으로 나오지만…. 만약 멍청한 무인이 역장 밖으로 나갔다가 몸이 갈기갈기 찢겨서 죽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게 된다면, 아마 정신을 놓거나 기절하는 인원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반쯤 자포자기한 채 역장 밖으로 뛰쳐나가 저들과 싸우다가 산화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히려 지금이 좋다.

지금이, 훨씬 좋다.

퐁-!

콰아앙-!

타타타타탕-!

힘을 과신하지 않고.

자신의 분수를 깨닫고 얌전히 안에서 지원사격을 하는 바로 지금이 그런 최악의 상황보다는 백배 나았다.

타다다당-!

"하, 총알을 이렇게 뿌려대는데 쓰러지질 않는군. 빌어먹을 놈들."

"아니, 효과가 있기는 합니다. 근데 저 빌어먹을 살덩이가 반쯤 액체처럼 보이니까 문제지."

"내 말이 그 말입니다. 총알을 쏴 재끼고 유탄을 몸에 처박고 터뜨리면 뭐 합니까? 살덩이가 꾸물꾸물 움직여서 재생하는데."

"그래도 일단 쏩시다. 움직이는 것을 방해라도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것들도 어디 마르지 않는 샘물에서 힘을 퍼다 쓰는 건 아닐 거 아닙니까. 계속 때리다 보면 재생을 못 하는 시점이 올 겁니다. 그리고 아예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특수탄이 있으니까."

"좀 적기는 한데…."

물론 무인의 지원이 엄청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독도에 온 무인들은 냉병기를 주로 다루는 이들.

총기에 기를 실어서 싸우는 방법 따위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임시방편으로 총알에 기를 두르거나 기를 넣을 수도 없다.

총알에 기를 싣거나, 기로 총알 형태를 만들어 쏘는 데는 요령이 필요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요령을 알고 있는 이들이 없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일반적인 병사처럼 총을 장전하고 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나가는 총알은 평범했다.

누구나 쏠 수 있고, 누가 쏘아도 위력이 똑같다는 장점이 단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무인의 손에서 나간 총알은 차가운 납을 악귀들에게 박아넣었다.

악귀의 피부는 딱딱하지 않았기에 총알을 너무나도 쉽게 허용해주었고, 몸에 납탄을 아무 저항 없이 꽂히게 했다. 탄환은 회전하면서 악귀의 몸을 휘저으며 박히거나 관통했고, 그때마다 악귀의 몸에 구멍을 하나씩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때뿐.

악귀는 녹아내리는 살점을 꾸물꾸물 움직이며 순식간에 구멍을 메꿨다.

유탄 역시 마찬가지.

유탄은 악귀의 근처에서 폭발하기도 하고, 악귀의 몸에 박힌 뒤 터지며 악귀에게 충분한 피해를 줬다. 폭발은 악귀의 몸에 손실을 만들어내었고, 유탄이 터지면서 사방으로 퍼진 파편은 악귀의 몸에 꽂혔다.

하지만 손실은 만들어냈을지언정 제대로 된 타격은 아니었다.

총알과 마찬가지로 살점이 꾸물꾸물 움직이며 다시 원상복구가 된 것이다.

아니, 원상복구 되는 것뿐만이 아니다.

모양이 뭉그러진 찰흙 조각상처럼 기괴하게 형체를 바꾸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바꾼 형체로도 잘만 움직이며 역장에 달려들었고.

끔찍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무인들이 총을 쏘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특수탄이라는 희망이.

"저거 힘을 모아서 역장 후려치는 거 같지요?"

"특수탄을 써야겠습니다."

여러 종류의 특수탄.

마공학으로 만들어낸 탄환.

음양술의 힘이 깃든 탄환.

성직자들의 축복이 서린 탄환.

영능력자들이 힘을 불어넣은 탄환.

그 종류는 다양했고, 그 위력도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철컥.

타앙-!

일반적인 탄환과는 다르게 악귀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것.

무인들이 손에 들고 있는 총이 불을 뿜고 특수탄을 날려 보냈다.

역장을 통과해서 날아간 특수탄은 악귀들의 몸에 틀어박혔고, 그와 동시에 자신들이 품은 힘을 발산했다.

퍼어엉-!

할로 포인트(Hollow Point) 탄환에 냉기 마법이 인챈트 된 탄환이 터졌다.

화산의 분화구처럼 패인 탄두에 충격이 가해짐과 함께 탄이 납작해지고, 찌그러지는 탄환은 안에 있는 인챈트를 특정 모습으로 바꾸며 마법의 효과를 발동시킨다. 마법진은 찰나의 순간에 발동하며 어마어마한 냉기를 뿜어내고, 탄환 내부에 있는 특수 물질에 반응하며 어마어마한 부피로 늘어난다.

그 결과는 폭발.

남극의 강추위를 연상케 만드는 냉기의 폭발이다.

냉기는 폭발하며 악귀의 몸을 뒤흔들었고, 흘러내리는 악귀의 살점을 꽁꽁 얼려버렸다.

외부의 살점이 아니라, 몸 내부를 말이다.

그렇게 얼어붙은 악귀는 움직임을 멈췄다.

물리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은 물리력에 구속되기도 한다는 것.

악귀는 얼어붙은 것은 움직일 수 없다는 법칙을 그대로 따른 채, 그렇게 굳어버렸다.

석상처럼.

"하, 제대로 얼지도 않았군. 진짜 무슨 놈의 악귀가…."

하지만 이것도 일시적이다.

일반적으로는 얼음 동상이 되어서 죽어버려야 정상이건만.

저 빌어먹을 악귀는 커다란 몸집과 끔찍할 정도로 강인한 능력 때문인지 그냥 잠깐 움직임이 멈춘 것으로 그쳤다.

아마 시간이 흐르면 저 냉기를 녹여버리거나 적응할 테고, 다시 움직이겠지.

역장을 부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도 써야지요. 잠깐의 시간이라도 소중하니까…."

"쯥. 특수탄 좀 많이 달라고 할걸…."

무인들은 사람이라면 한 방 제대로 얻어맞는 순간 죽어버릴 끔찍한 탄환에도 멀쩡한 악귀들을 보며 학을 뗐다.

도대체 얼마나 강하길래 저런 거냐면서 말이다.

그리고 저것들을 제발 직접 상대할 일이 없기를.

무사히 날이 밝을 때까지 버틸 수 있기를 기도하며 계속해서 탄을 쏘았다.

기본적으로는 일반탄을.

그리고 중간중간 귀한 몸인 특수탄을.

그렇게 그들은 너무나도 길게 느껴지는 밤을 보냈다.

영원할 것만 같은 밤을 말이다.

그리고…마침내 밤이 지났다.

캬아아아악-!

저 멀리서 동이 튼다.

별빛과 달빛마저 지워지는 끔찍한 어둠이 내려앉은 후, 마침내 동이 텄다.

저 멀리 불그스름한 빛이 번지고, 하늘이 푸르고 붉게 물들며 둥근 눈동자가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 저 이글거리는 불꽃이여.

찬란한 여명이 열리자 삿된 것들이 두려워 모습을 숨기는구나.

끼야아아악-!

악귀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어디론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직 햇빛이 닿지 않는 어둠으로.

자신들이 낮 동안 몸을 숨길만 한 곳으로 가기 위하여.

그렇게 악귀들이 물러난다.

찬란한 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해와 함께 사라져간다.

그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면서도 믿기지 않는 것이라.

베이스캠프에 있던 능력자들은 악귀들이 모두 모습을 감추고도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 자신들이 보는 것이 꿈은 아닌가.

저 악귀들이 자신들을 안심시킨 뒤 방심했을 때 덮치려고 수작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그들은 한참이나 우두커니 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따스한 햇볕이 그들의 피부에 내려앉을 때까지.

그들의 온몸에 생명의 따스함을 전해줄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정신을 되찾은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남았음을 깨달았다.

"배, 배터리 잔량…. 3%…."

"3%? 와, 씨발…."

그것도 아주 가까스로 말이다.

조금만 더 시간이 끌렸더라면.

능력자들이 한데 뭉쳐서 악귀들을 견제하고 역장에 타격을 가하지 못하게 방해하지 못했더라면.

만약 그랬더라면 그들은 악귀들을 직접 상대해야 했으리라.

그렇다면 반드시 사상자가 나왔을 테고.

하지만…그들은 살아남았다.

역장을 유지한 채, 털끝만큼의 피해도 없이.

아무런 다친 이들도 없이.

그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으아아아아! 우린 살았어, 살았다고! 씨발!"

그들은 광란 속에 잠겼다.

광란의 외침을 외치고, 또 외쳤다.

살아남았다고.

자신들은 살아남았다고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생존의 기쁨을 누리고 또 누렸다.

무언가 하나가 떠오르기 전까지 말이다.

"잠깐만, 그 둘은…?"

"둘…? 어, 잠깐만…!"

악귀들이 습격해오기 전에 역장 밖으로 나갔던 두 사람.

한국의 주술사, 박진성.

일본의 신관, 사이고.

그 둘이 없다.

"씨발…. 죽은 거 아니야?"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긴장이 탁 풀려 있던 이들의 눈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찾아야 해."

"씨발, 그래. 찾아야지…."

둘을 찾아야만 한다.

상처를 입었다면 치료를.

죽었다면 시체라도 수습해야만 한다.

"…최대한 빨리 준비하고, 수색 시작합시다."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명횡사했을 가능성이 큰 두 사람을 찾기 위해서.

생존한 채로 발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불가피하게 죽었다면 시체라도 수습해주기 위하여.

그렇게 그들은 무거운 마음을 마음에 안은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이스캠프의 밖으로.

그들을 지켜주던 역장을 넘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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