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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430화 (430/526)

주물(呪物)이란 주술로 만들어낸 물건이다.

그것은 단순히 공장에서 찍혀나오는 모양만 그럴듯한 부적이 아니라, 실제로 주술적 효과가 있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주술적 효과'는 주술사가 어떠한 효과를 바라고 주물을 만들었는지, 어떤 주술로 만들었는지에 따라서 다르다.

가진 사람의 컨디션을 향상해주거나, 사소한 행운을 불러오거나, 삿된 것을 물리치는 파사의 힘을 품고 있거나, 몸에 빙의하고 있는 악령을 내쫓을 수 있는 퇴마의 힘을 가지고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저주를 품어서 주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끔찍한 재앙을 불러오거나, 주위 사람들을 죽이거나 주물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일종의 '표식'처럼 작용해서 악령이나 악귀를 끌어들이는 미끼가 될 수도 있었고.

이렇듯 주물은 그 능력도, 힘도 다양한 물건이다.

그리고 이런 물건이 당연히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같은 취급을 받을 리가 없다.

위험한 주물은 삼엄한 경계 속에서 관리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일반 사람들이 탐낼만한 힘을 발휘하는 주물은 고액에 팔려나가 부자들이 애지중지 끼고 다니는 보물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전쟁에서 쓸만한 물건은 일종의 '전략 물자' 취급받기도 했다.

마법으로 만드는 아티팩트와는 다른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물건.

당연하게도 때에 따라서는 아티팩트 이상의 효율을 보여줄 수도 있고, 위기의 상황을 뒤집을 수도 있는 열쇠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기에 가치 있는 주물은 나라나 대기업이 직접 관리한다.

주물이 품고 있는 능력.

거기에 유물로서의 가치와 학술 가치까지.

주물은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진성은 주물이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을 그리 기꺼워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주물이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은 좋다고 여기되 그렇게 아무에게도 공개되지 않고 폐쇄적인 곳에서 관리된다는 사실을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 이유?

별거 없다.

그렇게 폐쇄적인 곳에 주물이 처박혀 있으면 접근할 수가 없지 않은가.

주물의 유물로서의 가치?

인정한다.

학술 가치?

인정한다.

품은 능력의 가치?

그것 역시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 가치라는 것도 사용하고, 연구하고, 보고 느껴야 생기는 것이다.

창고에 처박혀 있다면 그것이 땅속에 파묻혀 있는 돌덩이와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진성은 적절한 때를 노리고 있었다.

또한 이는 사소한 부수입이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의 전면전을 막고, 미래에 일어날 비극을 가벼운 다툼으로 끝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아주 사소한 부수입 말이다.

"옴 바즈라 파흐르 가가나 마라 훔."

어쩌면 사소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 * *

경기도 파주는 평화로웠다.

경의선을 타고 쉼 없이 돌아다니는 군인들의 모습과 파주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

그리고 파주로 관광을 온 외국인들과 관광버스의 모습까지.

파주는 평소와 한 치도 달라진 것이 없이, 너무나도 평화롭고 평온했다.

군인들은 각자의 얼굴에 각자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움직인다.

설렘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은 휴가를 나오는 이들이었고, 미련을 뚝뚝 흘리고 있는 이들은 부대로 복귀해야 하는 이들이었다. 피곤함에 찌든 군인들은 장교들이었으며, 무언가 거동이 불편하거나 정신적 피로에 휩싸인 이들은 최전방에서 귀신을 상대한 이들이었다.

외국인들은 기대를 잔뜩 품으며 파주를 돌아다닌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렌터카를 타고 파주가 자랑하는 관광 명소를 쉼 없이 돌아다니며 이국적인 풍경을 즐기고 있다. 북한이 멀쩡히 존재했을 적 파놓았던 땅굴 속을 탐험하기도 하고, 땅굴을 다 탐사하고 밖으로 나와 좁은 땅굴에서 굽힌 허리와 목을 주무르기도 한다.

귀신에게 홀릴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해가 쨍쨍하게 떠 있는 동안에만 이용할 수 있게 해놓은 망원경을 통해 이북 지방을 관찰하기도 했고, 정화와 지뢰 제거 작업이 완벽하게 끝난 DMZ를 발로 걷거나 모노레일을 타고 이동하면서 구경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 머리통만 한 나방이 나무나 바닥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 기겁하기도 했으며, 정글에서나 볼법한 크고 길쭉한데다가 화려하고 털까지 무성하게 자라있는 벌레를 보고 혼이 빠질 듯 놀라며 비명을 내지르기도 한다. 게다가 큼지막한 애벌레가 동물처럼 끼익 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에 소름 끼쳐 하기도 하고, 장식인 줄 알았던 거대한 나방이 날개를 퍼덕이며 위협적인 소리를 내었을 때 기절초풍하기도 한다.

그렇게 파주는 평소와 같았다.

그래.

평소와 같았다.

얼핏 보기에는 말이다.

"Paju, 뭐 나쁜 곳은 아니군."

"Paju가 맞나? Faju? Pajyu? 뭐, 아무렴 어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누가 알 수 있을까.

평화로워야 하는 일상 속의 풍경에 이질적인 존재가 끼어들었다는 사실을.

"활동해야 할 지역 이름보다야 정보가 더 중요한 거 아니겠어?"

그들은 외국인의 모습으로 일상에 끼어들었다.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 끼어 이질감이 없는 모습으로 침투하였으며, 건장하고 거친 외모 역시 관광객이 할법한 옷차림으로 휘감아 의태를 하고 있었다. 마치 독을 품은 뱀이 땅과 낙엽 사이에 몸을 숨겨 의태를 하듯이 말이다.

관광객의 옷차림.

밝고, 화려하고, 실용적인 옷.

캐리어는 여행을 자주 다닌 것처럼 낡은 데다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기까지 하다.

게다가 등에 메고 있는 커다란 배낭은 조금 낡긴 했어도 빵빵하게 가득 채워져 있는 내용물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해 보인다.

하지만 누가 알 수 있으랴.

저 관광객의 옷 안에 무기가 있음을.

저 캐리어 안에 폭발물과 재료가 들어 있음을.

저 배낭 안에 밀수로 들여온 장비가 들어 있음을.

"조금 있으면 EENT(End Evening Nautical Twilight)로군."

그들은 품 안의 날카로운 칼날을 숨긴 채, 독이 잔뜩 묻어있는 송곳니를 안에 감춘 채 그렇게 무해한 것처럼 의태하고 있었다.

의뢰인이 오기를 기다리며.

자신을 용병으로 고용한, 고용주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날이 어둑해지고, 세상이 푸른 빛에 휩싸이고,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이는 그때까지.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을 때.

바스락.

어두컴컴한 나무 사이에서 무언가가 인기척을 내었다.

그것은 야생동물과 비슷한 소리를 내면서 움직였으되 노린내가 없었으며, 생물처럼 움직이되 다리가 여럿 달린 곤충이라도 되는 것처럼 소리를 내었다.

그러면서도 몸뚱이는 커다란 것처럼 작지 않은 소리를 내었고, 나뭇잎을 헤치고 곧게 뻗어있는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움직이며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한 무언가였다.

그것은 갑옷처럼 무언가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어둠과 한 몸이라도 되는 것처럼 검은 광택을 품고 있었다.

검은 광택의 갑옷 표면은 사람의 시선에 따라 이리저리 빛을 바꿔가며 기묘한 빛을 품고 있었고, 그 색은 얼핏 바퀴벌레의 갑각을 연상시키게 만드는 혐오스러운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황금빛은 실제 금이라도 되는 것처럼 찬란한 빛을 품고 있었으되 빛을 직접적으로 비추는 것이 아니라면 빛을 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갑옷의 위에.

응당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하는 머리통은 더더욱 기괴하였으니.

그것은 혐오스러운 벌레의 모습을 수십 배로 확대해서 가면으로 만든 것처럼 기괴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B급 공포 영화에서 곤충을 주제로 크리쳐를 만든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공포 영화에 나오는 것이 맞지 않나 싶을 정도로 이질적이고,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외형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보라.

저 사람의 모습을.

꼽추라도 되는 것처럼 등이 한껏 굽어 있고, 등과 다리에는 거미의 다리와 비슷한 것이 뻗어 땅을 받치고 있다.

그냥 소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듯 거미 다리는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저 존재가 움직이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고, 나뭇잎을 뚫고 나뭇가지를 밀어내며 그가 가야 할 길을 열어주고 있다.

그렇게 움직인다.

저 사람인지 벌레 괴물인지 모를 것이 움직인다.

얼굴에 뚫어놓은 눈구멍에서는 시퍼런 불길이 넘실넘실 춤을 추고, 맹수라도 되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빛내며 그렇게 움직인다.

거미의 다리를 움직이고, 두 다리를 움직이고, 굽은 등으로 저벅저벅 나뭇잎을 밟아가며 그렇게 그들 앞에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며-

"흐. 모두, 모였군…."

-말을 한다.

"준비는, 끝났나…?"

그것은 말했다.

쇠를 날카로운 못으로 긁어내는 듯한 듣기 싫은 소음을 목소리로 쥐어짜며, 귀에 틀어박히고 뇌에 강렬하게 각인되는 소리로 질문했다.

준비는 끝났냐고.

곧 해야 할 '작전'에 차질은 없느냐고.

혹여 변수가 있지는 않냐고.

그리고 이러한 '고용주'의 말에 팀을 이끄는 팀장은 답했다.

"물론.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클라이언트(Client)."

팀장은 단언했다.

준비는 완벽하다고.

당신이 요구한 준비물을 모두 준비했으며, 변수도 없으며, 모두 최상의 컨디션이라고.

그리고 이러한 단언에 괴인(怪人)은 히죽 웃었다.

시퍼렇게 타오르는 눈을 굽혀 곡선을 만들었고, 눈웃음을 치듯 그들을 바라보며 기쁘다는 듯 웃었다.

"흐."

그리곤 그는 고개를 들어 '목표'를 바라보았다.

전기 철조망이 쳐져 있는 건물을.

"지금 움직이면, 딱 좋겠구나…."

그렇게 괴인과 용병들은 움직인다.

건물을 습격하고, 안에 있는 것을 빼앗기 위해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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