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417화 (417/526)

미국은 둘이 전쟁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 황급히 그들을 제지했다.

꽤 서둘렀던 모양인지 의례적으로 들어가야 할 외교적 수사는 거의 없었고, 대신에 매우 직설적이기 짝이 없는 문장들로 이루어진 말을 사용하기까지 했다.

『 통일 대한민국 대통령, 일본국 총리. 현재 미합중국은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감에 큰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저 짧은 문장이 왠지 모르게 『 이 씹새끼들아. 너희 미쳤어? 』 라는 욕설로 읽히는 것은 착각일까?

『 …두 나라가 무력을 사용한 국가 분쟁에 돌입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소. 하여 미합중국에서 두 나라에 중재하기로 결정, 파견단을….』

미국은 두 나라에 매우 강경하게 의사를 표출했다.

너희가 뭐라고 하던 지금 들을 생각은 없고, 일단 중재하라고 보냈으니까 무조건 이 빌어먹을 대치를 멈추라고.

이 빌어먹을 전쟁을 벌일 생각을 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억제력'을 함께 보내기까지 했다.

『 …두 나라가 군사적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으니 파견단의 안전을 위하여 확실한 호위를 붙이기로 하였소. 하여 제7함대와 함께 이동할 것이며, 7함대는 오키나와 미군 기지를 거점으로 삼아….』

제7함대.

미 해군 태평양 함대 산하의 주한 미 해군과 주일 미 해군을 구성하는 전투 부대.

그 자체만으로도 세계 7위의 해상전력을 선보일 수 있는, 괴물 같은 함대.

그 함대가 파견단의 '호위'로 붙었다.

물론 그 호위가 진짜 호위로만 끝날지, 그렇지 않으면 '참으로 불행하지만, 부득이하게 파견단의 안전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뉴스에 실리는 사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 * *

"쯧."

미국이 무려 제7함대를 움직인다는 강수를 두자, 한국과 일본은 못마땅해하면서도 무기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서로의 수도에다가 폭격을 갈겨도 시원찮았지만, 정말 그랬다가는 미국의 눈이 뒤집힐 것이 뻔했으니까. 그렇게 된다면 '호위'로 따라온 제7함대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하여 부득이하게 나설 수밖에 없게 될 것이고, 막강한 해상전력을 사용해 항구와 해군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다닐 것이다.

게다가 항공모함도 있으니, 전투기도 마구 돌아다니면서 남의 나라 하늘을 안방처럼 누비고 다닐 것도 분명했고.

차라리 거기서 그치면 다행이다.

경제제재, 해상 봉쇄 등이 이어지면 그대로 나라가 고사해버린다.

현재 대한민국과 일본은 육로로 무역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일본은 섬나라이니 당연히 육로를 사용할 수 없었고, 대한민국은 지도로는 대륙과 연결이 되어있기야 했지만, 악령과 악귀들에 의해 이북 지방이 점거당한 상태라 실질적으로는 섬나라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늘길도 막히고, 바닷길도 막힌다?

그럼 그대로 갇힌 채 죽는 거다.

"…미국에서 뭐라고 할지 모르겠군."

미국의 심기를 어지럽혀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단 하나도.

그렇기에 한국과 일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의 나라를 조준하고 있던 미사일을 거두었고, 얌전히 대기했다.

미국에서 온 이들이 도착할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한국과 일본은 서로의 앙금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그렇게 외부의 압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갈등을 봉합하는 듯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압도적인 힘을 가진 강자가 두들겨 맞기 싫으면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고 주먹을 코앞에 흔들면서 협박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저놈만큼은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면서 달려들면 미친놈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봉합을 해야만 하는 상황인데, 일이 뭔가 묘하게 돌아갔다.

"뭐요? 독도를 두 나라가 공동으로 관리하라고?"

분쟁을 막으러 왔다는 미국의 장관이 미친 소리를 지껄인 것이다.

『 리앙쿠르 암초는 한국과 일본이 지속해서 마찰을 일으키게 만드는 분쟁 지역입니다. 하여, 양국의 평화와 협력을 위하여 리앙쿠르 암초를 두 나라가 공동으로 소유, 공동으로 관리하는 제안을….』

장관은 한국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고, 받아들여서도 안 되는 소리였다.

독도를 일본과 공동 관리구역으로 지정한다?

대통령 개인도 받아들일 수 없고, 국회의원들도 받아들일 수 없고, 국민도 받아들일 수 없는 소리였다.

저 말에 조금이라도 긍정하게 된다면 당장 국민이 들고일어나서 청와대에 쳐들어와서 대통령을 장대에 매단다고 할지라도 이상하지 않다.

"그걸 제안이라고 가져온 거요?"

대통령은 장관이 하는 말에 기가 찬다는 듯 물었다.

저건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저 제안은 그의 정치적 생명뿐만이 아니라, 그의 진짜 생명마저 위협할 수 있는 미친 소리였으니까. 저 제안을 받아들이는 즉시 그는 탄핵당하고, 민족의 역적이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로 길이길이 기록되어 두고두고 욕을 먹게 되리라. 그리고 그와 핏줄이 이어진 사람들은 아예 한국에 발도 붙이지 못하고 살아가게 되겠지.

그런 미친 소리를 제안이라고 가져오다니!

대통령은 자신의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개소리를 지껄이는 장관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오히려 장관은 대통령이 노려보는데도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

『 진지하게 재고해주시길 바랍니다. 리앙쿠르 암초는 그저 암초에 불과합니다. 그 암초 덕분에 늘어난 영해와 암초 아래에 묻혀있는 자원이야말로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암초에 따라온 가치 때문에 그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분쟁 지역이라서 자원을 캐지도 못하고, 군사적 위협을 받으면서 쓰지 않아도 될 비용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그럴 바에는 그냥 리스크를 없애는 것이 최선이 아닙니까? 』

이것은 정말 좋은 제안이라고.

지금 우리는 나름 혈맹인 당신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장관은 그런 태도를 숨기지 않은 채,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한국과 미국에는 갈등의 골짜기가 깊게 파였다.

그렇다면 일본은 한국과는 다르게 축배를 들고 있냐 하면…그건 또 아니었다.

"다케시마를 공동 관리라…. 그건 나쁘지 않은 제안인데…."

일단 일본은 다케시마를 한국과 같이 관리하자는 말에는 나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 가지지 못하는 거야 좀 아쉽기는 하지만…. 어차피 진지하게 다케시마를 얻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수를 둔 것에 지나지 않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절반이라도 성과를 얻어왔으면, 이건 성공적이었다.

『 물론 리앙쿠르 암초는 미일안전보장조약 5조의 적용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해당 분쟁 지역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경비해야 합니다. 』

그런데 문제는, 그 뒤에 이어지는 제안이었다.

『 그리고 마침, 미일안전보장조약을 말한 김에 요구하겠습니다. 』

아니.

제안이라기보다는 미치광이의 헛소리에 가까운 말이었다.

『 총리 각하. 우리는 현재 동아시아 안보에 대하여 큰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하여 미합중국과 일본국 간의 상호협력 및 안전보장조약의 개정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

가장 먼저, 일본에 온 미국 장관이 미일안전보장조약의 개정을 요구했다.

그것도, 일본에는 매우 불리하도록 말이다.

『 현재 미일안전보장조약은 매우 일방적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일본의 안보를 책임지는 것과는 달리, 일본은 미국이 위험에 처해도 군사적으로 돕는 것이 의무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하여 이를 의무화하는 것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

총리는 미국 장관이 하는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우리는 평화헌법이 있는 나라요. 군대를 가질 수 없다고."

『 알고 있습니다. 』

"군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 미국이 위험에 빠지면 군대를 끌고 가서 군사적으로 도우라고?"

『 예. 』

"그럼 일본국이 군대를 가질 수 있도록 헌법을 수정해도 되는 거요?"

『 불가합니다. 일본국은 절대로 자국의 군대를 가질 수 없으며, 오직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위대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

"…그러니까…. 군대는 못 가지고 자위대만 가지는데, 미국이 위험하면 자위대를 끌고 와서 같이 싸우라?"

『 그렇습니다. 』

"그게 무슨…."

미친 소리요?

총리는 입에서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간신히 삼켰다.

『 또한 주일미군의 주둔 역시 미국의 큰 희생을 통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방적인 희생을 끝낼 때가 되었습니다. 주일미군 재류 비용 부담에 관한 특별 협정을 개정하여 주일미군에게 주어지는 배려예산(思いやり予算)을 늘려주셨으면 합니다. 』

"…얼마나?"

『 1조 엔입니다. 』

콰앙!

"미쳤소?!"

총리는 장관의 말에 기겁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작년 배려예산이 2,000억엔 정도였소! 게다가 댁들이 요구하던 증액은 2,500억 엔이었고! 그런데 그게 왜 1조 엔이 되는 거요!"

작년 부담금과 비교하면 5배, 얼마 전까지 미국이 요구하던 것과 비교하면 4배!

1조!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아니, 저걸 제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강도가 협박하더라도 저것보다는 자비로울 거다.

아무리 미친 강도라도 1조를 한 번에 뜯어내려고 하진 않을 테니까.

『 정당한 금액입니다. 미군이 주둔해서 안보를 책임져주는데, 왜 고생은 미국이 하고 그 결실은 일본만이 누려야 합니까? 미국 역시 그 결실을 공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미군이 주둔해서 얻는 각종 이득에 비하면 싼 편이 아닙니까? 』

하지만 장관은 총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도리어 은혜도 모르는 후안무치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총리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하….'

그렇게 일본 총리와 미국 장관의 만남은 그대로 파투가 났다.

악감정만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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