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385화 (385/526)

<385화〉방송, 시청

방송이라는 매체는 시간에 구애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보는 시간에 방영되는 방송은 광고 가격이 어마어마했으

며, 사람들이 TV를 잘 보지 않는 시 간에는 광고는 물론이고 협찬 같은 것도

잘 붙지를 않는다.

방송 시 간이 라는 것은 방송의 목숨을 좌지 우지 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

며, 때에 따라서는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것이 되 기도 한다.

그 대표적 인 예 로 재 미 가 없음에 도 황금 시 간대 에 끼 어서 근근하게 나마

목숨을 이어가는 예능이 있었고, 사내 정치에 밀려서 안 좋은 시간대로 옮

겨버리게 된 뒤 시청률이 반토막이 나버린 모프로그램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방송 시간이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라면.

좋지 않은 시 간대 에 서도 충분한 시 청률을 가지 던 프로그램 이 황금 시 간

대로 옮기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추적, 탐사, 보도』

사람들에게 꽤 익숙한 제목, 익숙한 음악.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다만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 프로그램이 평소처럼 밤에 시작하는 것이 아

니라 簆시에 방송되 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늦은 밤에 방송되고 있음에도 일정 시청률이 꾸준히 나오고, 때로 대박을

터뜨릴 때마다 화제가 되 기도 했던 이 유명 프로그램 이 이례적으로 특집방

송,이라는 이름으로저녁 簆시에 방송을하는것이다.

특집방송은 簆시 뉴스를 보려던 사람의 리모컨을 그대로 붙잡은 채 자신

을 보게 만들었으며 , 항상 보던 채 널의 朴시 뉴스를 기다리 던 사람들에 게는

그 공백 기 간을 채 워 줄 훌륭한 대 안이 되 어주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TV에 집중하였고.

[ 구주천지 복잡기괴 (즱洲天地 複雜怪奇). 挖

!..

..

.........

MC의 멘트와 함께 방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천지 복잡기괴(韓國天地

複雜怪奇)라고 말입니다.]

MC가 멘트를 치 자 기 다렸다는 듯 영상이 떠 올랐다.

얼마 전 전국적으로 벌어졌던 소동에 대한 것들이 었다.

절에서 불공을 드리려고 하다가 스님 옷을 입은 메기를 마주한 영상, 칼을

들고 있는 거대한 나무괴물, 인어 비슷하게 생긴 괴물….

방송용 장비로 찍은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제보받은 영상이었기에

화질은 보잘것없었고, 어떤 영상은 흔들려서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들 지경

이 었다. 빈말로라도 영상의 퀄 리티 가 좋다고는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편집에 영혼이 라도 갈아 넣은 것일까?

그 흐릿하고 흔들리는 조악한 영 상은 훌륭한 솜씨로 포장되 었고, 오히 려

당시의 다급함과 제보자의 당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치가 되었다. 거기에

그 영상 뒤로 당사자들의 인터뷰가 이어지면서 시청자들을 방송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 아이고, 내가 어찌나 놀랬는지 몰라. 그냥 마침 근처에 왔으니 불공도 드

리고, 절밥도 좀 얻어먹겠다하고 산을 타고 있는데 …. 아이고 세상에. 저 앞

에 이상한괴물이 있는겨. 멀리서 볼때야몰랐지.저거이 사람인가….요새

거 인터넷 방송하면서 이상한 짓 벌이는 놈들이 넘쳐나는데 그런 놈이 아닌

가 싶기 도 하고… . 그런데 가까이 서 보니 까… . 에구머 니 나 진짜. 내 가 화들짝

놀라갖고 원, 산신령이 노했나 싶었잖어. ]

[ 그냥 아는 형님 이 랑 산이 나 오랜만에 타보자 싶었지 요. 산 정상에 서 컵

라면에 소주 한잔하면 캬,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맛볼 수 없는 그 특유의 맛

이 있다니까요. 그래서 컵라면 챙기고, 소주도 챙기고! 김치도 딱 챙겨서 올

라가는데 •••. 아니 웬 메 기 가 있는 겁니다. 웬 사람만 한 메 기 가 스님 옷을 입

고 길을 떠 억하니 막고 있는데, 그거 보고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압니까?

이 칼봉산에서 무슨 생체실험이라도 하고 있었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니까요?]

[ 황장산에 서요? 웬 조형물을 저기 다가 세워놨나 했죠. 딱 봐도 크기 가 무

슨 孀층 건물 수준인데, 그게 어디 동물이나귀신이겠습니까? 당연히 예술가

가 만들어낸 조형물인 줄 알지. 그런데 허, 참. 그조형물이 움직여. 눈알도 움

직 이 고, 팔도 움직 이 고, 심 지 어 몸통도 움직 여. 눈알이 랑 팔까지 는 그러 려 니

했어요. 뭐 현대미술인지 뭔지 하는그런 거 아닌가 싶었거든. 그런데 몸통이

랑 다리 가 움직 였을 때 딱 느낀 게 뭔지 압니까? 아, 저건 사람이 만든 게 아

니다. 일단 튀 어야겠다. 그런데 튀려고 마음을 먹으니까 또 아까워 지는 거예

요.그래서 저 멀찍이 서서 영상을 찍었지.]

그렇게 인터뷰가끝을 맺고, 앞선 영상들을 짜깁기해서 괴물들의 모습과

놀란 시민들의 모습만을 담은 영상이 흘러나왔다.

[갑작스러운 괴물의 출현.]

[대체 왜, 이 괴물들이 나타난 것일까? ]

영 상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증폭시 켰다.

이 소동을 단순한 가십거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가지게 만

들어 그것을 심층적으로 파고들게 했다. 영상은 정말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의 호기심을 잔뜩 자극했으며, 손에 쥔 리모컨을 그대로 바닥에 내려

놓고궁둥이를 진득하게 붙이게 했다.

그렇게 영상은 사람들이 몰입하게 만들고 끝을 맺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것은 스튜디오의 모습.

스튜디오에서 MC는 비장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 수많은 산, 수많은 괴물. 수많은 등산객이 똑똑히 목격한 이 미스터리 한

사건. 제작진은 이 의문을 풀기 위하여, 도움을 주실 분을 모셔 왔습니다. ]

그는 게스트가 들어오는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외 쳤다기 에는 너무 작고, 그냥 말했다기에는 조금 큰 음성이 었다.

[박진성 주술사님입니다.]

그 말과함께 문이 천천히 열리고,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복을 입고 있는 남성.

아직 어린 태를 다벗지 못한 젊어 보이는 외형에 토끼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자신이 선하고 안전한 사람이라고 광고하듯 그의 얼굴에는 자애로운 미

소가 걸려 있었고, 방송이 익숙하지 않은 것인지 으『간 긴장한 기색도 조금 느

껴 졌다.

하지만 그런 어색함은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인지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

스 요소가되었으며, 거기에 더해 스튜디오의 밝은조명 때문에 그의 미소가

더욱 두드러지며 박진성을 정말 선량하게 보이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방송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박진성을 보며 호감을 느꼈다.

선량해 보이는 젊은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기에.

하물며, 그 사람이 '주술사,라는 특이한 능력자라면 더더욱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주술사는 기인(奇人)과괴인(怪人).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행동과 외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때에 따라서

는 저 게 사람인가 괴 물인 가 구분이 되 지 않을 행 색 을 하고 다니 기도 하는 것

이 주술사였다. 인도의 주술사는고행 때문에 신체 부위 하나가비정상적으

로 변해있는 경우가 많았고, 아프리카의 주술사는 뼈를 누르거나 신체 부위

를 늘려서 기괴한외모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유럽의 어떤 주술사는 수십 년

동안 씻지도 않은 채 나귀 가죽을 뒤집 어쓰고 다니 기도 했다.

그런데 보라.

방송에 나온 저 주술사를.

토끼같이 순해 보이는 인상, 선해 보이는 미소.

몸에 딱 맞는 고급 양복을 입고, 방송이 어색해서 살짝 긴장하고 있다.

세간에 퍼진 주술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니, 적어도 사람들은 저 '박진성,

이라는 주술사에 대해서 호감을 느끼고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 고 당연하게 도 방송에 호기 심 이 라는 것은 곧 시 청률이고, 화제 이 며,

호재인법.

특집 방송은 순조롭게 진행되 었다.

아주 순조롭게 말이다.

"흐음. 방송이 아주 잘받는군.’,

커다란 저택.

방송을 그 누구보다도 집중해서 보는 이들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 박진성과 함께 살았던 이들이며, 피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식구라는 연으로 이어져 있는 이들.

이씨 일가였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택에서 이상한 기행을 벌이고 다녔던

박진성이 멀끔한 모습으로 방송에 나오는 것을 보고 신기한 듯 TV를 바라

보고 있었다.

이양훈은 메이크업에다가 말흋가 부린 편집의 마술, 조명감독의 신들린 솜

씨가 더해져서 평소보다 훨씬 잘생겨 보이는 박진성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

했다. 진즉에 자신이 신경을 써서 꾸미고 다니는 법을 좀 알려줄 걸 그랬나

후회 할 정도로 말이 다.

이양훈의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부인들 역시 마찬가지.

그녀들 역시 진성이 저렇게 나오자 적응이 안되는 듯 연신 감탄만 하고 있

었다.

물론 그냥 감탄만 한 것은 아니 었다.

"어머 , 저 피부 좀 봐요. 누가 메 이크업을 한 거죠? 정말 자연스러운 솜씨 인

데….’,

"저 프로그램 촬영한 분들은 솜씨 가 참 좋나 봐요. 나중에 사진을 찍 어야

할 일이 생기면 저분들을 부르면 어떨까요?"

그녀들은 진성의 모습에 감탄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가, 저런 모습을 연출

한 스태프들에게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는 사람이 絿鷋에 나오는 게 …. 이런 느낌이구나…."

소파의 끄트머리 , 이세 린은 진성을 신 기하다는 듯 보고 있었다.

그녀는 등은 소파에 기댄 채 絿鷋를 시청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다리 위에

는 낙타가 머리를 뉘고 있었다. 그레모리가목을 길게 빼서 그녀의 다리를 베

개 삼아 누운 채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세린은 그레모리의 행동

에 당황하기는커녕, 누워있는그레모리의 머리 위에 팔을 편하게 올려놓고

있었다.

그렇게 둘은 평화롭게 TV를 시청했다.

그레모리 가 말을 꺼내 기 전까지는 말이다.

[계약자야.]

그레모리는 고개를 돌려 이세린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 저 방송, 숨겨진 것이 많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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