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383화 (383/526)

<383화〉폭로의 점화

차이네는 이제순이 보내는 압박을 이길 수가 없었다.

담력이 강한 사람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울거대한광기를, 일개 연예인 한

명이 감당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 었으리라.

차이네는 자신이 황장산에서 보았던 것들을 떨리는 목소리로 세세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순이 건네준 종이에

대략적인 형태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이제순이 보여준 사진을 사용해 그

때의 상황을 묘사하기도 했다.

그런 설명이 얼마나 이어진 것일까?

"하하하하.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차이네 씨. 아니. 김선미 씨.흐흐흐.’,

이제순은 만족할 수 있었다.

"김선미 씨의 도움 덕분에 기사가더 디테일해지겠어요."

그는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차이네의 본명을 입에 담으며 그녀를 치하해

주었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그대로 문을 열고 사라져버렸다.

문을 닫지 않고 사라졌기 에 그가 차에 서 멀어지 는 발소리 가 그대로 들렸는

데, 기이하게도 한사람이 걷는 소리 뒤에 자그마한 발소리가뒤따르는듯

느껴졌다.

마치 그의 뒤에 귀신이 있고, 그귀신이 이제순의 걸음걸이를 따라하면서

가는 것처 럼 느껴 졌다.

그렇게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후.

차이네는 두려움을 억누르고 문을 열고 밖을 볼 수 있게 되 었다.

"히, 히이익….’,

그녀가 문을 열자 보인 것은 깜깜한 어둠.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엎어져 있는 매니저였다.

매니저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상태를 확인해보자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라도 하듯 숨을 쉴 때마다 몸이 조금씩 움

직임을 보이고 있었으니, 적어도 생명에 지장은 없는 듯했다.

그는 무슨 약이라도 먹고 기절이 라도 한 것처럼 몸이 축 늘어져 있었으며,

차이네가 접근해도, 흔들어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차이네가눈꺼풀을 들어 올리자눈동자가 까뒤집혀 있기까지 했다.

차이네는 그런 매니저를 구하기 위해 11朴에 신고하려다가 문득, 떠오르

는 것이 있었다.

눕 구두가 말하길 여자에게 오물을 던지려 하는 이들이 있다고 했지. 나무

위에서 똥을 집어 던지는 원숭이처럼 비겁하고 지저분한족속이 있어 수작을

부리려고 하니, 악의와 폭언으로 가득한 정보의 바다에서 오물이 덕지덕지

묻게 될 거라고 하였어! 그것은 씻어도 쉽게 악취가 가시지 않을 것이니, 조

심을 해야만할 것이다!』

눕 사장은 아니야! 이사도 아니지! 팀장도 아니고! 그런데 이상하다? 남은

게 하나밖에 없네? 저 여자는무슨 말인지 알았을 거야! 하-하-하! 禳

오물을 묻힐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장도 아니고, 이사도 아니고, 팀장도 아니 다.

'오물….,

그녀는 반쯤 양아치같이 힘을 휘두르는 자신의 소속사를 떠올렸다.

그들이라면 충분히 그녀에게 오물을 묻힐 능력이 있었고, 오물을 묻혀도

눈하나깜짝하지 않을독심(毒心)이 있었다.실제로도부당계약에 항의하

면서 여론몰이하거나, 갑질과 폭언을 당했다면서 소송을 한 연예인들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는스캔들이나과거 때문에 오물이 묻어서 큰

고생을 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냥 미친 사람의 말이라기에는….,

그녀는 미치광이처럼 보였던 이제순을 떠올렸다.

분명히 미치광이 같았지만, 자신을 소개할 때 ,기자,라고 생각했던 것을 생

각했다면….

그가 정보의 거래랍시고 그녀에게 먼저 제시한 정보는, 어쩌면 사실일지

도 몰랐다.

꿀꺽.

차이네는 긴장 때문에 침을 꿀꺽 삼켰다.

'사장은 아니고….,

이사도 아니다.

그들이 그녀에게 굳이 오물을묻힐 이유가 없다.

그들은 적어도 양아치는 맞지만, 오직 돈만 바라보는 양아치다.

회사에 폐가 될만한 사고를 치지 않고, 돈만 벌어주고 나간다면 그들은 굳

이 그녀에게 미련을 갖지 않으리라. 그냥 사람을 물건처럼 바라보던 평소처

럼 그녀를똑같이 물건으로 여기면서, '그래. 이 정도면 본전 뽑았다. 잘 썼네.

낡기도 했고, 더 쓰기도 힘들 것 같고. 그냥 깔끔하게 다른 사람한테 넘겨주

지 뭐.1라고 저들끼리 떠들 것이다.

그래.

그러니 까 그들은 아니 었다.

그렇다면팀장은?

양아치 아래에서 일하는 놈들답게 악독하고, 사납고, 깡패 같은 면이 있는

족속들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윗사람의 지시에 철저하게 따를 줄 알았으며, 상품

가치가 낮아질 만한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며, 윗사람의 비전과 시야를 공유

할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그냥보내주겠다는 사장과 이사의 뜻을

철저하게 따를 것이며, 보복하기는커녕 잡음이 따르지 않게 하려고 힘을 쓸

것이다.

그러니 팀장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남은 것은…?

꿀꺽.

차이네는 쓰러져 있는 매니저의 몸을 뒤져서 그의 스마트폰을 찾아내 었

다.

그녀 가 매 니 저의 스마트폰을 켜 자 비 밀번호를 입 력하라는 문구가 떴다.

'비밀번호는, 그러니까…. 매니저 전여자친구생일….,

매니저가 담당 연예인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만큼이나, 연예인이 담당 매

니저에 대해 알게 되는 것도 많은 법.

그녀는 어렵지 않게 매니저의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풀어내 었고, 그 안의

내용물을 손쉽 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아….

그리고 그녀는 알게 되었다.

이제순의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말이다.

디테일을 얻었다.

기사에 쓰기 충분한 디테일이다.

"훌륭해. 아주 훌륭해.’,

이제순은 자신이 직접 작성한 기사를 보며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그 웃음은 자기 작품에 만족하는 예술가의 것 같기도 했고,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못하는 테러리스트같이 보이기도 했으며, 단순히

그냥 감정 이 고조되 어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하는 미 치광이 처 럼 보이 기도 했

다.

이제순.

그는 웃었다.

"그 녀석들발음, 발음이 일본인이었어. 일본인이었다고….’,

그의 머 릿속에 떠 오르는 것은 자신이 쓴 완벽한 기사.

그리고 저번에 그를 납치해서 고문하고 린치를 한 빌어먹을 녀석들이었다

얼굴도 제대로 모르고, 체격도 가물가물한그 녀석들.

하지 만 그 목소리 는.

그목소리만큼은 똑똑히 기억이 난다.

일본인이 한국말을 할 때의 그 특징 이 묻어 나오는 그 목소리 .

"너희는대가를치러야해. 대가를….’,

그들이 행한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었다.

고문을 하고 폭행을 한 것도 그렇지만,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주

물을 부순 일이 었다.

신발.

수다쟁이의 혀로 만들었던 신발.

그에게 온갖 정보를 가져다주었고, 그를 성공으로 이끌어야 하는 그 주물

을 박살 내버린 그들을 이제순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대 가를 치러 야만 했다.

그를 성공의 길로 이끌어줄 보물을 망가뜨린 그들을.

다시 한번 의식을 진행하게 만들고, 그 의식에서 끔찍한 공포와 거대한 대

가를 지불하게 만든 그 작자들은!

"흐.’,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자신의 마음이 풀릴 정도의 대가를.

자신이 다시 한번 주술의식을 진행하면서 치른대가와똑같은….

아니,더 거대한대가를 말이다.

'그래. 대가…. 대가를….,

이제순은 거대한 대가를 치렀다.

주의사항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의식을 행했고, 그 대가로…. 그 대가로….

'뭘 줬더라…?,

기억이 잘나지는 않는다.

하지만뭐. 그럴수도 있겠지.

어디 가게 에 들어가서 물건을 지불하는 것도 아니고, 그 껌껌한 오지 에서

혼자서 수상해 보이는 의식을 진행했었다. 괴상한 생김새의 요정이 튀어나

왔고, 그것을 상대하기까지 했다.

그런 와중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할수도 있겠지.

공포라는 것은 머 리를 마비 시 키 게 만드는 것이 니 까.

하지 만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의문의 주술사가 건네준 방법대로 의식을 행했다고.

거기 적혀 있는 주의사항을 어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말이다.

아니, 확신할 필요조차 없다.

지금 이 자리에 이제순이 멀쩡하게 있는 것이 바로그증거였다.

만약 방법 이 틀렸다면 그는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으리 라.

신체 일부가 소실된다거 나, 끔찍한 꼴이 되 어서 그 오지를 벗어나지 못했

거나, 아니면 최악에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겠지.

먼 후손이라면서 친근하게 그를 대하는 요정에게는,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었으니까.

그러니 그는완벽하게 의식을 행했다.

의식에 아무런 차질도 없었고, 그는 아무런 문제 없이 주물을 만들 수 있었

다.

저번처럼 ■미약한힘,을 가진 주물이 아닌, 더 강력한힘을 가진 주물을 말

이다.

그런데 그때 뭐라고 했더라?

그요정이 뭐라고했었지…?

[탭탭, 팁탭. 먼 후손아. 요정의 피를 이은 태가 나는구나.]

!..

!.

.......

이제순은 그때 요정이 말한 말을 떠올리곤 피식 웃었다.

■흐, 그래. 두 번째로 만났으니 친해지긴 했지. 그래 ….'

이제순은 노트북의 옆에 놓았던 요정 인형을 조심스레 왼손으로 들었다.

그리곤 작성한 기사를 편집장에게 보내고, 그대로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곤 요정에게 물었다.

"조상님.조상님.편집장이 이 기사를허가해주시겠습니까?’,

그러자요정이 답해주었다.

"항상술에 찌들어 있는 후손아! 너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제대로 생각조

차 하지 못하는구나! 그 편집장이 이런 기사를 허락해주겠느냐? 사장이 과

연 허락해주겠느냐?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특종이라고 한들 이런 것을 허

락해줄 리가 없다! 편집장의 재량 아래 이 기사는 생명을 잃고구석진 곳으로

밀리게 될 것이다!’,

요정은 비관적인 미래를 노래했다.

하여, 이제순은다시물었다.

"그렇다면 편집장의 약점을 말해주십시오.’,

그 물음에 요정은 웃었다.

인형이 아니라 실제 살아있는 것처럼 웃었고, 주물의 기능을 충실히 발해

주었다.

그리하여 이제순은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주술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눕 다만 이번에는 인과가 나에게 이어져 있는바. 禳

『 너에게 가는 대 가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니라.』

눕 다만그 이후부터는오직 너의 선택에 따른 것이니.』

눕 온전히 그 대 가를 감당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나는종이에는올바른 것을 적었다.』

『 다만종이에 바르지 않은 것이 적힐 수도 있으니.』

『 만약 모순되는 항목이 있었다면.』

『행운을 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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