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382화 (382/526)

<382화〉폭로의 점화

자신을 기 자라고 소개한 남자의 모습은 기 자라기보다는 노숙자에 가까

워 보였다.

대체 무엇을 한 것인지 꼬질꼬질한옷에, 술을 잔뜩 퍼마시기라도 한 것인

지 엄청난 술 냄새가 풍겼다. 거기다가 술 냄새 사이로 씻지 않은 사람 특유

의 고약한 체취가풍겨오기까지 했다.

얼굴에는 면도하지 않고 내버려 둬서 중구난방으로 자란 수염이 뻗쳐

있었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몇 날 며칠을 술만 퍼마시 기라도 한 것인지

눈은 퀭했다. 거기다가 약을 하지 않았나 의심될 정도로 초점이 흐릿했고, 미

소를 지 어 보이 겠다고 호선을 그린 입 에서는 왠지 모를 광기 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누가 보더 라도 기 자가 아니 라 노숙자에 가까운 모습이 었다.

게 다가 행색 만 범 상치 않은 것도 아니 다.

그가 가지고 있는 물품도 뭔가 이상했다.

등에 메고 있는 가방에는 산을 오랫동안 헤매기라도 한 것처럼 나뭇가지

와 나뭇잎이 묻어 있었고, 흙바닥을 뒹굴기 라도 한 것처럼 진흙 말라붙은 것

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게다가 지퍼 고리에는 넝쿨이 칭칭 감겨 있었는데,

자연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 일부러 그렇게 된 것인지 구분이 잘되지 않았

다.

게다가 저 손등과 팔을 보라.

손등과 팔은 날카로운 것에 이리저리 긁히기라도 한 것처럼 잔상처가 가

득 나 있었는데, 부풀고 피딱지가 내려앉은 모습이 이상하게도 문신처럼 기

하학적인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기자… 라고요…?’,

아무리 봐도 기자가 아니다.

저 건 기 자가 아니 라, 산속의 광인을 연상케 만드는 외형 이 었다.

차이네는 도저히 못 믿겠다는 듯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이제순을 바라

보았고, 이제순이 보이지 않을 위치에서 스마트폰을 켜고 단축키를눌러 경

찰에 신고했다.

"흐, 그래봤자소용이 없을겁니다.’,

하지만 이제순은 차이네가경찰에 신고하려 는 것을이미 알고있다는듯

히죽 웃었다.

"차이네 씨. 제가뭐 거창한 거 요구하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인터뷰좀

하고, 잠깐만 협조해주시 면 됩 니 다. 제 가 무슨 범죄 자도 아니고, 기 자라니 까

요?"

"그…런가요…?’,

"흐, 이 거 못 믿으시 나 본데 .저는 기 자가 맞습니 다. 아, 혹시 못 믿는 게 아

니라….그냥 인터뷰하기 싫으신가?’,

이제순의 퀭한눈이 호선을 그렸다.

"그래, 그럴 수 있지요. 연예부도 아니고 사회부 기자가 갑자기 인터뷰하

자고 하면 뭐 …. 얻을 게 없어 보일 수도 있겠어. 연예부면 뭐 좋은 기사를 쓰

던가, 인맥 이라도 쌓든가 하는데 •••. 사회부 기자가 왜 이러나 싶겠다. 그렇지

요?"

그는 마치 광인 같은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느릿느릿했다가 갑자기 빨라지고, 적당한 크기였다가 갑자기 강세를 주

고, 커졌다가 줄어들고.

정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처럼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퀭한 눈으로 차이네를 바라보았다가 차이네 뒤편의 허공을 바라보

기도 했고, 차의 천장을 바라보기도 했다.

규칙성을 쉬이 찾아볼수 없는, 미치광이의 행동이었다.

"그래.그럼 드려야지.내가줄수 있는게 있거든.차이네 씨에게도 필요한

정보야. 그런데 잘 알아둬 야 합니다. 응? 거래라는 건 말이야 나 혼자 주는

게 아니 야. 쌍방이 주고받아야 한다고. 내 가 주면 당신이 주고, 당신이 주면

내가주고. 얼마나공평해.그렇지 않습니까? 응?’,

이제순은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한손을 들어 올렸다.

그손에는 이상한 인형이 들려 있었다.

나무를 깎아서 만든 것 같은 그 인형은 매부리코의 볼품없는 얼굴을 가지

고 있었는데, 그 형상이 유럽에서 기념품으로 산싸구려 요정 인형 같아보였

다. 그 요정 인형은 붉은색 옷을 입고 있었고, 한 손에는 구두를, 한 손에는 바

늘을 들고 있었다.

기묘한 인형.

기괴한 장난감.

차이네는 운전석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이제순에게서 광기를 느꼈다.

뒤틀린 정신에서 나오는광기.

그 광기를 목도했을 때 오는 서늘함은…차이네로 하여금 제대로 움직이

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 조상님. 조상님이시여. 한뼘의 투아허 데 다난(Tuatha de Danann)

이시 여. 이 보잘것 없는 후손이 자 술꾼이 묻습니 다. 저 눈앞의 여 자가 참으로

어여쁜데, 혹시 알고 계신다면 술안주로 삼을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겠습니

까?’,

이제순은 입술을 비틀며 인형에게 말을 걸었다.

아주 정중한 말투로, 정말 인형이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질문을 던진 이제순은 인형을 자기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고는 이

것 보라는 듯 슬쩍 흔들었다. 그리고는 정말 인형이 얼굴을 움직 이면서 말이

라도 하는 것처 럼 살짝살짝 흔들어 머 리를 움직 였으며,그 움직 임 에 맞춰 서

다른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오, 나의 후손아. 요정 미녀도 거창한 연회도 영원한 춤도 거부하고 오직

술만을 탐하는 녀석아. 내가 옛적 이름을 그리스의 신의 손이 닿은 사슴의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었을 때, 그 신발이 닳고 닳아 밑창에 구멍이 뻥 뚫리고

말았을 때, 그 뚫린 구멍으로 금화가 나뭇잎 사이로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줄줄이 새었을 때, 그렇게 흐른 금화가 바닥에 앉아서 작은 언덕을 만들었을

때! 그때 나는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지!"

그 모습은 기괴했다.

!....

.....

정말로 미치광이처럼 보였으며, 당장이라도눈이 뒤집혀서 달려들지 않을

까위협이 들 정도였다.

"항상 재 만 뒤 적 거 리 던 에 스펜 아스켈 라드나 아스켈 라덴은 곰과 함께 있

었지 ! 대마 빗으로 트롤의 눈을 찔러 얻게 된 피로 술을 담가 즐거이 이야기

를 나누고 있었지! 한모금은 여우에게, 한 모금은 언젠가 나타날 황금새를

위 해 ! 한 모금은 재 투성 이 소년을 위 해 , 한 모금은 술 상대 가 되 어주는 곰을

위하여! 사악한 트롤의 피로 담근 술의 끝내주는 맛을 맛보며, 건배 ! 건배 !

건배!’,

과장된 말투로 그렇게 말하던 이제순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인형을 앞으

로 내리더니 인형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 술자리의 이야기만큼 진솔한 것은 없는 법이지요. 특히나 사람과 사

람, 짐승과 짐승, 요정과 요정, 악마와 악마가 아니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사

람은 짐승 앞에서 솔직해지고, 요정은 악마 앞에서 허물이 없어지는 법이 아

니겠습니까?’,

이제순은 그렇게 말하곤 다시 인형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렇지, 이 지독한 술꾼 녀석아! 한 모금을 마시면 양처럼 온순해지고, 두

모금을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세 모금을 마시면 사자와

같은 심장을 얻고, 네 모금을 마시면 오물과진창에서 뒹굴게 되는 것이 술이

니까!’,

그렇게 이제순은 기괴하게 일인극을 벌였다.

"조상님! 그리 말씀하시면 섭섭합니다! 용기를 마시고, 진실을 마신다고

해주십시오! 저는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전사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약을

마시는것입니다!’,

술에 취한 것처럼 흉내를 내었고.

"용기, 용기. 아주 중요하지! 에스펜 아스켈라드나 아스켈라덴 역시 용기

가 가득한 사람이 었어! 오죽 용감하면 용마저도 죽였을 정도였으니 까! 거기

가 어디 였더 라? 스타드 반도 북쪽이 었나 남쪽이 었나? 여하튼 그 녀석은 용

마저도 죽였고, 세상 곳곳을 돌아다녔고, 영웅이 되었지! 그리고 참으로 운

이 좋게도 나는그 영웅의 이야기를 들었어!’,

자신이 요정이라도 된 것처럼 인형을 들고 흉내를 내었다.

"재투성이 에스펜이 말하길 저 멀리 어딘가에 몸에 묻을 오물을 말해주는

그릇이 있다고했지.그그릇은오물이 쏟아지기 전 경고를해서 사람을 구해

주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어.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지, 아. 그건

나의 구두도 할수 있는데!"

"그렇겠지요. 조상님이 라면 구두로 그 어떤 기적을 일으켜도 이상한 것이

없으니까요.특히나그구두에 술을 담아서 마신다면 그것만큼좋을 게 없겠

지요!’,

"립탭-틱택투! 가죽을 똥오줌에 담그고, 두들기고, 자르고! 구두로 만들

소중한 가죽을 바늘로 꿰고 또 꿰면 훌륭한 구두가 만들어지 지 ! 그리고 그

구두는 이 세상그 어떤 보물보다도 값진 것이니, 나의 구두는뭐든지 할수

있지!’,

이제순은 그렇게 광기의 인형극을 보여주었다.

기괴한 광경에 놀라 몸을 움츠리고 있는 차이네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는 심 연 속에서 기 어 온 괴물을 보는 것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차이 네의

눈을 마주 보며 씨 익 웃었다.

"그래요.조상님, 그구두가 이 여자에 대해서 무어라하였습니까?"

그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인형을 들었다.

"구두가 말하길 여자에게 오물을 던지려 하는 이들이 있다고했지. 나무

위에서 똥을 집어 던지는 원숭이처럼 비겁하고 지저분한족속이 있어 수작을

부리려고 하니, 악의와 폭언으로 가득한 정보의 바다에서 오물이 덕지덕지

묻게 될 거라고 하였어! 그것은 씻어도 쉽게 악취가 가시지 않을 것이니,

조심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원숭이가누구입니까?’,

"사장은 아니야! 이사도 아니지! 팀장도 아니고! 그런데 이상하다? 남은

게 하나밖에 없네? 저 여자는무슨 말인지 알았을 거야! 하-하-하!’,

이제순은 광대가 과장해서 웃음을 터뜨리는 것처럼 한껏 소리를 내어

웃고는 표정을 싹 굳혔다.

그리곤 차이네를 보며 말했다.

"차이네 씨. 좋은 정보였지요? 대책을 빠르게 내놓는다면 문제가 없을

겁니 다. 이 거 정말 쓸만한 정보 아닙니 까?’,

"히, 히익….’,

차이네는 숫제 광인을 보는 것처럼 이제순을 보았다.

"그럼 이제 제 질문에 답해주셔야죠?’,

그리고 이제순은 공포에 젖어있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되려 광기에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마땅히 받아야 할 '대

가,를요구했을뿐.

"차이네 씨.주술사랑방송을 찍었을 때 말입니다. 그때 정보를 다 말하세

요.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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