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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344화 (344/526)

<344화 > 김을매기위해서는

횃불처럼 타오르는 불꽃은 바람이 불지 않음에도 흔들거 렸고, 바람이 불

어도 그 영향을 받지 않았다.

마치 마음이 흔들리면 같이 흔들리고, 마음이 고요하다면 같이 고요해지

는것처럼.

불꽃은 그렇게 하늘하늘 움직 이며 빛을 발하여 방을 밝혔고, 그 방에 있는

두 사람 또한 밝혀주었다.

불꽃을 피우고 있는 진성의 얼굴은 무기질적인 면이 있었다.

어두운 방이 그러한 비 인간적인 면모를 가려주고는 있었으나, 빛과 불꽃

의 앞에서는 그것을 숨길 수는 없는 법. 불꽃이 흔들흔들 움직이며 음영을 드

리워내는 와중에도 진성의 표정은 인형처럼 매끈하게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

고 있었으며, 마음의 창이라고불리는눈 역시 불꽃의 움직임에 현혹되지 않

은 채 인형처럼 반들거리고만 있었다.

그 반들거림이란.

불꽃의 움직임에 따라 반짝 빛났다가 빛을 잃어버리는 그 눈의 빛남이란.

그 모습은 마치 맹수가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서 눈을 깜박이는 모습이 이

러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 었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 있는 사람은 의자에 묶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

다.

어두운 방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빛이 닿지 않는 각도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두컴컴한그의 마음 때문일까?

남자의 얼굴에 드리워진 음영은 쉬이 사라지려 하지 않았고, 그 음영을 지

울 생각 또한 없는 것인지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한 발자국을 걸어갈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눈이 뜨여 있다고 한들 시선

이 닿지 않는 발끝에 무엇이 걸려있을지는 아무도모르는 것인즉.풀숲에 발

을 디 뎠다가 뱀 이 튀 어나와 물 수도 있을 것이요, 땅이 라고 생 각하고 밟았는

데 쑥 꺼 질 수도 있을 것이 다. 멀쩡 해 보이는 돌이 이 끼투성 이 라 미끄러 지 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요,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온 힘을 다해야만 발을 뺄 수

있는 늪이 될 수도 있을 것이 니 . 그 발자국 하나하나에 는 분명 한 용기 가 담겨

있음은 부정할 수 없으리 라.’,

진성은 그런 남자를 현혹하려는 듯 말을 하고 있었다.

눈에 불꽃을 품은 채 , 광택을 번들거리 며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이 다.

그 모습은 마치 우자(愚者)를 이끌어 눈먼 광신자로 만들려고 하는 목자

같아 보이 기도 했다.

"용기는 곧 확신이 라. 할 수 있을 것이 라는 믿음이요, 고통이 다가오더 라

도 인내할 수 있으리 란 믿음이요, 고난이 다가온들 극복할 수 있을 것이 라는

믿음이로다. 그리하여 용기는 마음의 닻이요, 마음을 고정하는 못이라. 용기

가 충만하다면 마음에 흔들림이 없을 것이요,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미혹 또

한 없을 것이요, 안개처럼 아스라이 퍼지는 불안감이 마음을 잠식하게 둘 틈

도 없을 것이니. 이는 참으로 바람직할 것이로다.’,

진성은 눈꺼풀을 움직이 지도 않고 계속, 계속 남자를 보았다.

"다만 넘치는 것은 곧 부덕이라. 과한 것은 도리어 해가 되는 것이 세상의

이 치 이 니 , 단비 가 과해 지 면 세 상을 쓸어버 릴 홍수가 될 것이요, 따스한 햇볕

이 계속되면 땅이 갈라지고 농작물이 자라나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

라! 사람의 마음 역시 이와마찬가지이니,용기 역시 이와마찬가지인즉.’,

진성은 인형처럼, 살아있는 생물이 아닌 것처럼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용기 가 과하면 그것은 곧 과한 확신이요, 과한 믿음이 라. 과한 확신은 위

험에 대한 객관적인 인지를 못 하게 만드는 것이니 이는 곧 눈을 가리는 것이

요, 과한 믿음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아니할 것이니 이는 저와 제 주위를

파멸로 이끄는 발걸음이 라. 하여 옛사람들은 이를 교만(superbia)이라 부르

며 으뜸가는 죄 악이 라 하였느니 라.’,

그는그렇게 말하곤 잠시 말을 멈추더니, 천천히 불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 임은 아주 느릿느릿하면서 하늘하늘 흔들리 고, 위 아래로 끄덕 이

며 흔들리는 것이 바람에 등불이 흔들리는모양새처럼 보였다.

그런 불의 움직임은 점차 기묘하게 변했다.

불의 세기가 점차줄어들며 호롱불과 같은 느낌으로 변했고, 방의 어둠은

그것을 감싼 듯 사방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어둠의 중심에서 호롱불은

크기를 줄였다가 늘였다가를 반복하며 멀어졌다가 가까워 지 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기묘한 거리감을 형성하였고, 그 불꽃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역시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하면서 사람의 눈을 현혹하려 들었다.

불꽃이 끄덕인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I |..

.

..

저 수면 밖에 서 낚싯대 를 드리운 사람이 위 아래로 움직 여 물고기 를 유혹

하듯, 미 끼 가 위 아래 로 흔들리 듯 불꽃 역 시 위 에 서 아래 로 흔들흔들 움직 인

다.

불꽃이 흔들린다.

흔들흔들.

혼불이 타올랐다가 이리저리 방황하듯 불꽃이 흔들렸다.

눈에 도깨비불을 품은 호랑이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먹이를 찾아다

니듯,불꽃이 좌에서 우로,우에서 좌로흔들흔들움직이며 사람의 눈을현혹

했다.

그 움직 임은 느릿해 서 점으로 남았지 만, 그 궤 적 만큼은 눈에 계 속해 서 남

으며 마치 선을 잇듯이 움직이게 했다.

잔상.

길게 늘어지는 불의 꼬리가 없음에도 그것은 그 자리에 분명히 남아있었

다.

그 자리를 어둠이 채운 것은 분명하건만.

빛이 비 어버린 자리에 어둠이 차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취만은 그대

로 남아, 온기를 기억하려 하듯 빛의 추억을 품은 채 불꽃의 길 일부가 되어

선을 이룬다.

그렇게 선으로 이 어지는 불꽃은 곧 도형 이 되 었고, 그림 자와 함께 사람을

유혹하는 형상이 되 어간다.

흔들.

흔들흔들.

그리고 도형의 움직임과 함께 그림자도 들쭉날쭉 변했다.

수면 아래 에서 흔들거 리는 수초가 햇빛을 탐내 며 저 위로 몸을 뻗 어 올리

듯이, 머리카락을 거꾸로 뒤집은 것 같은그 형상이 흐느적흐느적 물살에 몸

을 맡긴 채 태양을 쥐기 위해 손을 뻗어 올리듯.

그림자 역시 그렇게 흔들흔들 움직이면서도 길게 늘어져 남자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타고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머리카락처럼 드리워진 그림자의 속에 진짜 제 머리카락을 숨기고.

손처럼 뻗어지는 그림자가 갈라지는 끄트머리에 제 손을 쫙 펼쳐서 갈퀴

처럼 만들어 남자에게 손을 뻗으며.

어둠이 현혹하는 틈을 타 텅 비어버린 눈으로 안광을 숨긴 채 접근해 목덜

미를 물어뜯으려 준비하는 귀신.

새타니.

"자아.목적도 없이 부평초처럼 흔들리며, 제 기준을 집단에 의탁한 가련

한 족속아. 생 각과 판단을 남에 게 위 탁하여 가벼 이 논하자는 것조차도 거부

하고 질색하는 머리 없는우자(愚者)야. 이제 넌 거부할수 없을 것이다. 나와

이야기하자꾸나.’,

쩌어억-!

꿈이 라는 것은 시 간을 왜곡시 킨다.

이는 생 각이 라는 것 이 시 간과 공간의 위에 있기 때문이며, 생각의 힘은 현

실을 아득히 뛰 어넘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옛 신화에서도 그리하지 않았던가.

세 상에 서 가장 빠른 것은 생 각일 것이 라고.

그렇다면.

가장 빠른 것이 생각이라면.

가장 넓게 퍼져나갈 수 있는 것도 생각이요, 가장 크게 부풀어 오를 수 있

는 것도 생각이리라.

그러한이치에 따라생각의 토대 위에 세워진 꿈은 시간과공간의 제약에

서 조금이나마 벗어난토론의 장이 될 자격이 분명히 존재했다.

"여기는…?’,

남자가 눈을 다시 떴을 때 보인 것은 넓디넓은 초원이 었다.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고 탁트인 초원.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맞춰 제각기 다른 높이로 자라난 풀들이 이리

저리 휘 어지며 흔들렸고, 하늘에는 구름이 표표히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리쬐다가 가려지기를 반복하며 화창한 날씨를 그리

고 있었다.

"나는, 나는 분명.’,

햇살은 밝으나 따갑지는 않다.

바람은 많이 부나 춥지 않다.

풀은 계속해서 흔들리며 다리를 간지럽히나 날카로운 면으로 상처를 내

지 아니한다.

하나하나가 사람에 게 친화적 이 었으며, 사람에 게 호의를 품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분명히 잡혀서.’,

남자가 조금 전까지 있었던 곳은 어두컴컴한 방 안이 었다.

지하특유의 꿉꿉한곰팡이의 냄새와습기가 가득 들어차있던 곳.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안좋아지는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지던 공간.

밝은 햇살은커녕 피부에 달라붙는 기분 나쁜 어둠만이 충만하였고, 풀은

커녕 해충의 기척밖에 느낄 수 없었던 그곳.

좋다고는 빈말로라도 말할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이런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니.

"•••꿈인가?"

어리둥절해하고 있던 남자는 문득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매뉴얼에서 있던,,꿈,에대한부분.

마지막 기 억과 현재의 기 억에 괴 리감이 느껴 진다면 그것은 악령이 사람을

현혹하려 드는 시도일 가능성이 크며,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현재가꿈

인지 아닌지를 파악해야만 한다는 문장이었다.

남자는 지금 상황이 꿈임을 확신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얼리티 체크(Reality Check)라불리는 것을 바로 행한 것이다.

그는 즉시 코를 막고 숨을 쉬는 것을 시도했다.

'쉬어진다.,

콧구멍 을 잘 틀어 막았음에 도 불구하고 콧구멍 이 뚫려 있기 라도 한 듯 숨

이잘쉬어졌다.

그 때문에 남자는 지금 상황이 꿈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내 가 조금 전까지 뭘 하고 있었지 ?'

꿈임을 확신한 남자는 머리를 팽팽 굴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떠올

리기 시작한것이다.

이는 리얼리티 체크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악령에게서 홀렸을 때 벗

어나기 위한 기초적인 방법이 기도 했다.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

는 것만큼이 나 중요한 일은 없었으니 까 말이 다.

"그래, 그 미치광이 신관놈이 교만에 대해서 떠들어댔어 ….’,

그 벌레로 이루어진 괴상망측한 작자는.

그 미치광이 같았던 그 신관은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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