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사술사신주
쬞 쬞 쬞
남자가 정신을 차렸을 때 느낀 것은 습한 공기 였다.
호숫가의 근처에 있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습기가 아닌,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서 피 어나는 꿉꿉한 습기 .
피부에 기분 나쁘게 달라붙는 습기를 맞아들이고 있자면 자연스레 숨을
들이쉬 게 되고, 그와 함께 폐 에 들러붙는 듯한 짙은 곰팡내 가 인상을 찌푸리
게 만든다.
'지하?,
이 기분 나쁜 습함과 곰팡내는 지하 특유의 서늘함을 품고 있었다.
땅속을 파고들어 야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었다.
그는 오감을 날카롭게 세웠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공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기 위
해서 말이다.
"아, 일어났는가?’,
그렇게 남자가 오감을 집중해서 무언가를 알아내려 할 때.
누군가가 기 다렸다는 듯 그에 게 말을 걸었다.
앞서 들었던 목소리 .
벌레떼로 변해서 자신을 제압했던 남자.
차기 신관이었다.
"슬슬 일어날 때가 되었다 여겼지. 어찌, 정신은 맑은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일까?
5m?
3m?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지 또렷하게 기척이 느껴졌다.
하지 만 그 기 척 이 란 참으로 묘한 것이 었다.
사람이 라기 에는 사람 특유의 느낌 이 나지 않았고, 사람이 아니 라고 하기
에는 사람의 형상이 느껴졌다. 시선이 느껴지기는 하되 사람의 머리통에서
만시선이 나오는것이 아니라몸 전체에 눈이 달리기라도한듯몸 전체에서
시선이 쏘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사람의 체취가느껴져야하건만 체취
는 온데간데 없이 그 자리 가 뻥 뚫린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뿐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체온이 존재해야 하는데 사람 특유의 따스함 대신에 냉골 같
은 차가움이 느껴 졌고, 작게 나마 숨을 쉰 다면 작게 라도 숨을 쉬는 소리 가 나
야 하는데 그런 것도 느껴 지 지 않았다. 사람을 흉내 내는 인형을 갖다 놓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넌, 정체가뭐냐.’,
그렇기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는 누구냐고.
사람인 듯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너는 대관절 정체가무엇이냐고.
사람 흉내를 내는 것 같은 네놈은 뭐 하는 놈이냐고.
그리고 이러한 남자의 질문을 차기 신관은 기쁘게 받았다.
"내 가 누구인가. 참으로 철학적이고 심오한 질문이로다.’,
그는 논쟁을 즐기는 학자처럼 그렇게 중얼거렸고, 고민을 하는 듯 어둠 속
에서 꾸물거리며 형체를 바꾸었다.
다리를 꼬고 한쪽 팔로 턱을 괸 형상이 었다.
이상한 것이 없는 모습.
하지만 그 모습에 위화감이 느껴 지는 것은….
남자가 아무리 눈에 힘을 주어봐도 차기 신관의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리라.
앉을만한 것도, 몸을 지탱 할만한 것도.
그 무엇도 말이다.
"수수께끼 중에 이러한 것이 있었지.분명 내 것이나 다른 사람이 더 많이
사용하는 것.’,
차기 신관은 웃음기가 묻어나는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혹여 그 답을 아는가?’,
"알게 뭐야.’,
"문답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그냥 답을 말하겠네. 그 답은 바로 이름이라
네.’,
이름.
나를 규정하기 위한 글자.
문자로, 언어로, 소리로 이루어진 단어.
"옛적, 이름이 없었을 적에는 참으로 불편하였겠지. 나를 소개하는 것에
크나큰 노력을 들여야 했을 터이니 말이 야.’,
이름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았을 적, 사람들은 자신을 다른 이들에게 소개
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자신의 용맹스러움을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하여 자기소개할 때 ,나는 창
과 도끼만을 들고 맹수를 홀로 사냥해서 잡았으며, 나를 해치려는 다른 부족
전사들을 열이나 죽인 전사다.,라고 한다거나.
자신이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알리기 위해 '달이 가장빨리 지는산의 중턱
에 있는 신령한 호수에서 온 여행자입니다.,라고 말하거나.
아주 복잡하고 늘어 지는 형 식으로 그 소개 가 이루어 졌으리 라.
하지만 이름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달랐다.
나는 무슨 무슨 일하고 무슨 무슨 업적을 이룬 전사라고 하는 것보다, 나
는 어떠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누구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쉽고 간편했을 테
니까.
'총 한 자루를 들고 코끼 리 수백 마리 를 잡았으며 , 그 상아를 팔아 아주 큰
부자가 된, 체스터 출신이 자 위 대한 사냥꾼 찰리의 아들이 며 그의 유지를 잇
는 사냥꾼,이라고 소개하는 것보다는, '코끼리 사냥꾼 마이크,라고 소개하는
것이 훨씬 간편하지 않은가.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렇게 압축된 단어는 편리하기는 하되 나를 가두는
천장이 되 어버리고 말았다.
글자가, 단어가, 소리가, 언어가.
그 자체가틀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나는 자네의 그 질문을 아주 환영하고 있어. 그
질문이 야말로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이 기 때문이 었네."
무언가심오하게 느껴지는진성의 말.
하지만 그런 심오해 보이는 진성의 말에 대한 남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무슨개소리냐?’,
사람을 납치해놓고 한다는 말이 이름이니, 틀이니 하는 말이라니.
당연히 남자에 게는 개소리로 느껴 질 수밖에 없었다.
어디 절이나 신사, 교회 같은 곳에서 들었으면 모르되 사람을 방 안에 납치
해놓고 저런 소리를 지껄인다면 미치광이로밖에 더 느껴지겠는가.
진성은 이러한 남자의 당연한 반응에 방긋 웃었다.
"이보게. 나는자네와함께 그틀을 없애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네.’,
"하, 개소리는 작작해라. 너 지금누굴 잡고 있는줄 알기나해? 음양청의
음양사를 잡고 있는 거야!’,
남자는 개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듯 소리높여 외쳤다.
그리곤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
.
..
"너 음양사에 대해 알기나해?’,
"흐음. 무엇을 말인가?’,
"우리 음양사는 말이야. 같은 음양사끼리는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블랙 기업에서 말하는 그 '가족,이 니 뭐니 하는 입 바른 소리 가 아니 라, 정말
로 혈족이나 가문의 일원처럼 서로를 챙겨주고 있단 말이다!’,
남자는 눈을 부릅뜨며 외 쳤다.
"우리 는 피는 다르지 만, 음양술이 라는 위 대 한 힘 으로 엮 여 있다. 우리 는 음
양술을 익힌 동료를 외면하지 않으며, 음양술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인 가족
을 버리지 않아!’,
"그러한가?"
"그런 음양청을, 음양사를 건드려? 너는 끔찍할 정도의 보복을 받게 될 거
다!’,
"흐음.’,
"당장 이것을 풀어라. 만으호 네가 모르고 이런 무례를 저지른 것이 라면, 적
어도 가벼운 처벌로끝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어리석은 짓거리를 하게 된
다면, 정말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될 거다!’,
남자는 당당한 태도로 그렇게 말했다.
마치 믿고 있는 것이 있다는 듯이 말이다.
실제로 그는 믿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
아니, 믿고 있는것이 많았다.
자신이 '액살의 집,이라불리는 별장으로 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선배도 있
었고, 음양청에서 기본으로 지급하는 장비들도 있었다. 거기다가그의 몸에
각인된 주술문(呪術文)도 있었고, 시술을 통해 몸에 삽입한주물(呪物)도 있
었다.
'흐.,
그가 자기 입으로 말했듯, 음양청은 음양사들을 끔찍하게 여겼다.
대체할 수 없는 귀중한 존재 이 자, 음양청 ■이 라는 가문이 자 보금자리 에
속해 있는 가족으로 말이 다.
그렇기에 그들은 음양사들의 안전을 정말 끔찍하게 챙겼다.
방어 관련 주물과 아티팩트는 어지간하면 원하는 대로 지급해주었고,
기본적으로 착용하는 장비에는 방어 주술과 더불어 추적 주술이 내장되어
있었다. 게다가위기의 순간에 변수를 만들기 위해 몸에 주술문을 각인해서
주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목숨을 잃거나 고문을 당하는 등의 최
악의 상황이 오면 그 흉수를 쉽게 추적할 수 있도록 몸에 주물을 집 어넣기까
지 했다.
음양사의 기본적인 성향이 안전을 편집증적으로 추구하는 성향이었는데,
이러한 성향이 단체 수준으로 확대됨에 따라 이러한 조처를 한 것이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나도 다른 선배들처럼 하고 다녀야지.,
게다가 저것들은 기본이다.
다른 선배들의 경우, 저것조차도 불안하다면서 온갖 방법을 사용했다.
GPS 장치를 들고 다니거나, 혹시 분실할지도 모른다면서 몸 안에 GPS 장
치를 삽입하는 수술을 하거나, 임무 때마다 특수 제작된 GPS 장치를 꿀꺽
삼키기도 했다. 거기에 주물과 아티팩트를 몸에 칭칭 감고 다니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었고, 어떤 선배의 경우 자신을 알아보는 놈들이 있을지도 모
른다면서 음양청 바깥으로 나갈 때마다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기도 했다.
그가 가장 안전 에 미 쳐 있다고 생 각하는 사람은 히 키 코모리 (引 늍 伊 젬 I )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선배였는데 , 아는 연금술사에게서 사 온 골렘과 로봇,
그리고 자신이 손수 만든 식신을 사용해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이 선배는 아예 음양청 밖으로 나가려 하지를 않았다.
■그러고보니 음양사가실종되면 가장 먼저 나서는 게 그 선배였지.오랜만
에 그 선배 얼굴을 볼지도 모르겠군.,
남자는 그렇게 생 각하며 거 만한 태도를 보였다.
턱을 살짝 치켜들고, 눈을 부리부리하게 치켜뜬 채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사람 형체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어서 풀라고 재촉하기라도 하듯 고
개를 살짝살짝 움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러한 남자의 거만한모습을 보고, 진성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
다.
대신에 무언가를 집어서 그의 앞에 툭 하고 던졌을 뿐이었다.
툭.
진성이 던진 것은 남자가 눈에 힘을 주면 볼 수 있을 만한 거리에 떨어졌다.
'어?,
그것은 천 조각이 었다.
멀쩡한 옷을 우악스럽게 뜯어버린 듯 거칠었고, 뒷골목의 쓰레 기통에서
굴러다닐 것처럼 아주 볼품없어 보였다.
"옷에 추적 관련 주술이 있더구나?’,
진성은 웃음기 섞인 어투로 그렇게 말했다.
"무늬 인 척 안에 주술을 섞 어놓다니 , 아주 고전적 이고 정석적 인 방법 이 었
다.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더구나.’,
그 말을 시작으로, 남자의 앞에 무언가가툭툭 던져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옷 장식인 척하면서 특정 새를 꼬이게 만드는 주술이 담겨있고.’,
부서진 장식이 던져졌다.
"이 것은 특정 피 가 닿으면 특정 벌레 가 사방에 서 꼬이게 만드는 주술이 며.
’’
찢긴 옷자락이 던져졌다.
"이것은 좀 신선하였느니라.중국에서 사용하던 추종향(追從香)에서 영
감을 받아 만든 것 같은 신발이라니. 비록 주술은 아니나 아주 흥미로웠다.
걷는 경로마다 추종향을 미세하게 남기는 신발이라!"
그가 신고 있었던 신발이 던져졌다.
그리고.
"그렇지. 내 자네의 몸에 있는 것도손을보았다네.’,
진성은 그렇게 사형선고 같은 말을 담담하게 늘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