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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320화 (320/526)

<320화〉사술사신주

토키 타카가 등을 돌려 테라스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지저분한

테이블이었다.

야외 테라스에서 티타임을 즐기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덩그러 니 놓인 테 이블 위 에는 빈 찻잔과 스콘 부스러 기 만 남아 있었다. 게 다

가 잼을 어떻게 먹은 것인지 테이블 곳곳에 잼이 퍼져 있었다. 이곳저곳에

덕지덕지 묻은 데다가 바닥에까지 흩어져 있는 모습이, 잼을 바른 것이 아니

라 잼에 스콘을 집어 던지면서 논 것이 아닌가싶은 생각마저 들게 했다.

■음식 던지기라니,그무슨.'

토키 타카는 머 릿속에 떠 오르는 상상에 피식 웃고 말았다.

신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잼을 산더미처럼 퍼다놓은 곳에 스콘을 던지며

노는 모습이라니.

동심 이 라고 보기 에는 한없이 기묘해 보이는 모습이 아닌가.

특히나 나이 가 꽤 들어 보였던 아까 남자의 모습이 라면 더더욱 말이 다.

그건 동심 이 아니 라 치 매 라고 표현해 야 맞으리 라.

'잠깐만. 그런데 그 남자가 나이 들어 보였던가?,

토키 타카는 문득 떠 오르는 의 문에 고개를 갸웃거 렸다.

스콘을 먹던 사람은 어떻게 생겼지?

잼을 바를 때 어떻게 발랐었지?

나이가몇이었지?

남자는 맞았나?

의문은 꼬리를 이 어가며 머릿속에 떠올랐다.

분명 본 것같은데.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라서, 사람을 잘 기억하는 게 특기인데.

그런데 그 남자의 얼굴이 뚜렷하게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렴풋이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남자?

그래. 남자인 것같다.

양복을 입은 것 같았고.

피 부는 하얀색 이 었던 가?

누렇게 뜨지 않았던가?

스콘을 어떻게 먹었지?

맛에 감탄할 때 표정은?

토키타카는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남자에 대한 의문에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왜 이런 게 떠오르는 거야.,

중요한 일도 아니 다.

그냥 지나가다가 본, 일상의 풍경 같은 느낌 이다.

그런데 그거에 관해서 왜 이렇게 깊이 생각해야한단 말인가.

토키 타카는 생 각을 저 리 치워 버 리고 바람을 마저 쐬 려고 했다.

하지 만 그가 생각을 멈추려고 할 때마다 육감이 생 각을 멈추지 말라며 끊

임없이 경고하였고, 그 때문에 그는 풍경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채 계속 생

각을 이어갈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토키 타카는 풍경을 즐기고 싶은 마음과 남자에 대해 고찰하고 싶

은 마음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마음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끊임없이

고뇌하면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도 못한 채 테라스의 난간을 앞에 둔 채 우

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두커니.

그래.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면서.

!……

..

호수에 서 느껴 지는 비 릿한 냄 새와 산에 서 흘러 나오는 코를 간질거리 는

바람을 느끼면서 말이다.

산에서는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가득 심겨 있었다.

당연하게도 눈에 보일 정도로 커다란 꽃가루가 바람에 잔뜩 실려서

흘러나왔고,그의 코를사정없이 쑤시며 재채기를 유발하게 만들려 했다.

■빌어먹을 꽃가루 같으니.,

항상 이맘때만되면 일본에 넘쳐나는 것이 바로 저 꽃가루들.

편백 나무 하나, 삼나무 하나에 서 나오는 꽃가루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

하는 양이었다.

사람 한 명을 세워놓고 그 아래에서 나무를 몇 번 흔들면, 떨어지는 꽃가

루 때문에 밀가루 포대를뒤집어쓰기라도 한 것처럼 하얗게 물들 정도다.

그런 나무가 일본의 전 국토에, 산마다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으니 꽃가

루가 범 람할 수밖에 .

그 꽃가루는 눈보라를 연상케 할 정도로 온 하늘을 하얗게 물들이곤 한다

.

그는 꽃가루가 콧속에 쑤셔박히면서 나는 익숙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

다가, 문득의문하나가수면 아래에 가라앉았다가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잠깐만. 왜 갑자기 꽃가루를 생각했지 ?'

위화감이 느껴진다.

이상하다.

분명 조금 전까지 그는 고민하고 있었다.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과 야외 테라스에 있었던 남자에 대해 고찰하고 싶

은 마음.

이 두 가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두 고민거리는 바닥에 처박히기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

에 사라져버렸고, 그 대신에 꽃가루 알레르기도 없는데 꽃가루에 대한 고민

이 갑자기 팍 떠오르면서 그의 머리를 가득 메웠다.

이건.

이상하다.

누군가 생 각을 조종하기 라도 하는 것 같지 않은가.

"젠장( 築 츺흼)!’,

토키 타카는 그제 야 위 기 감을 느낄 수 있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상하다.

이곳은, 이상하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무언가에 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이딴 곳을 모임 장소로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

무언가에 홀렸냐고?

당연한 것 아닌가.

액살의 집이라고 불릴 정도의 악명 높은 흉가다.

그렇다면 당연히, 악령밖에 더 있겠는가!

'도망쳐야 한다.,

토키타카는 척추서부터 머리끝까지 순식간에 솟구치는 한기에 몸을 부르

르 떨었다.

그는 이를 꽉 악물고 몸을 돌려서 다시 실내로 들어갔다.

그리고 평온을 가장하기 위해 얼굴 근육에 힘을 콱준 채 걸어갔다.

그가 들어왔던 그곳으로.

줄을 서서 들어왔던 바로 그 문을 향해서.

■절대로뛰어서는 안돼.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그는 당장이라도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면서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문과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당장이 라도 그러고픈 마음을, 공포를 누르고 그는 천천히 움직 였

다.

■자극하면 바로 내가 표적이 된다.'

맹수에게 등을 보이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등을 보이게 되면 공격당하기에, 도망을 가고 싶다면 정면을 마주 본 채

뒷걸음을 쳐야 한다고.

지 금 토키 타카가 하는 행동 역시 그와 비 슷한 것이 었다.

평온을 가장하고,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행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나가려고 한 것이 다.

'어차피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많아. 그러니까 나 하나쯤은 크게 신경을 쓰

지 않을 거 야. 이 상한 반응을 보이 지 만 않으면 돼.'

먹이는 많다.

널린 것이 먹이다.

이 액살의 집에 진짜 악령이 있다면 저 수많은 사람이 전부 미끼이자 먹음

직스러워 보이는음식일 터.

그렇다면 주의를 끌지 않는다면 몸 하나 정도는 뺄 수 있었다.

그러니 천천히.

평온을 가장하며 움직 여 야 한다.

그는그렇게 속으로쉴 새 없이 되뇌며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상하게 보일까 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여유가 넘치는 것처럼 발걸음

을 천천히 움직 이고.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아까처럼 귀를 열고 은근슬쩍 주위를

훑으면서 말이다.

■빌어먹을. 제기랄. 내가 이렇게 멍청했다니. 빌어먹을.,

공포를인지했기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진실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이렇게 이상했는데 이걸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고?,

그는 뒤늦게나마 이곳의 이상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별장자체가 이렇게 이상했는데.,

이상하다.

별장자체가, 이상했다.

가장 먼저, 별장 전체가 낡아 보였다.

들어올 때는 감탄을 일으켰던 별장 내부의 풍경이 전부 낡아 보였다.

먼지 한톨 없이 깨끗하게 닦여 있었음에도, 낡아 보였다.

게 다가 서 양과 일본 전통을 섞 어서 만든 것 같은 실내 장식은 어수선해 보

이고 어질러져 있는 것처럼 보였고, 모든 것이 삐뚤삐뚤 어그러진 것처럼 느

껴 졌다.

그러면서도 자세하게 살펴보면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

■흉가를 보면 흠 잡을 데가 없는데도 어수선하고 낡고 더럽게 느껴진다

더니. 제기랄.,

게다가 곳곳에 걸려있는 그림도 그렇다.

추상화나 현대미술처럼 보였던 그것들은 '예술,이라기보다는 어떤 주술

적 문양처 럼 보였다.

게다가 저주라도 걸려있기라도 한 것인지, 몇 초만 응시해도 정신이 몽롱

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게다가 그것뿐만이 아니다.

아까는 느끼지 못했지만, 공기 중에 이상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시 트러스 계 열의 짙은 향수 사이 에 느껴 지는 그 냄 새는, 분명히 향을 닮아

있었다.

절에서나 맡을법한.

향말이다.

그 냄새를 맡고 있자면 정신이 고양되고 몸이 가벼워 지는 느낌이 들었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편안함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아냐. 착각이 아니야.'

편안함. 평온함.

당장이 라도 소파나 의 자에 앉아서 늘어 지 게 이 평 화로움을 만끽하고 싶

은기분이 들었다.

저택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르는 서늘한 느낌은 기분 좋은 서늘함이 되 었

고, 사람들이 떠 드는 소리 나 뭉개 진 웅성 거 림 , 쿵쿵거 리는 발소리 는 백 색 소

음이 되어 정신을 평온하게 만드는 것이 되었다.

와득.

토키 타카는 몸을 나태하게 만들고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향에 저항하

기 위해 혀를 씹었다.

’’——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하고, 혀끝에서 얼얼한 느낌이 감돌았다.

하지만그 반대급부로 제정신이 들고, 눈이 번쩍 뜨였다.

■여기는, 위험하다.,

혀와 입에 남은 얼얼한 고통의 잔상이 그에게 채찍질하며 소리쳤다.

어서 이곳을 나가라고.

토키타카는 미친 듯이 경종을 울리는 위 기감에 저항하지 않은 채 계속

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 몇 걸음을 걸었을까?

계 단을 올라가는 두 사람이 보였다.

아까 그가저택에 들어왔을때 본두 사람이었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본 채 계단을 올라가는 몸짓을 하고 있었는데, 기이하게

도 계단을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그 동작 자체는 분명히 올라갈

때 하는 것이었는데, 한 번은 위의 계단을 밟았고, 한 번은 아래의 계단을 밟

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끊임 없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다.

마치 에스컬레이터에서 느릿느릿한 칸씩 올라서 제자리를 유지하는 것처

럼 말이다.

그들은 그 상태로 ■대화,를 나누었다.

아주 일상적 인 대화를 말이 다.

" 이거 쑥스럽습니 다. 하지 만 이건 제 아들놈이 뛰 어 났다기보다는 그냥 재

주 하나가 있어서 그런 것이지요. 진짜 대단한 것은 가쿠슈인 남자 중학교에

서도 상위권을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사장님 아드님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렇기는 하지요. 하지 만 중고일관교라고 해도 뭐 … . 교토 헤 이 세

이 이능력 특성화 고등학교에 비해서는 빛이 바래지 않겠습니까?’,

"아, 사장님 의 아드님 도 좋은 학교에 들어 갔다고 알고 있는데 요. 중고일

관교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저 역시 아들놈 하나를 키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 때문인지 교육에 관련

된 거라면 귀를 쫑긋 세우게 되더군요.’,

"하하하. 이거, 들으셨습니까? 그냥 주위에 살짝 자랑했을 뿐인데 사장님

의 귀까지 들어가다니 ….’,

"이번에 아드님이 합격했다는 이야기를들었습니다.’,

그대화는.

아까했던 대화의 순서만을 뒤바꾼그대화는.

토키타카의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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