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화 > 주술 유망주 박진성
희생양으로서의 제물은 액을 한몸에 끌어안는다.
먼지를 쓸어 담은 쓰레받기처럼, 더럽고 끈적이는 것을 닦은 걸레처럼.
자신이 오염되고 더러워지면서 그것을 제 몸에 담는다.
그 이후에 해야하는 일은 자명하다.
더 러움을 끌어 안은 채 그대 로 사라지 는 것 이 다.
걸레는 불에 타들어 가서 순수한재가되고, 쓰레받기는 잘 씻기지도 떨어
지 지 도 않는 먼 지 와 함께 쓰레 기 장에 처 박혀 야 하는 운명 이 다.
"주술사들은, 학자들은 이를 ■물질적 매개물에 의한 재앙의 추방,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진성은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그리고 이러한 ■추방,을위해서는 상징성이 필요합니다.제물이 그 재앙
을 끌어 담을 수 있다, 재앙을 운반하는 매개물이 될 수 있다고 증명하는 상
징성이 말입니다. 그 때문에 불길하게 여기는 동물을 사용하기도 하고, 사악
한 존재를 형상화한 가면을 쓰기도 하고, 그것도 아니 라면 사람을 흉내 낸
것을 사용하기도 하죠.’,
"상징성이라….’,
"하하하. 어렵게 표현했습니다만사실은 별것 아닙니다. 염소가 악마의 짐
승이라는 이야기를들어보셨죠? 이러한 염소에 사악한 것,을 깃들게 한 다
음 추방하거 나 불에 태우는 방식을 사용할 수도 있고, 악마나 귀 신의 가면을
쓸 수도 있지 요. 그것도 아니 라면 두려워 하는 특정 재 앙을 상징 하는 우상이
나 상징을 매개로 삼을 수도 있고, 우리나라의 제웅처럼 인형을 만들어서 재
앙을 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김철수는 진성의 자세한 설명에 감탄했다.
지식 그 자체에 감탄한 것은 아니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그것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재주까지 있음에 감탄한 것이다.
"많은것을 알고 계시는군요.’,
"아닙 니 다. 상식 …보다는 조금 더 전문적 이 기는 합니 다만, 그렇다고 해서
엄청나게 깊게 들어간 것은 아니지요. 그저 잡스러운 지식에 불과할 뿐입니
다.’,
진성은 김철수의 감탄에 겸양을 떨었다.
그러더니 화제를 돌리려는 듯 테이블 위에 놓인 사진 중 한 장을 들어 올
리며 말을 이었다.
"이러한잡스러운 지식으로추측건대, 여기 나온괴물들은…. 이 '재앙을
옮기기 위한 물질적 매개물,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흐음.그렇게 생각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라.’,
진성은 김철수의 물음에 또 다른 종이를 들어 올렸다.
"이 종이에 적혀 있기로는 여기 괴물들이 일본의 요괴라고하셨지요."
"예. 그렇습니다.’,
"제가 일본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이 나라의 신앙은
조금 특이한 구석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팔백만(槭뺗 梖 弓뼞)의 신이라고
했던가요?’,
팔백만 신.
실제 신의 숫자가 팔백만인 것은 아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뜻의, 일종의 비유적인 표현이 었다.
"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종교, 신토(神道)는좀특이한구석이 있다고생각
합니다. 현재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종교와 비교해서는…. 이렇게 표현하는
게 좋겠군요. 원시적인, 예. 원시적인 느낌이 가득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
다.’,
"원시적인 느낌, 말입니까?’,
"예. 원시적인 느낌입니다.’,
원시란 무엇인가.
그것은 미 지 가 가득했던 시 절이 다.
"옛 인간은 항거할 수 없는 존재 를 두려워 하였고, 그 공포에 서 벗어 나기
위 하여 숭배 하고 숭앙하였습니 다. 공포를 의 인화하여 모시 기도 하고, 그 자
체 로 신으로 모시 기도 하였고, 배 척하거 나 정성을 다하여 모시 거 나 하면서
•••.그렇게 신앙이 만들어졌지요.’,
그것이 바로 애 니 미 즘, 토테 미즘 등으로 불리 는 원시 적 종교의 시 작입 니
다.
진성은 논문을 읽는 것처럼 담담하게 그렇게 말했다.
"일본은 이러한 원시적 신앙의 특성 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 가 바로 재
앙신(崇I神)이지요.’,
"재앙신….’,
"예.자신이 대항할수 없는존재,두려운존재,사람에게 해를 끼치는존재
•••. 이러한 존재를 신으로 모시면서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일본 신
토의 특성이지요. 이는 옛 원시시대의 사람들과 아주 흡사하다고 할수 있겠
습니다.’,
진성은 이렇게 말하고는 작게 웃음을 지 었다.
"물론 다른 종교에도 이러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는 악마나 진(우)같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에 대한 언급이 나
오고, 불교에 서는 악귀 나찰이 나 마라 같은 존재 가 나오곤 하니 까요. 하지 만
이 러한 존재들은 그 자체로 숭배 받기보다는 신의 위 대 함을 사용하기 위 한
장치로 사용되 거 나, 저들에 대 한 공포를 신이 나 부처 에 대 한 믿음으로
바꾸기 위해 사용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일본의 것은 좋게든 나쁘게든, 원
시적인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
!.
..
진성은 그렇게 설명을 마치고는 사진을 내밀었다.
"그리고 저는 이 괴물이, 아니. 말을 정정하도록 하지요. 이 요괴 가 바로 그
것이 라고 생각합니 다."
"일본의 사람들이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 숭배하려고 했다, 이 말이지요
?"
"예. 일본에서는무서운 것에 이름을 붙이면 무섭지 않게 된다는 말이 있
다고 하지요? 이 사진에 있는 요괴들은 아마 전부 특정 공포를 형상화한 것
이겠지요.흠, 설명만으로대충 짐작이 갑니다. 아마비에라는 이 특이하게 생
긴 인어는 전염병에 대한공포를 의인화한 것일 테고, 이와나보우즈는 ■살생'
에 대한 꺼림칙함과 살생했을 때 받게 될 업보를 형상화한 것일 테지요.’,
"공포를 형상화했다…. 그렇다면 그 공포와 연관된 '좋지 않은 것,을 담는
매 개로는 이것만 한 것들이 없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이 아마비에를흉내 낸 존재를 만들어낸다면 역병과관
련된 것을 떠넘기기 쉬울 것이고, 이와나보우즈를 흉내 낸 존재를 만들어낸
다면 피와 죽음에서 비롯되는 부정을 떠넘기기에 편하게 되겠지요.’,
김 철수는 진성의 말을 듣다 이해 가 안 된 다는 듯 물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이 재앙을 옮기기 위한물질적 매개물인지 뭔지 하는
것들이 대체 왜, 한반도에 나타난겁니까?’,
그것은 아주 타당한 질문이 었다.
요괴에 대해서는 대충 알겠다.
그렇다면 이 요괴 가 대체 '왜' 나타난 것이 냐.
진성은 그 질문을 듣자 고민이 된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글쎄요. 이게 참, 짚이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기는합니다마는….’,
"짚이는 것이 있어요?’,
"예.’,
진성은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3개가 있습니다."
"3 개라….’,
진성은 손가락 하나를 접으며 말했다.
"일단 첫 번째로는 이 요괴들이 '재앙의 추방,이라는 목적에 충실했을 경
우입니다.’,
"재앙의 추방이라면.’,
"예.표정을 보아하니 짐작이 가시는 모양인데, ,일본의 재앙,을한데 모아
서 나라 밖으로, 정확히 말하면 자신과 상관없는 '외국,으로 추방했을 경우입
니다.’,
진성이 첫 번째로 말한 가능성은 나쁜 것을 다른 나라에 투기했을 가능성
이었다.
당연하게도 김철수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말이 나쁜 것을 다른 나라로 넘긴 것이지, 방사능 폐기물 같은 유해 폐기물
을 다른 나라에 몰래 갖다 버리고 나 몰라라 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 없었
다.
이 것은 단순히 멱 살잡이로 끝나는 게 아니 라, 국가 간 분쟁 이 일어 나기 충
분한일이다.
당장 몇십 년 전에 이 집트가 의 식을 통해 국토의 재 앙과 죄 악을 짊 어 지 게
한수소를그리스로 몰래 버린 일 때문에 전쟁 직전까지 갈뻔했던 일도 있었
다.
물론 단순하게 수소 하나 때문에 둘이 전쟁 직 전까지 간 것은 아니 었다.
이 집 트와 그리 스가 국가 간 마찰이 심했던 시 기 이 기도 했고, 이 집트가 그
리스에 재앙을품은수소를몰래 버렸음에도,고대 이집트때부터 이렇게 의
식을 하고 나면 수소를 그리스에 팔았다. 우리는 전통대로 한 것뿐이다. 무
슨문제가 있느냐.,며 뻔뻔하게 나왔기에 일이 커진 것이기는했다.
"하하. 이것 참.’,
진성은 뭔 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 철수를 보면서 손가락 또 접 었다.
"그리고 두 번째입니다. 단순히 재앙의 매개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테
러하기 위해 사용했을 경우입니다."
"테러….’,
"예. 아시다시피 이 요괴 모방체들은 단순히 매개물이라기에는 전투력도
꽤 충실했지요. 이는 이 모방체들의 원본이 되는 요괴 가 공포를 형상화한 것
이 기 에, 사람에 게 해를 가할 수 있는 능력을 그대로 품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
다.’,
진성은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주술 중에는 이러한 것들이 꽤 있어요. 인형술사라 불리는 주술
사들이 다루는 것이 이러한 종류거든요. 설화속 인외(人外)의 존재를 흉내
낸 것을 부리며 액을 담고, 인형을 부려 적을 물리치고, 필요하다면 인형을 희
생시켜 품고 있는 액을 사방에 뿌려 오염을 시키는…이러한 인형 주술을 사
용하지요.’,
"그건….’,
진성이 두 번째로 말한 가능성은 '공격,의 용도.
요괴 모방체를부려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공포를 일으키고, 액까지 뿌
려 오염까지 시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당장생방송뉴스에 대통령이 나와서,테러와의 전쟁,을 선포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웬 미친놈들이 사람들 위협하고, 폭탄으로 이곳저곳 터뜨리고, 화학물질
로 국토를 오염시키는거랑크게 다를바가 없었으니까.
김철수의 얼굴은 점점 심각하게 변했다.
진성은 심각한 표정을 짓는 김철수에게 안심하라는 듯 세 번째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
"그리고 마지 막 세 번째입 니 다. 이 것은 김철수 비 서님 께 조금 안심 이 되 는
가능성 일 수도 있겠습니 다.’,
"안심이라.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물의 봉인이 풀리면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 가능성입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