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 사람을 현혹하는 혀
그림자는 무너지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얼핏 사람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일그러지는 아지랑이처럼 형체를 계속
해서 바꾸었고, 녹았다가 굳기를 반복하는 조형물처럼 큰 키에서 작은 키로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 같았다.
남자는 허깨비를 보는 듯한 그 기묘함에 눈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지금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보나 싶었다.
그렇게 눈을 한 차례 비 비고 나니 , 남자는 그림 자의 형상을 제 대 로 볼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어둠 속에 파묻힌 그 인영(人影)의 대략적인 형체를 파악
할수있었다.
■꼽추?,
그림자는 등이 굽어 있었다.
노트르담의 꼽추에 나오는 콰지모도처럼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었고, 툭
튀 어 나온 등은 혹을 짊 어진 듯 보였다. 어쩌 면 사람이 낙타를 흉내 내 면 저 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싶어질 정도였다.
"누굽니까? 일단나와봐요.’,
남자는 밤중에 재수 없게 저런 것과 마주쳤다면서 속으로 투덜댔다. 하지
만 투덜대는 속과는 다르게 그의 입 에 서 나오는 밝은 곳으로 나오라는 말은
살짝 떨리고 있었고, 어둠 속에서 무엇이 튀 어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긴장했다.
"크-흐. 알겠네.’,
그림자는 남자의 말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그림자는 몸을 좌우로 흔들흔들 움직이며 비척거리며 서서히 어둠 밖으로
나오며 모습을 드러내 었다.
"헙."
남자는 밖으로 나온 그림자의 모습에 비 명을 삼켰다.
그 모습이 너무 괴기했기 때문이다.
'괴, 괴물?'
그림자에 있을 때는 평범한 꼽추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 등장한 알 수 없는 존재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괴물에 가까
운 모습이었다.
물고기의 비늘, 혹은 징그러운 벌레들이 떼로 달라붙어서 만들어진 것 같
은 이상한 피부에 황금 가면을 쓰고 있는 괴 한이 라니.
어디 B급 공포영화에나 나올법한 괴물의 모습과 흡사했다.
■더럽게 살벌하게 생겼네. 빌어먹을.,
남자는 침을 꿀꺽 삼키 며 그림 자 밖으로 모습을 드러 낸 괴 한을 바라보았
다.
괴 한은 등이 굽은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남자에 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오고 있었으며, 벌레를 연상시키는 황금 가면을 쓴 채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몸이 움직이는 와중에도 황금 가면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황금 가면이 공중에 둥둥 떠서 남자를
향해 다가오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기묘한 분위기.
I |..
!.
........
그 기묘한 분위 기 에 남자는 도망갈 생 각도 하지 못한 채 침을 꿀꺽 삼킨
채 괴한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묘한 긴장감 때문이 었을까?
아니 면 공포 때문에 ?
그것도 아니라면 호기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멈춰서서 괴
한을 바라보았고, 황금 가면의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올 때까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황금 가면 속 안의 눈동자가 번들거리 며 남자의 눈을 바라보았고, 남자 역
시 긴장 어린 눈으로 황금 가면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차마 눈을 마주치 지 못했다.
번들거 리는 눈에 는 기 묘한 광기 가 소용돌이 치 고 있는 듯 보였으니 까.
남자는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것과 흡사한 눈을 피해 가면의 인중 부근이
나 콧잔등으로 시선을 두며 눈을 마주치는 것을 회피했다.
겁을 먹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남자는 지금 눈앞의 괴한에게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그럴수밖에.
■더럽게 무섭게 생겼네, 빌어먹을!,
B급 공포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살인마 복장을 한 사람이다.
저 사람이 실제로 살인마이건 아니건, 일단 이 시간에 저 복장을 입고 그에
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부터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분위 기도 심상치 않았다.
그냥촬영용의상을 뒤집어썼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섬뜩했다.
그런데 겁을 먹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저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게다가 남자는 평소 기사로 어그로를 좀 많이 끌었던 터라, 알게 모르게
사람들에게 원한을 살 일이 많기도 했다.
켕기는 게 많으니 더더욱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누군가가 '저 새끼 좀 조져주세요.,라고부탁
해서 방문한 깡패나 살인범일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이-보게. 젊은이.’,
황금 가면을 쓴 괴한은 쇳소리를 내며 덜덜 떨고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
다.
"내 질문-하나만 함세. 답해줄 수 있겠는가?’,
괴한의 목소리는 기묘했다.
제각각으로 뛰어노는 성조는 소음을 조합해서 만든 것처럼 기괴했고, 마
디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칼이 되 어서 귀 에 직접 꽂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
으켰다. 게다가 괴한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쇳소리는 문장의 내용을 그대로
뇌 에 강제 로 쑤셔 박기 라도 하는 듯 또렷하게 들렸다.
기이한일이었다.
상식 적으로 생 각해서 제 대로 알아들을 수 없어 야 정 상인데 , 그 무엇보다
도 이해가 잘 된다니.
그렇기에 남자는 더더욱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사람이 복장만큼이나, 어쩌면 복장보다도 더 비범하고 기괴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이 야기 였으니까.
"자네는 말이야-"
괴한은 쇠를 긁어내는 듯한 소리로 질문했다.
"-무엇을 원하나?’,
그 질문은 아주 평범하면서도 기괴한 것이 었다.
무엇을 원하는가.
친한 사이에서도,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질문.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한 질문이었다.
"예?,.
그렇기에 남자는 괴한의 질문에 반문할수밖에 없었다.
"뭘 원하냐니…. 그게 무슨…?’,
그는 얼빠진 말투로 괴한에 게 되물었다.
하지만괴한은 남자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어서 답하라는 듯 그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어, 그….’,
남자는 그 시선이 주는 압박에 못 이겨 입술을 천천히 떼었다.
하지만 너무 긴장했던 까닭일까?
그의 머릿속은 표백제라도 들이부은 듯 새하얗게 되어 제대로된 생각을
할수가없었다.
평소라면 어렵지 않게 답했을 질문이 었음에도 그는 쉽사리 입을 떼지 못
한 채 진땀만 뻘뻘 흘렸다.
"크-흐. 그래, 욕망이란 그런것이지…."
괴 한은 그런 남자의 모습을 보며 기 껍 다는 듯 웃었다.
가면 안의 눈동자는 눈웃음에 찌그러졌으며, 감정이 섞인 번들거림이
눈동자에 한 차례 감돌았다가 그대로 사라져버 렸다.
마치 달빛이 물에 비쳤다가산산이 부서지는 것처럼 말이다.
"욕망이라는 것, 은 말이네. 소용돌이치고, 부서지고, 만들어졌다가, 파도
치고, 휩쓸리 고, 세워 졌다가, 무너지 고, 조각났다가, 붙여졌다가를 반복하지
•••. 반죽이 되고 가루가 되는, 그렇기에 직시하기 힘든, 그런 것이니.’,
괴 한은 선문답에 가까운 말을 하며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검지로 남자의 몸을 콕 하고 찔렀다.
그러자 남자의 긴장 때문에 뻣뻣하게 굳은몸에 힘이 확풀렸고, 새하얗게
변해버린 정신 역시 각성제라도 먹은 것처럼 갑자기 돌아왔다.
"허, 허억.’,
남자는 악몽을 꾸다가 숨을 몰아쉬 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친 숨을 내뱉으
며 전기라도 맞은 것처럼 튀 어 올랐다. 그러더니 괴 한에 게서 멀어지 기 라도
하려는 것처럼 두어 차례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그는 뒷걸음질을 치고 괴한과 거리를 벌렸을 뿐, 도망을 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만약 등을 돌리 게 된다면 저 괴한이 , 알 수 없는 저 존재 가 자신을 쫓아올
지도 모른다는 생 각이 들었기 때문이 다.
맹수에게 등을 보여선 안 된다고 했던가.
남자는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그 충동에 몸을 맡기면 끔찍한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차마 몸을 돌리지 못한 채 계속 괴한을 마주
보았다.
계속.
계속 말이다.
"그으래,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대답을, 못한다…. 그럴 수 있지. 크-흐
.그럴수 있어….’,
괴 한은 그런 남자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가면에 가려져서 그 표정을 정확히 볼 수는 없었지만.
괴한은 분명히 웃고 있었다.
"욕망이 라는 것은 말일세, 군살과 같다네. 끊, 임 없이 .그래, 끊임 없이 비대
해지는 군살 말이야…. 그렇게 살이 붙고 거대해지기를 반복하면, 종국에는
그 시작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은 채 그 욕망을 유지하는 것을 욕망하게 되는
것이지. 그래, 그렇게 되는게야…."
괴한은 가로등의 불빛에 번들거리는 황금 가면으로 남자를 보며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 여 남자의 주머니를 가리 켰다.
"젊-은이. 자네의 욕망을 시험해보겠네.’,
"네?’,
괴 한은 손을 꼬옥 쥐 었다가 천천히 손을 펼쳤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었던 손에는 마술처럼 무언가가 나타나 있었다.
그것은바로수첩.
문방구에 서 1,000원 만 주면 살 수 있는 자그마한 싸구려 수첩 이 었다.
심지어 헤지고 찢어지고 오물이 잔뜩 묻어있는 것이, 어디 쓰레기장에서
대충 주워온 것 같았다.
"받게.’,
남자는 괴한이 자신에게 내미는 수첩을 천천히 받아들었다.
그는 더럽고 냄새나는 수첩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 만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안 받으면 눈앞의 이상한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으니까.
그는 인상을 확 찡그리 면서도 그 수첩을 받아들었고, 괴한이 눈치를 주자
그것을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집어넣기까지 했다.
"그 수첩은, 선물이네. 다만 다른 선물을 원하거든- 그래…. 이 시간, 이 장
소로나오게.’,
괴 한은 그것을 보고 만족한 듯 고개 를 끄덕 이 곤 그대 로 몸을 돌렸다.
그는 어둠에 그림 자가 녹아들 듯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 만 남자는 괴 한이 사라지 는 것을 눈으로 보았음에 도 한참 동안 그 자
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괴한이 완전히 사라
졌다고 생각되 었을 때, 남자는 그제 야 긴장이 탁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
았다.
"하아아아."
살인마를 마주했다가 간신히 도망친 사람이 딱 이런 느낌 일까?
"더럽게 무섭네. 빌어먹을.’,
이상한 피부도 기괴했고, 황금 가면도 이 상했다.
하지 만 남자를 긴 장케 하는 것은 바로 괴 한의 분위 기 였다.
자신을 사람이 아니라 먹잇감으로 여기는 듯한 그 기묘한 눈동자가.
불길함을 온몸에 두르고 있는 것 같은 그 분위 기 가.
그 사람을 홀리는 악령 같은 그 분위 기 가.
그 모든 것이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앞으로 이 길로 다니 나 봐라. 제 기 랄.,
남자는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서 왔던 길을 돌아가 카페로 다시 들어갔다.
사람이 많은 곳에 있고 싶었으니까.
남자는 초췌해진 얼굴로 카페로 들어 가 적 당한 테 이 블에 앉았다.
그리곤 창밖에 돌아다니는 사람과 도로를 지나치는 자동차를 멍하니 바
라보며 애써 마음을 추슬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남자의 마음에 들어찼던 공포는 점점 옅어졌다.
괴한이 준 수첩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말이 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수첩을 확인해 보았고.
눕 규칙 1. 제물을 바치면 정보를 얻는다. 禳
첫 장을 펼치 자마자 소름 끼치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