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이사
진성의 이사는 복잡하게 진행되었다.
진성은 자신의 짐을 옮기는 것에 온갖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가구
와물건들을 각각의 날짜에 맞춰 옮겨야 한다며 여러 차례 저택과 건물을 왔
다 갔다하며 짐을 옮겼다.
손 있는 날에는 악령이 나 부정과 관련된 물건을 옮겼고, 해 가 쨍쨍한 날에
는 태양이나 양기와 관련된 물건을 옮겼다. 일부러 부정에 노출하기 위해서
귀문이 열리는 방향이나 사람이 죽었던 곳들을 들르며 움직이기도 하였고,
음산한 느낌의 창고에 며칠 동안 물건을 맡겼다가 건물로 가져가기도 하였
다.
진성의 행동은 일반적 인 이 사라고 보기 에 는 괴 이했으며 , 기 이하게 만 보였
다.
다른 사람으로선 좋게 보아도 나쁘게 보아도 기행 (奇行) 그 자체 였다.
일반적인 이삿짐센터에 연락하면 몇 시간 만에 끝날만한 일이었다.
그뿐인가?
능력자 출신의 사람들이나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 고급 이 삿짐센터를
이용한다면 1시간도 되지 않아서 옮길 수 있는 양이었다.
애초에 진성이 옮길만한 이삿짐은 방하나 정도였으니, 1시간이 아니라 툩
0분이면 깔끔하게 건물로 옮길 수도 있어 보였다.
그런데 굳이 이삿짐센터를 이용하지도 않고 온갖 방법을 이용해서 옮겼
다.
지게에 짊어진 채 걸어서 건물까지 가지를 않나, 차에 실어서 가되 특정 시
간에만 이동하게 하지를 않나, 사람을 고용해서 옮기게는 하되 절대로 중간
에 물건을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등….
보는 사람이 의문이 들게 만드는 기이한 행동들이었다.
아마 일반적인 사람이 이런 짓을 한다면 머리가 이상한 게 아닐까 의
심받았으리라.
하지만 박진성은 주술사였으며, 그 덕분에 사람들은 진성의 행동을 주술
사들이 행하는 특유의 행동이라고 이해했다. 다만 그 기저에 깔린 이유는 알
수가 없어 그냥 '이상한 짓을 하는구나. 뭐 주술사가 그렇지.,라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진실에 파고드는 데 성공한 존재도 있기는 했다.
[ 허, 계 약자야. 귀여운 나의 계 약자야. 네 오빠는 정말 이것저것 많이도 모
아놨구나.게다가뭐 이리 취급이 까다로운물건이 많은것인지 원.]
이세린과 계약한 악마, 그레모리가 바로 그러했다.
[돼지의 첫 번째 새끼의 탯줄, 새의 머리를삭혀서 만든액체, 새의 내장에
술을 채워서 만든 공양물, 지네 수백 마리를 이용해 만든 고독을 넣어서 담
근 술, 주물(呪物)을 부순 조각들을 아교로 붙여서 만든 조형물, 향유를 한껏
머금은 떡 갈나무 조각, 벼락을 두 번 맞은 대 추나무 조각, 단두대 에 서 처형
당한죄인의 목에서 솟구친 피를 이용해 담근술, 살인범의 피를 한껏 빨아들
인 흑빵 조각….]
그레모리는 진성의 방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주술 재료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구하기 어려운 재료.
귀한재료.
가격 변동이 심한 재료.
세 심한 관리 가 필요한 재료까지.
진성의 방은 무슨 창고나 박물관이 라도 되는 것처럼 온갖 재료들이 끊임
없이 나왔다.
..
.
[ 마치 햄스터 같구나. ]
햄스터는 볼주머니에 먹이를 담았다가 눈에 잘띄지 않는 장소에 먹이를
저장해놓는습성이 있었다.
진성의 모습이 딱 이 햄스터와 비슷했다.
먹 이를 숨겨놓고 필요할 때마다 까먹는 햄스터.
주술에 사용할 재료들을 방에 다가 숨겨놓고 필요할 때마다 사용하는
박진성.
둘이 무슨 차이가 존재한단 말인가.
"햄스터…."
하지 만 그레 모리와 함께 다니는 이세 린은 그런 그레 모리의 말에 동의 하
지 못하겠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지 었다.
햄스터 를 닮았다고 하기 에는, 그레 모리 가 말해주는 재 료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짐승의 부산물에서부터 벌레를 이용해 만든 고독, 심지어는 도굴꾼의 손
가락뼈 같은 물건까지 ….
햄스터 라는 귀 여운 동물에 비 유하기 에는, 하나하나가 심 상치 않은 이 름
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재료가 범상치 않은 만큼, 진성의 방에서 나오는 주물 역시 심상치 않은 것
이었다.
어찌나 대단했는지, 주물에 대해 알아내지도 못할 정도였다.
"보이지 않아…."
이세린은 진성의 방에서 나오는 주물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입술을 삐죽 내밀며 불평했다.
진성이 만든 주물들은 장막에 싸인 것처럼 그 정보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영시 대책을 세우기라도 한 것인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느낌이
흘러나오고 있기까지 했다.
[ 계 약자야. 비 밀이 아무리 궁금하다고 한들 그 능력이 떨 어지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니라. 저것을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의 권능을 얻지
못함을 아쉬워하되 슬퍼하지는 말고, 끊임없는 단련과 힘의 활용을 익히며
노력하도록 하거라. ]
그레모리는 비밀에 감싸여 있는 주물을 확인하지 못한 자신의 귀 여운 계
약자를 위로하였고, 그녀가 상심한 틈을 타서 교육열을 불어넣는 것에 성공
했다. 그리고 진성이 이사를 하는 모습이 궁금하다면서 허구한 날 진성의 방
근처로 찾아와 훔쳐보는 자신의 계 약자를 그녀의 방으로 이끌었다.
견물생심(見物生心) 이라.
아무리 제 능력이 닿지 않는다고 이해했음에도 그것이 눈앞에서 계속 알
짱거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욕망이 동하게 되고, 욕망이 동하면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겨 손을 뻗게 되는 법이다.그리고 이러한욕심에서 비롯된 행동은
반드시 나쁜 일을 불러온다.
능력에 맞지 않은 욕심은 불운을 부르고,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은 화가
되는법.
그레모리는 자신의 계약자가 헛된 욕심에서 비롯된 행동을 했다가화를
입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물론 박진성이라는 존재가 이세린에게 해를 끼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세린이 권능의 사용에 실패해 주물을 살펴보는 것에 실패하면
잠깐이 라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문제 였다.
그레모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것이 손가락에 가시가 박히는 고통 수준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 이유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궁금한데 ….오빠한테 물어보면 알려주려나…?’,
[ 계악자야. 주술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것은 추천하지 않느니라. 주술의
사용에 는 대 가가 따르게 되 고, 그 대 가는 대부분 고통스러운 것들이 니 말이
다. 나는 계 약자가 그런 고통을 겪는 것을 원하지 않는단다. ]
그것은 바로 이세린이 주술과 연관되어서 좋을 일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주술이 라는 것은 대 가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대가는 신체를 뒤틀고, 영혼을 뒤틀고, 정신을 갉아먹는다.
뼈에 금이 가고, 몸에 병마가 깃들고, 내장이 터지거나 잘리고, 피가줄줄
흐르는 • • •. 보기 에도 끔찍 하고, 실제 로도 끔찍한 대 가를 요구하는 능력 이 었
다.
하지만 이 잔인한 대가보다 더 위험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주술이 사용하기 쉬 운 능력 이 라는 것에 있었다.
정확한 방법만 알고 있다면 그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주술의 장점
이자단점이었다.
주술을 행하는 사람이 누구라도 상관없다.
무인이던, 마법사던, 연금술사던, 소환사던.
갓난아기던,죽기 직전의 노인이던.
자연 속에서 짐승처럼 살아온 사람이건,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건.
그저 정확한 방법만 안다면, 주술은 정확하게 발동한다.
그렇기에 주술에 필요한 것은 지식과 재료, 그리고 각오였다.
그리 고 여 기 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 식 이 었다.
주술을 사용하기 위 한 올바른 지식 말이 다.
그리고그,올바른지식,은그레모리의 권능인 '비밀,로쉽게 얻을수있었
다.
그레모리 입 장에서 달가운 일은 아니 었다.
게 다가 이세 린은 지 식을 쉽 게 얻을 수 있는 데 다가 호기심 이 왕성하기 까
지 하다.
그러니 걱정이 될 수밖에.
궁금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술을 써볼지도 몰랐으니까.
[ 계약자야. 너는호기심이 많고, 비밀을 파헤치기를좋아하지.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니라. 비밀을 엿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반대로 위험에
한없이 가까워 질 수밖에 없는 일이 라는 것을 말이 다. 그리고 그 위 험 에 서 멀
어질 수 있는 것은 호기심을 갖되 그것에 휘둘리지 말고 충분히 억제하는 것
임을 말이니라.]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과한 호기심은 반드시 해를 부른다.
호기심에 휘둘리면 반드시 그 끝이 좋지 않다.
아기가 불꽃이 예쁘다며 만져보기 위해 손을 뻗으면 화상을 입게 되고, 흉
가의 안이 궁금하다며 발을 디딘 겁 없는 사람이 그 안에 숨어있던 악령에게
해를 입는 것처 럼, 호기 심 에 휘둘리 는 행동은 그 끝이 좋지 않다.
그리고 이세 린은 그 호기심을 제 대로 제 어할 수 없는 사람이 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성숙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말이다.
그렇기에 그레모리는 이세린 본인을 대신해 그녀를 제어할 수밖에 없었
다.
호기심에 휘둘리지 않도록.
주술을 시험해보지 않도록.
주술의 신비로움에 홀려, 주술의 이면에 존재하는끔찍한 대가에 고통받
지 않도록 말이다.
[ 그리고 주술을 사용하면 몸이 뒤 틀리 거 나 못생 겨 질 수도 있으니,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최선이니라. 이렇게 귀엽게 태어났는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못생 겨진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느냐? 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