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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268화 (268/526)

< 268화 >바라키엘이 축복을 내리리라

알수없는의식.

알수 없는 연주.

토마스는그모든 것을 끝마치고 윌리엄의 앞에 다시 섰다.

그는 말했다.

"도련님. 축하합니다.’,

모든 것이 잘되 어가고 있다고.

"도련님께서 무슨죄를 지었건,무슨금기를범하였건 상관이 없습니다. 지

금 도련님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순결합니다. 희고 깨끗한 천보

다도 더 맑은 흰색을 뽐낼 것이요, 바닥이 훤히 보이는 호수의 밑바닥보다도

더 투명하겠지요.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지금 너는 '순수,와 '순결,의 상징을 일시적으로 얻었다고.

"제 예상보다도 훨씬 쉽게 도련님을 순수하게 만들어드릴 수 있어서 기쁩

니다.’,

그것이 너무 기뻐 참을 수가 없다고.

토마스는윌리엄에게 그렇게 말했다.

오직 선함으로.

오직 선한 마음으로.

오직 티 한 점 묻지 않은 깨끗한 마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곤 바람에 흔들거 리는 야생화처 럼 몸을 조금씩 흔들고 있는 꽃으로

향하더 니 그 꽃에 손을 내 밀었다. 그러 자 꽃은 복종하듯 고개를 숙였고,

꽃잎을 축 늘어뜨렸다.

토마스는 그것이 귀 엽다는 듯 꽃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이윽고 그 꽃의 줄

기를 잡고 똑 분질러버렸다.

그렇게 토마스의 손으로 들어간 꽃은 수은이 틀에 흘러갔을 때처럼 모양

을 만들기 시작했다.

꽃은 녹아내 리 며 막대 가 되 었고, 막대는 점 점 좁게 앞으로 길 어졌다. 그리

고 그 끝은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형태 가 되 었다.

그렇게 피는 송곳과도 같은 형태 가 되 었다.

"위대한 조물주의 아들께서는 제 몸을 희생하여 태양과 달이 떠오르고 지

게 했습니다.’,

토마스는 그렇게 송곳처럼 만들어진 피에 주술을 사용했다.

"따스함과 차가움, 포근함과 안락함.활동과휴식.그 모든 것이 그분의

희생으로 이루어졌음이니. 이 어찌 그 거룩한희생에 놀라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찌 그 희생을 기리고 우러러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

까?’,

양기(陽氣)와음기(陰氣)의 힘을 다루는주술이었다.

토마스의 손에 서 흘러 나온 음기는 흐릿하게 일어 났다. 흐릿한 안개 처 럼

피어나 응축되 었고, 손에 들린 송곳으로 하강하여 안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

고 느리지만 천천히 끝에서부터 끝으로 움직이기 시 작하였으며, 생물을 죽

이듯 피를 굳게 만들었다.

꿈틀거리 며 모양을 바꾸고 있던 피를 굳게 만들고 억제하여 날카로운 송

곳으로 고정했고, 응축하고 무겁게 되 며 피를 얼음덩어 리로 만들었다.

그렇게 토마스의 손에 들린 송곳은 얼음을 깎아 만든 흉기 가 되 었다.

달의 서늘함을 조각칼로 삼은 듯 안락하되 서늘하였고, 빛의 부재를 집 어

넣은 듯 음침하면서도 사람을 해할 수 있는 성질이 가득했다.

남을 돕기 위 한 피의 따뜻함도, 피 에 내 재 한 성스러운 상징도 온데 간데 없

어진 것이다.

그는 그 흉악한 흉기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윌리엄의 손바닥에 내리찍었다.

푸욱!

"으으으읍

송곳이 손바닥을 꿰뚫는 순간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

전신의 신경을 전기로 지지는 것처럼 눈앞이 번쩍이고, 뇌에 번개가 내리

친 것 같은 충격이 돌았다.

윌리엄은 눈을 크게 뜬 채 절규했다.

재갈이 묶였기에 맘껏 소리를 지르지는 못했지만, 그런데도 그의 고통 섞

인 외침은교회 전체에 울렸다.

그리고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 윌리 엄은 깨달았다.

'이건, 이건 꿈이 아니다!,

생생한 고통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했다.

현실에서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며, 그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끔찍했다.

뇌를 지져버리는듯한신경의 폭주.

손바닥의 구멍에서 느껴지는 욱신거림.

뚫린 구멍 에 서 울컥 거 리 며 솟아나는 핏물이 만들어 내 는 묘한 따뜻함.

핏물이 흐르면서 만드는 묘한 간지 러움.

이 모든 것이, 꿈일 리가 없었다.

"도련님.’,

윌리엄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

고통 속에서 진실을 깨달았으며, 그 진실에 더더욱 번민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지금 이것이 꿈이 아니라면.

지금 이것이 현실이라면…!

지금 그는 사람 손바닥에 송곳을 꽂아 구멍을 뚫고도,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미치 광이의 손에 붙잡혀 있다는 이 야기 였으니까!

윌리엄은 눈을 부릅뜨고 토마스를 올려다보았다.

다만 그 시선에는 분노뿐이 아닌, 공포와 배신감이 섞여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온갖 감정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이 호구 새끼가 자신에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오는 의문.

자신과 그나마 잘 지 낸 놈이 갑자기 웃는 얼굴로 싸이코같은 짓을 하는 것

에서오는 배신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서 오는 공포.

왜 내가 예언을 무사히 이뤘는데도 이런 꼴을 당해야겠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오는 분노.

윌리엄의 눈은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쳤고, 그 감정을 입으로 내지 못하고

오직 눈빛으로 쏘아 토마스에게 보내기만 했다. 그리고 토마스는 그 눈을 보

면서 미소를 지었다.

"도련님. 조금만 더힘을 내셔야 합니 다.’,

그는 말했다.

"아직 세 곳 더 찔려야하니까요."

’’ —— 71"

덜컹!

덜컹!

윌 리 엄은 그 말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포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몸을 비틀었고, 손바닥의 상처에

서 오는고통조차 아랑곳하지 않은 채 토마스에게 멀어지기 위해 온 힘을 쏟

았다.

하지 만 그의 발버 둥은 그저 발버 둥으로만 끝났다.

토마스가 묶은 포박은 고작 그런 정도로는 풀 수 없는 것이 었으니 까.

!...

......

"잠시만 참아주시지요. 잠깐고통스럽고 무서울 수는 있겠지만, 앞으로 있

을 일에는 꼭 필요하니까요.’,

"으으읍--!’,

"하하하. 윌리엄 도련님께서는 어릴 적에도 그랬지요. 어금니가 다 썩 어 문

드러 져 서 오른쪽으로는 빵을 씹지도 못하게 되 었음에 도, 치 과가 무섭 다는

이유로 참고 또 참곤 했어요. 그때가 그립군요.’,

토마스는 추억 이 라도 떠 올리 며 그립 다는 듯한 표정을 지 었다.

그리곤 어린아이에게 훈계하듯 윌리엄에게 말했다.

"그때 제 가 그랬었지 요. 도련님 . 충치 치 료는 괴 로워 도 해 야만 하는 것 입

니다.’,

,.읍—!,.

"하하. 이 역시 마찬가지이니, 잠시만고통을 견뎌주시지요.오래 걸리지는

않을겁니다.’,

토마스는 치과를 가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에게 타이르듯 그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말한 뒤, 다시 송곳을 들어 올려 남은 한 손을 꿰뚫어버렸다.

"끄으윽——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도련님은 옛날부터 엄살이 좀 심했지요. 치과 치

료를 받는 중에도 같이 치과로 간 수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게 생각나네

요. 하하하.’,

토마스는 일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웃었다.

그의 말투에 는 그 어 떠 한 부정 적 인 감정도 없었다.

토마스는 마치 '윌리엄이 고통스러워하니 되도록 빨리 끝내야겠다.'라는

선의를품고 움직였으며, 더 빠르게 움직여 그의 두 발등에 구멍을 뚫어버렸

다.

”끄윽—"

"하하하. 다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네 개의 구멍 이 뚫리고 나자, 토마스는 송곳을 빈 의 자에

올려놓고 손을 펼쳤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고, 이상한 짓은 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제스처 였다.

그는 고통 때문에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윌리엄

을 바라보았다.

"저런. 많이 고통스러웠나보군요. 괜찮습니다. 이제 끝났어요. 구멍은 네

개면 족하거든요.’,

"다행히 옆구리에 구멍을 뚫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 과하니까요.

’’

토마스는 고통을 잘 견뎌주어 대 견하다는 듯 윌리엄을 토닥여주었다.

그리곤 물기 가 젖어 있는 윌 리 엄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싱긋 웃었

다.

그의 눈이 호선을 그렸고, 그의 미소 역시 곡선을 그렸다.

"윌리엄 도련님. 지금도련님이 어떤 이야기를하실지 대충 알겠습니다.’,

" O_I"

---

"네. 갑자기 이런 자리에 나를 끌고 왔고, 왜 이런 짓을 하느냐. 그런 의문이

겠지요?’,

토마스는 말했다.

"윌리엄 도련님.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조물주께서 나름의 이

유와 의도를 가지고 모든 것을 창조하셨듯, 제 가 이러는 것도 분명한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그의 눈동자에 는 선의 가 가득했고, 그 선의 가운데 에는 깊은 친분이 묻어

있었다.

이는 상대방을 해할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으며, 오직 길고 깊

은 친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끼 리 에 서 만 볼 수 있는 그런 감정 이 었다.

마치 친한 사람의 아들을 오랫동안 보아오면서, 마치 조카처럼 여기게

된-

더 없이 친숙한 이웃에 게서 나 볼 수 있는 그런 감정 이 었다.

토마스는 고통에 일그러진 윌리엄을 자기 조카처럼 바라보았고, 친척이

제 핏줄에 게 그러하듯 상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윌리엄에게는 충격적일, 아주 경사스러운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

하지 만 그 순간, 기 묘한 소리 가 들려 왔다.

스으으윽-

투웅.

아주 기묘한 소리.

무언가를 질질 끄는 듯한 소리와 무언가가 바닥에 튕 기는 듯한 소리 였다.

스윽-

투우욱.

공을 밧줄에 묶고 그것을 질질 끌고 다닌다면 이런 소리 가 나게 될까?

그 소리는 바닥에 통통 튀면서 둔탁한 소리를 내었고, 무거운 것이 질질 끌

리는 것처럼 교회 바닥을 휩쓰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차

신부와 윌리엄에게로 가까이 다가왔으며, 마침내 문 앞까지 도달했다.

끼이이익.

문 앞까지 도달한 소리는 제자리에 멈추는 것처럼 뚝 그쳤다.

그러더니 아주 약한 힘으로 미는 것처럼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문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 었

다.

"오, 이런.’,

토마스는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남자를 보곤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와서 반갑다는 듯 큰 동작을 보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반갑습니다, 진성 박!’,

오직 선의만이 가득한 환영의 표시.

진성은 자신을 바라보며 와줘 서 고맙다는 듯 웃는 토마스를 바라보았다.

"그렇군요. 저역시반갑습니다.’,

그리고 토마스가 그러했듯, 그 역시 웃었다.

미소를 얼굴에 그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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