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성년의 날, 그리고
깡마른 흑인은 빈말로라도 잘생겼다고는 말하기 힘든 외모였다.
얼굴 곳곳에 검버섯과 화상 자국이 있어 호감 가는 첫인상이라고 보기에
는 무리가 있었으며, 코 역시 살짝 휜데다가 탈모가 꽤 진행된 모양인지 이마
가 훤했다.
게다가몸곳곳이 뼈와가죽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라있었다.
깡마른 손에는 온갖 반지와 팔찌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는데, 전부 다른 금
속과 다른 보석을 이용해 서 만든 것으로 보였다. 그중에 서는 금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팔찌와 반지가 가장 화려했는데, 그 화려함이 어찌나 강렬한
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오, 모리스. 이곳이네. 이리로오게나.’,
흑인을 본 장영철은 반색했다.
그는그 자리에 서서 기다리는 것으로그치지 않고 직접 움직여 그에게 향
했고, 그를 데리고 직접 진성과 이양훈의 앞까지 데려왔다.
그리곤 앞서 이양훈이 진성을 소개했던 것처럼 그들에게 소개했다.
"인사하게.모리스 E 빈(Maurice E Vin)이라고하네.우리 그룹에서 머무
르고 있는 주술사라네.’,
"반갑습니 다. 저의 이름은 모리스 E 빈입 니다. 모리스라고 불러주십 시오.’,
모리스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약간 어색 한 감은 있으나 외 국인이 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주 훌륭한 한
국어였다.
■한국어를 발음하는 것이 영미권 사람들이 한국어를 말할 때 특유의 특징
이 보이는구나. 영미권, 혹은유럽 쪽에서 활동하던 주술사겠구나.'
진성은 그러한 모리스의 발음을 듣고 그가 어디 출신인지 추측해냈다.
언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일생을 반영하는 법.
외 모보다도 숨기 기 어 려운 것이 바로 언어 에 서 묻어 나오는 특징 이 었다.
생물이 라는 것이 아무리 세 대 가 지 난다 한들 그 근원 에 서 크게 벗어 나는
법이 없듯이, 언어 역시 모국어의 흔적을 버릴 수 없었으니까.
"하하. 반갑습니다. 이양훈이라고 합니다. 어르신께서 소개해주실 정도라
면 정말대단한주술사이시겠군요. 이거 만나서 영광입니다.’,
"안녕하십 니 까. 박진성이 라고 합니 다.’,
모리스의 한국어 역시 마찬가지.
아주유창했으나 ,이,를발음할 때의 발음이 영미권 쪽의 것이었으며,그
뿐만 아니 라 다른 모음과 받침 에 서 도 이 탈리 아어와 독일 어의 흔적 이 희 미 하
게 묻어나왔다. 그것을 생각해본다면 저 모리스라는 사람은 유럽을 무대로
활동하던 주술사일 확률이 높으리 라.
!……
!..
..........
■유럽 쪽에서 활동했지만 착용하고 있는 물건들은 여러 국적이 섞여 있구
나. 고향이 유럽 이 아닐 확률도 있고, 고향이 유럽 이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
을 수도 있겠다. 특히 저 물건은 아프리 카 쪽인데, 아프리 카를 중심으로 활동
하는 주술사와 친분이 있거나 아프리 카에도 다녀왔거나 둘 중 하나렷다.,
진성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면서 순식간에 그가 착용하고 있는 주물을
살펴보았다.
그 시선은 아주 은밀하면서도 빨라서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높은 경지의 무인인 장영철마저도 말이다.
'보자. 은잠비 음팡구(Nzambi Mpungu)의 조각상이라. 양식을 보니 아이
티 쪽의 것이고, 부두(Voodoo)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구나.,
진성은 그가주렁주렁 걸치고 있는 주물들에 대해서 추측해가며 그의 경
지와 그가 주로 사용하는 주술이 무엇인지 추론했다.
'손에 끼고 있는 반지와 팔찌들은 냉 기 가 흐르는 것을 보아하니 귀신 들린
물건일 것이고, 형태를 보아하니 수많은 나라와 유행이 보이니 무덤에서 가
져온 부장품(副葬品)이겠다. 게다가 옷감과 실이 제각각인 것을 보아하니
옷 역시도 시체가 입고 있던 수의(壽衣)에서 쓸만한 것들을 한을 한올 빼내
서 옷으로 지어서 입은 것이고.,
진성은그의 경지가 낮지 않음을 쉽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모리스가 가지고 있는 주물(呪物)들이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
다.
화려하기 만 할 뿐 품위 가 없어 보이 는 액 세 서 리들 하나하나에 전부 귀 신
이 깃들어 있었고, 냉기가흘러나오는 것을 보아하니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은 수준이 었다. 아마 부장품에 깃든 귀신 중에는 악령으로 탈바꿈한 것들
이 여럿 존재하리라.
옷에서는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묘하게 어두우면서
도 끈적한 것이 저주가 깃들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저주는 마치 바
깥쪽으로만흐르며 모리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있었다.
■저주를 건 옷이라. 기습에 대한 대비도훌륭하구나.,
옷에 흐르는 저주는 누군가가 모리스를 공격하려고 한다면 즉시 발동하
게되리라.
감히 제 주인에게 달려든무뢰배를 향해서 말이다.
■저주가 걸린 물건들이 가득, 천벌의 상징을 강화한 은잠비 음팡구의 조각
상에,흑주술에 한없이 가까운방어 주술에 ….,
게 다가 그러 한 것이 하나가 아니 었다.
우습게 보고 덤볐다가는 끔찍한꼴을 당하게 되리라.
"이보게 모리스. 여기 이 아이가바로 내가저번에 말한그주술사라네. 이
제 갓 성인이 되었는데, 듣자하니 아주 훌륭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군
’’
•
"훌륭한 실력이라.’,
모리스는 장영철의 소개를 듣고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진성 역시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모리스와 눈을 마주했다.
묘하게 회색빛이 섞인 것 같은 짙은 갈색의 눈동자는 이리저리 굴러가며
진성을 바쁘게 살펴보았고, 그것을 보고 있자면 마치 눈동자가 여러 갈래로
나뉘 어서 사방을 훑어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 고 뿐만 아니 라
신화에서 나오는 눈이 100개 달린 거인, 아르고스라도 되는 것처럼 몸 이곳
저곳에서 찌르는듯한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섬찟한 시선이었다.
"그렇군요. 흥미롭습니다."
모리스는 마치 사체 가 무덤에서 기어 나오며 중얼거리는 말처럼 섬찟하면
서도 낮고 그르렁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곤 만나서 반갑다는 듯
진성을 향해 악수를 청하려 손을 뻗었다가, 흐릿한 아지랑이의 형상으로 나
타난 영혼이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자 손을 뻗는 것을 멈췄다.
그리곤 천천히 손을 거두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었다.
"아, 제가 실수할 뻔했군요. 한국에서는 악수가 보편적인 인사가 아니라
는 걸 까먹었습니 다.’,
그리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환하게 웃었다.
마치 자신이 악수를 거둔 것은 한국에 대한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외
국인이라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진성은 그런 모리스를 보며 마주 웃었다.
"그렇지 않습니다.한국에서도반가우면 악수하곤하지요.’,
"아, 제가 외국인이라서 그것을 잘 몰랐습니다.’,
모리스는 진성을 대할 때 환한 낯을 유지했다.
마치 '내가 너에게 이렇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라는 것을 표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는 호감의 제스처를 보이면서도 진성에게 가까이하려 하지 않
았고,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거리를 유지했다. 또한 진성의 주위에 있는 그
어떠한 음식도 먹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테이블에도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 닿지 않게 주의했다.
'경험이 많은주술사로구나.,
진성은 그러한 모리스의 모습이 기껍다는 듯 웃었다.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회귀 전의 자기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 었다.
진성은 모리스의 영역을 존중한다는 듯 바닥에 발을 딱 붙이곤 그에게 접
근하지 않았고,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겠다는 듯 웃었다. 그리곤 마치 프랑스
인처럼 제스처를 섞어서 그에게 물었다.
"외국이라.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어디인지 알수 있겠습니까?’,
"실례랄 것까지야. 저는 유럽에서 왔습니다.’,
"유럽. 제가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곳이지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 다만 나이 가 차지 않은 데 다가 해 야 할 일들이 많아서 생 각만
으로 그쳤었습니 다."
모리스와 진성은 하하 호호 웃으며 대화했다.
그 모습은 참으로 친근해 보였다.
진성은유럽 사람처럼 비언어적 표현을 섞어서 대화했고, 사교적인 것처럼
보이 도록 태 도를 바꿨다. 그리 고 모리 스는 그러 한 모습이 기 껍 다는 듯 마찬
가지로 사교적 인 태도로 그를 대했으며 , 진성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눈웃음
을 지으며 호감을 표시했다.
"오,유럽에 가보지 못했다니.참으로 안타깝군요.좋은도시들이 많습니
다.’,
"좋은도시라…. 너무 많아서 문제지요.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 어디부터
방문해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였습니다.혹시 어떤 도시가좋은지 추천을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관광지로는 로마가 제일이 지요. 여러 곳을 다녀보았지 만, 로마만큼 아름
다운 곳을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군요. 그린란드의 칸게를루
수악(Kangerlussuaq)도좋았습니다. 피오르드 트래킹을 해보면 자연의 웅
장함에 압도됩니다.’,
둘은 마치 술집에서 만난 친구 같았고, 여행지에서 만난 같은 나라 사람처
럼 어떠한 공감대가 존재하고 있었다. 친밀감이 가득했으며, 서로가 서로에
게 보이는 감정에는 그 어떠한부정적인 감정도 묻어나오고 있지 않은듯보
였다.
단지,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