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 주술 : 고래 꼬리 저주
철컥.
철컥철컥.
쿵-
쿵쿵쿵쿵쿵쿵쿵!
윌리엄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문에서 멀어졌다.
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가슴을 쓰다듬었고, 이윽고 얼굴을 잔
뜩 일그러뜨렸다.
'정신 똑바로차리지 않으면 위험하다.,
윌리엄은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언가 무기로 쓸만한 것을 찾기 위 해서 였다.
하지만 호텔 방에 무기로 쓸만한 것이 뭐 가 있겠는가.
특히나 사람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저 악몽 같은 것들을 상대할 때 말이
다.
그러 다가 문득 윌 리 엄은 무언 가가 떠 올랐다.
■그러고보니 성경이 있지 않나?,
호텔의 서랍에는 항상 성경을 넣어놓는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는 빠르게 움직 여 서 랍을 뒤 지 기 시 작했고, 자그마한 성경 하나를 발견
하는데 성공했다.
검은색 가죽으로 덮여있는 성경은 자그마한데도 꽤 무게감이 있었는데,
윌 리 엄 은 손에 서 느껴 지 는 그 무게 감만큼이 나 든든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성경을 들고 미친 듯이 문을 두들기는 문 너머의 존재에 게 소리쳤다.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부정한 것은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지 어다!
’’
그러자 거짓말처럼 문을 두들기는 것이 멈췄다.
"해치웠나…?’,
윌리엄은 다시 찾아온 침묵에 기뻐하면서도, 자기 말 한 마디에 문 너머의
존재가 사라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는지 얼떨떨해했다.
쿵-!
쿵쿵쿵쿵쿵쿵쿵쿵쿵 !
하지만 악몽이 말한마디에 그렇게 쉽게 사라진다면 그게 악몽이겠는가?
다시 문은 부서질 듯 흔들렸으며, 안심하고 있던 윌리엄의 심장 역시
흔들어놓았다.
"이런 젠장!’,
윌리엄은 자기 손에 들린 성경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자 그대
로 바닥에 집어 던졌다.
잠시나마 이딴 것에 희망을 걸었던 자신을 욕하면서.
펄럭.
그렇게 바닥에 떨어진 성경은충격을 이기지 못하고그대로 열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혀있어야 할 하얀 종이에는
오직 단 한 단어 만이 적 혀 있을 뿐이 었다.
눕 Libera 禳
성경에 적혀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글씨.
윌리엄은 그것을 보고 성경을 다시 주웠다.
성경이 저 무언가를 이 길 수 있는 힌트를 줄 것이라 믿으며.
눕 te 禳
그리고 성경은 윌리 엄의 희망에 응답해주었다.
그가 페 이 지를 넘 기 자 다른 단어 가 나온 것이 다.
팔락.
윌리엄은 이 성경에 답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품고 계속해서 성경을 넘겼
다.
종이가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말이다.
눕 me 禳
!..
....
"리베라테메? 잠깐만….’,
그렇게 세 장을 넘기자 완성된 것은 윌리 엄에게 어딘가 익숙한 말.
그는 머리를 짜내서 그 언어가무엇인지 생각해보았고, 이윽고 어릴 적에
자신이 가정교사에게 교양이랍시고 배웠던 라틴어였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렇지, 구해달라는 말이었던 것 같은데 ….’,
구해달라고?
누구를?
무엇에게서?
윌리엄은 완성된 문장을 보며 의문을 품었고, 이내 등줄기에 오한이 올라
오는것을 느꼈다.
그는 오한이 일어나자 벌레라도 만진 것처럼 그대로 성경책을 멀리 집어
던져 버렸다.
투웅-!
집어던져진 성경은 딱딱한모서리에 부딪혀서 그런 것인지 피를 줄줄 흘리
기 시작했다.그리고피 때문에 종이가새빨갛게 물들었고, 글자를 만들고
있던 검은색 잉크가번지며 다른글자로 변하기 시작했다.
눕 m禳
눕 tu 禳
눕 t
丁 禳
빨갛게 변하는 종이와 번져가는 검은 잉크는 마침내 문장을 만들어냈다.
눕 tutemet 禳
눕 ex 禳
눕 inferis. 禳
라틴어 문장.
Liberate Tutemet Ex Inferis.
그 뜻은.
"지옥에서 너 자신을 구하라?"
어릴 적 윌리 엄이 여자 꼬신다고 봤던 공포영화에서 나왔던 문장이 었다.
"하. 이것들 봐라?’,
이쯤 되 면 아둔한 윌 리 엄조차도 깨달을 수 있었다.
각오를 해야한다.
결단이 필요하다.
윌리엄은 피를 줄줄 흘리는 성경을 있는 힘껏 발로 차버렸다.
"소용없어! 너희가 이렇게 나를 겁주려고해봤자소용없다고! 어? 내가 겁
먹을 줄알아?!’,
그러고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는 연신 씩씩대며 기물을 마음껏 부
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고급 원목으로 만들었을 것 같은 고풍스러운 서
랍장도, 옷장도 박살이 나버 렸으며, 테 이 블 다리 가 부러 지고 상판의 유리 가
산산조각으로 깨져버리 기도 했다.
그렇게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아름다웠던 방 안은 흉가나 다름없는 꼴이
되고 말았다.
"지옥에서 너 자신을 구하라니 개소리도 뭔 그….’,
윌리엄은 씩씩대면서 성경을 노려보았다.
하지 만 그렇게 외치던 도중, 뭔가 머리가 간질간질한 느낌에 말을 잇는 것
을 멈췄다.
"흠. 잠깐만. 너 자신을구하라…. 이거.’,
자신을 구하는 것.
그렇다면 이 악몽에서, 저 알수 없는 존재들에게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인
가.
■그렇지. 어차피 꿈이니까 깨면 그만이지 ….,
지금그에게 적의를 보이는 이 공간의 정체에 대해서는 잘모른다.
웬 미친놈이 저주를 갈긴 건지, 지나가던 귀신이 미모에 반해서 달려든 것
인지는 알 도리 가 없다.
하지만 이 악몽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이 공격은 끝을 맺는 것 아니겠는
가.
"아〜그 꼰대 새끼 또 귀찮은 말 지껄일 텐데, 짜증 나네."
윌리엄은 꿈에서 깨어나는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민간요법 이 나 주술 같은 것이 아니 라, 정 말로 확실하게 물리 적으로 기 상
할수 있는수단이 있었다.
아르투아 가문에서는 예언자 윌리엄의 존재를 아주 귀하게 여겼다.
당연한일이다.
핏줄에 서 그냥 능력 자가 튀 어 나왔어도 대 접받는데, 무려 예 언자인데 다가
소환사의 적성까지 가지고 있는 자식이었다. 심지어 성격이 더럽기는 해도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는 데다가, 가문에서 원하는 ■씨를 사방에 뿌린다
.'라는 바램을 아주 충실하게 이뤄주고 있는 효자이기까지 했다.
게 다가 예 언자로서 능력 이 그렇게 좋지 않다고는 해도 어쨌든 미 래를 볼
수 있었고, 아르투아 가문은 그것을 이용해 많은 부를 쌓을 수 있었다.
커다란 사건을 예지하지 못한다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커다란 사건이야 가문과 연관이 없으면 그만인데.
중요한 것은 가문이 부강해지는 것이다.
그런 의 미 에 서 윌 리 엄의 능력은 부를 쌓기 에 딱 좋은 것이 었다.
미래를 예지했을 때 가지고 다니는 소지품, 입고 다니는 옷, 먹는 음식.
그 모든 것이 훌륭한 투자 정보였으니까.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스마트폰.
윌리엄은 어린 시절 먼 미래의 별로중요하지 않은 것을 예지했고, 거기서
얇고 네모난 판 형태의 통신용 전자기기에 관해서 설명한 적이 있었다. 가문
에서는 그 정보를 특급으로 관리하면서 그것과 비슷한 기기에 대한 정보가
나오기를 기다렸고, 소문이 돌자마자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그 덕분에 아르투아 가문은 스마트폰 회사와 스마트폰에 들어 가는 부품
과 관련된 회사의 주식을 다량 보유하게 되 었고,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었다.
다른 것들 역시 마찬가지.
예지했을 때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훌륭한 투자 정보였고, 가문을 살찌우
는 소중한 계 시 였다.
그렇기에 가문에서는 윌리엄이 되도록 오래 살기를 원했다.
그것도 아주 건강하게, 아무런 문제도 없이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 감각이 일그러지고 정신이 마모되는 예언자의 예정
된 파멸, 그리고 트라우마 때문에 악몽을 꾸는 것이 일상인 윌리엄의 정신 상
태였다.
가문의 사람들은 윌 리 엄 이 그런 끔찍한 최 후를 맞이 하는 것을 원 치 않았
고, 정신적으로문제가생기는것도원치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대로 예언을 자신들에게 제공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
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르투아 가문은 윌리엄이 ■건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특별
히 조처하였다. 어마어마한 돈과 기술력을 쏟아부어서 만든 윌리엄 전용의
강제 기상용 마이크로 칩을 팔에 심어버린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악몽이 나 예 지를 보고 미쳐버 리 지 않도록 말이 다.
사용 방법은 간단했다.
특정 뇌파를 일정 시간 이상 발생시키는 것.
그렇게 마이크로 칩이 뇌파를 인식해서 켜지기만하면 그 후는 일사천리
였다.
과학자들을 갈아서 만든 집념의 마이크로 칩이 윌리 엄을 기상시 키고, 제
역할을 끝낸 칩은 자연스럽 게 분해되 어 소변으로 배출된 다.
"쯧, 잔소리도짜증 나고, 다시 팔에 구멍을뚫는 것도짜증 나는데.제기랄
’’
•
윌 리 엄은 칩을 사용하고 난 뒤 허튼짓하지 말고 다니 라고 하지 않았냐고
설교를 내뱉을 꼰대들의 잔소리와 팔에 작게 구멍을 뚫은 뒤 칩을 넣을 것을
생 각하며 짜증을 냈다.
하지 만 어쩌 겠는가.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는 위험한 악몽 속에 있는 것보다는 그냥 잔소리 한
번 듣고, 팔에 구멍 뚫는 것이 훨씬 나은데.
윌리엄은 개판이 되어버린 방구석으로 이동한뒤 눈을 감았다.
그리곤 훈련받았던 대 로 뇌 파를 발생 시 키 기 위 해 명상과 함께 특정 영 상
을 떠올렸다.
빛이 번쩍거리고 두서없이 이어지고 끊어지며, 동물들이 나왔다가 사람의
형 상으로 변하는 기묘한 영상.
일반적 이 라면 제 대로 떠 오르지 도 않을 혼돈 그 자체 였지 만, 세 뇌 에 가까
운 수준으로 완벽하게 암기시킨 덕분에 윌리엄은 쉽게 영상을 떠올릴 수
있었다.
윌리엄은 자신의 정신이 영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와 함께 자신이 기대고 있는 벽이 물컹해지고 이리저리 뒤틀리는 감각 역
시 느낄 수 있었다.
■꿈이 붕괴하고 있나 본데.'
윌리 엄은 자기 등에서 느껴 지는 감각을 느끼고는 칩 덕분에 꿈이 붕괴 가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곧 이 엿 같은 악몽 속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이
라 확신했다.
철컥.
끼이이익.
하지만 그가 꿈에서 깨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일까?
문이 천천히 열리는 소리가 났다.
텁.
처벅.
스-윽.
처벅.
스-윽.
방에서 나온 무언가는몸을 질질 끌면서 윌리엄에게 가까이 다가왔고, 윌
리엄의 몸을 감싸 안았다.
하—아.
윌리 엄의 몸을 감싸 안은 그것은 축 늘어진 가죽 같은 몸으로 윌리 엄의 몸
을 칭칭 감았고, 눈을 감고 있는 윌리엄의 귀에다가 한숨을 붙어놓고는 속삭
였다.
[운이 좋군요.]
그 속삭임은 얼음과 같았다.
귓가에 얼음으로 된 송곳을 찔러넣은 것처럼 날카로운 한기가 퍼졌고, 뇌
와 몸을 마비시킬 것 같은 서늘함이 감돌았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것은 윌리엄의 가슴을 기다란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말했다.
마치 사신이 죽음을 선고하듯이.
[ 다음에는 이렇게 도망칠 수 없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