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211화 (211/526)

<211화 > 채밀

삐이이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이명.

화산이 폭발하듯 올라오는 핏물들.

열수분출공(熱水噴出孔)에서 튀어나오듯 폐에서부터 시작해 튀어나오

는 참을 수 없는 기침.

소용돌이 에라도 빨려 들어간 것처럼 요동치는 시선과 점차 아래로 가라

앉는 것만 같은 어지 럼증.

심해에라도 잠긴 것처럼 축축 늘어지는 몸.

"박, 진성.’,

미치시게는 심해 밑바닥에 가라앉는 사람처럼 팔을 허우적대었다.

무겁디무거운 물을 헤엄쳐 위로 다시 올라가기라도 하려는 듯이, 폐에 들

어차는 물기와 줄어드는 산소를 견디며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는 사

람처럼. 그는 그렇게 바닥에 쓰러진 채 손을 뻗었고, 입을 열어 기침과 울

컥거리며 솟구치는 핏물에 뭉개지는 소리를 간신히 내뱉었으며, 천근의 짐이

라도 짊어진 듯 끔찍하게 아래로 처박으려는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이끌어 고

개를 치켜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박진, 성…. 지나(支涵)놈이, 냐? 아니면, 춍(侀 킴 砒)? 그래, 춍들이 그런

이름을 쓰지….’,

쿨럭.

그는 기침하면서도 멸시의 발언을 내뱉으며 정신을 차리려고 했고, 부르

르 떨리는 몸을 어떻게든 이끌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근육은 경련이

라도 일어 난 듯 바르르 떨 리 기 만 했으며,내 장도 비 비 꼬이고 요동치 는 것처

럼 흔들리 는 듯했다. 그뿐만 아니 라 이 제는 시 야가 어 지 러워 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흐릿하게 변했으며, 코의 점막이 모두 헐어버리 기라도 한 것인지 비

릿한 냄 새 와 함께 피 가 밖으로 줄줄 흘렀다.

그것이 어 찌 나 심 한지 코로 숨을 쉬 는 것은 꿈도 못 꿀 수준이 었다.

"흐, 멍청한 음양, 크흑, 사. 새끼들. 주술사, 주술, 사가 여기에 있는데….’,

미치시게는 제대로 나오지 않는 소리와 뿌옇게 변해버린 시야 속에서 무

언으로 물었다.

이 모든 것이 너의 짓이냐고.

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인 것이냐고.

"이르기를, 축제의 마무리로 조가네스를 끌어내어 바닥에 내동댕이치도

록 하라. 그리고 입고 있는 옷을 벗기고 발가벗겨 흠씬 두들겨 제대로 거동할

수 없게 만들라. 다만 그 숨만은 분명히 붙어있어 야 할 것이며, 숨이 끊어지

기 전 목에 밧줄을 걸고 그 목을 매 어 모두의 구경 거리 가 되 어 벨 마르두크께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과시토록 하라.’,

하지만진성은 그의 언어가 되지 못한의문을 무시해버렸다.

그것이 닿지 않아서 무시한 것인가.

혹은 닿았지 만 말할 필요가 없기 에 무시했을 뿐인가.

"왜, 왜….’,

미치시 게는 의문을 담아서, 이제는 제대로 생 각조차 떠올릴 수 없이 마비

되 어가는 뇌 에서 간신히 의문을 쥐 어짜 형태로 만들어 짤막한 단어를 만들

어 필사적으로 질문을 행했다.

하지만 진성은 이번에도 답하지 않았다.

대 답할 필요가 없었으니 까.

도축 당하는 동물의 질문에 답해주는 백정은 없고, 숨통을 끊기 전 사냥감

에 필요 이상의 배려를 해주는 사냥꾼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법.

진성에게 있어서 미치시게는 먹이에 불과하였으며, 제물로 바쳐져야만 하

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진성은 방긋 웃는 얼굴을 무너뜨리지 않은 채 고생 한 번 해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고운 손으로 돌칼을 붙잡아 허공에 휘휘 저었고, 궤적

을 따라 피 어 나는 불티 를 물감처 럼 움직 이 며 문양 하나를 만들어 내 었다.

그리고 그문양이 완성되기 무섭게 빈손을움직여 그문양의 사이에 꽂았

고, 손끝에 삼매진화를 피우고 그것을 미치시게에게 날렸다.

화르륵!

진성의 손에서 출발한 자그마한 불꽃은 유성처럼 꼬리를 그리며 쏜살같

이 날아가 그의 옷에 붙었다. 그리곤 기름이 라도 먹은 것처럼 순식 간에 세를

불리며 그가 입고 있는 모든 옷을 태워 발가벗겼고, 태울 것이 없어지자 마치

신기루라도 된 것처럼 허공 속에 녹아들며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안, 돼.’,

미치시게는 자신에게 끝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옷을 벗기는 행위가 동물을 죽이기 전에 안대를 씌우는 것이나 다름이 없

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고, 이제 곧 자신의 목숨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확신했다.

그렇기에 그는 온 힘을 다해서 저항하고자했다.

고통 속에서 제대로 말을 듣지 않은 마나를 어떻게든 끌어모아 신체를 강

화하려고 했으며, 몸 전체를 엄습하고 있는 '무언가1를 몰아내기 위해 말 그

대로 목숨을 걸고 발버둥 치려고 했다.

하지 만 마나는 움직 이 지 않았다.

약해빠진 놈의 명령은 듣지 않겠다는 듯 요지부동이었다.

그가 평생 쌓아온 마나는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며, 그가 죽기만

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처럼 그렇게 ■존재하기만, 할 뿐이었다.

"조가네 스 히 라모토 미 치 시 게를 끌어 내 어 옷을 벗겼으며,고기와 뼈로 두

들겨 제대로 거동을 못하게 하였으니 모든 절차가끝이 났다.하니 제자리를

되찾은왕, 박진성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벨 마르두크의 풍요 아래 수확한

곡식에서 나온 짚을 모아 새끼줄을 만들고, 가축에서 나온 털을 꼬아 실을

만들라. 그리고 실과 새끼줄을 꼬아 절대 끊어지지 않을 밧줄을 만들고, 그

밧줄을 먹이를 감싼 뱀처럼 목에 감싸 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묶도록 하여

라. 그리고 그렇게 목에 죽음의 고리 가 씌 워 지 면 높은 곳에 매 달아 그대로

끝을 맞이토록 하라.’,

딱.

진성은 당연히 해야하는 절차를 밟는다는 것처럼 담담하게 그렇게 말하

곤 손가락을 튕 겼다.

그러 자 몸을 덮는 기 다란 숄 아래 에 서 무언가가 스르르 흘러 나왔다.

스르륵.

숄에 서 흘러 나오는 것은 볼품없어 보이 는 밧줄이 었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광택이 드러나 있는 것이, 강화 섬유를 넣은 듯 보였다.

스르르

밧줄은 뱀 처 럼 움직 여 바닥에 서 꿈틀대고 있는 미 치시 게를 향해 기 어 갔

다. 그리곤 그의 목에 칭칭 감겼고, 스스로 매듭을 꼬아그의 목에 걸렸다.

"끅, 크흑.’,

단단히 목을 감싼 밧줄 때문에 미치시게는 질식을 막기 위해 본능적으로

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간신히 움직이던 손은 근육이 툭

끊겨버리 기라도 한 듯 중간에 힘을 잃고 바닥에 툭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미치시게의 최후의 저항이 끝을 맺음과 동시에 밧줄은 높이 하늘

로 치솟아 지하공간의 천장을 향해 솟아났고, 마치 두부에 꽂히는 것처럼 안

으로 파고들며 미치시게를 허공으로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오, 왕이었던 사형수가 지금 당신께 가나이다. 벨 마르두크시여, 벨

마르두크시 여 ! 여 기 조가네 스가 올라갑니 다! "

진성은 천천히 허공에 올라가는 미치시게를 보며 외쳤다.

"벨 마르두크, 벨 마르두크.폭풍과운명의 주관자! 가장위대한신! 가장

위대한주신! 여기 마땅한 제물을 바치노니, 그 풍요와 권세를! 힘을 주소서 !

폭풍처럼 몰아치는 힘을, 폭풍 속에서 내리꽂히는 벼락과도 같은 강렬함을,

만물을 밝히는 빛과 그 빛에서 주어지는 그 권위를 저에게 주소서 !’,

그리고 그 광기 어린 외침 속에서 미치시게는 눈을 까뒤 집으며 발버둥을

쳤다.

"끅, 끄윽.’,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허공에서 그는 파고드는 밧줄의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그저 숨을 쉬 고 싶 다는 갈망으로 이 리 저 리 몸을 흔들흔들 움직 였다.

"끅.’,

발을 좌우로 움직 이 기도 하였고.

n

밧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듯 허공을 박차는 동작을 하기도 하였고.

"크, 헉.’,

!...

......

충분히 단련된 목 근육에 힘을 주어서 파고드는 밧줄을 막으려고도 했다.

하지만 덫에 붙잡힌 동물이 얼마나 발버둥 친다 한들 그 끝에 기다리는 것

은 죽음밖에 없는 법.

孀분이 지 나고, 10분이 지 나고, 20분이 지 나고, 30분이 지 났다.

광기가 들어찬 어두컴컴한 공간.

진성의 시체폭발주술에 의해 다발성 장기 부전(多發性줎器不全)이 일어

나고 있는 신체.

온몸에 엄습한 병마로 인해 실시간으로 갉아먹히고 있는 생명.

그리고, 그렇게 약해진 그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듯 목을 파고드는 밧줄까

지.

그는 결국 죽음을 이기지 못했다.

그는 눈을 까뒤집으며 혀를 길게 빼어내었고, 발버둥을 치던 아까와는 달

리 허공에 그저 대롱대 롱 매 달린 채 자그마한 움직 임으로 살짝살짝 흔들릴

뿐인 고깃덩어리가되었다.

"사크에 아 축제 가 끝을 맺 었다."

진성은 잠시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그리곤 벨 마르두크의 형태로 조각된 목상을 향해 발을 옮기고, 신상을

보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소중히 들어 미치시게의 앞까지 가져갔다. 그리고

미 치 시 게의 앞에 무릎을 꿇고 신상을 두 손으로 위 로 들어 올리 며 소리 쳤다.

"벨 마르두크시여! 벨 마르두크시여! 이 신상을 매개로 당신을 모시는 왕

에게 위대한 힘을 내려주소서 ! 전승되는 그 힘을 이곳에 담아 주소서!’,

진성이 그렇게 외치자 미치시게의 몸에서 푸르스름한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푸르스름한 빛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빛을 뿜으며 밖으로 나와 신상을

향해 흘러들었고, 이윽고 그 빛줄기는 가느다란 실에서 굵은 밧줄로, 굵은

밧줄에서 물줄기처럼 변해 신상의 가장 안쪽에 끊임 없이 들어갔다.

게다가 마나뿐만이 아니라 미치시게의 몸에 가득 차 있던 생명력 역시 물

줄기에 합류해 신상에 흘러들었다.

미치시게 가 쌓아온 마나.

미치시게가 가진 생명력.

그 모든 것들이 주술 의식이 만든 법칙 아래 자연스럽게 신상으로 흘러갔

다.

시체의 형태를 유지할 최소한의 생명력만을 제외한 전부가 말이다.

"끝났군.’,

진성은 기쁘다는 듯 미소를 지 었고, 마나와 생명력의 정수가 담긴 신상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고 삼매진화를 피웠다.

그리 고는 시 체 를 폭발시 켜 끔찍 한 독과 병 마에 감염 되 게 만드는 주술, ’시

체 입자폭발,의 영향을 받아병균 덩어리나 다름없게 된 미치시게의 몸에 불

을 붙였다.

화르륵.

성인식 이후 더 강해진 진성의 삼매진화는 고열을 동반하며 껍데기만 남

은 것이나 다름없는 미치시게의 몸을 장작을 태우듯순식간에 한줌의 재로

바꿔버렸다.

"이렇게 쓸모없는사람이 올바르게 쓰였도다.’,

그는 염불을 외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씨앗에서 싹이 피어나듯그스승 역시 살아있을 이유가 없었고, 살아서 그

쓸모를 다할 수 없는 종자였으니 . 가느다란 인연의 실 끝에 눈에 닿았다 한

들 그 이유가 있었으면 죽지 않았을 것이나.’,

그 중얼거림은 끝까지 의문을 품고 죽은 미치시 게를 향한 애도였으며 .

"다만 살아생전 이룩한 모든 것을 남기지 못하고 덧없이 져버릴 꽃이

향기와 꽃잎의 색이라도 남길 수 있었으니 이 어찌 경사가 아니라 할 수 있

으랴.’,

회귀 전의 미래에 역사는커녕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존재를 각인시키지

못한 채 사라져버린 무인의 미래를 바꿨음을 알리는 말이었으며.

"물건은 쓰여야 가치를 가지고,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남겨야 가치가 있는

바. 허무한 미래를 바꾸어 마침내 가치를 가졌으니 좋구나좋아. 하니 안도

속에서 편히 귀천(歸天)하도록주문을외워 기원하노라.옴 마니 파드메 훔.

옴 마니 파드메 훔.’,

가치를 증명해낸 미치시게와 마나와 생명력을 얻은 진성 모두가 윈-윈(W

in-win)했음을 알리는 기쁨이 담긴 언어였다.

"옴 마니 파드메 훔 (□ □□□□□□□□□□□)."

진성은 마지막 세 번째의 주언과 함께 손에 쥐 었던 재에 불씨를 담아 사방

에 퍼뜨렸고, 그렇게 퍼진 불씨는 불꽃이 되 어 지하 공간 곳곳에 피어났다.

그리고 이윽고 그렇게 피 어난 불꽃은 뱀처럼 사방을 휩쓰는 화마가 되 었고,

넘실거리는 혓바닥을 내밀며 지하 공간을 환하게 밝히는 태양이 되 었다.

진성은 냉기를 몸에 감싸 공간 자체를 태울 듯 넘실거리는 불꽃을 막아내

며 걸어갔다.

벌이 모아놓은 꿀을 담아놓은 단지를 전리품으로 들고 가듯이.

그렇게 진성은 신상을 들고 지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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