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채밀
"우치, 카와!’,
미치시게는 멍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보곤 대경실색했다.
그가 모를 수가 없었던 얼굴.
기자회견에서 무인에게 협박받고 있노라고 읍소하는 것을 시작으로 야태
도아랑류가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다.
아니.몰라서는 안되는 얼굴이었다.
우치 카와 료스케 는 야태 도아랑류의 원수였으며 , 그의 원수였으며 , 모든
것이 잘 흘러가고 있던 순리를 뒤 엎어버리고 어그러뜨린 사악하기 짝이 없는
종자였으니까.
그런데.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요?!’,
그런데 대체 그 사악한 작자가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저 혼이 빠져버린 것 같은 흐리멍덩한 얼굴은 무엇이고?
미치시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혼란스러운 듯 얼굴을 일그러
뜨렸다.
하지 만 료스케는 그의 물음에 는 답하지 않았다.
답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답할 수가 없는 것인지는 모른다.
"싱싱한곡물을 먹고 자라나 태양의 빛을 한껏 받아 넘치는 생명력을 품게
된 송아지이옵니다. 조가네스의 입맛에 한없이 맞을 귀하디귀한음식인바,
부족함 없는 실력으로 도축하여 그 모든 고기를 바치고자 하옵나니."
료스케는 그저 고장 난 라디오처럼 자기 말만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푸욱!
그리곤 수레의 구석에 놓여있는 날이 잘 갈린 돌칼을 꺼내 숨을 쉬는 것인
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송아지의 목을 거침없이 찔렀고,돌칼이 낸 구
멍에서 꿀렁꿀렁 솟아나는 피가 아깝다는 듯 그 아래에 보석이 장식된 대야
를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수레 한편에 있던 토기(土器)에 이상한 모양의 나
무막대 기를 푹 꽂아 넣더 니 휘 휘 젓고는 위 로 끌어올렸다.
그러자끈적한꿀이 나무막대기의 끝에 난홈에 잘 감긴 채 딸려 나왔고,
그는 꿀 한 방울이 라도 낭비 할까 조심 조심 움직 여 대 야에 꿀을 퍼넣 었다.
"갓 목에서 흘러나온 피에 꿀을 섞으니 그 달콤함이 신이 마시는 술 못지
아니할 것이며.’,
그리곤 대 야에 들어간 피와 꿀이 잘 섞 이도록 막대 기를 휘 휘 젓고는 한쪽
으로 치우고, 다시 돌칼을 들어 송아지의 뱃가죽을 잘랐다.
지이익-
고러 자 북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송아지 의 배 가 갈라졌고, 기 다렸다는
듯 내장이 쏟아졌다.
그는 거 기 서 무언 가 찾아야 할 것이 있다는 듯 김 이 모락모락 피 어 나는 배
안으로 손을 거침 없이 집 어넣더니 무언가를 잡았고, 손을 그대 로 비 틀어 그
것을 딴후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펄떡.
펄떡.
그의 손에는 아직 뛰고 있는 심장이 들려 있었고, 그는 그것을 보석이 라도
되는것처럼 소중하게 다루며 금쟁반위에 올려놓았다.
그리 곤 금 쟁 반과 은 대 야, 그리 고 비 어 있는 은잔을 들고 미 치 시 게 의 앞까
지 걸어가더니 대뜸 한쪽 무릎을 꿇었다.
"조가네스시여.만찬이 준비되었나이다."
그는 왕에게 바치는 것이라며 고개를 푹 숙이고 금 쟁반을 그에게 들어 올
렸고, 미 치 시 게 가 그것을 받지 않자 옆에 다가 조심스럽 게 둔 후 잔을 들어 대
야에 차 있는 피를 퍼서 그대로 미치시게에게 내밀었다.
"갓 빼낸 펄떡 거리는 심장. 꿀을 섞은 피. 이것이 야말로 사치 중의 사치 이
며, 만찬 중의 만찬이니. 마땅히 진미를 맛보소서. 진미를 맛보고 육체를 달
콤하게 하소서. 다섯의 날이 지나기 전까지 그몸 안에 사치스러울 정도의 향
락을 새기십시오.’,
얼빠진 얼굴.
국어책을 읊는듯한 기분 나쁜 중얼거림 .
누군가에 게 홀린 것 같은 위화감 넘치는 료스케의 태도까지 .
타악!
텅그렁!
미치시게는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대놓고 소리치는 듯한 이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번개같이 움직여 손등으로 잔을 쳐내버렸고, 잔은 저 멀리 튕겨 나가
며 바닥을 구르며 구르는 소리를 내 었다.
하지만 료스케는 그런 상황에서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아까와 같이 혼이라도 나간 것처럼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같은 자
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손에 잔이 아직도 들려있기라도 한 듯 팔을 높이 들
어올리고 있었다.
"이 새끼야(뀯 澠槭弓 靴 )! 정신 좀 차려!’’
미동도 없는 우치 카와를 보고 있자면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
라 귀신이 아닐까 의문이 들 정도였으니.
짝!
미치시게는 결국 욕설을 내뱉으며 료스케의 뺨을 후려쳐버렸다.
어서 제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설명해줬으면 하는 소망이 담긴 손찌검이 었
다.
하지 만 고개 가 홱 돌아갈 정 도로 강하게 뺨을 맞았음에 도 료스케 의 초점
없는 눈빛은 여전했으며 , 헤 벌어진 입 에서는 침 이 아래로 줄줄 흐르고만 있
었다.
"빌어먹을.’,
게 다가 이 런 미 치 시 게의 무의 미 한 행동을 비 웃기 라도 하듯 곰팡이 로 만
들어진 얼굴이 다시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태양. 두 번째의 요구.』
눕 조가네스가 말씀하시기를 몸을 섞을 존재를 원하였느니라. 왕이라는
자는무릇모든 자의 위에 서 있으며 신의 허락아래 이 세상모든것을신께
빌려서 손에 얻을 수 있는 자인즉 마땅히 색을 탐하는 것 역시 올바른 일이라.
』
눕 왕의 총애를 한껏 받은 애첩을 대령하도록 하여라. 하여 그 애첩의 허리
를 품 안에 안고 그 가냘픈 몸을 한껏 즐길 수 있도록 하며, 보드라운 살결의
감촉에 몸을 맡기고 평온을 얻도록 하라. 씨를 뿌리고 사랑을 속삭이며, 애첩
을 제 아내가 된 것처럼 안을 수 있도록 하여라. 禳
『 그 미 색 의 추함과 아름다움과 관계 없이 모든 여 자는 조가네 스의 것이 며
,오직 조가네스만이 안을 수 있는 존재가되리라. 한마디의 말로 온 세상에
서 가장 아름다운 미 녀 가 품 안에 안길 것이 며, 손짓 한 번으로 그 여 자가 물
러나고 다른 여인이 그 자리를 메울 것이니.』
『 그러니 종이여. 조가네스의 품위에 어울리는 여 자를 데리고 오라. 왕의
총애를받던 애첩을 끌고와마땅히 침대에 눕혀 조가네스의 즐거움이 되게
하라. 禳
아주 옛날.
에도시대에는 야로(槭d 靴, 野郞)라는 단어가 남창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되 었다고 한다.
얼굴은 이러한 단어의 어원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미치시게의 '요청,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미치시게는 맘대로 말을 왜곡해서 ■요청,으로 만들어 의식을 진행하는 얼
굴의 존재 에 이 를 갈았다. 그리고 그가 품은 분노는 우치 카와 료스케 가 품
안에서 넨도로이드 하나를 꺼냈을 때 극에 달했다.
히.
히히히히.
그가 꺼낸 넨도로이드에서 음산한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
콰앙
한겨울의 방 안에서나 느낄법한 차가운 한기에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
오는 인형.
미 치 시 게 는 그것이 직 감적으로 귀 신을 봉인시 켜놓은 주물이 라는 것을 깨
달았고, 망설 이 지 않고 마나를 코팅 한 손으로 잡아 벽 에 다가 꽂아버 렸다.
"정신 좀 차리라고! 정신-좀-차려 !’,
미치시게는 이 지하 공간에서 자신을 제외한 유일한 사람이자, 지금 이 이
해할 수 없는 상황에 관해서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료스케를 제 정신으로
돌려놓기 위해 노력했다.그의 어깨를붙잡고뒤흔들었고, 치아가부러져 밖
으로 튀어 나갈 정도로 여러 번 뺨을 후려치 기도 했다. 그리고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커다랗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 세 번째 태 양. 세 번째 요구.』
눕 조가네스 가로되 지루함을 떨쳐내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할 오락거리를
원하였느니 . 마땅히 종은 왕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것을 대령해야 할 것이다. 禳
정신을 차리라는그의 애원은 곰팡이의 왜곡된 해석으로 '요청,으로 둔갑
해 의식의 과정으로 변해버렸으며.
『 네 번째 태 양. 네 번째 요구.』
『 원초적인 쾌락 그 자체인 폭력은 모든 사람의 피를 들끓게 만드는 마력
이 있는바.오직 투쟁만이 조가네스의 피를끓게 만들고흥미를 이끌게 되리
라. 수많은 오락에도 으뜸은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 기는 끔찍한 투쟁의 현장
이 며 , 생 명 이 덧없이 사라지 는 싸움 속에 서 만 피 어 나는 가치 가 있으니 .』
눕 오, 조가네스시 여. 피어나는 혈향 속에서 마땅히 그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소서.』
눕 다섯의 태양. 다섯의 달. 다섯의 날이 지나면 왕좌에서 끌려 바닥에 꿇어
앉혀질 것이며, 입고 있는권위의 옷은 발가벗게 되리니. 禳
『 끔찍한 매질과 허공에 매달린 채 죽어 나갈 미래 가 다가오니. 오직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오직 즐거움만을 채워 넣으소서. 피어나는
불꽃처럼 남은 시간을 뜨겁게 보내시옵고,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스며드는
빗방울처럼 덧없지만, 모두에게 축복을 내리는 삶을 살아가소서. 禳
『오직 하루. 오직 하루를 위하여.』
눕 조가네스의 권위를 휘두를 수 있는 오직 하루를 즐기기 위하여.』
『 위대한 조가네스, 위대한 조가네스! 조가네스 히 라모토 미 치시게 !』
눕 피를 즐기소서 ! 생 명 이 꺼 져 가는 것을 즐기 소서!』
눕 그러 니 종이 여 ! 마땅히 그 즐거움에 모든 것을 바치도록 하라!』
그가료스케가정신을차리라며 행사한폭력 역시 '요청,이 되어 주술의식
을 이루는 일부가 되어버렸다.
"흐.’,
이제 남은 것은 하나.
미치시게의 파멸까지 남은 요구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흐흐흐흐.’,
료스케는 숨을 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미치시게를 흐릿한 눈으로 바라
보며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흘렸고, 이윽고 광기가 섞인 손짓으로 제 머리를
쥐 어뜯기 시작했다.
"아아악! 아아아아아악!,,
그 쥐 어뜯는 손짓은 가죽이 뜯겨나가고 피가 철철 흐를 때까지 계속되 었
다.
게다가 그것으로는 모자랐던 것인지 그는 돌칼을 들어 제 몸을 이곳저곳
을 푹푹 찌르기 시작하였고, 온몸에 걸레짝처럼 구멍이 송송 뚫리고 그 안에
서 흘러나오는 피가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 때까지 이러한 행동을 반복하였
다.
그리고 그 광기의 끝에 서 , 료스케는 흐릿한 미소를 지 었다.
『 그래. 너는 영원히 정치인으로남는 거야. 禳
I |
• ••
.
..
눕 언제 등을 떠밀려서 야인이 될지 모르는 불확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 대
신에.』
눕 직위를 뒤집어쓴 채 죽어 영원불멸의 정치인이 되는 현명한 선택을 하는
거야.』
『너는 정치인이야.』
『너는.』
『할수있어.』
귓가에 있는 현명한 조언자는 그에게 소원을 이루는 방법을 말해주었으
며.
"나는.’,
그는 행복한 미래를 그리며 웃었다.
웃으며.
숨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