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 지장보살의 저주
지나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리세는 볼을 붉혔다.
그녀는 몸을 가득 메우는 열기를 느끼며 슬쩍 몸을 떨었고, 더 붙으라는
듯 자신을 끌어당기는 진성의 손길을 느끼자 힘을 슬쩍 빼고 몸을 기울였다.
리세의 몸이 진성의 어깨에 딱붙었고, 그녀는 지하철에서 졸고 있는 사람
이 옆 사람의 어깨에 몸을 기울이는 것과 같은 자세 가 되 었다. 그 상태 에서
리세는 슬그머니 눈동자를 움직 여 진성을 올려 다보았고, 자신을 내려다보
는 눈을 볼 수 있었다.
진성은 그 상황에서 리세에게 자그맣게 속삭였다.
"더 붙어라.’,
사람이 왔다.
그 속삭임에 리세는 얼굴을 가득 메우는 열기 사이로의아하다는 감정이
자리 잡는 것을 느꼈고, 이윽고 바깥에 가득 채워진 신력 속에서 이질감이 느
껴 지는 형 체 가 텐트로 접 근하는 것을 느끼 자 표정 을 굳혔다.
진성은 상황을 파악한 리세를 보며 피식 웃고는 다시 손을 튕겨서 모아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빛을 안으로 집 어넣었다. 그리고 반으로 잘렸던 진흙 덩
어리를 허공에 띄우곤 모아이 열쇠고리를 덮어버렸고, 자유를 만끽하던 모
아이와 마나는 다시 깜깜하고 지저분한 진흙 안에 봉인되 게 되 었다.
하지만 마나는 다시 빠져나오려는 듯 미세하게 빛을 발하며 진흙의 틈새
바깥으로 기어 나왔다. 진성은 마나가 기어 나오는 것을 주시하지 않겠다는
듯 손가락 끝에 삼매진화를 피웠고, 민들레 홀씨를 불 듯 가볍게 불어 불씨
를 구체로 밀어 넣어 마나를 태웠다.
비물질을 태 우는 삼매 진화의 불꽃은 마나를 양분으로 삼아 흔들흔들 타
오르기 시 작했고, 그 불꽃은 거대하지 는 않으나 텐트 안을 밝히 기 에는 충분
한 광량을 제공하며 춤을 추었다.
쬞 쬞 쬞
"하. 좋겠다.’,
뽑기를 잘못 뽑아서 순찰하게 된 여성 무인은 텐트를 보며 한숨을 쉬 었다.
"누구는저렇게 연애질하는데 나는….’,
조명을 켠 것인지 자그마한 빛을 발하는 텐트에서는 그림자가 보이고
있었다.
남자로 보이 는 그림 자와 여 자로 보이 는 그림 자가 서로 몸을 기 대 고 겹치
느 T그스
드누버.
자신에게 몸을 기댄 여성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기 위해 눈빛을 교환하는
듯한 자세였다. 게다가무인의 예리한 기감으로는두 사람이 실제로 몸을 겹
치고 있고, 가뜩이나좁은 텐트를 더 좁게 사용하며 서로의 체온을 교환하고
있다는 것 역시 느낄 수 있었다.
무인은 금줄의 바로 앞에서 부러운 듯 텐트를 바라보았고, 누군가가 낭군
과함께 사랑의 감정을 키워나갈때 낭군은커녕 홀몸으로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버린 끔찍하고 기괴하기 짝이 없는 숲속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에 깊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저주받은 지장보살이라니, 정말….,
무인은 얼마 전 밤에 순찰을 나갔다가 지장보살을 베고 돌아왔다는 자신
의 사형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지장보살 귀신 얘기도 소름이 끼치는데 ….,
그녀 가 숲속으로 눈을 돌리 자 수많은 나무, 그리고 나무의 숫자와 같은
숫자의 지장보살 얼굴이 보였다. 지장보살 얼굴은 자애로움을 가면처럼 쓴
채 그녀가 숲속으로 발을 디디 기를 바라는 듯 웃고 있었는데, 그녀의 착각일
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빽빽하고 울창한 나무들 때문에 낮에도 어두컴컴
한 어둠의 흔들림과 함께 미소의 형태를 이리저리 뒤바꾸는 듯 보였다.
나무의 숫자만큼의 얼굴.
자애롭게 웃고 있는 얼굴.
어둠과 똑같은 색으로 웃고 있는 얼굴.
어둠 사이사이에서 나무의 표면의 색만이 선으로, 점으로 남아있는 얼굴.
짙은 어둠 속에서 자그맣게 흘러나오는 빛에 반사되는 몰골을 보고 있자
면 어둠속에 얼굴만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여 더더욱섬뜩하기 짝이 없는
저 얼굴들!
그녀는 저 숲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결코! 절대로!
하지만….
'왜 낮에도 돌아야 하냐고. 문제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를 모셨으면 얌전
히 맡기기만할것이지.
그녀는 어두컴컴한 숲과는 대조되는 분위 기의 간이 신사와 텐트 속에서
알콩달콩 정을 나누는 차기 신관과 무녀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지었다.
나도 애인 사귀어서 저러면 얼마나좋을까.
아니, 애인은 바라지도 않으니 숙소에서 저렇게 뒹굴뒹굴할 수 있으면 얼
마나 좋을까.
아니, 쉬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훈련해도 좋다.
그냥 이 숲을 순찰하지만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는 한탄하며 금줄의 앞에서 뭉그적거렸다.
하지 만 그러 기도 잠시 .
그녀는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고, 금줄에서 멀어지며
떼지 지 않는 발걸음을 힘 겹 게 옮기 며 숲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들어 갔다.
■제비뽑기에서 당첨을뽑은 내가죄인이지.내 운이 죄야….,
어떻게 수십 개의 제비 중에서 단한번에 당첨을 뽑을수 있는가.
첫 번째로 나서서 어떻게 첫 번째로 당첨을 뽑아버릴 수가 있는가!
그녀는 자신의 운을 한탄했고, 숲으로 들어갈 때마다 떠오르는 사형의 지
장보살 이야기가 떠올렸으며, 사형이 그린 ■몽타주,를훔쳐보았을 때 느꼈던
섬찟함과 두려움이 다시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그럴 때마다 이 일은해야만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사범이 시
현류의 정신을 제대로 가지지 못했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피울 것이 라고, 차라리 지금 무서운 것이 끔찍한 고통과 몸의 고됨보다 낫다
고.
그녀는 그렇게 자기최 면을 걸고는 숲을 돌았다.
하지만 평소의 순찰과는 다르게 그녀의 순찰은 대충대충 하였고, 중요한
부분만을 대충 확인한 채 최대한 빠르게 숲에서 빠져나오는 것에 집중했다.
그 결과 그녀는 평소보다도 현저히 빠르게 순찰을 마칠 수 있었고, 그녀는
금줄의 근처에 서서 시간을보냈다.그리고 어느새 불이 꺼져서 그림자가잘
보이지 않는 텐트의 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 정도 시간을 보냈으면 평
소랑 얼추 비슷하겠다., 싶었을 때 수련장으로 돌아갔다.
"순찰 끝났습니 다. 나무마다 지 장보살의 얼굴이 있는 것을 제외 하곤 이 상
이 없었습니다.’,
"그래? 신사에서 온 사람들은?’,
"지금 텐트에서 쉬 고 계 신 듯 보였습니 다.’,
"둘다?’,
"네. 둘다 텐트에 들어가있었습니다.’,
"아. 그래? 뭐. 곧 결혼할 사람들이라 했으니 뭐…. 그래. 알았다."
그녀는 사범에게 자신이 본 것을 대충 보고를 올렸고, 사범은 텐트에 둘이
들어가 있었다는 말에 피식 웃고는 그녀를 보냈다. 그리곤 일을 해결할 열쇠
를 들고 있는 두 사람에 대한 ■호의 ■로 주기 적으로 순찰을 보내 이상 현상을
찾아내려고 했던 생각을 접고, 오붓하게 두 사람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순찰을 모조리 취소해버렸다.
물론 두 사람이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도록 '호의 ,를 베푼다고 직접적으로
는 말할수 없으니….
"지금숲에 신사에서 온 차기 신관님과무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일을
해 결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해 일을 해 결하려 하고 있으며, 우리 가 순찰하는
동안 그것이 거슬리 거나 방해 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해서 순찰을 나가
기로 했던 계획은 모두 취소하고, 대신에 수련으로 바꾸겠다!’,
"와아아아!’,
사범은 순찰을 취소하는 이유를 대충 뭉갰다.
"그리고 취소하는 이유는 두 사람에 게 방해 가 되는 것뿐만이 아니 다. 너
희가필요 이상으로 겁을 집어먹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귀신이라는 것이
기괴하고 사람을 겁주는 것에 특화되 었다고는 하나 너희는 그것을 필요 이
상으로 두려워하고 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것을 보았다고 해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검을 휘두르면서 물리치면 될 것을 벌써 꺼리는 기색을 보이다
니!’,
"죄송합니다!’,
"물론 이해는 한다! 너희는 수련을 열심히 할 뿐이지 실전을 경험하기에는
이르니까! 또한 피륙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형체도 없는 것을 상대하니만
큼 겁을 집어먹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 않나?!’,
"아닙니다!’,
.........
"그, 아닙니다!"
사범은 무인들을 모아놓고 쩌렁쩌 렁 소리를 쳤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범의 질문에 어떤 멍청한무인이 '그렇습니다.,라고 대
답할 뻔했으나, 그 옆에 선 무인이 번개같이 손을 움직여 옆구리를 후려침으
로써 고문관 짓을 막고 '아닙 니 다,로 답변을 바꿔버 렸다.
"그래! 암! 그래 야지! 다른 유파의 무인 놈들은 몰라도 우리 시 현류의 무
인들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야! 우리는 형체가 있건 없건, 아무리 위험하건,
설령 염라대왕이 눈앞에 있어도겁을 먹으면 안돼! 알겠나!’,
"예!’,
"방금 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얼간이는 없으니 다행이군! 하지만 대
가리로 그렇게 잘 아는 걸 왜 실행을 못 하지? 너희 가 겁을 집어먹는 것은 시
현류의 교육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너희 몸이 편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습니다!’,
"그래! 몸이 편하면 딴생각이 들고, 온갖 잡생각이 몸 안에 독처럼 파고든
다! 너희는 지금부터 교대로 순찰하는 대신에 지옥 같은 훈련을 하게 될 것
이다! 각오했나!’,
"예!’,
사범은 지금까지 그러했듯 딴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치게 만들어서
사기를 유지하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무인들은 사범의 지옥훈련 예고에도 긍정적이었다.
■신사의 사람들이 직접 나서야하는 악령이나 악령 비슷한 것이 있을지도
모르는 숲,에 들어가는 것보다, 그냥 평소보다 조금 힘든 훈련을 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마음도 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는 방금 순찰을 다녀온 여성 무인 역시도 똑같이 느꼈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낫지.,
그녀는 다시 해야 하는 제비뽑기에서 자신의 운을 시험하는 것보다, 차라
리 훈련으로 몸이 힘든 것이 낫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 었다.
쬞 쬞 쬞
"갔군.’,
"네에….’,
무슨 이유에선지 텐트를뚫어지게 쳐다보던 무인이 떠났다.
그리고 무인이 떠남에 따라 무인을 속이기 위해 딱 달라붙어 있던 둘은 자
연스럽게 떨어지게 되었다.
진성의 품에 거의 안겨있다시피 한 리세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푹 숙
이며 몸을 일으켰고, 볼에서 느껴지는 화끈함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기 위
해 뽀얀 손을 위 아래로 움직 여 손부채 질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열기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고, 그녀는 텐트가 덥다고
생 각하면서 뜨거운 숨을 쉬 었다. 그리고 힐끔힐끔 진성을 바라보았다.
진성은 마나를 뿜는 것을 멈추고 찌그러진 구체의 형상이 되 어버린 진흙
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바닥에 흐트러진 깃털 몇 개를 줍더니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숨을 후- 불었고, 깃털은 하늘하늘 움직 이 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
그리고 깃털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어떤 문양을 만들어냈는데, 그 모습이
자물쇠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이제 올 사람이 없겠구나.’,
진성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퍼를 열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후-읍.
텐트 밖으로 나오자 산의 냄새 가 가득 풍겼다.
나무가 발하는 향기 .
축축한 땅이 발하는 냄새.
곳곳에서 느껴지는 짐승의 냄새.
바람에 실려 오는곤충의, 짐승의 분비물의 냄새.
그리고.
부적과 금줄에서 느껴지는 퀴퀴하기 짝이 없는 곰팡내.
진성은 가지고 온 짐에서 캠핑용 금속 컵을 꺼내 손 위에 올리고, 냉기와
삼매진화를 피워올려 물을 맺히게 하며 중얼거렸다.
"로비 구스(Robigus), 로비 구스(Robigus)! 위대한 곰팡이의 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