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182화 (182/526)

<182화 > 지장보살의 저주

젊다못해 어려 보이기까지 한외모.

아무리 잘 쳐주어야 20대 초반을 넘지 못했을 법한 젊은 남자와 여성이

사범의 앞까지 천천히 걸어왔다.

남자는 몸에 딱 맞는 양복을 입고 있었고, 여자는 남자의 몇 걸음 뒤에서

천천히 무녀복을 입은 채 뒤따라가고 있었다.

"신사에서 오셨다고요?’,

"네.의뢰하실 일이 있다고해서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거 리 가 있는지 라 해 가 채 뜨지도 않은 새벽녘에 발걸음을 옮기 셨을 것 같

은데….’,

"하하하. 신경 쓰지 마시지요. 다른 곳도 아니고 시현류에서 곤란하다고

하는데 모든 일을 제치고 와야지요. 아,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신사에서

차기 신관이라는 과분한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 다.’,

"차기 신관이요? 아,그렇다면 혹시 뒤에 계신 무녀분이?’,

"네. 제 내자(內子)가될 사람입니다.’,

"사이고 신사에는 딸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

"네. 제가 데릴사위로 들어가 성을 잇게 되 었습니다. 하니,저를 부를 때에

는 사이 고라고 불러주시 면 되 겠습니 다.’,

사범은 차기 신관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부리나케 달려왔다는 사실에 미

소를지었다.

..

.

.........

"이거 귀하신 분들이 오셨군요.’,

"아닙니다. 어찌 신을 모시는 사람이 귀하다불릴 수 있겠습니까?’,

사범은 겸손한 태도로 말하는 차기 신관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듯 호의

적인 태도를보였다.

무해해보이는 인상.

단련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자기 관리는 잘 되 어 있는 듯한 몸.

듣기에 거슬리지 않는 목소리와 말곳곳에 묻어나오는 교양과 겸손.

그리고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묻어나오는 기품까지 .

첫인상이 매우 좋았다.

* *

좋은 첫인상이 길조(吉폰)였던 것일까?

남자는 어려 보이는 외 모와는 다르게 꽤 솜씨 가 좋았다.

"흠. 앞서 방문한 전문가분들의 말에 따르면 이 거뭇한 것이 곰팡이라고

했던가요? 곰팡이의 얼굴로그려진 지장보살의 얼굴이라. 일단 이 얼굴에는

특별한 의 미는 없습니 다.’,

"얼굴에 특별한의미가 없다니?’,

"이 얼굴 자체가 어떤 힘을 품고 있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그래요, 간단하

게 말하자면…. 이 얼굴을 보거나 만지는 것만으로 저주에 걸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남자는 앞서 불렀던 사기꾼 같았던 전문가들과는 다르게 풍부한 지식과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푸는 재주가 있었고, 그러한 남자의 말재간은 사범에

게 믿음을주기에 충분한것이었다.

"이걸 봐주시겠습니까? 아마 익숙하실 겁니다.’,

"이건…. 액막이 인형 아닙니까?’,

"네. 이게 저주였다면 이 액막이 인형에 반응이 나타났어야만 했지요.그리

고 설령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들 주술흔은 남아야 했는데 그런 게 없

었습니 다. 즉, 이 지 장보살 얼굴은 그냥 섬뜩하기만 한 현상에 불과한 것입 니

다. 그냥흉가나 폐허에 짓궂은 아이들이 와서 페인트로 이상한 낙서를 한 것

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이 야기 예요.’,

"주술과는 관련이 없는 겁니까?’,

"흠. 글쎄요. 실험해볼까요?’,

남자는 눈웃음을 치더니 사범과 무녀를 뒤로 물렸다.

그리곤 양손을 합장이라도 하듯 슬며시 모으더니, 검지를 안으로 말아 넣

고 첫 번째 마디 에 엄 지손가락을 살포시 올렸다. 그리고 나머지 손가락은 가

볍게 깍지를 낀 형태로 만들고, 합장 인사를 하듯 상체를 슬쩍 숙였다.

"옴쁘라마니 다니 쓰와하(□ □□□□□□□□□ □□□□□□)."

사범은 신사에서 왔다는 남자의 입에서 절에서나들을법한 말이 튀어나

오자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 만 남자는 뒤 에 서 자신을 꿰뚫을 듯 바라보는 시 선을 무시한 채 다시

진언을 외웠다.

"옴쁘라마니 다니 쓰와하 (□ □□□□□□□□□ □□□□□□)."

차기 신관은 혀를 잔뜩 굴린 듯한 진언을 총 세 번을 외우고 나서야 수인

(手印)을 풀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지장보살의 얼굴이 찍힌 나무를 바라보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관련이 없군요.’,

"지금 하신건대체…?’,

"방금 제 가 한 것은 진 언 입 니 다.’,

"진언이요?’,

"네. 제가 방금한진언은 지장보살 멸정업진언(地藏泯®滅定業眞言)이

라는 것입니다. 지장보살과 관련된 주술과 연관이 있나 싶어 외워봤는데 아

무런 변화가 없군요. 다행히 아닌 듯합니다.’,

차기 신관은 정말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었다.

정말 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듯한 모습이 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사범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잠깐, 잠깐, 잠깐. 차기 신관님? 그, 지 장보살과 관련된 주술이 었으면 무

슨 큰일이 날뻔했던 겁니까?’,

"네? 아, 그렇습니다.’,

"그, 그게 무슨? 설명을 좀 해줄 수 있습니까?’,

"음. 이거 어디부터 설명해 드려야 할지…?"

남자는 사범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가 입을 열었

다.

"일단지장보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지옥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

’’아, 제 대로 알고 계시는군요. 맞습니 다. 지 장경, 그러 니까 지 장보살본원

경(地藏泯B本願經)에 그모습이 나오지요.죄를 지어 고통받는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고행도 마다하지 않으시며, 모든중생이 성불하고난다음에

서야 성불하겠다는 뜻을 가지신 분이기도 합니다.’,

그는 귀에 쏙쏙 박히는 목소리로 사범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산스크리트어로는 크시티가르바(□□□□□□□□□□)라고 합니다. 그런

데 말입니 다. 여기서 크시티는 땅을, 가르바는 모태를 의 미합니 다. 말하자면

대지모신(大地母神) 숭배의 연장선이라고 할수도 있으며, 농경시대에 숭배

하던 우상들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또한 옛날부터 대지는 저승

과 연관이 많이 되었습니다.깜깜하고뭐가들어있는지 모르는대지의 아래,

즉 지하가 죽음 이후에 도달할 끔찍한 공간과 연관되기 쉬웠기 때문이입니

다.’,

"저승….’,

"당장 지장보살께서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곳 역시 지

옥(地獄)이지요. 땅속에 있는감옥이라….하하하.뭔가 의미심장하지 않나

요?"

차기 신관의 목소리에는흥이 묻어 있었다.

설명을 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어서 참을 수가 없다는 것처럼.

"게 다가 말입니 다. 이 지장보살이 라는 분이 참 묘하거든요. 관음보살님 이

보이는 세계와 현실을 담당한다면 이 지장보살님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내

세를 담당해요. 보이지 않는 세 계와 내세 …. 즉, 영적 세 계를 말하는 것이 지

요. 지 장보살님 이 가지고 있는 속성 인 대 지와 모태를 생 각해본다면 …. 참으

로 의미심장합니다.그렇지 않습니까?’,

차기 신관은 휘어지는 눈꼬리로 말했다.

"이래서 주술이라는 것이 참재미가 있어요.신과종교, 상징이 변질하였어

도 그 흔적은 반드시 남게 되 거든요. 시체 가 치워 진 뒤 에도 한참이 나 그 자리

에 감도는시취(屍臭)처럼,혹은 잘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처럼.그렇게 반드

시 어떠한흔적이 남아서 역사를 생각하게 해주죠. 이래서 고고학과 민속학

이 재미가 있는 거예요.’,

그의 말끝에는 산산이 흩어져버릴 듯한 옅은 광기가 묻어나왔다.

"지장보살을 이용한주술은 이러한 역사의 흔적 위에 존재합니다. 지장보

살이 품고 있는, 혹은 품고 있었던 상징과 일화를 기반으로요.’,

"상징과 일화…?’,

"흠. 네. 아까 말씀드렸듯이 대지와 모태의 의미를 품고 있으니 풍년을 기

원하거 나, 액 이 쌓인 땅을 정화하거 나…. 그런 용도로 쓸 수도 있지요. 그리

고.’,

"그리고?"

차기 신관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지옥과 관련된 주술을 쓸 수도 있죠.’,

지옥?

사범은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지옥?!’,

"하하하. 네. 지장보살님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일화가 지옥과 관련된 것

이 니 까요. 당연히 지 장보살님으로 행할 수 있는 악독한 주술은 지옥과 관련

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아니, 지옥이라면…."

"네. 생각하시는그게 맞습니다.혀 자르고, 바람에 찢겨나가고, 서로죽이

고, 끓는물에서 삶아지고…. 그 지옥이요."

"맙소사.’,

사범은 그의 말을 듣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 지옥과관련된 주술이 발동될 뻔했다고…?’,

"네 ? 아.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이게 지장보살과 관련된 주술의 전조였으

면 그랬을 가능성도 있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다행히 이건 주술과는 관련이

없으니 그런 걱정은 덜어두셔도 좋습니다.’,

차기 신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범을 진정시켰다.

"게다가 말이 지옥과관련된 주술이지, 의식을 행하는수준이 아니면 제대

로 힘을 발휘할수도 없어요. 의식 없이 행한주술이면. 흠.좀 실력 있는 주술

사가 사용해도 사람 하나 얼리거나 태우는 정도? 혹은 좀 무른 철의 모양을

가시처럼 바꿀 수도 있겠네요. 아, 대가로는 아마고통과 상처를 좀 입지 않

았을까 싶어요.’,

"의식이 행해졌으면?’,

"의식이 행해졌으면 조금 곤란해지기는 했겠지만…. 만약의식이 진행되

었으면 당연히 눈치를 채지 않으셨을까요? 그러니 문제가 일어날 일은 없었

을겁니다.’,

"그렇긴 하지요.주술 의식이라는 게 얼마나요란한데 ….’,

그는 방긋 웃었다.

"그럼요.주술 의식이라는 게 몰래 하기 참힘든 것이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