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176화 (176/526)

<176화 > 지장보살의 저주

"아시다시피 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온갖 이야기들을 볼 수 있지요. 사람들

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기를 좋아하거든요.’,

진성이 지어내는 공포의 이야기는 그렇게 담담하게 시작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이라는 것은 저에겐 보물창고나 같아요. 파소콘

(쯦쫣 垠 砒, personal computer)을 켜면 저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야기

들을 가득 볼 수 있으니까요.’,

담담하게.

하지만 사실을 늘어놓는 것처럼.

진성의 이야기는 또렷한 목소리로 무인의 귀에 박혔다.

"그래서?"

"그런데 어느 날 이 보물창고에 이상한글이 하나보였어요.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공포 게시판쪽에서 자주 보는 평범한스레(솋 럲, thread) 형식의

게 시글 같았는데 • • •. 뭔 가 느낌 이 이 상하더 라고요.’,

진성은 그 말을 내뱉고는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이상하다고?’,

"네 .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 음. 제 가 이런 심령 체험을 한 것이 오래되 지

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러 번 다니다보니 영감(靈感)이라는 게 생겼거든요.

그런데 그 영감이 이 게시물이 평범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진성의 표정은 불길함을 도저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 고뇌하는 예언자

같았다.

"그래서 그 게시물을 꼼꼼히 읽어보기 시작했죠.뭐, 의외로 길지 않아서

금방 읽긴 했어요. 그 게시물은 자기가 사는 지역에 떠도는 어떤 전설 이야

기부터 시작했는데, 그게 ….’,

진성은 말을 중간에 흐리곤 슬쩍 지장보살을 살펴보았다. 그리곤 눈치를

보듯 무인을 슬쩍 보기도 했다.

무인은 진성의 행동에 무언가 눈치채기 라도 한 듯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게 여기라고?"

"큼, 네.’,

"그게 무슨개소리야?’,

"아니, 개소리라니요….사는지역에 괴담한두 개는 있을수 있잖아요….’,

진성은 거칠게 반응하는 무인의 말에 삐지기라도 한 것처럼 입술을 슬쩍

내밀곤 투덜거렸다.

"큼. 어쨌든 그 게시물에 올라온 내용에 의하면 말이에요. 자기가 사는 지

역에는 아주 흉흉한 소문이 도는 산이 있다고 했어요. 수백 년 전에 갑자기

생겨난 산인데, 거기 살면 저주받는다고 해서 아무도들어가지 않는 산이라

고말이에요.’,

"그리고 그 산 이름이 쿠로츠루기 미네다?"

"아,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어요. 보통 지역 괴담을 말할 때는

피해 라도 갈까 봐 직 접 이름을 말하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그 게 시 물에 서는

그냥 검을 닮은 뾰족한 봉우리가 있다, 검은 바위 가 있다, 나무가 빼곡해서

으스스하다….뭐 이런 정도로만묘사했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곤 자랑스러운 듯 슬쩍 가슴을 폈다.

"하지만 그 정도 묘사라면 어딘지 찾는 것은 쉽죠. 금방 찾을 수 있었어요.’,

"하. 자랑 납셨군.’,

무인은 으르렁거리며 진성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진성은 자신의 처지를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슬쩍 몸을 움츠렸다.

"아니, 자랑은 아니고….크흠! 이야기 계속할게요. 그래서 그 산에는 아주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고,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안 좋은 소문이 퍼졌고, 그 소문을 들은 한 고승이 소문이 사실인지 확

인하기 위해 방문했다고 합니다.’,

진성은 민망함을 감추려는듯 헛기침하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오랫동안 수행한 고승은 그 산에 흐르는 흉흉한 기운을 바로 알아보았

다고 합니 다. 그래 서 그것을 막기 위해 서는 꽤 규모가 있는 의 식을 치 러 야 한

다는 것도 알았죠. 하지 만 그냥 단순히 제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의식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고민을 했다고 해요."

"인신공양…?’,

"그래서 고승은 고민 끝에 인신공양의식 대신, 지장보살을 산 곳곳에 세

워서 불길함을 억누르기로 했다고 합니다. 자비로우신 지장보살의 힘을 빌

려서 산 곳곳에 떠도는 액운과 살기(殺氣)를 줄이려고 한 거죠.’,

진성은 말을 이 어가다가 숨을 고르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목소리 를 낮추고 이 야기를 이 어 갔다.

"그런데 말입니다. 고승이 보리수나무로 지장보살 목상을 총 孀개를 만

들었는데, 이상하게 지장보살 하나에만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겠습

니까?’,

"이상한일이라고?’,

"네. 이상하게 孀번째 지장보살에 문제가계속생기는 겁니다. 지진이 일어

나서 엎어지 기도 하고, 벼락을 맞아서 쪼개 지 기도 하고, 벌레 가 파먹 기도 하

고…. 심지어 근처 마을 사람이 생전 오지도 않던 산으로올라와서 孀번째 지

장보살 목상을 망가뜨리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불길하다면서 산 근처에

도 올 생각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 말이에요.’,

그의 목소리는 음산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4라는 숫자는 참 불길한 숫자죠. 죽음(死)과 발음이

같잖아요. 가뜩이나 산에 발을 디디는 것만으로도 저주받는다는 소문이 도

는 산에, 孀번째가 완성되지 않아서 계속해서 지장보살 목상이 4개로 유지가

된다? 불길하죠. 너무너무 불길하죠.’,

"그때 고승은 생각했어요. 이 산에 감도는 살기는 너무 끔찍해서 목상으

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이 산 자체에 머무는 액운이 반쯤 의지를

갖고 사람을 해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이 에 요. 그래 서 석공과 질 좋은 돌

을 구해서 목상이 아닌 석상을 만들기 시 작했다고 해요. 그것도 孀개가 아니

라徦개를말이에요.혹시 안좋은 일이 벌어져도4개가되지 않도록.’,

음산한 목소리 는 지 장보살을 한 바퀴 휘 감고 무인의 귀 에 꽂혔고, 스산한

바람과 함께 냉 기를 머금고 무인의 몸을 휩쓰는 듯했다.

"석상을 만드는 일은 힘들었다고 합니다. 석공이 이해하기 힘든 사고를 당

해서 다치기도 하고, 계절에 맞지 않는 폭우, 폭설 때문에 큰 고생을 했다고

해요. 하지만 다행히 徦개의 석상을 만들 수 있었고, 산곳곳에 놓았다고 합니

다.’,

.

.

....

무인은 자신도 모르게 진성의 말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고 느꼈다.

"석상을 산 곳곳에 만든 후로 산의 분위기는 확실히 나아졌다고 합니다.

찾아보기 힘들었던 산짐승들도 종종 보였고, 산 자체 가 뿜어내는 음산한

느낌 이 라던 가 가끔 보였다는 귀 신 에 관한 이 야기도 뚝 끊겼으니 까요. 그런

데.’,

진성은 눈을 깜빡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자기 말에 집중하고 있는 무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평화도오래 가지 않았습니다.석상이 깨졌거든요.’,

진성은 턱짓하며 지장보살을 가리켰다.

목 부분이 으깨져 버린 지장보살을.

"목상을 만들 때 그랬던 것처럼, 어떤 사람이 올라와서 기어코 석상을 하

나부숴버린 거예요. 그런데 이상한 건, 평소에 술이라곤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술에 만취된 상태였고,그렇게 힘이 강한사람도 아니었는데

낡아빠진 도끼 한 자루로 목을 떨궜다고 합니다. 그래요, 마치 귀신에게 홀

린 것처럼 말이에요.’,

"흠.’,

"하지만다행히 이런 일을 예상한고승은 孀개가 아니라徦개를만들어놔서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게 그 게시물에 올라온 전설이에

요.’,

진성은 그렇게 말을 끝내곤 무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무인에 대한 두려

움이 가시지 않은, 하지만그 두려움을 이길 정도의 호기심을 채운 표정을 지

으며 질문을 던졌다.

"이런 전설들은적 있어요?’,

"쯧, 헛소리는.그런거들은적 없어.’,

무인은 퉁명스럽게 질문에 답해주었다.

하지 만 퉁명스러운 말투와는 다르게 지 장보살 석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

선에는 찝찝함이 묻어 있었다.

"그래요? 그럼 이 거 뒷이 야기도 헛소리 인가…?"

"뒷이 야기 껬 다른 이 야기도 있어?"

"아, 네.’,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기를하기 전에 질문하나만할게요.이 산에 지장보살 석상이 몇

개가 있어요?’,

"그건 또 왜 묻는데?’,

"혹시 제 가 아는 거랑 숫자가 다르면 제 이 야기 가 거짓말이 라는 게 되 잖아

요?"

무인은 진성의 말에 잠시 생각했다가 입을 열었다.

"3 개.’,

"네 ? 툩개요?"

"왜. 숫자가 달라?’,

"아, 아뇨. 똑같은데요…?!"

진성은 놀랍다는 듯 과장된 제스처를 보였다.

"와, 이거진짠가…?’,

진성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겠다는 듯 지장보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그렇게 호들갑을 떠 는 모습을 위 장으로 내세우며 교묘하게 숨을

조절해 자기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었다.

마치 의외의 사실에 고양된 것처럼 보이도록.

"그게 이거 뒷이야기가무섭거든요. 옛날에 일본이 제국이던 시절에 있잖

아요. 미국 놈들이 일본 곳곳에 폭격했었거든요?’,

"미국이?"

무인은 진성의 말에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미국은제국시절 우리 동맹 아니었어?’,

"네? 무슨소리예요.’,

진성은 무인의 말에 당황했는지 눈을 깜빡였다.

"일본은 독일이 랑 이 탈리 아랑 동맹 이 었는데요?’,

"어, 그래? 크흠. 이야기 계속해봐."

"어쨌든 미국이 폭격했는데, 그 과정에서 지장보살석상이 부서져 버렸다

고해요.무려 툩개나 말이에요.’,

진성은 손가락으로 목이 없는 지 장보살을 가리 켰다.

"저 지장보살을 포함해서 총 툩개만 남게 된 거죠. 4개가 아니라 툩개가 남

아서 다행이기는 한데 …. 그런데 말이에요. 어느 순간부터 봤다는 거예요.’,

"봤다고? 뭘 ?’,

진성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대답했다.

"4번째 지장보살을요.’,

"4 번째….’,

무인이 꺼림칙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4번째 지장보살은 머리만 있다고해요.’,

"머리만?’,

"아마저 목 없는 지장보살에서 잘린 머리겠죠.’,

진성은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4번째 지 장보살은 뭐로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새까만 몸뚱어리 에 하얀

돌로 만들어진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요. 그리고 그 지장보살을 보고 나면

반드시 가까운 시일 내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대요.’,

진성은 씨익 웃었다.

"마치 경고라도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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