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화 > 일찍은 주인
"과거에 저지른 업보가 참으로 많구나. 하나하나가 치졸하기 짝이 없고,
음습하고 음험하기 짝이 없으니. 사람의 정신을 툭툭 건드려 무너뜨리려 하
는 사악한 소행이라. 괜찮다고 말을 하여도 그 마음에 품은 앙금이 쉽 게 지
워지지 않을 것임을 아니, 내 직접 이것에게 벌을주겠다.’,
진성은 나루미의 꾸깃꾸깃 접힌 몸을 풀어주었다. 그리곤 악몽에 신음하
고 있는 얼굴을 잠깐 바라보았다가 허공에 띄워 구석진 곳으로 집 어 던졌다.
그러자 그녀를 괴롭히고 있던 새 타니 역시 공을 쫓아가는 강아지처 럼 그
녀를 따라서 구석진 곳으로 이동하였고, 바닥에 널브러진 나루미의 입가근
처에서 서성이더니 손을 쭈우욱 늘어뜨려 그녀의 입가 양옆을 잡았다.
그리고 양옆을 잡고 그녀의 입을 크게 벌리기 시작하였는데, 그 모습이 마
치 입가를 찢어버리고 그 안에 자기가 들어 가려는 듯 보였다. 새타니는 벌려
진 입에 자신의 정수리부터 들이밀며 그 안에 들어가려고하였고, 그고통에
나루미는 신음을 연신 내뱉었다.
"그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잠시 멈추도록 하거라."
진성은 풍선처럼 쪼그라드는 머리통을 나루미의 입 안에 집어넣는 새타니
의 행동을 만류했다. 그리곤 자기 오른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는 입김을 부
는듯 작게 후-하고 불었다.
그러자 진성의 몸 안에 자리 잡은 태극에서 나오는음기가 진성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차가운 숨결이 되 어 나루미 가 있는 곳을 향해 흘러갔다.
그리고 흘러간 차가운 숨결은 그대로 나루미의 주위 에 맴돌았다.
냉기는 식은땀 때문에 흠뻑 젖은 나루미의 체온을 순식간에 낮춰버렸고,
공포가 아닌 추위 때문에 몸을 덜덜 떨게 했다. 게다가 냉기가고치의 형태
로 나루미의 몸 주변을 에워싸자 그녀의 피부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했고,
피부가 점차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진성은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왼손을 휘저었다.
그러 자 입 가에 서 흘러 나온 냉 기와 상반되 는 온기를 품은 바람이 나루미
를 향해 날아갔고, 봄날의 따스한바람처럼 포근한 온기가나루미의 주변을
에워쌌다. 하지만온기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것이라는듯나루미의 몸을 한
번 에워싸고 잠깐의 따스함을 주었다가 그대로 천장의 위쪽으로 올라갔고,
거기서 구름이라도되는 것처럼 위쪽에 한데 뭉쳐서 진성의 명령을 기다리기
만하였다.
"밝은 것 가운데 어두움이 있고, 어두운 것 가운데에 밝은 것이 있으니. 서
로의 머리가꼬리를 잡으며 움직이고, 몸을 휜 채 형상을 그리니 그것이 태극
이라.’,
진성은 손을 몇 번 휘저어 천장에 모여있는 온기와 나루미의 몸을 감싸고
있는 냉 기를 이 어 버 렸다. 그러 자 한데 뭉쳐 있기 만 한 것이 실에 이끌려 움직
이 기라도 하듯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 기 시작하며 나루미의
몸에 따스한 온기와 몸을 얼어붙게 할 것 같은 차디찬 냉기를 번갈아 가며 공
급해주었다.
"이제 들어가도 되느니라."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자 진성은 새타니에게 나루미의 몸속으로 들어가도
된다고 허락하였고, 머리를 반쯤 쑤셔 박은 채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새타니
는 기쁘다는 듯 어깨를 들썩 이며 몸을 꾸역꾸역 나루미의 안으로 밀어 넣었
다.
그러자 나루미의 볼이, 목구멍 이, 위 장이 커다란 것이 라도 삼킨 것처럼 크
게 부풀었다가 순식간에 푹 꺼져버렸고, 경련이라도 하는 듯 몸을 몇 번 크게
튕기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다시 악몽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아까의 악몽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 그녀에게 닥칠 악몽은 상
상 이상의 효과를 가지리 라는 것.
"되 었다. 몸 주변에 양기와 음기를 번갈아 가며 움직이게 하여 체온을 박
살을 내버 리고, 육체 가 혼란에 빠지 게 했느니 라. 아마 이 전에 새 타니 가 행했
던 것보다도 훨씬 강력한 악몽이 덮칠 것이 니라. 또한 그 악몽에서 비롯되는
육체의 이상 역시 크게 될 것인즉."
진성은 그렇게 말하며 본전 한쪽 벽에 붙어있는 제세동기(除細動器)를 끌
어와 나루미의 옆쪽에 던졌다. 그리곤 몽실몽실 몸을 움직 이고 있는 슬라임
을 그 옆에 데려다 놓았다.
"악몽때문에 심장이 멈춰서 죽은사람의 이야기를들은 적이 있느냐?’,
"네? 네.’,
"기묘한 기의 흐름과 그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육체, 그리고 정신을 강
하게 지배하는 악몽. 이 모든 것이 적절하게 합쳐진다면 육체와 정신이 강하
지 않은 사람에 게 심 장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느니 라.’,
진성은 덤덤하게 리세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리세가 놀란 듯 슬쩍 눈을 크게 뜨며 나루미를 바라보았다.
진성은 리세의 표정을 잠시 살펴보더니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걱정 말거라.제아무리 신력을 잃어버리고, 정신은개복치나 다름이 없고,
남을 깔보고 괴롭히는 것에서야 제 존재를 확립시키고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종자라고 한들 악몽에 의 한 심 장마비는 쉽 게 일어나지 는 않을 것이 니까. 그
리고 설령 일어난다고 한들 꿈틀거리며 기다리고 있는 저것이 즉시 제세동기
를 움직 여 심장을 뛰 게 만들도록 할 것인즉,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느
니라.’,
리 세는 그 말에 조금 안심 한 듯한 표정을 지 었다.
"아무리 악한 짓을 한다고 한들 그 처벌이 과하다면 그 역시 악업이라. 죄
의 경중은 쉬이 판단할수는 없으되 생명을 빼앗는 것만큼은 신중해야하니.
번뇌가 많은 나의 무녀야, 너는 저것을 싫어하기는 하되 저것의 죄가 죽음을
맞이해야 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 나는 너의 행복을 위해 그 뜻을
존중하여 저것의 목숨을 해하지는 않을 것이니라. 하지만 명백히 죄는 있으
니 괴로움을 주어 과거에 쌓은 악업에서 비롯된 독을 빼내고, 너의 후임으로
써의 소임을 다하게 할 것이니라.’,
진성은 그렇게 말하곤 입고 있는 정장 재킷을 벗어 리세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곤 입 고 있는 와이 셔츠의 소매를 적 당한 위 치 까지 접 어 올렸다.
"저것에 대해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이 옷가지를 걸어놓고 뭐라도
마시자꾸나.’,
리세는 진성의 말을 듣고 잠시 귀를 쫑긋거렸다가 배시시 웃었다.
"네에.’,
그녀는 진성의 저 말과 행동이 자신을 배려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분노하고, 그녀를 대신해 벌을 주었으며, 혹여 그녀가
나루미 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일말의 죄 책감이라도 가질까 장소를 옮
기는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녀는 기쁘게 정장 재킷을 끌어안고 손님을 맞이하는 곳으로 진성을 안
내해주었고, 정장 재킷을 옷걸이에 걸고 곱게 편 뒤 포트로 물을 끓이고 찬장
에서 귀한찻잎을 꺼냈다.
진성은 리세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차는 되었다. 커피는 없느냐?’,
"커피, 말씀이신지요?"
리세는진성의 말에 서랍을 열어 캡슐커피 두 개를꺼냈다.
그리고 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기계에 캡슐커피를 넣어 두 잔을 추출하고
는 자그마한 젤리 같은 것을 몇 개 그릇에 담아 진성에게 가져다주었다.
진성은 리세가 가지고 온 커피의 향을 한 번 맡은 뒤 한 모금 마시고, 그녀
가 가지고 온 로쿰(Lokum)을 살짝 베 어 물었다.
"제대로된 로쿰인 것 같은데, 직접 주문한 것이냐?’,
"네에.’,
"가격이 싸지는 않았을 것인데?’,
"요새 오마모리도 잘 팔리고, 여기저기서 기부금이 많이 들어오는지라 여
유가 생겼답니다.’,
"흠.’,
진성은 그녀의 말에 피식 웃었다.
"기부금이라.’,
그녀가말하는 ,기부금,이 마약대신에 물귀신과의 귀접에 푹 빠지고,진성
이 준 '축복'의 정체도 모른 채 그효과에 미쳐있는 사람들이 주었을 것이 분
명했으니까.
"그래.그 미끼에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진성은 정치인과 부자들을 생각하자 자연스레 미끼 역할을 하게 될 정치
인, 우치카와 료스케를 떠올렸다.
"네에. 특별한 일은 없었답니다. 얼마 전과 같이 동료 의원들에게는 따돌
림을 받고 있고, 만들어놓은 인맥은 죄다 산산조각이 나고, 인맥은 제대로
만들어지 지도 않고 있어요. 게 다가 집 안에서도 의 절 당하기 직 전이 랍니 다.’,
"집안에서도?’,
"그 후안무치 한 배 신자도 명색 이 정 치 인인지 라 집 안이 훌륭한 것은 맞지
만,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들 모두에 게 외 면받는다면 그게 무슨 의 미 가 있을
까요? 호족이니 화족 같은 인맥들이 기피하기 시작하고, 케이레츠(系列)같
은 거대 기업들과도 멀어지고….’,
리세는 진성의 물음에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우치 카와 가문은 돈줄과 인맥 이 모조리 끊기는 것을 감수하고서 라도 가
족을 끌어안을 정도로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넘치진 않았나봐요.’,
옛날부터 가진 자들은 핏줄보다, 가족보다도 가문이 우선인 경우가 많았
다.
그리고 당연히 일본 역시 마찬가지.
아니,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일본이 가문에 대한 영향력이 더 강하다고해
도 과언은 아니 었다.
옛날부터 일본은 핏줄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성을 바꿔서, 성을 받아서 출
세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출신을 위해 성을 바꾸는 것은 기본이었고,
가문을 옮겨 다니 며 그 후광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 겼다.
그리고 이렇게 가문이 중심이 된다면 당연히 구성원들 역시 가문을 위해
서 살고, 가문을 위해서 인생을 바칠 수밖에 없다.
하나하나를 사랑으로 키우는 대신 가문에 이득이 되 게 키우고, 사랑하는
사람끼리 이어주는 대신에 가문에 이득이 되도록 정략결혼을 시키고, 만약
가문에 해가될 것 같다면 거침없이 잘라내고.
개인보다 전체를 위해서.
하나보다는 모두를 위해서.
가문이라는 공동체를 위해서.
"정치인으로서 자질이 없음에도 가문의 후광만으로 당선이 된 작자이니,
제 뒷배를 잃어버린다면 순식간에 고꾸라질 것이다.’,
진성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료스케 가 맞이할 비참한 미래를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된다면 제가직접 고른최악의 선택에 대한 대가를치르게 될 것
인즉. 야태도아랑류(野太刀ffi迶流)와 엮여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니라."
리세는 진성이 커피를 다 마셔가자 그제야 커피잔을 들어 홀짝홀짝 마시
기 시작했다.하지만에스프레소의 쓴맛이 입에 잘맞지 않는 것인지 조금만
마시고 로쿰을 들어 조금씩 베어먹기를 반복했다.
"그래, 그러고보니 야태도아랑류에는 특별한 일은 없느냐?"
리세는 에스프레소를 한모금 마시고 로쿰을 베어 물려다가 진성의 질문
을 받자로쿰을 그대로 아래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입 안에 감도는 쓴맛과
커피의 향기를 그대로 안은 채 답해주었다.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아, 조금 있으면 야태도아랑류의 연례행
사(年例行事)가있기는 해요.’,
"연례행사?’,
"네에.’,
리세는 진성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야태도아랑류(野太刀獸迶流)는 시현류(示現流)의 분파랍니다. 그래서
매년 시현류와 교류를 하고 있어요.’,
..
…
"교류라? 어떤 식으로 교류하느냐?’,
"으음.두유파의 고수끼리 대련하고,유망주들에게 가르침을 주기도하
고…. 그렇다고 들었어요.’,
진성은 그녀의 말을 듣고 꺼림칙한 것이 있는지 잠시 고민했다.
"두유파의 고수라?’,
"저는 무인이 아니라서 얼마만큼 대단한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래…?’,
진성은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일반 사람들과 다른 외형을 가지고 있는 작자가 있느냐?’,
"네? 아, 네.’,
"있다고?’,
"네에.한명 있어요.’,
리세는 과거의 기억을 뒤져가며 진성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시현류의 초고수라고하던데.몸에 용비늘같은것이 나있고, 키가佝미
터 50cm가 넘어요.그래서 참마거룡(衢魔巨龍)의 카즈오(計夫)라고불린
다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