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화 > 이른 성인식
"오염?"
해 괴 하기 짝이 없는 단어 에 이 양훈은 눈살을 찌 푸렸다.
오염.
오염이라니.
어 디 공포 영화나 재 난 영 화에 서 나 나올법 한 단어 가 아닌 가.
앞에 '성인식,이 아니라,핵실험,,'생화학무기 연구,,'바이러스연구,같은
흉흉한 것이 붙어 야만 할 것 같은 단어 였다.
"뭔 짓을 하려고 하길래 오염이란 단어를 꺼내는 거냐?’,
진성은 이양훈의 말에 방긋 웃으며 무언가를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그가 입을 열려고 하는 그때 그의 앞에 그가주문했던 음식들이 하
나둘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고, 진성은 음식을 건네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
사를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곤 적당한 금속 그릇을 찾아내곤 그것을 들어 허공에 집어 던지곤 손
에 불을 피워올렸다.
"아니, 잠깐. 뭐하는 거냐!’,
"별것아닙니다.’,
진성은 금속을 허공에 띄운 채 불로 금속을 녹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금속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이윽고 허공을 주무르는 진성의 손길에 맞춰서
모양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 모양은 마치 교회 에 서 사용하는 종과 비슷한 모양새 였다.
그는 금속이 교회 종과 비슷한 형상이 되자 그것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
리 고 셰 프가 있는 곳에 서 커 다란 생 수통을 끌어오고는 뚜껑 을 열어 금속 그
릇에 부어버렸다.
치이이익-
그러자 금속이 빠르게 식는 소리와 함께 하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진성은 금속이 다 식었다고 생각이 되자 그것을 띄워서 식탁 위로 가져왔
다.
나름의 아름다움과 멋이 있었던 금속 식기는 고대 유물 같은 투박한 모양
새에, 몇 번 사용하고 나면 쩍쩍 갈라지고 망가질 것 같았다.
하지만 진성은 오래 사용하기 위해서 식기를 주물러 모양을 바꾼 것이 아
니었다.
오직 한번.
이 번에 만 사용하면 그만이 었다.
그는종모양이 된 식기의 안에 유리잔에 담겨 나온음료를모두부어버렸
다.
그러고는 자신을 황당하게 바라보는 이 양훈에게 물었다.
"일단 제가 음식을 먹고 좀 말씀드려도 되 겠습니까? 지금 피가 많이
빠져나가서 상태 가 그리 좋지는 않아서 말입니 다.’,
"•••그래. 알겠다.’,
진성은 이양훈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음식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자르는 순간 육즙인지 피인지 모를 것들이 쏟아지는 고깃덩어리를 큼직큼
직한 조각 그대로 입으로 쑤셔 넣 었고,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르는 끔찍한
비주얼을 가진 음료를 꿀꺽꿀꺽 삼켰다. 그리고 대접에 놓인 선지를 숟가
락으로푹푹 퍼서 입에 넣고 음료와 함께 삼켰다.
품위 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식 사였다.
이양훈은 그 모습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지만, 진성은 그의 심기가 불편해
지건 말건 음식을 미친 듯이 입에 쑤셔 넣었다. 선지를푸딩처럼 퍼서 먹고, 스
테이크를 원시인이 갓 잡은 사냥감을 대충 불에 구워서 먹는 것처럼 입에 넣
고, 끔찍한조합으로 만들어진 믹스 주스를 맛이 아닌 음식을 넘기기 위한 용
도로만 사용했다.
그렇게 식사를반복하자진성의 얼굴에 활력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시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창백했던 피부에는 혈색이 돌아왔으며,
흐리 멍덩했던 눈에는 총기 가 돌아왔다. 그리고 탄력을 잃어 가던 피부에는
윤기 가 돌기 시 작했으며, 만져보면 냉 기 가 일 것 같은 피부에는 온기 가 감돌
았다.
그는 식사를 모두 끝마치자 슬쩍 성호를 긋고는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나서 야 미 소를 지으며 이 양훈을 바라보았다.
"뭘한 거냐?"
"빠른 회 복을 위 해 주술을 좀 사용했습니 다.’,
진성이 방금 주술의 대가로 지불한 것은 피였다.
아브라함 계통, 특히 기독교 계열의 주술은 피를 중요시했다.
그들은 피를 생명이라 여겼고, 생명을 바치는 것을 마땅한 희생으로 여겼
으며, 희생을 감내하고 사랑을 베푸는 것을 중요시 하였다. 그리고 이 러한 피
에 대한그들의 인식은주술관에도그대로적용되어 '피,를 매개로,혹은대
가로 사용하는 주술이 발전하게 되 었다.
그리고 이 러한 피 에 대한 집착은 대를 이 어갈수록, 세대를 거듭할수록 세
련된 형태로 바뀌 었으며, 그것을 보충하는 방법 역시 발달하게 되 었다.
하지 만 피 에 대 한 지 나친 고찰이 모두 받아들여 지 지 는 않는 법 .
몇몇 방법은 그 방법이 사특하다고 해서 배척당하거나, 기독교와 사이가
좋지 않은 상징을 뿌리로 삼았기에 이단이라며 탄압받고는 했다.
진성이 사용한 것은 그렇게 탄압받은 주술 중 하나이며, 그 때문에 주술의
형 태 가 일그러 지고 망가져 민간 신 앙이 나 단순한 놀이로 전락해버 린 것이 었
다.
민간신앙.
미신에 한없이 가까운.
아니, 미신 그 자체가되어버린 하잘것없는놀이.
이제는주술에서 너무 멀어진 파편이자, 기독교를 믿는 이들에 의해 갈가
리 찢겨 제 형체도찾아볼수 없게 되어버린 먼지 더미에 불과한것.
하지만문화라는 것은쉽게 사라지지 않고, 한대 성세했던 것은몰락한다
고 한들 반드시 그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
세계 툩 차 대전이라는인류최악의 재앙이 터지자전 세계는개판이되었
고, 인류애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지옥이 되 어버렸다. 그리고 그 지옥에서 평
범 한 사람들은 어 떻 게 든 희 망을 품고 살아가기 위 해 , 어 떻 게 든 제 목숨을
건사하기 위해 온갖 미신을 추종하기 시작했고, 그 미신을 뜯고 조립했다.
사이비 종교의 이름으로.
기댈 곳 없는 사람의 원망으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버팀목을 위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놀이로 전락한 것들이 생명을 다시 얻기도 하였다.
미신을 찢고 이 리저리 접붙이는 과정에 서 몇몇 개 가 특별한 힘을 발하기
시작했다.
비록 그것이 생물을 이리저리 합성하며 놀다 만들어진 키메라 같은 꼴이
며 , 별생 각 없이 놀다가 만들어 진 폭탄 같은 느낌 이 기는 했지 만 어찌 되 었건
그것들은 힘을 다시 얻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을 사용하기 시 작했다.
악귀에게 습격당했을 때 몸을 피하려고.
군인이 쳐들어왔을 때 숨기 위해서.
폭탄이 떨어졌을 때 조금이라도 생존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강도가 칼과 총을 들고 찾아왔을 때 어 떻 게든 목숨이 라도 부지하기 위 해
서.
대가?
대 가라는 것도 살아야만 지불할 수 있는 것이다.
대가로 내장이 절반이 사라진다거나, 고자가 된다거나, 백혈병에 걸리거
나 외 형 이 변한다고 한들 그것이 목숨보다 중요한 대 가라고 할 수 있을까?
....
진성의 말년, 사람들이 주워들은 주술을 하나씩 머릿속에 간직해놓고 그
것을 구명 절초로 사용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주술이라는것이 대가가끔찍하기는 했지만 가장 접근성이 좋은 능력이었
으니까.
그것을 전문으로 사용하고 다니는 주술사에 비할 바는 되 지 못하지 만, 그
저 목숨을 구하는 용도로 한두 번 쓰는 것 정도야 각오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었으니까.
물론 무사히 목숨을 구한 다음에는 치를 떨면서 주술을 거들떠보지도 않
는 경우가 대 다수이 기는 했지 만 말이 다.
"흡혈귀 흉내를 내 서 피를 가장 잘 흡수할 수 있도록 했고, 그 대 가로 악귀
가 좋아하는 냄새를 풍기게 되는 것을 마늘을 섞은 음료로 막아냈습니다.’,
초기 영국의 치료법에는 온갖 것들이 있었다.
그 당시 난쟁 이의 공격이 라고 불렸던 경련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곡물가
루와흰 사냥개의 구운똥을 넣은 케이크를 먹이거나, 마귀 때문에 걸린 병에
서 낫기 위해 미사곡을 들려줘서 만든 마늘과 성수를 첨가한 허브 음료를 교
회 종에 담아서 마셔야 한다는 것 등등.
진성은 이러한 초기 영국의 치료법에서 조금 더 발전한 형태의 ■마귀를 물
리치는 처방법,을 사용해 악귀 가 좋아하는 냄새를 치워버렸다.
"그래. 알겠다.’,
이양훈은 진성의 설명에 알겠다는 듯고개를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알아들었다기보단 이것 역시 맨날 하던 기행 중 하나
이겠거니 하며 어찌어찌 이해한것에 가까웠다.
"혈색 이 조금 좋아진 것 같으니 다시 물으마. 오염 이라는 단어는 대체 왜
쓴 것이고, 북쪽에는 대체 왜 가려고하는 것이냐?"
진성은 턱을 쓰다듬었다.
무어라 설명해야 이양훈이 알아듣기 편할까, 무엇에 비유해서 말하는 것
이 좋을까 고민하는 몸짓이 었다.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진성이 입을 열었다.
"희토류에 대해서 아십니까?’,
"알지.,.
모를 리가 없었다.
거대한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희토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면 칼을
물고 죽어도 할 말이 없으리 라.
"이 희토류라는 것이 참 요물입니다. 쓸모도 많고 대체할 것도 없는데, 채
집하는 양이 적고 그 수고가 많이 들어가거든요. 특히나 이것을 채굴하고 제
련할 때면 끔찍할 정도의 오염이 생기곤 합니다.’,
"그렇지.’,
"채굴할때 방사성 물질이 튀어나오는 것은 기본이고, 제련할 때 사용한
화학물질 때문에 온갖 오염이 일어납니다. 이산화황, 황산, 산성 폐수…. 물
과 땅을 오염시 키고 가축을 죽이는 끔찍한 물질들이 지요.’,
진성은 말을 잠시 끊더니 웃으면서 이양훈에 게 물었다.
"하지만 말입니 다. 오염 이 심하다고 해서 이 것을 캐지 않을 수는 없습니 다.
그렇지요?’,
"•••그래.’,
"그렇지만 말입니다. 이것을 집 바로 옆에서, 혹은 옆 동네에서 캔다고 하
면 그건 그것대로문제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 사람이 생활하는곳에서 멀리
떨어진 쓸모없는곳에서 이것을 캐야 이 끔찍하기 짝이 없는오염에 대한 리
스크를줄이고, 오로지 리턴만을 가져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양훈은 진성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곤살짝 안색이 변했다.
"네가 북쪽에 가려는 이유도 알겠다. 그런데 대관절 무슨 짓을 하려고 하
길래 희토류로 비유하는 오염이 일어난다는 것이냐?"
대체 무슨 오염이길래?
이양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 진성을 바라보았고, 진성은 그 시선에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별것 아닙니다. 그냥 성인식을 좀 하고, 성인식 과정에서 그 지역에 부정이
맴돌게 되는 정도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