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 훈로서리라
엘라는 말없이 손에 올린 종이를 살짝 쥐 었고, 진성은 그 모습을 보고는
만족했다는 듯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떠 났다. 그리고 마침내 발소리가 멀어
지고 진성의 모습이 사라졌을 때, 엘라가 자세를 바로 함에 따라 갇혀 있던
아나스타시아가 봉인에서 풀려나올수 있게 되었다.
"동-생!’,
"꺅!"
아나스타시 아는 밖으로 뛰 쳐 나와 그대로 엘라의 허 리 에 매 달렸다. 그리
곤 볼을 슬쩍 부풀리더니 볼멘소리로 따지기 시작했다.
"왜 이 예술작품을 지웠나요〜예술은보존되어야하는데, 왜 그런 것인가
요! 혹시 칸이라도 되고 싶은 건가요! 인류의 찬란한 문명을 지우려고 작정
했나요!"
"칸은또뭐,꺅! 이상한데 만지지 마세요’,
아나스타시 아는 분이 풀릴 때까지 엘 라를 가지 고 논 뒤 , 그녀 가 손에 쥐 고
있는 종이를 슬쩍 빼돌렸다. 그리고는 그것을 펼쳐보고는 '나는 아직도 화
가 나기는 했지만, 보존은 됐으니까 여기서 멈춰주겠다,라는 듯한 뻔뻔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엘라에게 말했다.
"좋아요. 이 언니에게 대든 것은용서해주도록할게요."
엘 라는 그 말에 발끈하려 다가도 자그맣기 짝이 없는 아나스타시 아의 모
습을 보고는 한숨을 쉬는 것으로 참았다. 그리고는 피곤하기 짝이 없는 얼굴
로 알겠다고 대충 대꾸해주며 그녀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고, 그대로 침대로
향해서 누워 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잠자리에 들려는 찰나.
그녀의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의문이 하나 생겼다.
"그런데 그문양, 어디서 얻은 거죠?’,
"꿈이랍니다〜’,
엘 라의 물음에 아나스타시 아는 방긋 웃었다.
"꿈이요? 저번에 거기…?’,
"네에. 이 언니랑동생이 즐겁게 뛰어놀았던 그곳이랍니다〜’,
아나스타시아는 그렇게 짤막하게 답해주었다. 그러더니 침대에 누워있는
엘라를 향해 뛰 어들고는 그녀의 배를 베개로 삼아 눕고는 말을 이 어갔다.
"이 언니랑같이 갔던 영화관있잖아요? 기억나요?’,
"아, 그이상했던….’,
"거기서 왼쪽으로 꺾으면 오리너구리 택시를 탈수 있거든요? 그거를 타
고 두 정 거장을 가면 크레파스 같은 집 이 있는데,거기서 그림을 판답니 다〜
그런데 난생처음보는그림이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그림이 바로!’,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쫙 펼쳐서 엘라에게 보여주었다.
"이거랍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엘라는 잠시 생각하더니 버럭 화를 냈다.
"그럼 이건 예술이 아니잖아요! 그냥퍼온 거 아닌가요!’,
"어허! 예술이에요! 꿈은 영감이고, 영감은 곧 예술이에요!’,
"그 꿈나라에 언니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있는 거면 그냥 남의
꿈 퍼온 거 아닌가요!"
"어차피 온전한 형태로 가지 않는 것들이에요〜 제가 한 것은 그것을 발굴
하고 조명받게 해준 일일 뿐이랍니다.’,
엘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나스타시아에게 소리쳤다.
"이건 발굴이 아니라도굴이에요도굴!’,
"도굴이라니! 어떻게 언니에게 이런 모욕을!’,
"이러다가 전 세계 돌아다니면서 유적도 파고, 유물도 훔치고 그러겠어요!
’’
엘라는 마침 잘 걸렸다는 듯 아나스타시아를 붙잡고 설교를 늘어놓았다.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지적 재산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부터, 이런
것은 저작권에 걸릴 수가 있으니 조심히 사용해야 한다, 남의 집에 낙서해서
는 안 된다, 아무리 멋있는 것이라도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으니 나쁜 의미
가없는지 잘조사를한다음에 해야한다,특히나그것이 폐허 같은곳이 아
니라 은혜를 느끼고 있는 사람이나 친분이 있는 사람의 집이라면 더더욱
고려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었다.
엘라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올법한 당연한 이 야기를 끊임 없이 늘어놓았
고, 아나스타시 아는 처음에는 알았다면서 호응을 잘해주다가 나중에는 질
린 것인지 계속해서 하품했다.
그녀는 설교 중간중간에 빠져나갈 기회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눈을 굴리
기도 했고,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엘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가
락을 꼼지 락꼼지 락 움직 이 기도 했다.
" … 아무리 괜찮아 보여도 두 번 세 번 생 각하고 행동을 해 야 한답니 다. 그
게 레이디의 교양이라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하지만 결국 아나스타시아는 엘라의 설교가끝이 날때까지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녀는 손이 붙잡힌 채 엘라가 하는 이 야기를 모두 듣고 있어 야만 했으며 ,
아그네스에게 부탁해서 예절 교육을 해주겠다는 엘라의 엄포도 거절하지
못했고, 자신과함께 한국의 예절을 공부하자는 엘라의 끔찍하기 짝이 없는
제안 역시 강제로 수락할수밖에 없었다.
비극이었다.
쬞 쬞 쬞
.......
"흠.’,
방으로 돌아온 진성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몸에 달라붙어 있는 황금을 떼어
내는것이 었다.
그는 옷 안쪽에 서 살아있는 생물처 럼 움직 이는 황금을 바닥으로 쏟아
내었고, 그것을 모두 침대로 향하게 했다. 그러자 바닥에 쏟아진 황금은 꿀
렁꿀렁 움직이며 침대 곳곳에 스며들었고, 원래 그랬다는 것처럼 침대의 프
레임과 매트리스 아랫부분을 코팅하며 자리를 잡았다.
황금이 사라지자 진성은 옷가지를 벗어 던지고 알몸 상태로 벽 쪽으로 향
했다.
그가 향한 곳에는 천으로 덮여있는 전신 거울이 있었는데 , 거울에는 그 어
떠한 장식도 없었다.
그는 천을 슬쩍 걷어내고는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진성의 몸은 알록달록 물들어 있었다.
피부색과 빨간색이 이리저리 뒤섞여 있었고, 오직 멀쩡한 부분은 얼굴뿐
이었다.
보자.
그는 빨갛게 변한 피부를 슬쩍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그러자 따가운 느낌과 함께 화끈거 리는 열감이 느껴 졌으며, 짓무르며 고
름이 나오기 직 전의 상태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햇빛 화상, 혹은 일광 화상이 라고 불리는 1도 화상이 그의 몸 이곳저곳에
생겨 있었다.
주술의 대가였다.
하지만 진성은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빨갛게 달아오른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보기 만 하였다.
■몸 안에 자리 잡은 양기 덕분에 고작 이 정도로 끝이 났구나. 나쁘지 않구
나.,
그는 겨우이 정도대가로 끝났다는것에 만족하고는 창가쪽으로 걸어가
잘 자라고 있는 알로에의 잎 하나를 잘라내곤 그것을 빨갛게 달아오른 부분
에 문질렀다.
그리고 빠짐 없이 알로에 를 발랐다고 생 각되 자 서 랍에 서 바싹 마른 도롱
뇽의 꼬리를두어 개 집어 들고는씹기 시작했다.그리곤 알로에의 날카로운
옆면을 칼날처럼 허공에 몇 번 휘두르고는 중얼거렸다.
"닮은 것은 닮은 것을 닮는 법. 번들거리는 것은 점액과 같고, 색이 다른 것
은 비늘과 같고, 손끝의 날카로운 것은 발톱과 같다. 다만 꼬리 가 없으나 이
는외적에 의한것이니.참으로도롱뇽의 형상과닮았으니 그성질 역시 닮게
되리라.’,
진성은 마치 껌을 씹는 것처럼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알몸으로 도롱뇽
의 꼬리를 씹었다.그러자 가벼운화상을 입어 빨갛게 변해 있던 그의 피부가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갔고, 축지를 사용하느라 생긴 상처들이 꿈틀거
리며 아물기 시작했다.그리고그의 몸에 발려있던 알로에는그 양이 늘어나
기라도 한듯그의 온몸을 흠뻑 적셨다.
그는 다시 전신 거울로 자신의 몸이 완전히 나은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천
을 덮었고,꼼꼼하게 몸을 씻기 시작했다.하지만왠지 모르게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알로에 점액은그의 몸에서 씻겨 내려갈생각을 하지 않았고, 한참
동안을 씻고 나서 야 끈적 거 림과 미끈거 림 에 서 해 방될 수 있었다.
"후우.’,
몸을 정갈하게 한 진성은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통화를 걸었다.
그러자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얼굴이 보였
다.
[네, 신주님.]
리세였다.
"그래. 주물 때문에 전화하였느니라.’,
[그러신가요?]
리세는 진성이 전화해준 것이 기쁜지 미소를 지었다.
[ 마침 기도가 끝나고 신사를 한 바퀴 돌고 있는 중이었답니 다. 더 필요
하신 것이 있으신가요? 신창에 가서 스마트폰을 통해 보여드리도록 하겠습
니다.]
리세의 뒤편에는 밤중의 신사가 보였다.
어둠이 내려앉은 신사는 음산한분위기를 한껏 풍기고 있었고, 거리 때문
에 조금씩 끊기는 영상의 모습은 마치 당장이 라도 귀신이 튀 어나올 것 같은
분위 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끊김의 끝에서 리세의 뒤편에서 머리통
하나가 스르륵 올라오기 시 작했다.
머리통은 다 썩어서 퀭하게 뚫린 구멍을 내보이며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똑바로 주시하고 있었고,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을 홀리 기라도 하려는 듯 얼
굴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역겨워 보이는 벌레를 쏟아내었다. 그것이 어찌나
흉측하고 기괴 한지 영상임 에 도 썩 어 문드러 지는 냄 새 가 나는 것 같았다.
진성은 그 끔찍한 몰골을 보며 리세에게 말했다.
"어느새 새타니와도 친해진 모양이로구나.’,
[네에. 이 제는 크게 무섭 지 않답니 다.]
리세는 자신의 등 뒤에서 머리통을 내밀고 있는 새타니의 머리를 손날로
한 번 치고는, 약간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소연했다.
[하지만 장난기가 너무 심해서….그게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요.]
’’어린아이로 만든 귀신이니 어쩔 수가 없느니라. 다만 도움은 크게 될 터
이 니, 과자나 장난감 같은 것을 주고 저 것과 놀 존재를 준비해 놓는다면 야
큰무리 없이 다룰 수 있을 것이니.’,
[네에.]
리세는진성의 말에 눈웃음을 지었다.
여우가 사람을 홀릴 때 짓는 표정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예쁘장한 눈웃음이 었다.
[ 마침 나루미 가 저 대신 새 타니와 놀아주고 있답니 다. ]
진성은 리세의 아래로 넣어준 나루미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래. 주물은 네 가 확인을 하면 아니 될 것인즉, 그 아이를 이
용해야할것인데.어찌 멀쩡하더냐?’,
[ 아, 지금 앓아누웠답니다.눈에 실핏줄이 좀 터지고몸살이 좀 걸렸어요.
그래서 안약을 넣어주고 정화된 소금을 각 모서리에 배치한 방 안에서 따뜻
하게 있으라고했는데 ….]
"흠. 잘하였느니라.그래, 주물을 볼 사람이 없단말이지껬’’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들어가면….]
"허, 그건 아니 될 일이다. 어찌 피할수 있는 아픔 속으로 집어넣는 것이 행
복과 관련이 있겠느냐? 나는 너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니 그
러한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니라.’,
진성은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고 하는 리세에게 가볍게 타박을 하고는 가
볍게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가 뜨고는 리세에게 말
했다.
"그래. 료스케, 료스케라. 마침 잘되었다. 그 료스케 라는 자를 불러서 창고
를 확인하게 하여라.’,
리세는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배신자를요?]
"그래."
[ 그 배신자가 그런 짓을 할까요…?]
진성은 그녀의 물음에 차갑게 웃었다.
"마음이 바뀌 었다면 하러 올 것이고, 나와 음양사를 재고 있다면 충성을
보이기 위해 하러 올 것이며, 배신하여 음양사쪽에 완전히 붙었다고 할지라
도하러 올 것이다.’,
진성은 서적에서 보았던 그림을 떠올렸다.
하얀 종이 에 그려진, 살아 움직 일 것 같았던 그림을.
살아 움직이는 그림.
살아 움직이는 종이.
그것이 바로 음양사가 부리는 식신이었으니.
"어느 쪽이든 쓰임새 가 있느니 라."